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양은 1980년대에 등장한 대만 뉴웨이브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사람이다. 1947년 타이베이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에서 공학을 공부하고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뒤늦게 감독의 길에 들어섰다. 1983년 옴니버스 영화 <해변의 하루>로 데뷔한 이후, <공포분자>, <타이페이 스토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등 현대 대만 사회를 깊이 있게 그린 작품들을 선보였다. 에드워드 양의 작품 세계는 도시 속 개인의 고독과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복잡한 도시 풍경 안에 인간 군상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긴 호흡의 정적인 미장센을 통해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동시대의 허우샤오시엔, 차이밍량 등과 함께 대만의 뉴웨이브 운동을 이끌며, 전통적인 멜로드라마 위주의 대만 영화계에 현실적이고 작가주의적인 바람을 불어넣었다. 에드워드 양은 2000년 작품 <하나 그리고 둘>을 마지막으로 비교적 이른 나이인 59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영화들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예술성과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다. <하나 그리고 둘>이 개봉한 2000년 무렵의 대만은 급격한 현대화와 도시화를 겪은 사회였다. 1980년대 이후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형성되고 타이베이 같은 도시에는 고층 아파트와 네온사인이 가득한 도시 풍경이 일상화되었다. 정치적으로는 1990년대에 접어들며 민주화와 다원화가 진행되어, 2000년에는 최초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 등 사회 전반에 변화의 물결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 그리고 둘>은 이러한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평범한 도시 중산층 가족의 일상 속에 스며든 변화를 포착한다. 당시 대만의 가족 구조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예컨대 이 영화의 주인공 가족처럼 3세대가 한 지붕 아래 사는 경우도 여전히 많았지만, 동시에 부부가 맞벌이를 하거나 청년들이 서구식 연애를 하는 등 새로운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대만 사회는 글로벌 경제와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청소년 문화도 빠르게 변모했다. 젊은 세대는 해외 영화와 음악, 최신 기술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효 문화나 공동체 의식도 남아 있어,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에 가치관 충돌과 세대차가 생겨나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나 그리고 둘>은 바로 이런 시대의 교차로에 선 대만 사회를 배경 삼아, 도시적 삶의 풍경과 그 이면의 가족 및 개인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타이베이에 사는 중산층 젠 가족의 삶을 담담하게 그린다. 이야기의 시작은 결혼식 장면이다. 가족의 가장 NJ와 아내 민민은 민민의 남동생 아디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있다. 겉보기엔 평범하고 단란해 보이는 이 결혼식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지는데, 아디의 옛 여자친구가 예식장에 들이닥쳐 과거의 상처를 토로하면서 시작부터 파란을 예고한다. 그날 밤 결혼식 뒤풀이에서 NJ는 우연히 첫사랑 셰리를 30년 만에 재회한다. 셰리는 이제 미국에 건너가 가정을 꾸렸지만 두 사람은 반가움과 묘한 긴장 속에 옛 추억을 나눈다. NJ는 그녀에게 연락처를 받고, 한때의 설렘과 현재의 책임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린다. 한편 집으로 돌아온 가족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닥친다. 함께 살고 있던 할머니가 그날 밤 뇌졸중으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가족들은 충격에 빠지고, 할머니는 병원에서 의식 없이 지내게 된다. 의사는 환자에게 매일 말을 걸어주라고 권하지만, 딸인 민민은 의식 없는 어머니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한다. 결국 민민은 깊은 우울감에 빠져 일상을 견디지 못하고 요양을 위한 절로 떠나 마음의 안식을 찾기로 한다. 이렇게 집을 비운 사이, 남편 NJ와 두 자녀는 각자 삶의 도전에 직면한다. NJ는 한편 회사에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가 몸담은 소프트웨어 회사는 경영난에 처해 일본 기업과의 사업 계약을 타진하는 중이다. 동료들은 신제품 개발을 위해 일본인 프로그래머 오타를 영입하려 하지만, 뒷거래와 눈속임을 일삼는다. 양심적이고 음악을 사랑하는 NJ는 회사의 부정한 관행에 염증을 느낀 상태다. 그는 통역을 맡아 타이베이에 온 오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뜻밖의 우정을 쌓는다. 