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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는 19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인간 심리의 심층을 탐구하고 철학적 주제를 문학에 담아낸 거장이다. 그는 모스크바의 가난한 의사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였으며, 청년기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군사공학학교에 입학했지만 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군대를 떠나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국 문학작품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며 생계를 꾸렸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창작을 준비했다. 1840년대 중반 도스토옙스키는 심각한 재정난과 빚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를 타개하고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집필한 첫 장편소설이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 작품은 1846년 한 잡지에 실려 출간되었고, 출간 즉시 문단과 독자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 문단의 거목 비사리온 벨린스키는 이 신인 작가를 두고 “새로운 고골의 탄생”이라고 격찬하였으며, 도스토옙스키는 이 한 작품으로 일약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당시 함께 작품을 읽었던 시인 네크라소프가 한밤중에 달려와 도스토옙스키에게 경탄을 전했다는 일화는 그의 화려한 데뷔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첫 성공 이후 연이어 발표한 중편 <백야>와 소설 <분신> 등은 혹평을 받아 기대에 못 미쳤고, 이는 그가 문학적 방향성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1840년대 후반 도스토옙스키는 서구의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갖고 지식인 모임에 가담했는데, 1849년 혁명적 사상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극적으로 집행이 유예되는 사건을 겪는다. 이후 시베리아 유형지로 보내져 4년간의 유형 생활과 강제 복무를 치르며 심경의 큰 변화를 맞이하였고, 그 경험은 훗날 그의 문학 세계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1859년 사면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그는 다시 문학활동을 재개하여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걸작들을 발표하며 러시아뿐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쌓았다. 이러한 도스토옙스키의 문학 여정은 인간 존재의 고통과 구원, 사랑과 희생 같은 보편적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으며, 그 출발점에 선 작품이 바로 그의 문단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가 20대 중반의 나이에 집필한 서간체 형식의 장편소설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빈민층 삶을 두 주인공의 편지 교환을 통해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의 주된 인물은 중년 하급 관리인 마까르 알렉세예비치 제부쉬킨과 젊은 고아 처지의 여인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 도브로셀로바이다. 둘은 먼 친척 관계로, 가난과 고독을 공통분모로 하여 서로에게 의지하고 위안을 주는 사이이다. 이들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이는 낡은 건물의 다락방과 부엌칸에 각각 세들어 살며, 하루하루의 궁핍한 생활 속에서 편지를 주고받는다. 마까르는 좁디 좁은 부엌 방에 여러 하층민과 함께 거주하면서도, 건너편 가엾은 처지의 바르바라를 돌보는 일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는다. 그는 자신도 겨우 먹고 살 만큼 벌지만 구두창이 떨어진 바르바라를 위해 돈을 허투루 써가며 신발과 옷을 사다 주고, 끼니를 줄여가며 작은 선물까지 건넨다. 바르바라는 이러한 마까르의 진심 어린 호의를 고맙게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형편을 걱정하여 미안해한다. 서로를 아끼는 두 사람은 편지를 통해 자신의 속마음과 처지를 솔직히 드러내며 깊은 유대감을 쌓아간다. 편지 형식의 서술을 통해 독자는 점차 두 사람이 처한 과거와 현재의 구체적인 정황을 알게 된다. 바르바라는 원래 지방 시골의 비교적 평온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알코올에 빠지면서 가정이 몰락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폭력을 일삼았고 어머니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지내다 끝내 병을 얻었다. 아버지의 사망 후, 바르바라와 어머니는 친척도 없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올라와 살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들은 냉정하고 탐욕스러운 하숙집 주인 안나 표도로브나의 집에 얹혀 살게 되었는데, 그 여자는 겉으로만 동정을 보일 뿐 내심으로는 바르바라 모녀를 멸시하였다. 