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Home » 최은영, 쇼코의 미소

최은영, 쇼코의 미소

최은영은 2013년 중편 <쇼코의 미소>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그리고 2016년, 등단작을 포함한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출간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작품의 제목에 끌렸다. 쇼코의 ‘미소’라는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고, 언젠가는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어느 날 결국 펼쳐보게 되었다.

표제작 <쇼코의 미소>는 한국인 소녀 ‘나’와 일본인 소녀 쇼코의 교류를 다룬 이야기다. 고등학생인 ‘나’는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쇼코를 일주일간 자신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쇼코는 조용하고 예의 바른 소녀로, ‘나’의 가족들과도 빠르게 친해진다. 특히 ‘나’의 할아버지와는 일본어로 소통하며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다. 짧은 만남 이후, 쇼코는 일본으로 돌아가지만 ‘나’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며 연락을 이어간다. 쇼코의 편지는 ‘나’에게는 우울하고 진솔한 내용이 담겨 있는 반면, 할아버지에게는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편지 내용은 쇼코의 복잡한 내면을 암시한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나’는 캐나다 유학 중 우연히 쇼코와 함께 견학을 왔던 일본인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로부터 쇼코가 도쿄의 명문대 진학을 포기하고, 할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시골 대학에서 물리치료를 전공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는 쇼코를 만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쇼코는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고, 예전의 활기찬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실망한 ‘나’는 쇼코를 그대로 두고 한국으로 돌아오며, 할아버지에게는 쇼코를 만나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후 ‘나’는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의 벽과 재능의 한계에 부딪혀 좌절을 겪는다. 어느 날, ‘나’의 할아버지가 서울의 자취방을 찾아와 쇼코로부터 편지가 왔다는 소식을 전하며, ‘나’의 꿈을 응원한다. 평소 무뚝뚝했던 할아버지의 예상치 못한 방문에 ‘나’는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나’는 깊은 슬픔에 빠진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쇼코는 한국을 방문하여 ‘나’에게 그간 할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를 전한다. 그녀는 이전보다 훨씬 안정된 모습으로, 자신의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실을 공유하며, 다시금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쇼코가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 ‘나’는 어린 시절 쇼코의 미소를 보았을 때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최은영의 문장은 간결하고 담백하면서도 강한 정서적 울림을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불필요한 수식을 배제한 절제된 표현 속에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가 섬세하게 드러나, 독자는 오히려 더 깊이 몰입하고 감정을 공감하게 된다. 실제로 최은영 작가는 사소한 몸짓이나 표정 등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통해 거대한 감정의 파도를 일으키는데 능숙하다. 한 평론가는 최은영의 글에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진실하다’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언급했는데, 이것은 그녀의 문체가 꾸밈없이 담백하여 삶의 진실한 단면을 투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최은영 소설의 이러한 문체적 특징은 독자로 하여금 인물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만들며, 과장이나 억지가 없기에 오히려 현실감과 진정성이 더욱 부각된다. 특히 <쇼코의 미소>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인간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과 소통의 한계”를 포착하여 “따뜻하지만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고 평가된다. 가까운 사이에서조차 완전히 전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감정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내는 섬세함이 그녀 글의 미덕이다. 