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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 샤오시엔, 남국재견

허우 샤오시엔은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의 작품들은 길게 지속되는 롱테이크와 절제된 서사로 유명하며, 개인의 기억과 역사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허우는 <비정성시>, <희몽인생>, <호남호녀> 등 대만의 역사적 트라우마와 집단 기억을 다룬 작품들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과거 회고적이고 서정적인 작품들에 이어, <남국재견>은 허우 샤오시엔 필모그래피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룬다. 이 영화는 이전의 시대극들과 달리 1990년대 현재의 대만을 배경으로 하며, 허우 특유의 미학을 현대의 방황하는 청년 세대와 암울한 현실에 접목한 실험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남국재견>은 허우 샤오시엔의 작품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역사에 대한 향수를 아름답게 그렸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하면, 이 작품은 동시대의 거칠고 생생한 삶을 그대로 화면에 담아낸다. 감독은 우아한 그림엽서 같은 미장센을 일부러 벗어던지고, 대신 날것에 가까운 현실감을 추구한다. 이는 허우가 과거에서 현재로 시선을 옮긴 첫 번째 본격 현대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시에 <남국재견>은 이후 그가 만들 <해상화>, <밀레니엄 맘보> 등의 현대적 작품들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한다. 즉, 이 영화는 과거의 기억을 탐색하던 거장이 현재의 방황과 혼돈을 응시하기 시작한 신호탄이었다. 비록 개봉 당시에는 다른 대표작들에 비해 호불호가 갈렸지만, 나중에는 평단으로부터 재평가를 받아 1990년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등 허우 샤오시엔 영화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남국재견>이 나온 1990년대 중반의 대만은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불과 몇 년 전에 계엄령이 해제되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1996년 최초의 총통 직선제가 실시되는 등 정치 지형이 급변했다. 그러나 민주화의 진전은 역설적으로 정치 부패와 폭력 조직의 유착이라는 그림자를 동반하기도 했다. 이 시기 대만 사회에는 이른바 “검은 금 정치”라 불린 정치-폭력배 결탁이 만연했고,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부조리와 혼란이 존재했다. 영화 속에서 지방 정치인과 건달들이 뒤섞여 거래하는 모습이나, 경찰이 범죄 조직과 결탁하는 암시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즉, <남국재견>의 배경에는 과거 권위주의의 잔재와 신생 민주 사회의 부조리가 공존하는 당시 대만의 단면이 깔려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90년대 대만은 고도성장과 산업화를 겪은 후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시기였다. 하지만 빠른 현대화는 젊은 세대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안겨주기도 했다.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나 공동체 의식은 퇴색하고, 돈과 성공이 최고의 가치로 부상하면서 삶의 방향을 잃은 청년들이 늘어났다. 영화는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사회 최하층의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들은 범죄와 합법의 경계에서 잔꾀를 부리며 당장의 돈벌이에 급급하지만, 사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떠돌이 세대다. 허우 샤오시엔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대만 청년층의 상실감과 방황을 담아낸다. 또한 중국 대륙과의 관계도 90년대 대만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정치적으로는 긴장이 높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 본토의 경제 기회에 눈을 돌리는 사업가들이 생겨났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상하이에 나이트클럽을 열어 한몫 잡으려 하거나, 결국 떠돌다 못해 해외 이민을 꿈꾸는 모습 등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대만인들 사이에 퍼진 이주 열망과 대륙 진출 꿈을 반영한다. 동시에 이러한 탈출의 꿈은 현실에서 도피하고픈 욕망이기도 하다. 요컨대 <남국재견>은 민주화 이후 대만 사회의 표류하는 정서와 물질만능주의 시대의 공허를 사회문화적 배경으로 두고 있다. 이 영화의 세계에서는 과거의 억압은 사라졌지만, 그 빈자리에 뿌리 없는 자유와 방향 잃은 에너지만이 가득한 듯한 시대 풍경이 펼쳐진다.