바르바라는 그곳에서 생활하며 인근에 사는 가난한 청년 뽀크롭스키에게 글 읽는 법과 학문을 배웠다. 뽀크롭스키는 가난했지만 총명하고 친절한 학생으로, 바르바라에게 책의 세계를 가르쳐 주며 그녀의 첫사랑이 되었다. 바르바라는 자신의 얼마 안 되는 푼돈을 모아 뽀크롭스키의 생일 선물로 대문호 푸쉬킨의 전집을 사려 하였으나 끝내 돈이 모자라자, 마침내 그의 아버지가 대신 그 책을 사서 아들에게 주도록 양보할 정도로 희생적 사랑을 보여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뽀크롭스키는 중병을 앓게 되었고, 죽기 직전 창밖의 세상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는 소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이 가슴 아픈 사건들과 잇단 생활고 끝에 바르바라의 어머니마저 숨을 거두자, 고아가 된 바르바라는 더 이상 안나의 구박을 견딜 수 없어서 그 집을 뛰쳐나와 마까르의 건너편 허름한 셋방으로 거처를 옮겼던 것이다. 이러한 바르바라의 지난 삶의 이야기는 그녀가 마까르에게 보내는 긴 편지들 속에서 드러나며, 마까르는 애틋한 마음으로 그녀의 불행을 자기 일처럼 여긴다. 한편 마까르 제부쉬킨은 사무원으로서 관청에서 서류를 베끼는 미천한 직급의 하급 관리이다. 그는 직장에서 상관과 동료들의 온갖 멸시와 놀림을 받으며 지내는데, 허름하고 해진 외투를 입고 비좁은 부엌방에 기거하는 자신의 처지를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한없이 작고 초라한 ‘쥐’에 비유하기도 한다. 마까르는 바르바라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때로는 직접 얼굴을 보러 가기도 하지만, 자신이 너무 비참한 행색을 하고 있어 그녀에게 실망을 줄까 노심초사한다. 그럼에도 그들 사이에는 책을 함께 읽고 빌려주는 정서적 교류도 이뤄진다. 바르바라는 마까르에게 문학 작품들을 권해주며 그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려 하지만, 어느 날 그녀가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 〈<외투>를 건넸을 때 마까르는 크게 상심한다. 왜냐하면 <외투> 속 주인공이 자신과 똑같이 가난하고 남들에게 조롱받는 하급관리로 그려진 것을 보고 모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일로 그는 한동안 자신을 동정하는 듯한 바르바라의 호의에 자존심이 상해 괴로워하지만, 결국 바르바라의 진심을 이해하고 두 사람의 돈독한 관계는 이어진다. 시간이 흐르며 바르바라는 근근이 먹고사는 현재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나가 가정교사라도 할까 고민하게 된다. 마까르는 그런 그녀를 붙잡고 싶지만 빈궁한 자신으로서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답답해한다. 그러던 중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는데, 마까르의 상관이 그의 남루한 차림을 딱하게 여겨 새 옷을 사라며 100루블이라는 큰 돈을 준 것이다. 마까르는 기쁜 마음에 밀린 방세와 빚을 갚고도 남은 돈을 바르바라에게 건네주어 생활을 돕는다. 바르바라는 그의 성의는 고맙지만 너무 큰돈을 받았다는 부담에 일부를 되돌려주면서, 두 사람은 조금씩 희망을 이야기하게 된다. 마까르는 이제 빚도 정리했으니 차근차근 돈을 모아 앞으로는 둘이 함께 지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미래를 그려본다. 주변 인물들의 사연도 잠시 펼쳐지는데, 마까르의 이웃 세입자인 고르쉬코프 부부는 오래된 소송에서 이겨 목돈을 손에 넣지만, 기쁜 순간 남편이 그만 숨을 거두는 바람에 허망한 결말을 맞는다. 또한 작가 지망생 라타죄예프는 마까르를 소설 속 인물로 써보겠다며 희롱해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만, 나중에는 미안함에 선물을 건네며 화해한다. 이러한 주변 사건들은 가난한 이들의 삶이 얼마나 무상하고 불안정한지, 또 마까르가 주변인들에게조차 희화화되는 미미한 존재임을 보여주며 이야기의 배경을 이룬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야기를 뒤흔드는 전환점은 바르바라에게 예기치 않은 선택의 기로가 찾아온 순간이다. 바르바라의 옛 하숙집 주인 안나 표도로브나를 통해 부유한 지주 비콥이라는 중년 남성이 그녀의 처지를 알게 되고, 어느 날 돌연 바르바라에게 청혼을 해온다. 비콥은 성격이 거칠고 탐욕스러운 인물이지만 경제적 능력을 갖춘 인물로, 바르바라는 오래 고민 끝에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마까르를 놔두고 냉정한 비콥과 떠나려는 바르바라의 결정에는 그녀의 절망적인 현실 인식이 담겨 있다. 즉, 계속해서 빈궁과 병고에 시달리며 마까르에게 의존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 그리고 자신을 위한 희생으로 일관하는 마까르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자책이 그녀를 현실적인 선택으로 이끈 것이다. 비콥과 결혼하여 도시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바르바라는 편지로 마까르에게 작별을 고한다. 이제부터 경제적 안락함 속에서 살게 될 것이지만, 그녀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말과 함께 마까르에게 자신을 잊고 제 인생을 살 것을 당부한다. 마까르는 마지막 편지에서 자신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 없이 살 수 없다. 나는 죽을 것이고 그러면 당신은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라는 절절한 고백을 남긴다. 그렇게 1846년 9월 30일자 편지를 끝으로 두 사람의 비극적 관계는 막을 내리고 소설은 종결된다. 독자는 마지막까지도 한없이 초라하고 나약한 마까르의 절규를 통해, 사랑마저 잃은 가난한 이의 절망을 생생히 느끼게 된다.