예를 들어, 〈쇼코의 미소〉에서는 주인공 ‘나’와 주변 인물들이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대화나 침묵 속에 숨어있는 말하지 않은 감정들을 독자가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최은영은 독자들에게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얼마나 큰 의미와 감정을 품을 수 있는지 일깨워준다. 서사의 구성 면에서도, 〈쇼코의 미소〉는 단순한 성장담 이상으로 정교한 구조와 주제 의식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에피스토라리 기법, 즉 편지와 일기 등의 삽입을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물 관계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그린다. 쇼코가 한국으로 교환학생 와서 잠시 머무른 이후, ‘나’(소유)와 쇼코,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 사이는 편지를 주고받는 우정으로 이어진다. 이 편지들은 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하는데, 인물들이 서로에게 직접 말하지 못한 속마음이 글로는 표현되면서, 독자는 등장인물 각자의 진실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이를테면 쇼코가 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와 ‘나’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한 인물이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과 실제 감정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이러한 구성은 독자에게 이야기의 전모를 한꺼번에 제시하지 않고, 퍼즐 조각처럼 흩어진 단서를 통해 인물 관계의 숨은 면면을 추적하게 한다. <쇼코의 미소>의 주제의식은 주로 인간관계에서의 이해와 소통, 그리고 성장과 상실의 정서에 닿아 있다. 작가는 가족과 개인의 욕망 간의 긴장, 세대 간의 영향(특히 할아버지와 손녀의 관계), 낯선 이에게는 쉽게 드러내는 감정과 정작 가까운 이에게는 숨기고 마는 마음 등을 섬세하게 탐구한다. 예컨대 작품에서 ‘나’는 십대 시절 일본인 소녀 쇼코와 만나 우정을 쌓지만, 성인이 되어 서로의 꿈을 이루지 못한 현실에 이르러서는 “가족의 끌어당김과 개인적 열망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할아버지의 영향을 깊이 느낀다. 또한 이야기 전반에 걸쳐 “낯선 이에게는 감정을 드러내기가 쉽지만 사랑하는 이에게는 어려운” 역설이 묘사되는데, 이러한 테마는 작품의 핵심 정조인 소통과 고독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음 장에서 논할 윤리적 함의와도 연결된다. 결국 〈쇼코의 미소〉는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삶의 단면들 속에서 보편적인 슬픔과 아름다움을 포착해낸 작품이며,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리얼리즘과 도덕적 진지함”을 겸비한 수작이다. 

이 작품을 보며,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개념들을 적용한 윤리학적 해석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함으로써 비로소 윤리가 시작된다고 보았다. 그의 주저 <전체성과 무한>에서 레비나스는 “얼굴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전하는 말은 ‘너는 살인하지 말라’이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타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절대적 명령, 곧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말고 책임지라는 윤리적 요구를 직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얼굴을 통한 이 요구는 언어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의 양심에 호소하며, 나아가 “나를 고독 속에 버려두지 말라”는 또 다른 간청도 담고 있다고 레비나스는 설명한다. 타자는 우리 이해의 총체에 포섭되지 않는 무한한 타자성을 지니며, 그렇기에 우리는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동일화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러한 레비나스의 철학으로 〈쇼코의 미소〉를 바라보면, 작품 속 인물 관계에 깔린 윤리의식을 포착할 수 있다. 우선, 쇼코는 ‘나’에게 타자로서 등장한다. 쇼코는 일본인 교환학생으로서 한국의 ‘나’의 가정에 머물며 처음 이들을 만난다. 이때 ‘나’의 가족들은 낯선 타자에 대한 환대를 보여주는데, 평소 과묵하고 사람을 잘 사귀지 않던 할아버지가 일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쇼코에게는 오히려 먼저 다가가 활발히 말을 건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을 지켜보던 ‘나’가 “가족은 언제나 가장 낯선 사람들 같았다”고 느낀다는 서술이다. 가까운 가족 사이에도 서로 알지 못하는 영역이 있어 오히려 타인보다 더 낯설게 느껴진다는 역설적 인식은, 레비나스 철학의 맥락에서 보면 타자성의 보편성을 보여준다. 즉 내 가장 가까운 타자인 가족조차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존재의 무한함을 지닌다는 깨달음이다. 작품은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타자는 멀리 있는 이방인뿐 아니라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임을 느끼게 한다. 