두 사람은 세대와 국적을 뛰어넘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인생과 두려움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다. NJ는 오타와의 만남으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옛 연인 셰리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나 혼란스러워한다. 출장차 일본으로 간 NJ는 셰리와 재회하여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갖지만, 결국 가족 있는 자신의 현실로 돌아오는 길을 택한다. 그의 내면에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과 지금의 삶에 대한 책임감이 교차한다. NJ와 달리 이제 막 삶의 첫사랑과 좌절을 맛보는 이는 딸 팅팅(켈리 리 분)이다. 틴에이저인 그녀는 이웃에 사는 또래 친구 리리와 가깝게 지내는데, 리리의 개인사에 휘말리게 된다. 리리에게는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복잡한 관계로 잠시 헤어진 상태다. 리리가 다른 나이 많은 남자와 어울리는 사이, 팅팅과 팡즈는 우연히 서로에게 이끌려 풋풋한 교제를 시작한다. 처음 느껴보는 설렘에 가슴 뛰던 것도 잠시, 이 삼각관계는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치닫는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팡즈가 리리의 새 남자를 흉기로 해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팅팅은 충격과 죄책감에 휩싸인다. 사실 그녀는 할머니가 쓰러진 날 쓰레기를 내다놓지 않아 대신 할머니가 나갔다 변을 당했다고 자책해 왔는데, 이제 친구의 불행까지 목격하며 마음의 짐이 한층 무거워진다. 소녀는 혼자 번민하지만 속시원히 털어놓을 사람도, 집에 엄마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팅팅은 혼수상태의 할머니 곁을 지키며 눈물로 용서를 빈다. 할머니의 침묵 앞에서 그녀는 자신의 잘못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토해내며, 삶의 복잡함을 처음으로 마주한다. 한편 막내아들 양양의 눈에 비친 세상은 또 다르게 돌아간다. 8살인 양양은 호기심 많고 창의적인 아이지만 학교에서 종종 괴롭힘을 당한다. 짓궂은 여자아이들에게 물폭탄 세례를 받기도 하고, 반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양양은 특유의 천진함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대응한다. 그는 아빠의 낡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독특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의 피사체는 다름 아닌 사람들의 뒷모습이다. “왜 뒷모습을 찍니?”라는 물음에 양양은 천연덕스럽게 답한다. “앞에서는 보이지만 뒤에서는 안 보이니까요. 우리 눈에 보이는 건 반쪽뿐이라서요.” 양양은 사진으로 타인도 자신도 볼 수 없는 세계의 절반을 포착해내려 한다. 그의 엉뚱하지만 순수한 예술 행위는 영화 전반에 걸쳐 중요한 상징이 된다. 양양의 사진들은 가족에게 때론 웃음을, 때론 잔잔한 깨달음을 준다. 예컨대, 삼촌 아디에게 자신이 찍은 뒷모습 사진을 선물하며 “이제 형도 자기 등짝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은 관객에게 미소를 짓게 한다. 양양은 어린 나이에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며, 종종 영화의 현자 같은 역할을 한다. 이렇듯 NJ, 팅팅, 양양 각자의 에피소드가 병렬적으로 전개되며, 이야기는 결혼식으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난다. 여러 갈래의 사건들은 한 가족이라는 큰 흐름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교차된다. 영화 후반, 결국 할머니는 긴 혼수 상태에서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가족들은 슬픔 속에 장례식을 준비하며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미국에서 셰리도 조의를 표하러 오고, 절에 들어갔던 민민도 돌아온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 양양은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준비해 온 편지를 읽는다. 그는 맑은 목소리로 “할머니, 저는 앞만 볼 수 있어서 반쪽밖에 모르지만 이제 사진으로 다른 반쪽을 기억하게 됐어요. 할머니가 제게 보여준 것들을 감사해요…”라는 취지의 어린 마음을 전한다. 양양의 순수한 고백은 가족과 관객의 가슴을 울리며 영화는 잔잔하게 막을 내린다. 결혼식의 시작부터 장례식의 끝에 이르는 이 가족의 여정은, 우리의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을 한 편의 드라마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 한 폭의 그림 같다.
