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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클로즈 업

이란 출신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현대 영화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감독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970년대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그는 이란 뉴웨이브 영화 운동의 주축이자, 세계적인 거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을 다루지만, 그 속에 정치적·철학적 함의를 담아내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독특한 영화 세계를 구축했다. 키아로스타미는 늘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관객으로 하여금 화면 너머의 진실을 탐구하게 하는 작가였다. 예컨대 그는 “좋은 영화란 관객이 믿을 수 있는 영화”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는 곧 영화의 진정성에 대한 그의 집착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는 “가장 짧은 길로 진실에 이르는 방법은 때로 거짓말이다”라는 역설적인 신념을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 완전한 기록으로서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창작과 연출이라는 “거짓”의 장치를 통해서도 오히려 더 깊은 인간적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대표작들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클로즈업>에서 강렬하게 드러난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적 스타일은 미니멀리즘의 미학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는 이야기와 이미지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배제하고 가장 단순한 언어로 핵심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일례로 그의 영화에는 할리우드식 과도한 드라마나 화려한 특수가 거의 없으며, 지극히 일상적인 환경과 자연광, 비전문 배우들을 활용해 최대한 현실에 가까운 느낌을 전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함은 피상적인 것이 아니다. 단순함 속에 숨겨진 복합성과 여운이 바로 키아로스타미 영화의 매력이다. 그는 관객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기보다는, 반쯤 완성된 이야기를 내놓고 나머지를 관객의 상상력으로 채우게 한다. 이러한 열려 있는 구조는 관객 각자가 능동적으로 영화에 참여하도록 만들며, 매번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해준다. 키아로스타미는 영화를 “관객의 머릿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퍼즐”에 비유하곤 했는데, 이는 그의 작품이 지닌 개방성과 철학적 깊이를 잘 보여준다. 1990년에 발표된 <클로즈업>은 키아로스타미의 커리어에서 특별한 전환점을 마련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전까지 그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같은 작품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으며 시적인 리얼리즘을 선보였고, 주로 아이들의 시선이나 시골 풍경 속에서 인간미를 포착하는 서정적인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런 그가 <클로즈업>을 통해 도시 테헤란의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아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한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사실 키아로스타미는 한 잡지 기사에서 우연히 이 사건을 접하자마자 원래 준비 중이던 영화를 미루고 곧바로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클로즈업>은 그에게도 강렬한 영감의 원천이 된 이야기였다. <클로즈업>은 키아로스타미의 전작들과 결을 같이하면서도 형식적인 실험정신 면에서 한 단계 도약한 작품이다. 이후 그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로 이어지는 이른바 ‘지그재그 3부작’에서 현실과 허구를 교차하는 메타영화적 연출을 더욱 발전시켰고, 1997년 <체리의 맛>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클로즈업>은 키아로스타미 영화세계의 분수령 같은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시도된 새로운 형식(실제 인물을 데려와 자기 이야기를 재연시키는 방식)과 진실에 대한 탐구는 이후 그의 영화들뿐만 아니라, 동시대 이란 영화감독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국제 평단에서는 <클로즈업>을 두고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혁신적 해답이라 극찬했고, 오늘날에도 20세기 최고의 영화 목록에 자주 올랐을 만큼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키아로스타미 자신의 필모그래피 안에서도 <클로즈업>은 초기 작품들의 결실이자 동시에 새로운 방향의 시작을 알린 걸작으로 자리매김한다.

