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초, 교토의 릿세이(立誠) 소학교 자리에서 일본 최초의 영화 상영 시연이 이루어졌다. 이케하타 가쓰타로라는 사업가가 프랑스 루미에르 형제를 직접 만나 들여온 발명품, 시네마토그래프를 통해서였다. 그는 1896년 프랑스 방문 중 오귀스트 루미에르로부터 “움직이는 사진” 즉 영화 기술을 소개받고 장비를 구해와, 1897년 1월에 프랑스 기술자 콘스탄 지렐과 함께 귀국하였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1897년 1월 하순 교토 전등 회사의 중정(훗날 릿세이 소학교 부지)에서 시험 상영에 성공하였다. 이 역사적인 시연은 일본에서 영화가 처음 선보인 순간으로 기록된다. 당시 교토 전등은 전기를 공급하던 회사로, 시네마토그래프의 작동에 필요한 전력 등 기술적 지원을 제공했다. 그 결과 1897년 2월, 교토에서 루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시험적으로 공개 상영하는 데 성공하여 일본 영화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 릿세이 소학교 부지는 훗날 ‘일본 영화 발상지’로 불리게 되었고, 학교 건물 앞에는 이를 기리는 표석도 세워졌다. 실제로 “본 교정은 1897년 루미에르 시네마토그라프의 시험 상영이 이루어진 곳”이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이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고 있다. 이는 루미에르 형제가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영화를 공개한 지 불과 2년 후에 일본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교토의 릿세이 소학교는 이렇게 일본 영화 탄생의 무대가 되었고, 교토 시민들에게 최초로 “움직이는 영상”을 선보인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다.
릿세이 소학교는 메이지 2년(1869년) 설립된 교토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소학교 중 하나로, 1928년에는 현재 남아있는 철근콘크리트 교사 건물이 준공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 도심 인구구조 변화와 학생 수 감소로 운영이 어려워졌고, 124년의 역사 끝에 1993년 3월 31일 폐교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폐교 직전인 1992년도 졸업생은 불과 11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학생 수가 줄어들어 있었으며, 학교 통폐합 정책에 따라 주변 4개 학교와 합쳐 새 학교가 개교하게 되었다. 폐교식은 1993년 3월 25일에 거행되어, 지역주민과 졸업생들이 모인 가운데 교토 중심부의 오래된 소학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짐을 기렸다. 다행히도 릿세이 소학교의 아름다운 교사 건물은 즉시 철거되지 않고 보존되었다. 학교가 문을 닫은 후에도 이 건물은 지역 사회의 공간으로 적극 활용되었다. 폐교 직후부터 주민들은 이 공간을 지역 문화활동 거점으로 되살리고자 하였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2000년대에 걸쳐, 영화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문화 이벤트가 옛 교실과 강당 등에서 열렸다. 예컨대, 교토 기반 영화사인 시마필름과 영화인 교육단체 “영화24구” 등은 빈 교실을 활용해 영화 제작 워크숍을 진행했고, 학생극이나 음악 공연도 수시로 열렸다. 이로 인해 폐교 후 옛 릿세이 소학교 건물은 “릿세이 문화의 마을”이라 불리며, 관서 지역 예술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교실 벽에는 과거 학교 졸업생들의 단체 사진이 계속 걸려 있었는데, 연도별 졸업생 수가 점차 줄어들다가 폐교 시엔 아주 적었다는 사실이 이 사진들로도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남겨진 학교 건물을 무대로 지역 주민들은 축제, 전시회, 세미나 등을 열면서 도심 속 문화 플랫폼으로 재탄생시켰다. 특히 릿세이 소학교 건물이 위치한 교토 기야마치 지역은 폐교 이후 규제가 풀리면서 유흥업소가 급증해가는 상황이었다. 오랜 세월 동네 아이들을 키워왔던 학교가 사라지자 주변 거리가 퇴폐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본 지역주민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이에 주민들은 릿세이 자치회를 중심으로 건물을 활용한 건전한 문화활동으로 동네의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했다. 2005년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12년 만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지는 행사가 열렸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이는 폐교 이후 늘어난 퇴폐업소를 몰아내고 지역을 지키려는 움직임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에서 2007년, 교토시는 “문화예술을 통한 마을 만들기” 구상의 하나로 릿세이・문화의 마을 프로젝트 운영위원회를 결성하여 이 공간을 지원했다. 