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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들뢰즈, 시네마 1: 운동-이미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던 철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기존의 대륙철학 전통과 거리를 둔 독창적 사유로 주목받았다. 그는 차이, 다중성, 욕망 등의 개념을 바탕으로 경험론적 생명철학을 전개하였고, 스피노자의 내재성의 평면 개념을 옹호하면서 모든 존재를 하나의 실체 위에 동등하게 놓는 일원론적 세계관을 펼쳤다. 들뢰즈는 1953년 첫 저서로 흄에 관한 연구서를 발표한 이래 니체, 칸트, 스피노자 등 철학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저술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특히 철학사상의 지배적 해석에 도전하여 철학자들을 “배후에서 임신”시키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기존 철학자의 사유에 창조적으로 기생하여 전대미문의 “철학적 아이”를 탄생시키는 작업으로 비유되곤 한다. 이러한 방법론의 연장선에서 그는 예술과 문학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들뢰즈는 예술에 대한 비평을 예술 작품과의 철학적 마주침으로 간주하여,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그로부터 새로운 개념을 낳는 시도를 했다. “예술 작품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만나 철학적으로 개념을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그의 신념은 문학, 회화, 영화에 대한 일련의 연구에도 일관되게 적용되었다. 들뢰즈의 학문 여정은 프랑스 68혁명의 격동기와 맞물려 전개되었다. 1968년 박사학위 논문으로 주저 <차이와 반복>을 출간하며 고전 형이상학의 동일성 중심 사고를 비판한 그는, 급진적 정신분석가 펠릭스 가타리와 협업하여 <안티 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 등을 발표함으로써 철학과 정치·사회 비판을 접목한 기념비적 성과를 남겼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들뢰즈는 관심사를 예술로 확장하여, 1981년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미학을 다룬 <감각의 논리>를 펴낸 데 이어, 1983년과 1985년에 걸쳐 영화에 관한 두 권의 저작 <시네마 1: 운동-이미지>, <시네마 2: 시간-이미지>를 연이어 출간하였다. 이 영화 이론서들은 발간 당시에는 철학과 영화 이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 시도로 받아들여졌으며, 결과적으로 철학 담론 속에 영화를 본격적으로 포섭한 선구적 작업으로 평가받게 된다. 1990년대에 이르러 건강 악화로 은퇴한 들뢰즈는 1995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철학은 이후 예술학과 인문학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들뢰즈적” 사유의 흐름을 형성하였다.

<시네마 1: 운동-이미지>가 집필·출간된 1980년대 초반은 철학과 인문학에서 구조주의와 기호학 열풍이 한풀 꺾이고,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모색하던 과도기였다. 특히 영화 이론 분야에서는 1970년대 동안 기호학자 크리스챤 메츠나 알튀세르적 마르크스주의, 라캉주의 정신분석학 영향 아래 영화언어와 이데올로기 비판이 주류를 이뤘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를 언어 체계처럼 간주하여 분석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필름 이미지는 종종 현실을 모사하는 기호나 환영적 장치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들뢰즈는 이러한 통설과 거리를 두고, 영화를 하나의 철학적 사유의 장으로 재평가한다. 그는 영화 이미지가 언어나 기호의 체계로 환원될 수 없는 물질적 실재임을 강조하며, 플라톤 이래로 서구 철학이 이어온 이미지 경시 전통을 비판적으로 뒤집는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이데아에 비해 영상을 모조품이나 환영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시켰고, 근현대 철학 역시 대체로 “존재/현상”, “원본/복제”의 이분법 속에서 영상을 부차적 위치에 놓아왔다. 하지만 들뢰즈는 베르그송의 논의를 빌려 “이미지는 현실 그 자체”라는 과감한 주장을 펼친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물질은 곧 이미지”이며, 우리의 신체 역시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하고 세계는 상호 작용하는 이미지들의 총체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베르그손 철학을 수용한 들뢰즈는 영화적 이미지가 더 이상 어떤 원본의 그림자나 허상이 아니라, 현실의 일부로서 우리와 상호작용하는 존재자임을 천명한다. 