에드워드 양은 미장센과 카메라 워크, 편집, 사운드 모든 면에서 절제와 세밀함이 돋보이는 연출을 선보인다. <하나 그리고 둘>은 전체 러닝타임이 3시간에 달하지만, 빠른 전개나 화려한 기교 대신 차분한 롱테이크와 정적인 카메라로 일상의 디테일을 포착한다. 카메라는 대부분 삼각대에 고정된 채 인물들을 중거리 또는 원거리에서 응시하며, 팬이나 줌 같은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이러한 고정 롱숏 들은 관객이 마치 연극 무대를 바라보듯 인물들의 관계와 주변 환경을 한 프레임 안에서 관찰하게 만든다. 관객의 시선은 고요한 화면 속에서 자연스레 이리저리 움직이며 작은 변화에도 주목하게 된다. 예컨대 영화 초반 결혼식 장면을 보자. 한 집안의 경사로 북적이는 예식장 풍경이 한번의 롱테이크로 펼쳐진다. 실내에 설치된 카메라는 하객들의 움직임과 대화를 한눈에 담는데, 창문 밖으로는 신랑의 옛 애인이 소란을 피우는 모습까지 동시에 비친다. 이때 화면 앞쪽에서는 주인공 가족의 일원이 당혹스러워하고, 화면 너머 창밖에서는 과거와 얽힌 갈등이 벌어지며, 배경에는 웨딩 음악이 흐른다. 이러한 다층적 연출 속에서 관객은 어느 한 지점만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삶의 단편들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양 감독은 이렇게 한 장면 안에 복합적인 이야기를 병치함으로써, 인생사의 희비가 동시에 진행됨을 보여준다. 촬영 기법 면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반사와 투과를 활용한 이미지들이다. 에드워드 양은 유리창, 거울, 화면 속 화면과 같은 소재를 활용하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한 화면에 겹쳐 놓는다. 몇 가지 인상적인 숏을 예로 들어보자. NJ의 아내 민민이 남편에게 자신의 공허함과 우울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그녀는 거실 창문 옆에 서 있고 카메라는 실내를 비추고 있다. 이때 창밖의 도시 불빛과 창유리에 비친 민민의 실루엣이 겹쳐 보인다. 그녀의 얼굴은 어둑한 실내 그림자 속에 있고, 그 위로 바깥 세상의 네온사인이 일렁인다. 이 시각적 구성은 민민이 느끼는 정서적 고립과 단절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그녀는 가족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한 채 외로운 그림자로 서 있고, 도시는 여전히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다. 관객은 창문 너머로 겨우 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통해, 가족조차 그녀의 내면을 뚜렷이 헤아리지 못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팅팅이 첫 데이트를 하러 나가는 장면에서는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뒷모습과 문이 닫히며 사라지는 모습을 잡아낸다. 거울 속 소녀의 모습은 앞으로 펼쳐질 설렘과 불안을 암시하듯 희미하게 겹쳐지고, 복도의 불빛은 순간 어두워진다. 이렇게 반사의 기법은 영화 전반에 걸쳐 사용되며, 캐릭터의 심리와 주변 세계를 한 화면에 중첩시켜 복합적인 의미를 만들어낸다. 편집 역시 에드워드 양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하나 그리고 둘>은 각 인물의 에피소드가 교차 편집되면서도 유기적 연결성을 잃지 않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세대와 시공간을 뛰어넘는 편집적 대구이다. 예를 들어, NJ와 셰리가 도쿄 거리에서 옛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NJ는 셰리에게 “내가 처음으로 너의 손을 잡았을 때, 우리 영화 보러 가면서 철길 건널목에 있었지…”라고 말한다. 바로 그 순간 영화는 카ット 없이 타이베이의 거리로 장면을 전환하여, 마침 신호를 기다리던 딸 팅팅과 소년 팡즈가 손을 잡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도쿄의 과거 회상 장면으로 이어져, 젊은 시절 NJ와 셰리가 철로 앞에서 손을 맞잡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평행 몽타주를 통해 영화는 아버지와 딸, 과거와 현재의 두 세대의 첫사랑 순간을 교묘하게 포개 놓는다. 이러한 편집 기법은 삶의 경험이 세대를 넘어 반복되고 연결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관객은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유사한 감정의 교감을 한 흐름 속에서 느끼게 된다. 또한 이러한 편집은 영화의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는데, NJ와 팅팅이 겪는 사랑과 상실의 감정이 다르지 않음을 암시하며 인생의 순환을 깨닫게 한다. 음향과 음악 측면에서는, 양 감독의 부인인 펑카이리(彭鎧立)가 작곡한 잔잔한 오케스트라 음악이 영화에 깔린다. 하지만 음악은 필요할 때에만 절제되어 등장하며, 상당 부분은 생활 소음과 침묵으로 채워진다. 예컨대 가족이 일상을 보내는 아파트 장면에서는 도시의 희미한 소음, 바람 소리, 시계 초침 소리 같은 배경음만 들릴 뿐 별도의 스코어가 깔리지 않는다. 이는 마치 현실의 한 단면을 그대로 도청하는 느낌을 주어, 영화의 사실감을 높여준다. 관객은 인물들의 대사와 표정, 정적인 순간에 더욱 집중하게 되며, 조용한 일상 속 긴장과 여운을 음미할 수 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마다 흐르는 음악은 탁월한 정서적 효과를 낸다. 예를 들어 NJ와 셰리가 재회하는 호텔 바 장면에서 피아노 선율이 잔잔히 흐르고, 오타와 NJ가 술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치며 옛 노래를 공유하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의 우정과 향수가 음악으로 표현된다. 또한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장례식 장면에서는 거의 무음에 가까운 정적이 이어지다가, 양양의 편지 낭독이 끝난 후 조용한 현악기가 배경에 흐르며 관객의 감정을 한층 고양시킨다. 이렇게 소리의 빈칸과 음악의 배열은 영화의 리듬을 형성하고, 마치 “하나, 그리고 둘…” 하고 삶의 박자를 세어주듯이 관객을 감정의 파동으로 안내한다. 에드워드 양의 연출 의도는 영화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숏 바이 숏으로 삶의 단면을 포착하여, 그 조각들을 모아 인생의 초상화를 그리는 듯한 접근을 취했다. 