마까르 제부쉬킨은 <가난한 사람들>의 남성 주인공으로, 40대 후반의 하급 관리로 등장한다. 그는 홀로 지내는 가난하고 외로운 노총각으로, 주변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마까르는 선량하고 순박한 인물이지만 지나치게 소심하고 주눅 들어 있어서,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기며 살아간다. “나는 쥐처럼 보잘것없는 인간”이라는 자조는 그의 낮은 자존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소심한 인물이 지닌 내적 선함과 사랑의 능력이야말로 작가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마까르는 자신보다 더 힘없는 바르바라를 극진히 아끼며,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헌신한다. 가진 것 하나 없이 궁색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바르바라를 위해서는 마지막 동전까지 내어줄 줄 아는 그의 행동은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희생적 모습은 기독교적 사랑의 실천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도스토옙스키가 이후 작품들에서 심화하게 될 구원의 인간상의 초기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문학사적으로 볼 때 마까르 제부쉬킨은 고골의 아카키 등 기존의 “작은 인간” 인물상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보다 입체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로 평가된다. 그는 단순히 불쌍하고 동정받는 객체에 머물지 않고, 나름의 자존심과 감정, 꿈을 지닌 주체적인 인물이다. 예를 들어, 마까르는 자신이 비록 천하며 배운 것 없는 관리일 뿐이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는 편지에서 바르바라와 책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가 선물한 소설을 읽으며 현실을 잊어보기도 한다. 비록 고골의 〈외투〉를 읽고 분노를 터뜨리긴 했으나, 그것조차 자신이 문학 속 인물과 동일시될 만큼 문학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순진함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마까르는 지극히 감상적이고 순진한 성품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정직하고 순수한 인간미를 풍긴다. 그의 이름 ‘제부쉬킨’은 러시아어 “처녀, 소녀”를 뜻하는 단어 데부쉬카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마까르의 순결하고 순박한 심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일각에서는 남성에게 여성형 이름 별칭이 붙은 것이 부조화라는 평도 있지만, 그만큼 그는 결백하고 속인 적 없으며 현실적 야심과는 거리가 먼 인물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 마까르는 바르바라를 잃고 절망 속에서 “곧 죽을 것”이라고 절규한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그의 한없는 상실감과 더불어, 그가 바르바라에게 품었던 감정이 단순한 동정이나 친절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에게 바르바라는 삶의 유일한 의미였고 희망이었다. 결국 마까르는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은 불행해지는 길을 택한 셈인데, 이러한 자기희생적인 사랑은 도스토옙스키 작품들에 자주 등장하는 성자형 인물의 면모를 보여준다. 요컨대 마까르는 비천한 사회적 신분과 대비되는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이며, 작가는 이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타인을 향한 사랑에 있다”는 주제를 구현하고 있다.