이후 이곳에서는 연극 축제, 독립영화 상영회, 음악회 등이 개최되었고, 옛 학교는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문화공간이자 만남의 장소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2013년, 옛 릿세이 소학교 건물 3층 교실 한 칸에 작은 영화관이 문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교토시와 민간 영화사 시마필름이 공동 주최한 이 프로젝트는, 교토 영화문화 부흥을 위한 실험적인 시도였다. 대표인 시마 토시키는 교토 출신의 영화 프로듀서로, 이전부터 지방 소도시의 극장을 인수해 운영하거나 독립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등 지역 영화문화 유지에 열정을 보여온 인물이다. 실제로 시마필름은 교토부 마이즈루시의 야치요관 영화관과 후쿠치야마시의 후쿠치야마 시네마 등, 대형 멀티플렉스가 진출하지 않은 지역의 오래된 극장들을 인수하여 운영해 왔다. 시마 토시키 사장은 “마을에 영화관이 없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지방의 극장을 지켜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철학을 지닌 시마필름이 교토 도심 한복판, 일본 영화 탄생지인 옛 릿세이 학교에 작은 예술영화관을 꾸민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는 2013년 4월에 공식 출범하여, 2014년 4월 상설 독립영화관 형태로 본격 개관했다. 운영 책임자는 시마필름 소속의 타나카 세이이치로, 그는 프로젝트 기획 단계부터 실행을 이끈 젊은 영화인이었다. 타나카를 비롯한 기획진은 옛 학교 교실 하나를 극장으로 개조하였는데, 나무 바닥과 칠판, 창틀 등 옛 모습은 최대한 보존한 채 영사 스크린과 음향을 설치했다. 좌석은 다리를 밑으로 내려넣을 수 없는 좌식형 좌석으로 배치되어 특유의 옛 교실 분위기를 살렸으며, 난방이 충분치 않아 겨울엔 썰렁하고 의자가 딱딱하다는 불평도 나왔지만 오히려 그런 환경까지 영화 감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관객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상영관은 매일 운영되었고, 일본 독립영화와 해외 예술영화, 고전 영화 등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개관 이후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상영한 작품 수만 400편이 넘었고, 40여 회의 기획전을 개최하는 등 열정적인 프로그램 운영을 했다.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의 핵심 철학은 단순히 영화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를 배우고 창작하는 체험의 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시네마 프로젝트와 동시에 “시네마 칼리지 교토”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병행하였다. 시네마 칼리지는 배우, 시나리오 작가, 영화배급 기획자 등 영화산업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일종의 영화 학교로, 배우 연기 코스, 시나리오 창작 코스, 영화마케팅・배급 코스의 세 가지 과정을 운영했다. 이는 교토시와 시마필름, 그리고 영화교육단체인 “영화24구”가 협력하여 만든 프로그램으로, 매년 신진 영화인을 모집해 교육하고 실제 단편 영화 제작까지 해보는 실습 위주 커리큘럼이었다. 타나카 세이이치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영화 제작자와 관객이 만나는 학교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릿세이 시네마에서는 상영작의 감독이나 배우를 초청해 관객과의 대화를 정기적으로 열었고, 시네마 칼리지 수강생들이 직접 단편 영화를 만들어 발표하는 자리도 마련되었다. 즉, 영화를 보고, 배우고, 직접 만들어보는 일련의 과정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러한 철학 덕분에 릿세이 시네마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러 간다’는 행위 전체가 하나의 문화적 체험이 되도록 하는 특별한 장소로 성장했다. 