결국 모든 인간 관계에는 타자의 불가해성이 자리하며, 이는 윤리적 감수성을 요구한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이해 불가능성에 대한 자각 역시 윤리적 주제 의식과 맞닿아 있다. <쇼코의 미소>의 이야기 진행에서 핵심 갈등 중 하나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완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쇼코는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와 ‘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모순은 쇼코라는 인물이 한 사람에게 보이는 얼굴과 또 다른 이에게 보이는 얼굴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나중에 할아버지의 편지들을 읽고서야 쇼코의 진짜 속마음을 일부 깨닫고 충격을 받는데, 이는 가장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면모(레비나스 식으로 말하면 타자의 비밀스러운 내면의 방들)가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실제로 비평가들도 이 작품에 대해 “가장 가까운 이들도 알 수 없는 방들을 품고 있다”고 해석한 바 있으며, 타인이 보여주는 친절한 몸짓이 반드시 그 사람의 진심을 반영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통찰은 타자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타자의 고유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윤리적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무한성에 대한 인정과 상통한다. 우리는 타자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함부로 단정 지을 수도, 자기 마음대로 재단할 수도 없다. 대신 알 수 없음 자체를 받아들이고 조심스럽게 응시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쇼코의 미소>는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바로 그 점을 부각시킨다. 나아가 작품 속 인물들은 타자에 대한 책임과 응시의 윤리를 실제 행동으로도 보여준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할 때 우리가 느끼는 윤리적 명령 중 하나로 “나를 고독 속에 방치하지 말라”는 침묵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였다. 쇼코와 ‘나’의 관계를 보면, 두 사람은 일생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챙긴다. 비록 두 사람 모두 삶에서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을 겪지만, 상대방을 완전히 잊거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특히 ‘나’는 대학 졸업 무렵 일본까지 건너가 쇼코를 찾아 나서는데, 이는 쇼코라는 타자를 고독 속에 내버려두지 않으려는 책임감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연락이 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쇼코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나’는 쇼코가 자기를 적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혹시 마주치지 못하고 돌아오게 될 가능성까지 모두 마음에 준비하며 용기를 낸다. 이렇듯 타인의 얼굴을 향해 응시하고 다가서는 행위 자체가 윤리적인 선택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선택의 밑바탕에는 쇼코라는 타자에 대한 애틋함과 책임감이 깔려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이 주인공의 1인칭 시점을 통해 이러한 윤리적 성찰을 자기반성의 형태로도 보여준다는 것이다. ‘나’는 쇼코뿐 아니라 과거 자신의 친구들을 대했던 태도를 떠올리며 부끄러움과 후회를 느낀다. 꿈을 좇는 과정에서 소원해진 친구들을 두고 마음속으로 그들을 판단하고 질시했던 자신의 모습을 ‘끔찍했다’고 고백하는 대목이 그 예다. “남들보다 특별한 삶을 살게 될 거라 믿었던 어리석은 자만심 때문에 지금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었다”는 자조 섞인 성찰에서 볼 수 있듯, 주인공은 자신의 오만함이 타인과의 관계를 망쳤음을 인정한다. 이러한 자기반성은 곧 타자에 대한 윤리적 성찰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작품 속 주인공은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함부로 판단하고 상처 주었던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뉘우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우리 자신 역시 일상에서 타자에 대해 얼마나 쉽게 오만과 편견을 가질 수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레비나스의 철학을 빌리자면, 인간은 타자의 얼굴 앞에서 자신이 저지른 폭력(정신적 폭력을 포함하여)을 부끄러워하게 되고, 그리하여 새로운 책임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된다. <쇼코의 미소>의 서사는 바로 이러한 과정을 내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쇼코의 ‘미소’는 단순한 우정의 표시가 아니라, 그 이면에 이해할 수 없는 슬픔과 고독을 감춘 타자의 얼굴로 존재하며, ‘나’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그 미소를 응시하는 것, 즉 타자의 눈빛과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거기 담긴 보이지 않는 메시지까지 느끼려 애쓰는 것이 곧 윤리의 시작임을 작품은 조용히 일깨워준다.