영화는 뚜렷한 기승전결의 플롯보다는 인물들의 방황을 따라가는 에피소드들의 연속으로 전개된다. 중심인물은 가오로, 한때 조직 폭력배였으나 이제는 온갖 편법과 수완으로 돈벌이 기회를 노리는 중년의 해결사다. 그는 친척동생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일종의 “형님” 격으로 통하며, 늘 새로운 사업 계획을 꿈꾸지만 번번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가오의 곁에는 그가 이끄는 조직 아닌 조직이 있는데, 여기에는 젊은 동생과 그의 여자친구 프레츨이 핵심 멤버로 있다. 동생은 다혈질의 말썽꾸러기로,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어 사고를 치기 일쑤다. 반면 가오는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며 현실감 없이 탕진하는 상처 입은 영혼으로, 도박빚에 허덕이다 삶을 포기하려 들만큼 불안정하다. 가오의 연인 잉도 등장하는데, 그녀는 같은 클럽에서 일하면서도 가오의 범죄 세계를 탐탁지 않아 한다. 잉은 가오에게 범죄를 청산하고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라며, 함께 식당을 차려 정착하자고 제안한다. 초반에 영화는 가오와 그의 일행이 남부 지방을 오가는 여정을 비추며 시작된다. 가오는 친구 시와 손잡고 시골 마을 핑시에서 단기 도박장을 열어 한몫 잡으려 한다. 이들은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남쪽 마을을 배경으로 잔뜩 들뜬 모습으로 새로운 사기를 도모한다. 동시에 가오는 상하이의 나이트클럽 투자 이야기에도 발을 걸치고 있어, 대륙으로 진출해 돈을 벌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일확천금 계획들은 하나같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정부 보조금을 노리고 돼지를 헐값에 사들여 비싼 종돈으로 둔갑시켜 되파는 수상한 거래를 모색하지만, 그러는 사이 동생의 돌출행동으로 현지 조직과 마찰을 빚는다. 영화의 서사는 인과관계가 뚜렷하게 설명되지 않은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관객은 퍼즐 조각을 맞추듯 이야기의 전모를 유추해야 한다. 각 씬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단편 같은 인상을 주며, 장면과 장면 사이에 시간적 점프나 맥락의 생략이 빈번하다. 이를테면 어느 순간에는 인물들이 농장을 찾아가 돼지를 트럭에 싣고 있고, 갑자기 다음 순간에는 클럽에서 노는 장면으로 건너뛰는 식이다. 이러한 비선형적 구성 덕분에 이야기는 마치 파편화된 삶의 단면들처럼 전개되며, 인물들의 일상이 지닌 단조롭고 반복적인 양상이 부각된다. 주요 갈등은 동생의 공격적인 성격에서 비롯된다. 가오가 애써 성사시키려는 거래마다 동생이 사고를 쳐서 물거품이 되고, 문제를 수습하느라 가오는 동분서주한다. 여자친구는 마작 도박에 빠져 빚을 지고, 결국 자살 시도까지 하는 극단적 선택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가오 일행의 삶은 점점 궁지로 몰리며 빈곤한 현실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가오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계획을 쥐고 놓지 않는다. 식당을 열겠다는 잉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도, 그는 한편으로 “이번 한 탕만 더 하면”이라는 생각에 다음 사기를 계획한다. 이러한 반복은 영화 후반까지 이어져, 인물들은 남쪽 지방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끊임없이 어딘가로 이동한다. 결국 동생의 다툼으로 남부의 조직폭력배들과 큰 싸움이 벌어지고, 가오의 패거리는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가오는 어쩔 수 없이 부패한 지방 정치인에게 손을 벌린다. 그 정치인은 깡패 두목 못지않은 영향력으로 사태 수습을 중재해주지만, 대가로 막대한 금품이나 청탁을 요구한다. 이런 뒷거래를 통해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지만, 이것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영화는 뚜렷한 해결이나 결말 없이 열린 채로 끝나는데, 마지막에는 주인공들이 탄 차나 오토바이를 따라가던 카메라가 뜻밖의 각도로 급격히 움직이며 불안한 여운을 남긴다. 관객은 이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채로, 그저 그들이 남쪽을 등지고 어딘가로 떠나가는 모습만을 목격하게 된다. 이런 엔딩은 허우 샤오시엔 영화답게 삶의 한 단면을 포착해 보여주고는 조용히 작별을 고하는 셈이다. 서사적으로 볼 때 <남국재견>은 범죄 영화의 틀을 빌리면서도 범죄나 액션보다는 정처 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삶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거창한 사건은 없지만, 그 무사건의 연속 자체가 이 시대 젊은이들의 현실을 대변하는 냉소적인 코멘트라 할 수 있다.