또한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는 지역 밀착형 운영을 지향했다. 상영 프로그램은 교토 국제학생영화제 등 지역 영화행사와 연계되기도 했고, 극장 로비에는 인근 서점이나 예술가들의 소규모 전시도 열렸다. 인근에 거주하는 시니어 관객을 위해 평일 낮시간 상영을 늘리고, 학생 관객에겐 할인과 회원제 혜택을 제공하여 저변을 넓혔다. 이런 노력으로 릿세이 시네마는 교토 도심의 예술영화 사랑방 역할을 수행했고, 오래된 학교 건물의 향수를 느끼려는 원로 졸업생부터 영화 공부를 하러 오는 젊은 학생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교류하는 공간이 되었다. 졸업생 출신 어르신들은 옛 교정을 찾아와 극장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며 옛 추억을 나누기도 했고, 이로 인해 “졸업생들이 언제든 찾아와도 환영받는 장소”로 거듭났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처럼 시마 토시키와 시마필름이 이끈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는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문화운동이었다. 상업적인 이익보다는 교토라는 도시가 지닌 영화사의 뿌리를 되살리고 새로운 세대와 연결하는 데 방점을 찍었으며, 이는 일본의 미니시어터 운동의 모범적인 사례로 회자되었다.
2017년,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교토시가 오랜 기간 공백지로 남겨두었던 옛 릿세이 소학교 건물 부지의 민간 개발을 본격 추진하게 되면서, 더 이상 그곳에서의 영화관 운영을 지속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교토시는 2016년부터 이 부지 활용을 위한 사업 제안 공모에 착수했고, 2017년 초 민간 사업자에게 건물을 장기 임대하여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애초에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예고된 일정이기도 했다. 타나카 세이이치는 “원래 한시적 조건으로 사용해온 공간”이었음을 언급하며, 2017년도 말까지 건물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밝혔다. 시네마 프로젝트 측은 교토시에 대체 공간을 알아봐 줄 것을 요청했지만 “마땅한 답을 얻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결국 2017년 7월, 릿세이 시네마는 건물 리노베이션 공사 일정에 맞춰 영업 종료를 결정하게 된다. 릿세이 시네마 폐관 소식은 지역 영화 팬들과 문화계에 큰 아쉬움을 불러일으켰다. 90년 가까이 된 역사적 교사에서 운영되던 “영화 발상지의 작은 극장”이 사라진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2017년 6월 중순 공식 발표된 폐관 소식에 이어, 7월 한 달간은 “릿세이 시네마 라스트 런”이라는 특별 프로그램이 편성되었다. 마지막 달에는 지금까지 릿세이 시네마가 사랑받았던 작품들을 다시 스크린에 걸었다. 또한 7월 22일부터 폐관 당일까지 일주일간 “릿세이 시네마 라스트 흥행 특별주간”을 열어, 인기 일본 독립영화 감독 작품이나 음악 다큐멘터리 등을 앙코르로 상영했다. 관객들은 폐관을 앞둔 극장의 정취를 느끼며 마지막 상영작들을 관람했고, 일부 상영은 매진 사례를 이루기도 했다. 폐관 당일인 2017년 7월 30일에는 마지막 상영으로 애니메이션 ‘이 세상의 한구석에 (가장 장기 흥행했던 영화)’가 상연된 후, 관객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관객들은 교실 3층에 마련된 작은 상영관에서 마지막 영화를 보고 나오며 서로 사진을 찍고, 일부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상영관 입구에는 단골 관객들이 손수 만든 응원 메시지와 “다시 만나요!”라는 문구가 붙어 있어 새로운 극장에서의 재회를 기약하기도 했다. 지역 언론은 “교토의 폐교 시네마, 재개발로 문닫아…‘영화 발상지’ 90년 건물에 막 내려”라는 제목으로 이 소식을 전하며, 많은 시민들이 가진 아쉬움과 동시에 새로운 장소로 이어질 계획에 대한 기대를 함께 보도했다. 한편, 릿세이 시네마 팀은 완전히 좌절하지 않고 “계속 상영을 이어나갈 새로운 거점”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타나카와 시마 토시키 사장은 폐관을 결정하면서 동시에 “릿세이 소학교 교정에서 키운 정신을 이어, 새로운 땅에서 문화를 계속 발신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폐관 발표와 동시에 새로운 극장 건립 계획이 언급되었고, 폐관 이후 석 달 뒤에 열릴 행사의 예고도 나왔다. 2017년 10월에는 옛 릿세이 학교 건물에서 마지막 작별 행사로 “고마워요 릿세이”라는 이름의 복합 이벤트가 3일간 개최되었다. 이 행사에는 그동안 릿세이 시네마를 거쳐 간 많은 영화인들과 관객들이 모여 폐교 건물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는 비록 장소는 잃었지만 공동체로서의 유대와 열정은 오히려 재확인되었다. 