들뢰즈가 베르그송의 사상을 영화 이론에 도입한 것은 시대적·학문적으로 의미심장하다. 20세기 초 철학계의 스타였던 베르그송은 한때 영화 매체에 회의적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베르그손은 <창조적 진화>에서 영화의 연속촬영 기법을 “정지 이미지들의 기계적 나열에 불과한, 가짜 운동”이라고 평하며 영화적 운동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들뢰즈는 베르그손의 또 다른 저서 <물질과 기억>에 착안하여, 오히려 영화야말로 우리에게 “움직임-이미지”를 직접 제시하는 현대적인 예술이라고 재해석한다. 베르그손 철학에서 지속과 운동의 개념을 끌어와, 영화 이미지의 흐름이 “새로운 것을 산출해내는 능력”을 가졌다고 본 것이다. 이는 정태적 프레임들의 집합으로서 영화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뒤집고, 영화가 시간과 운동을 사고하는 하나의 방법임을 부각시킨 대목이다. 나아가 들뢰즈가 1960년대 이후 한때 유행이 지난 베르그송을 철학 무대로 다시 호출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구조주의, 현상학, 실존주의를 거치며 베르그손의 사상은 한동안 철학 담론의 주변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들뢰즈는 자신의 주저 <차이와 반복> 등에서부터 베르그손의 개념을 재조명하며 “차이의 철학자”로서 그를 부활시켰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네마 1>의 등장은 들뢰즈가 제기한 ‘베르그송적 전회’의 연장선 위에 있으며, 동시에 전후 새로운 매체인 영화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집약이라 할 수 있다. 영화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들뢰즈가 구분한 운동-이미지의 시대는 대략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클래식 시대 영화들을 아우른다. 그는 뤼미에르, 멜리에스에서 출발해 그리피스, 에이젠슈테인, 히치콕, 포드, 쿠로사와에 이르는 다양한 영화감독들의 작업을 검토하면서, 고전적 내러티브 영화의 체계가 하나의 감각-운동 도식 속에 조직되어 있음을 논증한다. 여기서 감각-운동 도식이란 간단히 말해 지각된 자극에 대해 인물이 반응하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결 구조를 뜻한다. 전통적 영화에서 우리는 인물이 주변 세계를 지각하고, 이어 결단하여 행위하며, 그 결과로서 서사가 전개된다. 이러한 감각-운동 회로 속에서 관객 역시 인물과 함께 긴장하고 이완하며 자연스레 극 전개에 몰입하게 된다. 들뢰즈는 2차대전 이전의 영화들이 이러한 유기적 통일성 속에서 운동-이미지의 논리를 발전시켜왔다고 보았다. 반면 2차대전 이후 등장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이나 누벨바그 같은 현대 영화들에서는 더 이상 사건들이 인과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단절과 공백, “비약”이 두드러지며, 이로써 시간 그 자체가 전면에 드러나는 새로운 이미지 체계, 곧 “시간-이미지”의 시대가 열렸다고 진단한다. 들뢰즈의 영화철학 구상이 나온 1980년대는 문화이론 전반에서 탈이데올로기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이 재부상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구조주의 영화이론이 작품 내 이념과 무의식 구조를 밝히는 데 치중했다면, 들뢰즈는 한 걸음 물러나 영화 매체 자체의 존재론적 의미를 묻는 전환을 시도했다. 그는 영화가 더 이상 “언어”로 비유될 수 없다고 보았는데, “영화는 이미지들과 기호들의 복합으로서 일종의 언어 이전의 사유 내용을 지닌다. 따라서 영화 이론의 과제는 영화를 언어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 고유의 이미지 유형들과 그것에 상응하는 기호들을 분류하는 데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들뢰즈는 <시네마 1> 서문에서 “이 연구는 영화의 역사가 아니라 이미지와 기호들에 대한 분류학적 시도”라고 못박고 있으며, 영화 매체를 해석하거나 평가하기보다는 개념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분명히 한다. 이처럼 철학자와 영화 사이의 ‘이질적 접속’을 시도한 작업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것이었다. 철학자들은 영화를 진지한 연구대상으로 삼지 않았고, 영화연구자들은 철학적 방법론에 익숙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시네마 1>은 철학계와 영화계 모두에서 “이국적인 이질교배”로 여겨지며 초기엔 난해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영화를 사유하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점에서 학제 간 담론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후 영화미학 및 필름-철학 분야에서 들뢰즈의 구분법과 개념들은 중요한 인용원이 되었고, 영상미디어를 통한 존재론적 물음이 가능함을 보여준 선구적인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시네마 1: 운동-이미지>는 들뢰즈가 영화를 통해 펼쳐낸 철학적 분류학의 첫 번째 결실로서, 영화 이미지들을 유형별로 나누어 체계화하려는 방대한 시도를 담고 있다. 