<클로즈업>이 제작된 1990년 무렵의 이란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전환기를 지나고 있었다. 1980년대 내내 지속되었던 이란-이라크 전쟁이 1988년에 끝나고, 1989년 혁명의 지도자 호메이니 사망 이후 이란은 라프산자니 대통령 시대에 접어들며 전후 재건과 내부 개혁에 몰두하던 시기였다. 전쟁이 끝난 직후라 사회 분위기는 비교적 안정을 되찾아 갔고, 예술과 문화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슬람 공화국 체제 하에서 영화 제작에는 여전히 엄격한 검열과 제약이 뒤따랐다. 여성 배우는 스크린에서 반드시 히잡을 착용해야 하고, 남녀 간의 신체 접촉이나 정치 체제 비판 같은 요소는 철저히 제한되었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1980년대 후반부터 이란 영화인들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담아내는 창의성을 발휘하게 되었다.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순수한 시선으로 사회를 은유하거나, 농촌이나 변두리를 배경으로 체제의 예리한 모순을 에둘러 표현하는 전략 등이 그 예다. 키아로스타미 역시 국영 어린이예술연구소에서 경력을 시작하며 교육영화, 단편 등을 통해 검열의 눈을 피하는 방법을 체득해왔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클로즈업> 같은 실험적인 영화도 탄생할 수 있었다. <클로즈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법정 촬영과 사건 재연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었는데, 이는 이란 당국 입장에서 볼 때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가 아니었기에 비교적 허용될 수 있었다. 실제로 키아로스타미는 당시 담당 판사를 설득해 재판 장면 촬영 허가를 얻어냈고, 피해자였던 아한카흐 가족과 피고인 사브지안을 모두 설득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연기하도록 했다. 이런 제작 방식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이었지만, 다행히 국가 검열에 큰 저촉 없이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 다만 정작 이란 내 관객들의 초기 반응은 냉담했다. <클로즈업>이 처음 이란 극장에 걸렸을 때 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은 이 영화의 너무나 소박한 외양과 장르 파괴적 형식을 이해하지 못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반면 해외 영화제와 평단에서는 곧바로 열광적인 찬사가 쏟아졌다. 이러한 엇갈린 반응은 당시 이란 사회의 영화 취향과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클로즈업>이 실제로 얼마나 앞서간 작품이었는지를 방증하는 일화로 남아 있다. 또한 영화의 스토리가 담고 있는 이란 사회의 단면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가난한 한 남자가 유명 영화감독을 사칭해 중산층 가정에 들어가게 되는 이야기인데, 여기에는 당시 이란의 계층 간 갈등과 문화적 동경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혁명 이후 사회주의적 이념이 강조되던 이란에서 여전히 빈부격차는 존재했고, 예술은 부유층이나 지식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작품 속 호세인 사브지안은 실직 중인 인쇄공 출신의 서민으로, 유명 예술가인 마흐말바프를 흉내내는 과정을 통해 예술이 주는 권위와 매력을 갈망한다. 한편 그를 집으로 들인 아한카흐 가족은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영위하는 층으로서, 영화감독에 대한 존경심과 호기심 때문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이는 당시 이란에서 영화감독이라는 존재가 대중에게 얼마나 영향력 있고 매력적인 아이콘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모흐센 마흐말바프 같은 감독들은 국내외에서 유명인이었고, 예술적 성취를 통해 사회적 존경을 받았다. 그런 문화적 배경이 있었기에 사브지안의 사기가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클로즈업>은 한편으로 1990년대 이란 사회의 문화적 분위기와 계층 심리를 포착한 작품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속에서 예술과 현실의 관계를 날카롭게 응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클로즈업>은 실화에 바탕한 독특한 전개를 보인다. 영화의 시작은 테헤란의 한 가정집을 향해 달리는 택시 안에서부터다. 잡지기자 호세인 페라즈만드는 경찰과 동행하여 어떤 사기 사건의 용의자를 붙잡으러 가는 길이다. 곧 그들은 아한카흐라는 중산층 가족의 집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를 사칭한 남자 호세인 사브지안을 체포한다. 이 남자는 한동안 자신을 저명한 감독이라고 속이며 아한카흐 가족의 환대 속에 지냈지만, 결국 가족의 신고로 덜미가 잡힌 것이다. 이후 영화는 사브지안의 재판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법정에서 사브지안은 왜 자신이 그런 거짓 신분극을 벌이게 되었는지 담담히 털어놓는다. 그는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개인적으로 외로운 처지에서 영화에 대한 열정과 존경심 때문에 순간적인 충동으로 마흐말바프로 행세했다고 고백한다. 특히 마흐말바프의 영화들—예컨대 가난한 가장을 다룬 <사이클리스트>—이 자신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으며, 그 영화의 감독이 “마치 자신의 삶을 구원해 줄 영웅”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잠시나마 자신이 그 영웅이 되어보는 꿈을 꿨다는 것이다. 재판은 비교적 온정적인 분위기 속에 진행된다. 사브지안의 진심 어린 태도와 눈물 섞인 증언에 판사와 방청객들도 점차 마음이 움직이는 듯하다. 피해자인 아한카흐 가족도 처음의 분노에서 누그러져 그를 연민 어린 눈길로 바라본다. 결국 판사는 사브지안에게 깊이 반성하고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겠다는 서약을 받는 조건으로, 가족에게 그를 용서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다. 아한카흐 가족은 상의를 거쳐 선처를 베풀기로 결정하고, 사브지안은 가벼운 처벌과 함께 풀려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인 만남으로 마무리된다. 출소하는 사브지안을 위해 실제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직접 오토바이에 태우고 아한카흐 가족의 집으로 데려다준다. 오토바이를 함께 탄 두 사람은 길을 가며 담소를 나누고, 사브지안은 존경하던 감독과 나란히 달리는 기쁨에 복받쳐 눈물까지 보인다. 마흐말바프는 길가에서 꽃다발을 사서 사브지안에게 건네주고, 둘은 활짝 핀 꽃을 안고 가족에게로 향한다. 집 앞에 도착하자 아한카흐 가족이 나와 그들을 맞이하고, 마흐말바프는 사브지안의 손을 잡아 이끌며 화해의 자리를 주선한다. 가족의 가장은 사브지안을 보며 “이젠 착하게 살아서 우리를 자랑스럽게 해주길 바란다”고 따뜻이 말한다. 영화는 그렇게 모두가 함께 모인 자리에서 희망 어린 용서와 화해의 정서를 남기며 끝을 맺는다.