지역 주민들과 영화 팬들은 “새로운 극장이 문을 열 때까지 함께 돕자”는 의지를 다지며 프로젝트 팀을 응원했다. 참고로, 옛 릿세이 소학교 건물은 이후 민간 개발사인 휴릭이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여, 외관은 보존하고 내부를 개수한 복합 문화시설 “릿세이 가든 휴릭 교토”로 2020년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 시설에는 호텔과 지역 도서관, 작은 이벤트 홀 등이 들어섰다. 옛 학교의 역사적 일부는 건물 내에 전시되어 있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 그 자리에서 영화관은 운영되지 않는다.
릿세이 시네마가 문을 닫기 전부터, 시마필름과 운영팀은 새로운 대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교토시의 지원 없이 완전 민간 주도로 새로운 영화관을 설립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2017년 당시에 새로운 독립영화관을 신설한다는 것은 재정적으로 큰 모험이었다. 적당한 장소를 구하는 것부터 자금 마련까지 넘어서야 할 산이 많았다. 특히 재정 측면에서, 시마 토시키 대표와 타나카 세이이치는 “이 시대에 새로운 극장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큰 리스크지만, 영화인으로서 승부를 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이들은 영화관을 지속하기 위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새 영화관 설립을 위한 자금 조달 방법으로 선택된 것은 클라우드펀딩이었다. 타나카 세이이치는 애초에 클라우드펀딩에 회의적이었지만, “문화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 자체를 공유하려면 이만한 방법이 없다”는 판단으로 실행을 결정했다고 한다. 2017년 6월 중순, 릿세이 시네마 폐관 발표와 거의 동시에 온라인 플랫폼 모션 갤러리를 통해 “새 극장 설립 후원회원 모집”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목표 금액은 300만 엔으로 책정되었는데, 이는 극장 설립에 필요한 예산 전체라기보다 새로운 공간을 “함께 만들어갈 협력자를 모신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실제 소개 문구에서도 “목표액에 못 미치더라도 자체 자금으로 새 극장은 오픈할 것이지만, 우리의 뜻에 공감해 이 장소를 함께 꾸려나갈 협력자를 모으기 위한 크라우드펀딩”이라고 명시했다. 모금 캠페인은 2017년 6월~8월 약 두 달간 진행되었다. 그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 목표했던 금액의 3배를 넘는 약 900만엔이 모였고, 총 724명의 후원자가 참여하였다. 이는 교토 지역의 영화팬들뿐 아니라 일본 전국의 미니시어터 애호가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깊이 공감했다는 증거였다. 캠페인 초반에 목표액 300만 엔은 시작 하루만에 돌파되었고, 이후로도 지원이 쇄도하여 최종적으로 목표의 300% 이상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모션 갤러리측에서도 “극장 설립 관련 프로젝트로는 이례적인 규모의 성원”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동안 릿세이 시네마를 사랑했던 관객들은 물론, 직접 가보지 못했던 타지의 영화팬들까지 “영화관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취지에 감동하여 지갑을 열었다. 클라우드펀딩에는 여러 단체와 개인이 다양한 형태로 참여하였다. 우선 가장 중심이 된 것은 시마필름과 릿세이 시네마 운영진으로 구성된 “데마치자 설립 준비위원회”였다. 이들은 온라인 홍보 영상과 상세 계획안을 공개하여 신뢰를 얻었고, 보상으로 제공되는 회원권, 영화 관람권, 굿즈도 알차게 구성했다. 한편, 지역 상권인 데마치야나기 마스가타 상점가 측도 협력했다. 새 극장이 들어설 상점가에서 전단지를 비치하고, 조합원들에게 취지를 설명하여 지역주민들도 작은 금액이라도 후원에 동참하도록 독려했다. 또한 교토 출신의 영화감독이나 배우, 문화예술인들도 SNS 등을 통해 이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이를 통해 영화계를 넘어 지역 전체가 함께 만드는 극장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릿세이 시네마 시절부터 꾸준히 인연을 맺어온 교토 문화박물관 등 도 새 극장이 생기면 협력 행사를 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다양한 연대가 이뤄졌다. 이렇게 모인 자금은 새 극장의 극장용 좌석 구입, 영사기 및 음향설비 설치, 내부 인테리어 공사 등에 소중히 사용되었다. 