들뢰즈는 이 책에서 자신이 왜 영화를 논하는지를 분명히 밝혀두는데, 그것은 “철학이 영화 위에 개념을 적용하려는 것도, 영화를 철학의 사례로 차용하려는 것도 아니다”라는 점이다. 대신 영화와 철학이 접속하여 함께 사유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이 그의 기본 입장이다. 요컨대 영화는 철학의 예시가 아니라 사유의 파트너로 간주되며, 철학자와 영화가 대등한 협업자로서 만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 아래 <시네마 1>은 베르그송의 운동론과 피어스의 기호 분류학을 이론적 기반으로 삼아, 영화 이미지의 범주들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전개한다. 들뢰즈는 먼저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핵심 개념을 차용한다. 베르그송에게서 “운동하는 물체와 운동은 분리 불가능”하다는 통찰을 얻은 그는, 영화 이미지 역시 운동과 이미지의 동일성을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영화 속에서 우리는 움직이는 사물의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적 존재로서의 움직임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를 단순히 세계를 재현하는 매체가 아니라, 운동이라는 현실을 직접 드러내는 표현적 매체로 격상시키는 관점이다.

이러한 운동-이미지 개념을 구체화하기 위해 들뢰즈는 영화 이미지의 세 가지 주요 양태를 제시한다. 이 세 가지는 퍼스의 기호이론에서 영감을 얻어 도출된 것으로, 각각 영화 이미지가 표상하는 작용 방식의 차이를 나타낸다:

  • 지각-이미지: 카메라를 통해 포착된 사물의 지각에 해당하는 이미지. 이는 인물의 시점에서 세계를 인지하는 영화적 순간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인물이 보는 광경이나 관찰자 시선의 숏은 지각-이미지의 전형이다. 지각-이미지는 “본 것”으로서의 이미지이며, 세계로부터 들어오는 감각적 자료를 담는다.

  • 정서-이미지: 감정이나 내면 상태의 표정에 해당하는 이미지. 주로 클로즈업이나 얼굴 표정을 통해 드러나는 정서적 호소력이 강한 장면들이 정서-이미지에 속한다. 들뢰즈에게 얼굴의 클로즈업은 세계와의 인과적 맥락을 탈락시키고 순수한 감정의 회로를 형성하는 이미지로 중요하게 논의된다. 정서-이미지는 “느낀 것”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 행동-이미지: 캐릭터가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행위를 수행하는 이미지. 고전 서사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행동의 연결 고리, 즉 감각-운동 도식에 따른 장면들이 행동-이미지에 해당한다. 문제 제시-반응-결말의 내러티브 구조나, 할리우드식 모험영화에서 인물이 장애를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 등은 전형적인 행동-이미지의 전개라 볼 수 있다. 이는 “행한 것”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들뢰즈는 때로 여기에 정신-이미지나 기억-이미지, 꿈-이미지 등을 덧붙여 논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위 세 가지 지각/정서/행동 이미지가 운동-이미지 체계의 3대 분류를 이룬다. 이 셋은 퍼스가 말한 일차성·이차성·삼차성의 범주와도 상응하여, 각각 발견되는 질적인 이미지, 상호적인 충돌의 이미지, 목표 지향적 행동의 이미지로 요약된다. 이러한 분류 작업을 통해 들뢰즈가 밝히고자 한 것은, 영화가 단순한 이야기 전달 수단이 아니라 사고를 구성하는 이미지들의 체계라는 사실이다. <시네마 1>에서 그는 수많은 영화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그 배후에 작동하는 공시적 구조와 철학적 의미망을 추출한다. 예컨대 찰리 채플린의 희비극에서는 어떻게 일상의 공간과 시간이 새로운 연속성 속에 조직되어 웃음과 슬픔이 교차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지, 드레이어의 영화에서는 극도로 절제된 화면 구성이 어떻게 “영혼”의 현전을 느끼게 하는지 등을 논구한다. 들뢰즈의 해석에 따르면, 히치콕의 스릴러는 사고의 이미지를 다루는 예술이다 – 히치콕 영화의 서스펜스 장면에서 관객은 끊임없이 다음 전개를 추론하며 생각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영화적 사고 유발 장치 자체가 철학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시네마 1>은 영화사의 대표적 작품들 곳곳에서 운동-이미지의 다양한 변주들을 찾아내어, 그것들을 철학 개념으로 승화시키는 대담한 시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이미지의 총합은 하나의 거대한 “전체”의 개념으로 모아지는데, 들뢰즈는 이 전체를 “열려 있는 전체”, 곧 완결되지 않고 지속 속에서 변화하는 총체로 파악한다. 