<클로즈업>은 겉보기에 소박한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고 있지만, 세심하게 구축된 영화 언어를 통해 다층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먼저 카메라와 쇼트 구성을 살펴보면, 이 작품에서는 제목 그대로 ‘클로즈업’ 숏이 인상적으로 활용된다. 재판 장면에서 키아로스타미는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을 진행했는데, 하나는 법정 안 전체 모습을 잡는 용도로, 다른 하나는 사브지안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담는 데 집중했다. 덕분에 관객은 사브지안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떨리는 눈빛까지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 이 극적인 얼굴 클로즈업은 사브지안의 내면 진실에 다가가는 창으로 기능하며, 관객을 그의 감정 세계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흥미로운 것은 재판 중에 카메라의 존재가 공공연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키아로스타미 감독 자신이 화면 밖에서 사브지안에게 “여기 두 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고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리는데, 이는 극중 인물들에게도, 관객에게도 지금 이 모든 것이 필름에 기록되고 있음을 자각시킨다. 이러한 메타적 장치는 법정을 단순히 진위를 가리는 장소가 아니라 이야기가 전개되는 무대로 변화시킨다. 피고인인 사브지안은 판사를 향해 자신의 얘기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마치 관객에게 직접 심정을 토로하듯 말하기도 한다. 이는 영화 속 현실과 영화 자체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가 보고 있는 장면이 연출된 것인지 자연 발생적인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카메라는 중립적 기록자가 아니라, 인물과 관객 사이를 매개하는 적극적 장치로 기능하며, 진실에 다가가고자 애쓰는 감독의 시선을 대변한다. 미장센과 공간 연출 측면에서도 <클로즈업>은 리얼리즘과 자기반영성을巧妙(교묘)하게 결합한다. 영화는 대부분 실제 있었던 장소들—아한카흐 가족의 집, 테헤란의 거리, 법정 내부—에서 촬영되었는데, 이 현지 로케이션들은 이란 사회 현실의 질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예를 들어 영화 도입부에 기자와 경찰을 태운 택시가 좁은 골목길을 돌진할 때, 카메라는 차 안에서 창밖 풍경을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다. 그 와중에 우연히 포착된 디테일들이 눈길을 끈다. 경찰을 기다리던 택시 운전사가 길가에 나뒹구는 빈 스프레이 깡통을 슬쩍 발로 차자, 그것이 내리막을 따라 철렁거리며 굴러가는 모습, 바람에 날린 낙엽 더미 사이에서 운전사가 주워든 몇 송이의 들꽃 등이 그것이다. 이어서 뒤따라 골목을 뛰어 내려오던 기자가 아까 그 깡통을 또 한 번 걷어차며 지나가는데, 이런 사소한 우연적 순간들을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얼핏 보면 상관없어 보이는 이 작은 행동들은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 독특한 리듬과 현실감을 부여한다. 키아로스타미는 이렇듯 즉흥적이거나 우발적인 요소들을 미장센 속에 스며들게 하여, 이야기가 어느 한 치의 계산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삶의 단면처럼 느껴지도록 연출한다. 이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이 군더더기 없는 현실 묘사를 지향했던 방식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키아로스타미는 그 현실 속에 영화적 장난기와 여백을 심어두어 보다 시적이고 다의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편집과 내러티브 구조 역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클로즈업>은 이야기의 시간을 단순히 순서대로 배치하지 않고, 중첩과 교차 편집을 활용하여 관객이 퍼즐을 맞추듯 사건을 이해하게 만든다. 영화는 체포 장면과 재판 장면을 현재 진행형으로 보여주면서, 한편으로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의 전말을 플래시백 형태로 재연해 삽입한다. 예컨대 재판이 진행되는 중간중간에 사브지안이 어떻게 마흐말바프로 가장하여 아한카흐 가족과 처음 만나고 교류했는지가 회상 장면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관객은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추적하게 된다. 처음엔 사브지안이 어떤 인물인지, 무슨 의도로 사기를 벌였는지 알지 못한 채 체포 장면을 목격하지만, 재판을 통해 그의 입장을 듣고, 플래시백으로 실제 상황을 확인하면서 점차 조각들이 맞춰져 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키아로스타미는 이처럼 의도적인 정보 배분과 편집을 통해 서스펜스와 공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또한 재판 장면과 과거 회상 장면의 경계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고 부드럽게 오가는 편집은, 현재의 실제 재판과 회상 속의 연기가 한데 어우러져 현실과 영화가 교차하는 몽타주의 효과를 낸다. 