실제로 데마치자의 극장 좌석은 도쿄의 한 폐관한 영화관으로부터 저렴하게 양도받아 운송・설치했는데, 이 또한 예산을 절약하면서 영화인들의 연대를 보여주는 일화로 회자된다. 아무튼, 2017년 여름 진행된 클라우드펀딩은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통해 릿세이 시네마 팀은 재정적 기반과 더불어 “이 극장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라는 공동체 의식을 얻을 수 있었다. 후원자 명단은 이후 데마치자 극장 로비 벽면에 Special Thanks 형태로 게시되어, 극장을 방문하는 이들이 함께 이루어낸 공간임을 기념하고 있다. 또한 이 경험은 일본의 다른 지역 미니시어터들에게도 귀감이 되어, 이후 여러 극장이 클라우드펀딩을 통해 관객들과 연대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과 성원에 힘입어, 새로운 문화공간 데마치자”가 마침내 문을 열었다. 2017년 12월 18일, 교토시 카모가와델타 부근의 조용한 상점가 한 모퉁이에 개관하였다. 장소는 교토 시내 데마치 마스가타 상점가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지상 3층・지하 1층 규모의 건물이었다. 참고로, 영화관의 이름인 데마치자는 한자로 出町座인데 그대로 읽으면 출정자이다. 앞의 출정은 나가는 동네라는 뜻이고 뒤의 자는 극장, 좌석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이 동네의 위치가 카모강 상류에 물줄기가 갈라지는 곳이라 교토 북부로 나가는 마지막 동네여셔었던듯 하다. 아무튼 과거에 약국으로 쓰이던 오래된 빌딩을 개조하여, 1층에는 카페 겸 서점, 지하 1층과 지상 2층에는 소형 영화관, 그리고 지상 3층에는 강좌나 전시를 열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꾸몄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에는 각각 42석과 48석 규모의 상영관이 자리하고 있다. 좌석 수는 릿세이 시네마 시절과 비슷하지만, 천장고와 화면 크기는 조금 더 확보되었다. 2층 상영관은 세로로 긴 구조라서 뒷열 좌석 높이를 더 높게 설계했고, 지하 1층 상영관은 비교적 가로로 폭이 넓다. 두 상영관 모두 최신 디지털 영사 시스템과 5.1채널 서라운드 음향을 갖추고 있어, 비록 소형 극장이지만 상영 환경은 뛰어난 편이다. 한편으로 8mm, 16mm 필름 영사기도 구비해 두어, 영화제가 있을 때 필름 상영도 가능하도록 했다. 상영관 내부에는 릿세이 시네마 시절 찍어둔 흑백 사진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낡은 학교 복도의 모습과 가득 찬 관객들의 모습이 담긴 이 사진들은 새로운 공간에도 과거의 추억을 이어주는 상징이 되고 있다. 상영 프로그램은 하루 10편 내외의 다양한 작품들이 교차 상영되는 형태다. 일본 최신 독립영화나 예술성이 높은 해외 영화, 지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등 멀티플렉스에서 보기 힘든 양질의 영화들이 주로 걸린다. 동시에 유명 클래식 영화 회고전이나 애니메이션 특별전처럼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기획들도 자주 열어 다양한 관객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예매는 현장 발권기에서 좌석지정권을 뽑는 아날로그 방식과 온라인 예약을 병행하는데, 좌석 수가 적어 인기 상영은 빨리 매진되므로 관객들은 부지런히 스케줄을 체크하곤 한다. 데마치자 개관 첫날 첫 상영작으로는, 루미에르 형제가 촬영한 단편들을 묶은 다큐멘터리 ‘뤼미에르!’가 상영되었다. 이는 일본 영화의 아버지인 이케하타 가쓰타로가 루미에르 시네마토그래프를 선보였던 역사를 기념하며 선정한 개관작이었다. 개관 첫 회는 만석을 이뤘고, 교토 문화박물관 영화부장인 모리와키 씨가 상영 전에 나와 “영화 발상지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남겼다. 3층은 시네마 칼리지 교토의 교실 및 다목적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릿세이 시네마 때 시작된 시네마 칼리지 프로그램은 지금도 이어져, 이 3층 공간에서 강의나 워크숍을 연다. 또한 독립영화 제작 발표회, 동네 예술가들의 소규모 전시, 북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문화 살롱 역할도 한다. 일반 관객들도 참여할 수 있는 영화 관련 강연이나 북클럽 모임도 정기적으로 열려, 데마치자는 영화를 매개로 한 지역 커뮤니티 허브로 기능하고 있다.