바르바라 도브로셀로바는 가난한 젊은 여주인공으로, 부모를 여의고 병약한 몸으로 힘겨운 삶을 살다가 마까르의 이웃에 살게 된 인물이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당대 러시아 사회의 밑바닥을 살아가며, 교육은 많이 받지 못했지만 근면하고 총명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바르바라는 어린 시절부터 역경을 거치며 삶의 쓴맛을 일찍이 깨달은 현실적인 성격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한때 뽀크롭스키와의 풋풋한 사랑을 통해 지적 즐거움과 따뜻함을 맛보았으나, 연이은 가족의 죽음과 생활고를 겪으며 꿈과 순수를 상실한 채 현실의 냉혹함을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바르바라는 완전히 냉소적인 인간으로 변모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마까르와 주고받는 편지에는 상당한 정감과 인간미가 배어 있다. 처음에 바르바라는 마까르의 도움을 받는 데 미안함을 느끼고 사양하려 하지만, 차츰 그의 진심을 이해하고는 감사의 마음과 애정으로 응답한다. 그녀는 스스로도 마까르를 위로하려 애쓰고, 그의 선량함을 걱정하여 무리한 지출을 삼가 달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바르바라가 단순히 피해자적인 연약한 여성상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녀는 자존심과 도덕감을 지닌 인물로, 비록 사회적 약자일지언정 자기 판단으로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도 엿보인다. 바르바라의 이름 도브로셀로바는 러시아어로 선하다라는 의미로, 그녀의 착하고 온화한 성품을 상징한다. 실제로 그녀는 타고난 심성이 곱고 남을 해칠 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운명은 그런 선량함만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 가혹한 현실에 부딪힌다. 작품 후반부에 바르바라는 경제적 안정을 위해 비콥과의 결혼을 결정하는데, 이는 당시 기준으로 보면 비도덕적 선택으로 비칠 소지가 있었다. 18세기적 감상소설의 여주인공들은 순결과 사랑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통상적이었으나, 바르바라는 생존을 위해 물질적 타협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녀는 전통적 여성상에서 이탈하여 보다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평가된다. 도스토옙스키는 바르바라를 도덕적으로 손쉽게 단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선택을 통해 독자들이 절대빈곤이 한 인간을 어떤 궁지로 몰아넣는지 체감하도록 만든다. 바르바라는 마까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자신이 더 이상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단순한 이별의 표현이 아니라, 그녀가 비콥과의 생활을 받아들이면서 정신적·정서적 죽음을 맞이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앞서 작품에서 문학과 서신은 바르바라에게 삶의 위안이었지만, 결혼을 결정한 후 그녀는 문학에 흥미를 잃고 편지를 끊겠다고 선언한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영혼을 마까르와 함께 두고 떠난다는 뜻이자, 더 이상 이상이나 사랑을 좇지 않고 단지 살아가기 위해 체념하겠다는 슬픈 결의로 읽힌다. 바르바라는 희생적인 순애보적 여주인공인 동시에, 냉혹한 현실 앞에 무너져 내야 했던 비운의 러시아 여성상을 대변한다. 그녀에 대한 독자의 연민은 곧 그 시대 가난한 여성들의 처지에 대한 연민으로 확장된다. 도스토옙스키는 바르바라를 통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생존을 위해 어떻게 자신의 의지와 감정을 억누르며 타협하게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난 후 폐허처럼 남겨진 마까르의 모습은, 바르바라 자신의 상실감을 거꾸로 투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바르바라 도브로셀로바는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당대 사회 현실과 인간의 나약함을 체현한 복합적인 인물이며, 도스토옙스키의 초기 작품 속에서 매우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로 평가된다.