이는 관객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다큐인가 극영화인가를 끊임없이 의식시키며, 궁극적으로 영화 매체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사운드 디자인과 음향 측면에서, <클로즈업>은 극도로 절제된 접근을 취한다. 이 영화에는 일반적인 극영화처럼 감정 고조를 위한 배경음악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신 현장 음향과 인물들의 목소리가 주된 청각 요소를 이룬다. 키아로스타미는 주변 환경음—거리의 소음, 새소리, 바람 소리 등을—살려서 삽입함으로써 현장감과 사실성을 높였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음향 설계는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사건 현장에 동석해 있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오토바이 위 장면은 사운드 연출 면에서 유명한데, 마흐말바프와 사브지안이 헬멧에 숨겨둔 소형 마이크를 통해 대화를 녹음하던 중 그만 기술적인 문제로 음성이 끊기는 사고가 발생한다. 키아로스타미는 그 예기치 못한 침묵을 억지로 메우지 않고, 오히려 그대로 영화에 포함시켰다. 그래서 관객은 달리는 오토바이의 소음과 거리의 혼잡한 소리만 듣게 되고, 정작 두 사람이 나누는 중요한 대화는 한동안 들리지 않는다. 대신 화면에는 둘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때때로 페르시아어 자막으로 그들이 주고받는 말 일부가 나타날 뿐이다. 이 장면은 원래는 단순한 녹음 사고였지만, 결과적으로 영화의 의미론적으로도 흥미로운 효과를 낳았다. 소리를 제거함으로써 관객은 두 인물의 마음을 오롯이 상상과 해석에 맡겨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이는 이 영화가 일관되게 강조해온 관객 참여의 미학과 통한다. 또한 기술적 결함조차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키아로스타미의 태도는, 현실의 불완전성마저 포용하는 영화가 얼마나 진솔하고 감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클로즈업>에서 구현된 주제의식과 형식미는 키아로스타미의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변주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그가 <클로즈업> 이후 연출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와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1990년 이란 대지진 이후의 현장을 배경으로 하는 연작인데, 여기서도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연출이 돋보인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는 감독(혹은 감독을 닮은 인물)이 지진 피해 지역을 찾아가 과거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소년을 찾는 이야기로, 실제 재난 상황과 극중 설정이 교묘히 맞물린다. 이어서 만든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한층 더 메타적인 구조로, 전작의 촬영 현장을 다룬 영화 속 영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공통점을 가지며, <클로즈업>에서 시작된 키아로스타미의 자기반영적 서사를 심화시켰다. 또한 후기작 <체리의 맛>에서는 자살을 결심한 남자의 여정을 사실적으로 그리다가, 마지막에 돌연 카메라 밖 스태프와 촬영 현장을 보여주며 영화가 허구임을 드러내는 파격적 엔딩을 선보였다. 이러한 장치는 관객으로 하여금 허구적 이야기 뒤에 숨은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효과를 냈는데, 이는 결국 <클로즈업>에서 추구한 진실과 거짓의 문제의식과 맥을 같이한다. 더 나아가 키아로스타미의 디지털 시대 작품인 <텐>이나 예술영화 <쉬린>에서는 극단적으로 단순한 형식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했는데, 이 역시 영화의 본질 요소만 남기는 실험으로서, <클로즈업>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미니멀리즘 미학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클로즈업>은 또한 동시대 이란 영화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몇몇 감독들과는 철학적·형식적 친연성을 보인다.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그 중 대표적인 예로, <클로즈업> 사건의 당사자로 등장할 만큼 이 작품과 밀접한 인연이 있다. 원래 마흐말바프는 1980년대부터 사회 비판적 영화들을 만들어온 감독으로, 사브지안 같은 서민층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마흐말바프 자신도 1990년대 중반 이후 키아로스타미 못지않게 영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형식 실험을 펼쳤다는 사실이다. 