영화의 프레임 바깥(외화면)이 언제나 더 큰 세계와 연결되고, 개별 장면들이 끊임없이 다른 맥락과 접속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낳는다는 점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완결불가능한 전체성을 체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는 순수한 운동의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 생각에 충격을 가함으로써 기존의 상투적 사유를 분산시키고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힘을 지닌다. 이 책에서 거듭 강조되듯이, 영화의 순수한 운동-이미지는 관객의 사고를 일종의 탈주선 위에 놓아 줌으로써, 고정된 틀을 벗어난 탈중심적 사유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를 통해 들뢰즈는 “윤리학이 제일철학”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레비나스처럼, “영화가 철학에 선행하는 사유”일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다시 말해 철학이 먼저 개념을 만들고 영화가 이를 예증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이미지들이 먼저 사고를 자극하여 철학적 개념을 낳는 역동적 창조성을 강조한 것이다.

<시네마 1: 운동-이미지>는 출간 이후 학계에서 점차 중요한 이정표적 저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우선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영화에 대한 철학적 논의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심화시켰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철학과 영화”의 관계는 주로 철학자들이 영화를 예화나 비유로 들거나, 영화이론가들이 차용 가능한 철학 개념을 원용하는 식으로 일방향적이었다. 그러나 들뢰즈는 철학과 영화가 대등하게 만나는 접점을 구축함으로써, 영화 자체를 철학적 사유의 한 매체로 인정했다. 이러한 접근 덕분에 들뢰즈는 저명한 철학자 중 처음으로 영화를 정밀하게 사유의 대상으로 삼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영화론은 영화의 존재론이라 불릴 만큼 영화 매체의 근원을 묻는 작업이었고, 이는 하이데거가 시(詩)를 존재 물음의 특권적 통로로 삼았듯, 들뢰즈에게 영화가 사유의 본질에 접근하는 하나의 통로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철학적 영화론은 1990년대 이후 영화철학이라는 새로운 학제 간 분야를 개척하는 데 사상적 자양분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영화미학 담론에서 독보적인 참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동시에 <시네마 1>은 난해성과 추상성 면에서도 유명하다. 이 책은 전통적인 영화이론서와 달리 개별 영화 분석이나 명쾌한 논증 전개보다는, 개념의 발명과 변주로 가득 찬 텍스트다. 들뢰즈 특유의 모호하고도 시적인 문체, 그리고 베르그손·니체·퍼스 등을 종횡무진 오가는 전방위적 참조는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상당한 진입 장벽이 되었다. 실제로 철학 배경이 없는 영화학자들은 책 속 철학 개념들을 소화하기 어려워했고, 철학자들은 저자가 언급하는 방대한 영화사적 디테일에 생소함을 느끼기 일쑤였다. 초판 발간 당시 철학계의 일부에서는 “영화 따위를 철학의 엄정한 담론에 끌어들이는 것은 불성실”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고, 반대로 영화학계 일각에서는 “철학자가 영화를 제멋대로 해석한다”는 불만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초기 반응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들뢰즈의 접근법이 지닌 혁신적 잠재력이 서서히 인정되기 시작했다. 특히 21세기에 들어 영상매체와 철학의 접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들뢰즈의 영화철학은 재조명을 받아 다방면으로 적용·확장되고 있다. 예컨대 애니메이션, 디지털 시네마, VR 등 새로운 영상 형식들까지 그의 개념틀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페미니즘 영화이론이나 탈식민적 매체이론에서도 들뢰즈의 시간-이미지 논의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시네마 1>이 단지 특정 필름 시대에 국한된 이론서가 아니라, 영상 매체 전반의 철학을 사고하는 보편적 틀을 제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시네마 1: 운동-이미지>에 대한 전문적 비평의 쟁점 중 하나는, 들뢰즈 이론의 실천적 유용성에 관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책은 영화를 “읽는” 기존 방법들과 결을 달리하여, 영화를 통해 “사유하는” 거대한 철학적 지도 그리기에 집중한다. 