<남국재견>은 형식 면에서도 허우 샤오시엔 특유의 연출 미학이 두드러지지만, 동시에 새로운 실험이 가미된 작품이다. 우선 카메라의 활용을 보면, 이 영화에는 지극히 정적인 숏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숏이 교차한다. 허우의 이전 영화들처럼 인물과 공간을 고정된 롱샷으로 오랫동안 응시하는 장면들이 많다. 카메라는 종종 방 한 구석에 놓인 듯 인물을 먼 거리에서 한 컷에 담아내며, 관객이 마치 방관자처럼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도록 한다. 예컨대 가오와 동생, 여자친구가 함께 있는 허름한 호텔방 장면을 보면, 좁은 방 안에 세 사람이 각자 따로 놀고 있는 모습이 롱테이크로 그려진다. 화면 구도는 의도적으로 방의 네모난 형태를 강조하여, 인물들이 상자 안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자아낸다. 동생은 바닥에 엎드려 휴대용 게임기에 몰두하고, 가오는 침대에 반쯤 누운 채 전화 통화를 시도하다 끊기기를 반복하며, 프레츨은 아예 화장실 문도 닫지 않은 채 용변을 보는 등 제멋대로인 세태를 보여준다. 이때 카메라는 이들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담담하고도 냉정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컷을 나눠서 클로즈업이나 리액션을 보여주는 법이 없고, 하나의 숏 안에서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이 늘어지는 시간의 표현 속에 인물들의 권태와 불안, 그리고 서로에 대한 묘한 친밀감과 짜증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하지만 <남국재견>은 전적으로 정적이지만은 않다. 흥미롭게도 허우는 이 작품에서 이동하는 카메라 숏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영화 전체에 독특한 리듬을 부여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인물들이 기차, 자동차, 오토바이 등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주로 트래킹 쇼트로 촬영되었는데, 가령 기차의 마지막 칸 밖으로 풍경이 지나가는 장면이나, 자동차 뒷좌석에서 본 도로의 연속,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따라가는 긴 숏 등이 눈에 띈다. 특히 유명한 장면으로, 동생과 여자친구, 그리고 가오가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올라가는 시퀀스가 있다. 이때 카메라는 약간 앞서 달리며 굽이치는 길을 유려하게 따라가는데, 푸른 풍광 속에서 세 인물이 오토바이를 나란히 몰며 밝게 웃는 모습이 몇 분간 이어진다. 대사 한 마디 없이 경쾌한 음악과 바람소리만이 흐르고, 화면 가득 자유로운 운동감이 펼쳐진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보기 드문 해방감과 평화로움의 순간이다. 감독은 이렇게 이동과 여행의 이미지들을 곳곳에 배치하여,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잠깐씩 찾아오는 자유의 감각을 표현한다. 길고 지루할 수 있는 영화에 이러한 움직임의 ‘섬’들을 찍어 놓음으로써 리듬의 변주를 만들어낸 것이다. 색채와 조명, 미장센 역시 주제의식을 뒷받침한다. 허우 샤오시엔은 과거 작품에서 고풍스럽고 따뜻한 색감을 즐겨 사용했지만, <남국재견>에서는 의도적으로 거칠고 자극적인 색채를 들여왔다. 예를 들어 밤의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가라오케 바 장면에서는 화면이 녹색과 자홍색 네온빛으로 어지럽게 물들어 있다. 또 일부 장면에서는 노란색, 붉은색, 녹색의 강한 필터를 사용하여 현실이 약간 비틀린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는 현대 도시의 환락과 혼돈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인물들의 몽롱한 심리 상태를 대변하기도 한다. 현실 세계가 이들에겐 때로 환각처럼 느껴지고, 꿈과 야망도 일종의 신기루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장된 색감과 조명은 영화의 사실주의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과 불안감을 느끼게 만들어 작품의 정서에 동참하게 한다. 편집과 장면 전환에도 허우의 독특한 방식이 드러난다. 그는 설명을 위한 컷이나 전통적 극적 연결을 최소화하고, 빈 공간과 여백을 남기는 편집을 선호한다. <남국재견>에서도 어떤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보여주지 않고 툭툭 생략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동생이 사고를 친 뒤 어떻게 수습되었는지, 프레츨의 자살 소동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등을 직접 말해주지 않는다. 관객은 때론 앞뒤 문맥이 생략된 장면에 갑자기 던져지는데, 이럴 때 그 공백을 메워 의미를 완성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이러한 편집 방식은 영화에 단조로운 현실의 반복성과 삶의 단면을 포착한 듯한 느낌을 부여한다.