안나 표도로브나와 비콥 등 주변 인물들은 비록 조연이지만, 주인공들의 운명에 큰 영향을 끼치는 역할로 등장한다. 야코프 페트로비치 비콥은 바르바라에게 마지막에 나타나 청혼하는 나이 많은 부유한 지주이다. 그는 성격이 거칠고 탐욕스러우며, 가난한 처지의 바르바라를 동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의 대상으로 소유하려는 인물로 묘사된다. 러시아어로 그의 성 ‘비콥’은 “황소”를 뜻하며, 이는 그가 힘은 있으나 세련됨이나 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육욕적 욕망의 화신임을 상징한다. 실제로 비콥은 바르바라를 사랑해서라기보다 자신의 뜻대로 부릴 수 있는 젊은 여성을 얻는다는 계산하에 결혼을 추진한 듯한 면모를 보인다. 그는 바르바라의 옛 하숙집 주인 안나와 내통하여, 경제적으로 궁핍한 바르바라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주변을 단속하는 치밀함도 보인다. 결과적으로 비콥은 바르바라를 현실 세계로 끌어내린 가혹한 운명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 독자는 작품 내내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이 인물에 대해 적대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곧 비콥이 체현하는 부조리한 사회 자체에 대한 반감이라 할 수 있다. 안나 표도로브나는 바르바라가 어릴 적 신세를 졌던 하숙집 주인이자, 비콥과의 결혼을 주선한 인물이다. 그녀는 표면적으로는 상냥하게 동정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약자를 깔보며 착취하는 위선적인 부르주아를 대변한다. 안나는 바르바라 모녀를 하인 부리듯 하다가, 막상 바르바라가 떠나려 하자 그녀를 비콥에게 소개시켜 경제적 거래를 성사시킨다. 이처럼 돈밖에 모르는 안나의 행태는 사회의 냉혹한 단면을 드러내며, 바르바라로 하여금 고달픈 하숙 생활을 청산하고 마까르 곁으로 옮겨가게 만든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그 밖에, 바르바라의 과거 회상에 등장하는 세묘노비치 뽀크롭스키는 그녀의 청년 시절 가르침을 주고 사랑을 받았던 학구적 청년이다. 병약하고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뜨거웠던 뽀크롭스키는 바르바라에게 지적 세계와 사랑의 추억을 선사한 인물로, 일찍 요절하여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는 비록 서사에서 회상의 대상으로만 등장하지만, 바르바라의 가치관 형성과 정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이상적 남성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뽀크롭스키와 대비되는 현실의 남성 비콥이 바르바라의 최종 선택이 됨으로써, 작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끝으로, 라마타죄예프와 고르쉬코프 가족 등은 마까르 주변의 인물로 등장하여 가난한 삶의 축도를 제시한다. 라타죄예프는 작가 지망생으로 마까르의 동료인데, 그는 마까르의 곤궁한 처지를 소재 삼아 농담을 던지는 무심한 예술가로 그려진다. 한때 마까르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그는 나중에 화해를 청하지만, 그의 존재는 예술이 현실의 고통을 착취할 위험성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한편 고르쉬코프 부부와 아이들은 마까르의 이웃으로, 오랜 소송에 모든 것을 건 빈민 가장의 가족이다. 그들은 기적적으로 재판에서 이겨 큰 돈을 손에 넣지만, 남편은 기쁨에 심장마비로 죽고 가족은 슬픔에 잠긴다. 이 에피소드는 가난으로 파괴된 한 가족의 비극적 아이러니를 여실히 드러내어 작품의 사회적 주제를 보강한다. 요컨대 주변인물들은 모두 가난과 사회악의 희생자들로 기능하며,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주제를 더욱 부각하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쓰인 1840년대 중반의 러시아 사회는 농노제와 신분제가 엄격히 유지되는 가운데 도시 빈민과 하층 관리들의 비참한 생활상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던 시기였다.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면적으로는 화려한 문화와 궁정이 존재했지만, 그 이면에는 대도시로 유입된 수많은 가난한 군중과 말단 관리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산업화 초기의 러시아는 사회 안전망이 부재한 상태에서 도시 하층민들이 극심한 빈곤에 노출되어 있었고, 관료 조직의 최말단에 속한 ‘작은 인간’들은 월급만으로는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든 처지였다. 이러한 사회 현실은 당대 문학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는데, 1842년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 <외투>가 가난한 서민 관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큰 반향을 일으킨 이후, 러시아 문학계에는 현실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자연파” 또는 사회적 현실주의 경향이 확산되었다. 벨린스키를 비롯한 당대 급진적 비평가들은 문학이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고통받는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젊은 작가들에게 하층민의 삶을 소재로 삼을 것을 독려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 그 자체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내용이었다.