극장의 운영은 시마필름 주도로 이루어지지만, 단순한 영리기업 형태가 아닌 지역 협동조합적 색채를 띠고 있다. 앞서 모집한 클라우드펀딩 후원자들 중 일부는 “데마치자 설립준비 서포터 회원”으로 등록되어 극장 운영에 자문을 하거나 홍보를 돕고 있다. 예를 들어 프로그램 편성에 관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임을 갖기도 하고, 지역 대학 영화동아리와 협력하여 특별 상영을 마련하기도 한다. 상영관 안내, 굿즈 개발 등에도 자원봉사 형태로 참여하는 지역민들이 있어, 모두가 주인인 극장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개방적 운영 덕분에 극장은 개관 이후 단순한 “영화 상영 공간”을 넘어 동네 사랑방이자 문화발신지로서 자리매김했다. 상점가 상인들은 극장에 들르는 젊은 손님들로 거리에 활기가 돌았다며 환영했고, 카페에 책을 보러 오는 주민들과 영화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새로운 교류의 장이 만들어졌다. 교토 릿세이 소학교에서 시작되어 데마치자로 이어진 이 모든 과정은, 단순히 한 극장의 흥망사가 아니다. 이는 지역 영화문화운동의 한 줄기로서, 과거와 현재를 잇고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의미 있는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지역 공동체의 측면에서 볼 때도, 이 움직임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도심 재개발 압력 속에서도 주민들은 스스로 문화공간을 가꾸어 나갔고, 이는 관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 마을만들기의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릿세이 시네마가 폐관 위기에 몰렸을 때 시민들이 발벗고 나서 자금을 모으고 새 터전을 마련한 과정은, 풀뿌리 문화 운동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시민 참여형 모델은 이후 일본 각지의 미니시어터가 경제적 어려움이나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벤치마킹할 선례가 되었다. 실제로 코로나로 미니시어터들이 고사 위기일 때, 극장 역시 “데마치자 미래권”이라는 이름의 두 번째 클라우드펀딩을 실시하여 약 1500명의 참여로 약 350만 엔을 모은 바 있다. 이는 지역 관객들이 “우리의 극장”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따. 또한 이 일련의 과정은 영화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재발견하게 했다. 멀티플렉스이 대형 자본과 최신 시설로 무장한 편안한 관람환경을 제공하는 반면, 데마치자와 같은 공간은 영화 관람 행위 그 자체의 문화적 의미를 부각시킨다. 타나카 세이이치의 말처럼 “영화를 보러가는 행위 전체를 포함한 영화 체험의 장”을 만들어냄으로써, 관객들은 영화를 매개로 서로 소통하고 추억을 공유하며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오프라인 문화 공동체의 부활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데마치자에 가면,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이 1층 카페에서 자연스레 토론을 하거나, 서점 코너에서 방금 본 영화의 원작 소설을 찾아 읽어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떤 관객에게는 상점가를 지나 극장에 들어가는 일상의 산책로가 생겼고, 어떤 지역 어린이에게는 데마치자에 걸린 영화 포스터들이 예술적 영감을 주는 “거리의 미술관”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한 작은 극장이 만들어내는 파급효과는, 지역 문화생태계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아무튼 교토 릿세이 소학교에서 시작되어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를 거쳐 데마치자에 이르는 이야기는 과거의 유산을 현재의 활력으로 승화시킨 지역 영화문화운동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1897년 일본 최초의 영화가 비춰진 그 자리에서 싹튼 영화 사랑이 120여 년의 시간을 넘어 현재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이 운동을 통해 한때 잊혔던 공간은 부활했고, 새로운 문화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일본 영화 문화는 풀뿌리 수준에서 든든한 지지 기반을 얻었다. 교토 시민들은 물론 전국의 영화 애호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데마치자는 이제 단순한 극장을 넘어, 영화가 예술이고 삶이며 공동체임을 증명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릿세이-데마치자의 여정은 지역 문화가 어떻게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희망찬 사례이며, “영화의 도시” 교토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밝은 등불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