그의 작품 <살람 시네마>는 영화 오디션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적 영화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배우 오디션에 몰려와 영화에 출연하고자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영화에 매혹된 평범한 이란인들의 얼굴이 가감없이 담기는데, 이는 <클로즈업>의 사브지안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마흐말바프의 걸작 <무언의 순간>은 젊은 시절 자신이 저질렀던 실화를 바탕으로, 당사자인 본인과 피해자가 함께 배우를 캐스팅해 그 과거 사건을 재연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영화는 감독 본인이 극중 인물로 등장하고, 과거와 현재, 연출자와 피연출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점에서 <클로즈업>과 일종의 거울상 같은 면이 있다. 사실 마흐말바프는 <클로즈업>의 사브지안 사건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아 이러한 자전적 영화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거짓을 통한 진실 찾기라는 주제를 자기 방식으로 풀어냈다. 요컨대 키아로스타미와 마흐말바프는 서로 다른 개성과 출발점을 가졌지만, 1990년대를 거치며 영화의 진실성에 대한 철학적인 탐구자라는 공통 지점에서 만나게 되었다. 한편 자파르 파나히는 키아로스타미의 직계라 할 수 있는 세대의 감독으로, 그의 작품들에서도 스승 격인 키아로스타미의 영향과 공명이 발견된다. 파나히는 키아로스타미가 각본을 쓴 <하얀 풍선>으로 감독 데뷔를 했고, 이후 <서클>, <오프사이드> 등 사회성을 짙게 띤 영화를 연출하며 국제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리얼리즘에 기반한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주로 다루지만, 형식 면에서는 영화와 현실의 경계 허물기라는 실험을 이어받았다. 특히 그의 작품 <거울>은 어린 소녀 주인공이 영화 중간에 갑자기 연기를 거부하고 카메라 밖의 현실로 걸어나가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유명하다. 이 순간 관객은 지금까지 보아온 이야기가 하나의 꾸며진 영화였음을 깨닫게 되며, 극중 배우였던 소녀는 스스로 현실의 아이로 돌아가 집으로 귀가하려 한다. 이러한 메타극적인 연출은 <클로즈업>이 주는 문제의식—“우리가 보는 이 영상이 진실인가 재현인가”—을 또 다른 방식으로 제기한다. 파나히는 이후에도 이란 정부의 검열과 탄압에 맞서 반체제적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에서 형식 실험을 병행했다. 예컨대 가택연금 중에 몰래 제작한 다큐멘터리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나, 택시 운전사로 분장해 테헤란 시민들을 태우고 찍은 <택시>는 현실의 테두리 안에서 얼마나 영화적 진실을 포착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작품들이다. 이렇듯 파나히의 영화들은 키아로스타미가 닦아 놓은 사실과 허구의 교차로 위에서 사회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으며, 두 감독 모두 단순한 현실 묘사를 넘어서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영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결론적으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업>은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스스로 탐구한 메타영화이자, 동시에 한 인간의 진실을 향한 깊이 있는 초상이다. 이 작품을 통해 키아로스타미는 카메라로 현실을 포착하면서도 예술적 상상력으로 그 현실을 재창조함으로써, 삶과 영화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순간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을 새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하고, 스크린 속 거짓이 어떻게 진실보다 더 진실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클로즈업>은 1990년 이란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탄생한 특별한 산물이지만, 그 주제의 울림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보편적이다. 영화를 사랑한 한 남자의 이야기는 곧 영화 예술 자체에 대한 헌사로 확장되고, 화면에 담긴 작은 진심은 관객의 가슴 속에서 큰 진실로 되살아난다. 이런 이유로 <클로즈업>은 키아로스타미 필모그래피는 물론 세계 영화사에 남을 걸작 중의 걸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화광들에게는 무한한 탐구거리를, 일반 관객들에게는 깊은 감동과 사색을 선사하는 이 작품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기준점으로 참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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