도스토옙스키 개인의 처지도 이 작품의 배경과 맞물려 있다. 그는 당시 무명에 가까운 청년 작가였고, 군 복무를 그만둔 뒤 일정한 수입 없이 빈곤과 채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문학을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던 러시아 하층 계급의 현실을 고발하고픈 사회적 열망도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도스토옙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뒷골목 삶을 직접 경험하고 관찰하였고, 자신처럼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데에 문제의식이 컸다. 그는 1844~1845년 약 9개월에 걸쳐 <가난한 사람들> 원고를 완성하면서, 자신과 동시대인이 겪는 고통을 진정성 있게 그려내고자 했다. 집필 당시 러시아 지식인 사회에는 프랑스 등의 사회주의 사상과 인도주의적 이상이 유입되어 있었고, 도스토옙스키도 이에 영향을 받아 인간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에 관심을 가졌다. 이 소설 원고를 읽은 동료 문인과 비평가들은 러시아 문학에서 보기 드문 서간체 형식과 하층민의 생생한 형상화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특히 급진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사회 현실 고발문학의 성공적인 예로 평가하며 열띤 지지를 보냈다. 이러한 사회적·문학적 배경하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작가 개인의 절박함과 시대의 요구가 맞아떨어져 탄생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출간 후 폭발적 반향은 그 시대 러시아 독자들이 이미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에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방증하며, 도스토옙스키 본인도 이 첫 성공을 통해 문학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가장 두드러진 메시지는 빈곤의 비참함과 인간 존엄성의 문제이다.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임으로써, 물질적 결핍이 인간에게 가하는 잔인한 영향을 생생히 보여준다. 마까르와 바르바라 두 주인공은 극도의 빈궁 속에서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현실은 이들의 선의마저 짓밟을 정도로 냉혹하다. 굶주림과 누추함, 병과 추위에 시달리는 일상은 그들에게 끝없는 수치심과 자기비하를 안겨주며, 사회의 무관심과 냉대는 그들을 점점 고립시킨다. 마까르는 자신을 쥐에 비유하며 타인들 앞에서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여길 정도로 위축되어 있고, 바르바라는 자신을 희생시키려 드는 그의 지나친 호의에 되려 마음 아파한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작품은 가난이 단순한 경제적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관계를 파괴하는 힘임을 고발한다. 바르바라가 끝내 사랑하는 이를 떠나 자신에게 애정도 없는 부자와 결혼하기로 한 결말은, 빈곤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의 선택지마저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더군다나 그 결말마저도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 비극으로 그려짐으로써, 독자는 빈곤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분노와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가 진정으로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한 사회적 메시지는 단순히 “가난은 불행하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앞서 러시아 평론가 벨린스키 등이 이 작품을 사회 고발로 읽었다면, 도스토옙스키 자신의 관심은 그보다 인간 존재의 존엄과 연대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소설 속 마까르와 바르바라는 극빈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돌보고자 하는 사랑과 연민을 잃지 않는다. 가진 것 하나 없으면서도 상대를 위해 마지막 동전까지 내어주는 마까르의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숭고한 이타심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예이다. 그는 비천한 말단 관리에 불과하지만 바르바라를 향한 실천적 사랑을 통해 자기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한다. 바르바라 또한 마까르와 주고받는 진심 어린 정을 통해 삶의 희망을 간신히 붙들고 살아간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러한 두 인물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소설이 내놓는 답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재산이나 지위가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한 헌신과 사랑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가난에 찌들어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있을 때 희망은 살아 있으며, 반대로 그 사랑을 잃는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메시지가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다. 이는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넘어서 보편적 인간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주제로서, 훗날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에서 반복적으로 변주되는 핵심 사상이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은 계급 갈등과 사회적 위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담고 있다. 작품 속에서 부유층이나 권력층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그 부재 자체가 현실 사회의 부조리를 환기한다. 예컨대 바르바라를 이용해 한 몫 챙기려는 안나 표도로브나나, 가난한 처지를 비웃는 마까르의 동료들, 그리고 바르바라를 소유물처럼 대하는 비콥의 태도 등은 당시 러시아 사회 상류층의 착취적이고 자기중심적 행태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극중 인물들의 불행은 단순한 운명이 아니라, 바로 그런 사회 구조의 산물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처럼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냉엄한 풍자와 비판을 숨은 맥락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는 이를 직접적으로 설교하거나 혁명적 구호로 표출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인물들의 고통과 선택을 서사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느끼고 깨닫게 만든다. 