전체적으로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 인물의 감정을 과장되게 밀어붙이는 일은 드물다. 대신 거리를 둔 관찰자적 시선으로 인물들을 보여주며, 그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공기를 관객이 느끼도록 만든다. 이는 인물들의 내면을 오히려 더 진솔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낳는다. 배우들의 연기도 절제되어 있어, 폭발적인 눈물이나 격정적인 대사 대신 일상의 작은 제스처와 표정 변화로 감정을 표현한다. 이러한 현실감 있는 연출 속에서 관객은 마치 훔쳐보는 듯한 친밀함을 느끼게 되고, 자기 삶의 이웃을 들여다보는 듯한 공감을 얻게 된다. 또한 영화 전반에 깔린 명상적인 템포는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시간을 준다. 에드워드 양은 인터뷰에서 “영화는 관객이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거울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실제로 <하나 그리고 둘>의 시각적 구성은 군더더기를 덜어낸 거울처럼 맑고 투명하여, 거기 비친 가족의 모습에 관객 각자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해볼 수 있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양양의 얼굴을 담는 클로즈업 숏은 거의 세 시간 동안 한 발짝 떨어져 있던 카메라가 드물게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이다. 이때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망울과 목소리가 화면을 가득 채우며, 앞서 차곡차곡 쌓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관객에게 벅찬 울림을 준다. 이는 양 감독이 끝내 전달하고자 한 인생에 대한 애정과 연민의 정서가 절정에 달하는 장면으로, 기술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대단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하나 그리고 둘>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대만 사회와 문화, 더 나아가 인간 보편의 주제들을 심도 있게 형상화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우선 이 영화는 도시화된 대만 사회의 초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대도시 타이베이의 빌딩 숲 속에 살면서 각자 고립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급격한 현대화로 인한 도시인의 소외감과 정체성 혼란을 반영한다. NJ는 글로벌 자본과 기술 경쟁의 시대에 직업적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그의 딸은 현대적 연애 풍속과 전통적 가치관의 충돌 속에서 상처받는다. 아들 양양은 정보와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지만 정작 본질을 보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들은 2000년대 대만뿐 아니라 세계 모든 도시인들의 보편적 고민이기도 하다. 실제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특정 민족성보다 세계화된 도시 생활의 보편성을 담아내고자 했고, 그래서 대만인이 아닌 관객도 이 가족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영화는 현대성이라는 주제를 가족의 일상 속에 녹여내는데, 첨단기술과 경제 발전이 인간에게 풍요와 편의를 주었지만 역설적으로 영혼의 공허도 안겨주었다는 통찰을 제시한다. 민민이 겪는 공황과 우울, NJ의 허무함은 모두 잘 사는 도시인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다. 영화는 이를 과장 없이 담담히 보여주면서, 현대를 사는 우리가 직면한 실존적 문제를 성찰하게 만든다. 또한 작품은 가족과 개인의 관계를 다루며 전통적인 가족관과 새로운 개인주의 사이의 긴장을 포착한다. 젠 가족은 세대가 다른 구성원들이 한 지붕 아래 살지만, 정작 서로의 속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 할머니는 물리적으로는 가족의 중심에 존재했으나 끝내 말 한마디 없이 떠나고, 남은 이들은 각자 그녀에게 더 해주지 못한 말을 후회한다. 이는 가족 내 소통의 부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내 민민은 헌신적으로 가정을 꾸려왔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공허를 느끼게 되는데, 이는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서의 여성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녀가 한동안 집을 떠나 자기 마음을 추스르는 과정은, 희생을 요구받던 전통적 여성상이 현대사회에서 겪는 정신적 위기와 치유의 필요성을 암시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영화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읽을 수도 있다. 민민의 목소리가 가족에게 쉽게 닿지 않고, 그녀가 집을 비운 동안에도 큰 갈등 없이 일상이 돌아가는 듯 보이는 것은, 가족 내에서 그녀의 존재가 얼마나 당연시되고 투명하게 취급되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결국 가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다시 말없이 돌아와 제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현실 속 많은 어머니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을 떠올리게 해 뭉클한 여운을 준다. 