<쇼코의 미소>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축은 감정과 언어 사이의 간극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종종 느끼는 바를 언어로 직접 번역하지 못한 채, 다른 방식으로 우회하여 표현하거나 아예 침묵으로 남겨둔다. 이러한 감정과 언어의 불일치는 여러 층위에서 나타난다. 우선 언어적 차이의 층위가 있다. 이 작품에는 한국어와 일본어 두 언어가 등장한다. 쇼코는 일본인이지만 한국에 와서 생활하고, ‘나’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세대라 일본어에 능통하다. 흥미롭게도, 언어의 차이가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기는커녕 새로운 소통을 가능케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할아버지는 손녀인 ‘나’와는 한국어로 일상적인 감정을 거의 나누지 않지만, 일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쇼코에게는 먼저 말을 걸고 속마음을 비춘다. 이는 언어가 바뀌면 표현의 태도와 범위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할아버지가 쇼코에게 일본어 편지를 쓸 때에는 가족들에게는 하지 못했던 솔직한 감정 표현까지 드러냈고, 이를 훗날 알게 된 손녀 ‘나’는 깜짝 놀란다. 한마디로, 언어의 선택이 감정 표현의 양상을 바꿔놓은 셈이다. 이처럼 이중언어 상황은 인물 사이의 의사소통에 미묘한 결을 더해주는데, 한국어로는 끝내 전하지 못한 마음이 일본어 편지에서는 담백하게 전해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러한 설정은 작품이 언어와 감정의 관계를 예리하게 탐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일한 감정이라도 어떤 언어로 말하느냐에 따라 혹은 말이 아닌 글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달이 달라진다는 점, 그리고 그 사이에서 미묘한 오해나 애틋함이 피어나는 과정을 작가는 섬세하게 그린다. 다음으로 매체의 차이, 즉 말과 글, 대면과 비대면의 문제가 있다. 쇼코의 미소에서 편지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핵심적인 서사 장치다. 편지와 일기, 쪽지 등은 인물들이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는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 가령 쇼코와 ‘나’는 함께 지낼 때는 서로에게 내비치지 않은 감정이나 속내를 편지로 나누는데, 이 편지들 덕분에 두 사람의 관계는 물리적인 거리에도 불구하고 이어질 수 있었다. “편지, 쪽지, 일기는 등장인물이 말로는 하지 못하는 감정을 표현하게 해준다”는 해외 평단의 평가처럼, 이 작품에서 글로 쓰인 언어는 구어가 닿지 못한 내면의 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글 속의 진실은 또 다른 오해나 비밀을 낳기도 한다. 쇼코가 할아버지에게 쓴 편지와 ‘나’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이처럼 편지라는 매체는 한편으로는 진실을 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수신자에 따라 진실의 모습이 달라지는 이중성을 띤다. 편지를 쓸 때 우리는 상대의 부재 앞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재구성하여 표현하게 되는데, 쇼코 역시 할아버지에게는 털어놓았지만 친구인 ‘나’에게는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는 그녀가 각 편지의 수신자에게 다른 모습의 자신을 보여주고자 했거나, 혹은 말로 직접 전하기 어려운 속마음을 글로는 토로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결국 독자는 여러 통의 편지들을 통해서야 비로소 쇼코라는 인물의 퍼즐을 맞출 수 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언어와 진심의 어긋남에 주목하게 된다. 또한 〈쇼코의 미소〉에는 침묵과 공백의 미학이 깔려 있다. 최은영의 이야기들은 격정적으로 울부짖거나 극적인 사건으로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대신 침묵, 부재, 여백 속에 뜻을 남긴다. 실제로 이 소설집의 일곱 편 이야기 전체가 “말해지지 않고 넘어가는 침묵과 결락”으로 가득 차 있다는 평이 있다. 인물들은 사랑하고 상처받고 그리워하지만, 정작 그 핵심적인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 표현하지 못한 채 가슴에 묻어두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쇼코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힘든 일이 있어도 미소로 괜찮은 척 넘어가고, ‘나’ 또한 쇼코에게 직접적으로 속마음을 묻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버린다. 쇼코의 “미소”라는 제목 자체가 어쩌면 이러한 침묵의 아이러니를 상징한다. 미소는 언뜻 보기엔 행복과 친절의 표시지만, 때로는 자신의 슬픔이나 고통을 숨기기 위해 짓는 가면이 되기도 한다. 작품에서 쇼코의 미소는 그녀 내면의 복잡한 심정을 가려주는 침묵의 언어였을 가능성이 크다. “타인의 몸짓은 반드시 그 사람의 감정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려는 행동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지적처럼, 쇼코의 웃음은 상대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였을지 모른다. 