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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손탁, 해석에 반대한다

수잔 손탁은 20세기 후반 미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비평가였다. 뉴욕에서 유대인 가정에 태어나 일찍부터 문학과 철학에 심취한 그는, 시카고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하며 학문적 토대를 쌓았다. 대학 시절부터 사르트르와 카뮈 등 유럽 실존주의 사상과 예술에 깊이 매료되었고, 나아가 벤야민과 아도르노로 대표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에도 친숙했다. 이렇게 형성된 지적 배경 위에서 손탁은 예술과 문화를 해석하는 독자적인 시각을 발전시켰고, 이는 이후 그가 발표한 평론과 에세이 전반에 일관되게 드러난다. 특히 그는 순수 예술에서 대중문화에 이르는 폭넓은 분야를 아우르며, 기존의 경직된 비평 관행에 도전하는 혁신적 관점을 제시하였다. 그의 첫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는 이러한 손탁의 사유가 집대성된 저작으로, 출간 당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해석에 반대한다>가 집필되고 출간된 1960년대 중반은 서구 사회가 급격한 문화적 전환을 겪던 시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적 풍요와 대중소비 문화의 확산, 텔레비전과 팝아트의 등장으로 예술의 지형은 전례 없이 다변화되고 있었다. 한편 지성계에서는 전통적 인문주의와 근대 예술관에 대한 새로운 의문이 제기되었다. 문학계에서는 모더니즘 문학의 종언이 논의되고 있었고, 비평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적 사회비평이나 프로이트주의적 심층해석 같은 거대 담론들이 예술작품 해석의 준거로 흔히 동원되었다. 1964년에 발표된 수잔 손탁의 에세이 〈해석에 반대한다〉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에 대한 과도한 해석 경향에 맞서 새로운 감수성의 등장을 예고한 선언으로 읽힌다. 당시 손탁은 뉴욕 지식인 사회의 일원으로서 <파르티잔 리뷰> 등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모두를 아우르는 비평을 전개하고 있었다. <해석에 반대한다> 평론집의 출간은 이러한 1960년대 문화 격변과 지적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기존 비평 담론에 대한 도전장을 던지며 시대정신을 대변한 사건이었다.

<해석에 반대한다>는 1961년부터 1965년 사이에 발표된 손탁의 글들을 모은 평론집으로, 총 26편의 에세이가 5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1부에는 표제작인 〈해석에 반대한다〉와 〈스타일에 대해〉가 실려 있는데, 이 두 편은 손탁의 이론적 입장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선언적 에세이다.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손탁은 예술 작품을 둘러싼 해석 중심의 비평 풍토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작품의 형식과 감각적 효과에 주목하는 새로운 태도를 촉구한다. 이어지는 〈스타일에 대해〉에서는 흔히 내용과 별개로 간주되어 온 ‘스타일’을 옹호하며, 형식과 내용의 분리를 거부하고 작품을 총체로서 이해할 것을 주장한다. 2부와 3부에는 문학과 연극 분야의 비평들이 담겨 있다. 손탁은 실존주의 사상가와 현대 작가들의 저작을 논평하면서, 예술가들의 정신적 딜레마와 사회적 역할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 20세기 문학과 연극에 대한 그의 통찰과 함께, 당대 예술에 내재한 철학적 문제들을 조명한다. 4부와 5부에는 영화와 대중문화 및 새로운 예술 경향에 대한 글들이 수록되었다. 손탁은 유럽 예술영화에서 SF 영화에 이르기까지 영화 매체의 미학적 특징을 분석하고, 1960년대 뉴욕의 전위예술 현상(해프닝 등)과 대중문화의 미감을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특히 〈‘캠프’에 관한 단상〉은 당대 주류 밖에 있던 캠프적 감수성을 조명하여 대중문화도 진지한 미학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인 기념비적인 글이다. 마지막으로 〈단일한 문화와 새로운 감수성〉에서는 과학기술 시대에 예술을 수용하는 방식의 변화를 논하며, 고급문화와 통속문화의 구분이 희미해진 새로운 감수성을 옹호한다. 이처럼 <해석에 반대한다>에 담긴 에세이들은 문학, 연극, 영화, 회화부터 팝아트와 하위문화까지 아우르면서도, 일관되게 예술을 하나의 살아있는 경험으로 파악하려는 손탁의 문제의식으로 관통되어 있다. 각각의 글은 개별 분야의 논평인 동시에 해석 중심의 전통적 비평 태도를 넘어서는 미학적 입장을 구체화하고 있어, 전체 평론집에 통일된 사상적 흐름을 부여한다.