때문에 정작 개별 영화 비평이나 분석의 도구로 쓰기에는 추상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들뢰즈가 만들어낸 많은 개념들—예를 들어 결정체-이미지, 옵-사인·크로노-사인 등의 용어—은 그것만으로는 현존 영화 텍스트를 명징하게 해석해주기보다, 오히려 그 영화가 품은 철학적 깊이를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촉매에 가깝다. 이는 의도된 바이기도 하다. 들뢰즈 자신이 “비평의 임무는 영화를 있는 그대로 기술해서도, 외부 개념을 적용해서도 안 되며, 영화로부터 개념을 형성하는 데 있다”라고 말한 바 있듯이, 그의 목적은 영화 작품들에 대한 평면적인 분석보다 영화가 던지는 물음에 대한 철학적 응답을 찾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시네마 1>은 영화해석의 만능 열쇠라기보다, 영화와 함께 사유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동시대 다른 영화이론과 확연히 구별되는 들뢰즈만의 입장이 드러난다. 가령 70년대 기호학이나 정신분석학이 영화 장면을 언어 기호처럼 “읽는” 방법을 모색했다면, 들뢰즈는 영화를 이미지로 “생각하는” 방법을 탐구한 것이다. 이는 영화 이미지 속에 내재한 의미의 해독이 아니라, 영화 이미지와 더불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작업에 가깝다. 비평가들은 또한 윤리적·정치적 함의의 부족을 한계로 지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들뢰즈의 이론은 영화 이미지를 거시적 존재론의 관점에서 다루지만, 개별 영화가 담고 있는 사회문화적 맥락이나 권력 관계, 관객의 주체적 해석 가능성 등에는 상대적으로 침묵한다는 것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들뢰즈는 영화를 논하면서 젠더, 계급, 인종 같은 주제를 직접 다루지 않으며, 영화 텍스트 내 재현의 문제 는 그의 관심 밖에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1980년대 이후 페미니스트 영화이론가나 문화연구 학자들 중 일부는 들뢰즈 이론의 비역사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들뢰즈 철학의 옹호자들은, 그의 시네마 철학이 궁극적으로 해방적 잠재력을 지닌다고 반박한다. 왜냐하면 들뢰즈가 강조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영화의 힘은 관객으로 하여금 기존의 고정관념을 부수고 새로운 가능성에 눈뜨게 하는 효과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때 구체적인 정치적 메시지가 제시되지 않더라도, 사유 방식의 전환 그 자체가 일종의 해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억압적 질서에 균열을 내는 몽타주의 충격, 시간-이미지를 통해 드러나는 억눌린 기억의 귀환 등은 관객에게 암묵적인 각성을 불러일으켜 윤리적 성찰을 촉발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들은 들뢰즈의 영화철학을 사회·정치적 차원에서 재평가하려는 최근의 경향을 반영한다. 결론적으로, <시네마 1: 운동-이미지>는 영화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지형을 바꾸어놓은 기념비적 저작이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영화를 더 이상 이야기의 종속물이 아닌 사유의 주체로 격상시켰고, 철학은 엄밀한 개념 장치로서 영화의 잠재력을 밝히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하여 영화와 철학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함께 하나의 사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이상이 실천된 것이다. 이러한 들뢰즈의 시도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개념들은 영화 분석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철학적 사유는 영화 예술을 통해 한층 풍부해졌다. 무엇보다 <시네마 1>이 보여준 것은 이미지 속에 사고가 깃들어 있다는 깨달음, 그리고 영화를 본다는 것이 곧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이것은 영상 홍수의 시대인 현대에 더욱 값진 통찰일 것이다.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마주하는 숱한 이미지들 뒤편에는,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움직임-이미지의 세계가 있다. 들뢰즈의 말대로, 영화는 그 움직임으로써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어 깨우고 새로운 사유로 초대한다 – 철학은 그렇게 영화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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