한편, 포스트식민주의적 맥락에서도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에는 일본인 캐릭터 오타가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고, NJ와 깊은 우정을 나눈다. 일본은 과거 대만을 식민 지배했던 역사가 있지만, 영화 속에서 둘은 철저히 개인 대 개인으로서 만나 서로의 고독을 이해하는 친구가 된다. NJ와 오타가 함께 술을 마시며 음악을 공유하고 인생을 논하는 장면은, 과거의 식민-피식민 관계를 넘어 현대 아시아인들의 연대와 교류를 보여준다. 이는 탈식민 시대 대만의 정체성 변화와도 연결된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세계의 일원으로 나아가는 대만 사회에서, 외국인(일본인)과의 솔직한 소통은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NJ의 옛 연인 셰리가 미국으로 이민 가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설정이나, 딸 팅팅의 친구가 영어 선생과 관계를 맺는 에피소드 등은, 대만인의 삶이 더 이상 섬 내부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문화와 뒤얽혀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요소들은 대만 영화가 전통적 민족 서사에서 벗어나 초국적 정체성을 모색하는 움직임과 궤를 같이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빛나는 지점은 성장과 죽음이라는 삶의 보편적 주제를 깊이 있으면서도 담백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영화는 인생의 여러 단계를 한 가족 안에 배치하여 삶의 순환을 보여준다. 어린 양양의 천진함, 청소년 팅팅의 혼란과 첫사랑, 중년 NJ의 후회와 책임, 노년 할머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스펙트럼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여기에는 인생의 특별한 영웅담이나 극적인 계기가 없다. 그 대신 “사는 게 다 그런 것”이라는 담담한 진리가 흐른다. 영화는 인물들에게 친절한 구원이나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예컨대 할머니는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NJ의 사업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며, 팅팅의 첫사랑은 쓰라린 이별로 끝난다. <하나 그리고 둘>은 우리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억지로 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이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본모습을 솔직하게 마주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주는 감흥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비극과 행복, 상실과 성장이 동전의 양면처럼 얽혀있는 것이 인생임을 보여주고, 그런 삶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영화 제목 “<하나 그리고 둘>” 자체가 삶의 리듬을 은유한다. ‘하나, 그리고 둘…’은 음악을 시작하기 전에 박자를 세는 구호이기도 하다. 인생의 기쁜 일(결혼식)과 슬픈 일(장례식)이 차례로 찾아오는 모습은 인생이라는 긴 음악의 박자처럼 느껴진다. 각각의 사건이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드라마틱한 구성은 아니지만, 일상의 자잘한 희비가 모여 인생 교향곡을 이룬다는 사실을 영화는 조용히 들려준다. 이런 점에서 <하나 그리고 둘>은 거창한 담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삶과 죽음, 가족과 세대, 개인의 성장과 상실에 대한 깊은 철학적 울림을 전하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특별함은 세대를 아우르는 따뜻한 시선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에드워드 양은 당시 50대의 나이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중년의 통찰을 담아 부모 세대의 고뇌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고 동일한 무게로 다루었다. 영화 속 NJ의 회한 어린 눈빛과 팅팅의 눈물 어린 표정 모두에 감독은 깊은 공감을 보내는 듯하다. 이는 이 작품이 단순히 중년 남성의 회고담이나 청춘 드라마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대의 삶을 공평하게 조명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균형 잡힌 시선 덕분에 관객 또한 자기 연령과 관계없이 모든 인물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다.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장면에서 어린아이부터 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슬픔과 깨달음에 잠기는 모습은, 인생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군상극이다. 결국 <하나 그리고 둘>은 특별한 영웅 없는 평범한 가족사를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낸, 현대 영화의 한 소우주라고 평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