이 점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참여 문학임과 동시에 깊은 인간 이해를 바탕에 둔 휴머니즘 소설로 평가된다. 빈곤의 문제는 작품이 쓰인 19세기뿐 아니라 현대사회까지 지속되는 난제인 만큼, 도스토옙스키의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은 오늘날까지 유효한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은 러시아 문학사에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첫째로, 이 작품은 러시아 최초의 사회 소설로 일컬어져 왔다. 벨린스키는 이 소설을 읽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사랑과 고통, 그리고 파멸을 통해 사회의 불평등과 악폐를 폭로한 사회비판적 작품”이라고 평하며, 기존의 낭만주의 문학과 구별되는 새로운 사실주의 문학의 도래를 선언했다. 나아가 동시대 사상가 알렉산드르 헤르첸 등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대한 사회주의적 작품”이라고까지 부르며 사회개혁적 의의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평가에 힘입어 <가난한 사람들>은 훗날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시초 가운데 하나로 거론될 만큼, 문학이 현실 문제를 다룰 때 보여줄 수 있는 힘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되었다. 19세기 러시아에서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등의 리얼리즘 문학이 개화하고, 더 나아가 20세기 소비에트 시대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이 국가 이념으로 정착하는 흐름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연장선에 도스토옙스키의 초기 현실 참여 문학이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 문학 세계의 출발점이자 그의 향후 작품 경향을 예고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문단에 나온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내면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하는 독자적인 문체와 서술 기법을 선보였다. 비평가들은 이 신예 작가가 보여준 섬세한 심리 묘사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높이 평가했고, 이러한 특징은 이후 도스토옙스키가 발표하는 모든 작품에서 변주·발전되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마까르 제부쉬킨이라는 인물은 러시아 문학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작은 인간” 전통을 잇는 동시에, 그 이전의 인물들을 뛰어넘는 입체적 개성을 지닌 주인공으로 평가된다 고골의 〈외투〉 속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에비치가 체제의 희생양인 가엾은 직업인으로 묘사되었다면, 도스토옙스키의 마까르는 거기에 더하여 고귀한 희생과 사랑의 능력을 지닌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리얼리즘은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독자성을 이루는 바, 이후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와 소냐, <백치>의 미시킨 공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알료샤 등으로 계승되는 “고난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구현하는 인물”들의 계보가 이미 <가난한 사람들>에서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순히 한 시대의 사회소설로서뿐만 아니라, 도스토옙스키 문학 세계의 원형이 담긴 작품으로서 문학사적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셋째로, <가난한 사람들>의 등장은 러시아 소설 기법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도 의의를 지닌다. 이 작품은 편지 형식의 구성을 택하여, 당시 러시아 문학으로서는 흔치 않았던 서간체 소설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18세기 서구에서 유행한 서간체 기법을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현실에 맞게 변용함으로써, 작가적 실험정신과 참신함을 보여주었다. 이후 러시아 문학에서는 서간체 소설이 주류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서술 시점과 화자의 다성적 활용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입증되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이처럼 사회성, 심리성, 기법상의 혁신성 등 여러 방면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러시아 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품이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은 19세기 중엽 러시아 사회의 빈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애와 심리적 진실을 탁월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당대 독자들로부터 “러시아 최초의 사회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현실 폭로 문학의 개가를 올렸지만, 동시에 사랑과 희생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깊은 감동을 준다. 도스토옙스키는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 이미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누구보다 따뜻하게 어루만지면서, 한편으로는 사회 구조의 모순을 예리하게 드러내 보였다. 편지 형식에 담긴 마까르와 바르바라의 목소리는 가난이란 벼랑 끝에 내몰린 인간 군상의 내면을 생생히 대변하며, 독자로 하여금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끼게 한다. 문학사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러시아 리얼리즘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도스토옙스키 문학 세계의 서막으로 평가되며, 그 안에 깃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이해, 휴머니즘적 메시지는 시대를 넘어 보편적 울림을 준다. 무일푼의 가난 속에서도 타인을 생각하며 발버둥치는 마까르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 영혼의 가장 아름다운 빛과 마주한다. 그리고 바르바라의 눈물을 통해, 인간을 둘러싼 사회 현실의 냉혹함을 절감한다. 이렇듯 <가난한 사람들>은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한 한 편의 인간 드라마로서, 도스토옙스키가 우리에게 던지는 영원한 물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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