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있는 그대로의 순간들을 붙여놓아 삶의 연속성을 암시한다. 또한 이러한 생략의 미학은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도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예컨대 가오가 어떤 결심을 하거나 좌절을 느끼는 순간을 친절히 설명하지 않아도, 이전과 이후의 행동 변화를 통해 그 심경을 유추하게 한다. 이러한 여운을 남기는 편집은 허우 샤오시엔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이며, <남국재견>에서도 관객에게 능동적 해석의 공간을 제공한다. 영화 사운드 또한 주목할 요소다. <남국재견>에서는 임강이 음악을 담당하여, 기존 허우 작품에서는 잘 들리지 않던 록/일렉트로닉 음악이 배경으로 흐른다. 영화의 시작은 검은 화면에 울려퍼지는 격렬한 록 음악으로 열리는데, 이 곡은 극중 동생 역을 맡은 임강의 앨범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현대적인 비트의 음악은 인물들의 거친 에너지와 당대 젊은 문화를 표현한다. 특히 극 중반 나이트클럽이나 가라오케 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는 영화의 테마와 교차한다. 한 장면에서 남자가 가라오케로 부르는 노래에는 “사랑도 미움도 모두 파멸을 부를 수 있고, 진짜 사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남을 죽이지도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다. 이 가사는 극중 인물들의 막다른 심리와 폭력 충동, 그리고 삶을 지속하려는 의지를 대변하는 듯하다. 허우 샤오시엔은 이런 방식으로 음악을 단순한 분위기 연출 수단이 아니라 주제의 반영으로 활용한다. 반면 일상의 소음과 침묵도 중요하다. 조용한 시골 밤에 벌레 우는 소리나, 기차 객실의 단조로운 철컥거림, 캐릭터들이 말을 잃은 순간의 정적 등이 오히려 큰 울림을 준다. 이러한 현실 음향들은 관객을 영화 속 세계에 깊숙이 몰입시키며, 마치 그 공간에 함께 있는 듯한 현장감과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남국재견>의 연출은 긴 호흡의 관찰자적 시선과 순간적인 운동감이 교차하며 독특한 리듬을 형성한다. 카메라는 때론 멈춰서 인물들의 무료한 시간을 응시하고, 때론 움직이며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려 안간힘쓰는 모습을 쫓는다. 미장센은 화려함과 추잡함이 공존하는 현대 대만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도, 과감한 색채와 구도로 그 삭막함을 강조한다. 편집의 빈칸과 여백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들의 삶을 곱씹게 만들고, 음악과 소리는 그들의 내적 상태와 시대의 정조를 드러낸다. 이러한 영화적 요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몇몇 대표 장면들—예컨대 앞서 언급한 오토바이 질주 신, 호텔방에서의 권태 신, 가오가 화장실에서 오열하는 신, 엔딩의 불안한 이동 신 등—은 영화 전체의 정서와 리듬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허우 샤오시엔은 이처럼 치밀한 연출을 통해,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영화에 관통하는 삶의 진실성과 무언의 드라마를 스크린에 구현해냈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주제의식은 저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내게는 “방향을 잃은 채 앞으로만 나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으로 다가왔다. 극중 인물들은 과거를 돌아볼 겨를도, 돌아갈 곳도 없이 그저 눈앞의 생존과 욕망을 쫓아 달린다. 영화의 원제 “남국, 안녕”은 말 그대로 고향 남쪽과의 작별을 뜻하는데, 이는 단순히 지리적 남쪽 지역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쪽은 따뜻하고 정겨운 과거의 은유일 수 있고, 북쪽은 차갑고 경쟁적인 현대 도시 문명의 상징일 수 있다. 결국 제목이 암시하듯 인물들은 자신들의 뿌리와 순수함을 뒤로 한 채 떠나가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세계에서 행복을 찾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영화 내내 그들은 남쪽을 등지고 달려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듯한 모순에 갇혀 있다. 이러한 모습은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전통과 공동체의 나침반을 잃고 표류하는 세대 전체를 은유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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