손탁이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제기한 핵심 논지는 “해석” 행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해석이란 예술 작품에 내재된 참된 의미나 메시지를 찾아내기 위해 작품을 다른 무엇으로 환원하고 변형하는 과정을 뜻한다. 손탁은 이러한 해석 행위가 예술에 대한 일종의 폭력이자 “지성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라고까지 지적한다. 해석이 작품의 겉으로 드러난 형상과 형식적 아름다움을 존중하지 않고 그것을 억지로 파헤쳐 숨은 내용으로 치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작품을 약화시키고 파괴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대 성행하던 마르크스주의적·프로이트주의적 비평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손탁은 그런 해석들이 예술 작품을 본래의 맥락에서 떼어내어 관념적 의미에 종속시키며, 나아가 관객의 감각을 둔감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보았다. 이러한 비판의 철학적 의미는 예술 인식에 대한 관점 전환에 있다. 손탁은 예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전통적 해석학적 틀 대신, 작품과 수용자 사이의 직접적인 경험과 교감을 중시하는 태도를 옹호한다. 그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의미 찾기”의 관성을 거부하고, 대신 예술을 하나의 존재 방식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자는 미학적 전환을 제안한다. 이를 손탁은 비유적으로 “예술의 성애학”이라 표현했는데, 예술 작품을 지적인 해독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사랑하듯 감각적으로 향유하자는 급진적인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미학적 함의도 크다. 손탁의 관점에서는 형식과 내용이 분리 불가능하며, 예술 작품의 가치는 논리적 메시지가 아니라 작품이 창출하는 독특한 분위기와 정서적 충격, 즉 형식이 지닌 힘에 놓여 있다. 따라서 비평가는 작품의 숨은 의미를 분석하는 데 몰두하기보다는, 작품이 어떻게 우리의 감각을 사로잡고 새로운 지각을 가능케 하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탁의 해석 비판은 예술을 지적인 담론의 종속물로 삼지 말고, 예술 경험 자체의 의미를 재평가함으로써 미적 가치를 옹호하려는 철학적 입장으로 이해된다. 손탁의 주장은 오랜 미학 전통과 날카로운 긴장을 이룬다. 우선 플라톤적 예술관과 대비하면 그 차이는 극명하다. 플라톤은 예술을 현실의 모방에 불과한 것으로 경계하며, 이상적 진리나 도덕에 비추어 예술을 판단하려 했다. 이러한 전통에서는 예술 작품의 표면적 형상보다는 그것이 암시하는 관념적 이데아나 교훈적 내용을 중시하게 마련이다. 손탁이 비판한 “해석”의 관행은 바로 이런 플라톤 이래의 경향, 즉 작품을 어떤 숨은 교훈이나 알레고리적 의미로 치환하려는 태도와 통한다. 손탁은 이 점에서 플라톤적 해석 전통을 거슬러, 예술의 표면에 깃든 생생한 감각과 형태 자체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역설한 셈이다. 마르크스주의적 비평과도 충돌이 일어난다. 20세기 중반 지식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 해석은 예술 작품을 사회경제적 맥락과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읽어내려는 경향이 강했다. 예컨대 한 소설이나 그림을 그 배경이 된 계급 투쟁이나 자본주의적 모순의 반영으로 간주하는 식이다. 손탁은 이러한 경향을 “공격적이고 불경한” 해석이라고 부르며 비판했는데, 예술을 정치적 내용으로 환원함으로써 작품의 자율성과 미적 힘을 훼손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식 정신분석 비평에 대해서도 손탁의 입장은 비슷했다. 프로이트주의 해석은 예술을 무의식적 욕망이나 성적 상징의 표현으로 바라보지만, 손탁에 따르면 이러한 독법은 작품의 표면에 나타나는 구체적 아름다움과 정서적 체험을 무시한 채 모든 것을 숨겨진 성적 기표로 환원함으로써 예술적 감동을 빈약하게 만든다. 이처럼 손탁의 <해석에 반대한다>는 플라톤 이래의 모방설적 예술관, 19세기의 도덕주의적 비평, 그리고 20세기 이데올로기 비평과 심층심리학적 비평이 공유하는 가정을 정조준한다. 그 공통점이란 예술을 무엇인가 다른 것의 수단이자 암호로 간주하여 필연적으로 해독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데에 있다. 손탁은 이에 대해 예술은 다른 것의 목적을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로 자율적이고 목적적인 경험이라고 힘주어 옹호한다. 이러한 입장은 당대 주류 비평 담론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으며, 결과적으로 손탁의 주장은 예술의 고유한 가치와 즉시적 감동을 옹호하는 목소리로서 해석에 치우친 미학 담론에 균형을 잡아주는 견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손탁의 해석 비판은 1960년대 후반부터 전개된 다른 미학 이론가들의 사상과도 일정한 맥락을 공유한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를 들 수 있다. 바르트는 손탁과 거의 동시대에 활동하며 문학과 신화에 대한 구조주의적 분석으로 유명했는데, 1967년 발표한 에세이 〈저자의 죽음〉에서 작가의 의도나 전기적 맥락에 얽매인 전통적 독법을 거부하고 독자와 텍스트의 상호작용을 중시하였다. 이는 손탁의 주장처럼 작품의 의미를 고정된 해석에 가두지 않고 보다 열린 감상의 가능성을 옹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르트는 또한 만년의 저서 <텍스트의 쾌락>에서 독서 행위를 지적인 해독이 아니라 쾌감과 놀라움의 연속으로 묘사하는데, 이 점에서 예술을 감각적으로 즐기라는 손탁의 “예술의 성애학”과 통하는 면이 있다. 참고로 바르트 자신은 초기에는 문화적 신화를 해석하는 작업을 했으나, 후기에는 해석자 중심의 권위를 해체하고 의미의 다원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변화는 비평가로서 손탁이 추구한 방향과 정신적으로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자크 데리다로 대표되는 해체론적 사유와 손탁의 입장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데리다는 1960년대 후반에 부상한 탈구조주의의 핵심 철학자로서, 텍스트의 의미가 단일하지 않으며 읽기란 끝없는 해체와 재해석의 과정임을 역설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의미를 무한히 해체하며 파고드는 데리다의 접근은 손탁의 “해석을 멈추라”는 외침과 상반되어 보인다. 그러나 두 사상가의 문제의식에는 접점도 있다. 데리다는 궁극적이고 초월적인 중심 의미의 부재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전통적인 해석의 권위를 흔들었는데, 이는 일종의 해석 행위 자체에 대한 회의라는 점에서 손탁의 입장과 통한다. 둘 다 예술과 텍스트를 하나의 고정된 진리가 담긴 그릇으로 보지 않고 훨씬 유동적이고 다면적인 대상으로 파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데리다의 글쓰기가 고도로 이론적이고 난해한 철학 담론의 형태를 띠는 반면, 손탁은 전문 용어를 최대한 배제한 수필적 문체로 예술 작품의 경험을 서술하며 옹호했다는 차이가 있다. 요컨대 손탁은 특정 학파에 속하지 않는 독자적 비평가였지만, 그의 1960년대 에세이에서 보여준 통찰은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던 미학의 흐름 속에서 선구적 목소리로 평가될 수 있다.

<해석에 반대한다>는 예술 비평의 지형에 새로운 지평을 연 저작으로 평가된다. 손탁이 역설한 “있는 그대로의 예술 경험”을 존중하는 태도는 이후 구조주의 이후의 문화비평이나 오늘날의 “포스트-비평” 논의에서도 재조명되고 있다. 그만큼 그녀의 비평적 문제 제기가 해석 중심의 관행을 반성하고 비평 담론의 자기 혁신을 촉구하는 데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문화현상을 진지한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캠프’에 관한 단상〉은 당시 주류 밖에 있던 캠프적 감수성을 조명함으로써 이후 대중문화 연구와 퀴어 미학 담론의 발전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손탁이 록 음악, SF 영화, 패션 등 통속적 소재를 지적인 담론의 장으로 끌어올린 작업은 오늘날 대중문화 담론이 학술적으로 자리잡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의 예술 비평계에서는 손탁이 옹호한 바와 같이 작품의 형식적 특징과 감각적 효과에 주목하는 기술적 비평과 작품 자체의 맥락을 중시하는 접근법이 보다 폭넓게 수용되고 있다. 물론 손탁의 주장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예술 작품의 사회·정치적 함의를 해석 없이 논할 수 없다는 반론이나, 해석의 배제가 오히려 예술을 탈맥락화하여 보수적 미학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마저도 손탁이 촉발한 담론 지형의 일부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손탁은 예술과 비평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함으로써 현대 예술철학과 비평 이론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해석에 반대한다>는 예술 작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혁신적으로 재고하게 만든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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