이는 결국 감정과 표현의 불일치에 다름 아니다. 쇼코가 웃고 있었기에 ‘나’는 그녀가 별일 없이 잘 지내는 줄로만 알았지만, 정작 그녀의 편지에는 다른 진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감정-언어 불일치의 장치들(이중 언어 사용, 편지와 일기의 활용, 침묵과 미소의 활용)은 소설의 정서적 깊이를 한층 더해주는 동시에, 작품의 주제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우선, 감정을 직접 언어로 전달하기 어려워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앞서 논한 타자성의 문제와 만난다.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그 침묵들에서, 독자는 인물들 사이의 거리감과 고독을 느낀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그런 침묵과 비언어적 표현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배려와 애정이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쇼코가 웃으며 자신의 어려움을 감추었다면 그것은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가족에겐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쇼코에게 일본어 편지로 전했다면, 거기에는 낯선 소녀에게마저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자 했던 외로운 영혼의 목소리가 담겼을 것이다. 결국 무언의 표현들은 등장인물들의 인간적인 약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이는 문학적으로 볼 때 여백의 미로 작용하여, 독자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욱 깊이 작품 속 인물들의 마음을 상상하고 공감하도록 만든다. 독자는 등장인물들이 끝내 하지 못한 말을 행간과 표정 속에서 스스로 발견해내야 하는데, 이 참여 과정에서 오히려 더 큰 정서적 감동을 얻는다. 그래서 그녀의 문학은 말없는 순간들마저도 풍부한 감정을 전달하는 힘을 갖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전략은 작품 전체에 여운과 질문을 남긴다. 감정이 끝내 언어화되지 못하고 남겨질 때, 독자는 오히려 그 뒷얘기를 상상하게 되고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예컨대 쇼코와 ‘나’ 사이에 교환된 수많은 편지와 침묵들 끝에, 마지막에 가서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어떤 여백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여백은 읽는 이로 하여금 “과연 쇼코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나와 쇼코는 서로를 얼마나 이해했을까?” 자문하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작품이 의도한 감정과 언어의 불완전한 관계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진다. 삶에서 우리는 종종 가장 중요한 말은 삼켜버린 채 스쳐 지나가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때 하지 못한 말을 후회한다. 쇼코의 미소는 그런 삶의 단면을 포착하여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들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독자들에게 침묵 속에 숨은 목소리들을 듣는 법, 미소 뒤에 가려진 눈물을 읽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는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서로를 향한 이해와 공감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로서, 작품이 전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는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담백하고 섬세한 문체, 디테일한 감정 묘사를 통해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동시에, 레비나스적 의미에서 타자에 대한 윤리의식과 인간적인 연민을 이야기 전반에 녹여낸다. 이 소설은 고통스러운 과거와 알 수 없는 미래를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리면서도, 그들 사이에 흐르는 도덕적 진지함과 온기를 잃지 않는다. 읽고 나면 가슴 한켠에 뭉클한 따스함과 함께 씁쓸한 여운이 오래 남는데,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관계의 소중함과 소통의 어려움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쇼코의 미소를 통해 최은영은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주목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가족이든 친구든, 또는 국경을 넘어 만난 이방인이든, 상대의 얼굴을 응시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윤리적 상상력이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이해와 공감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러한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 덕분에 <쇼코의 미소>는 한국 문학에서 감성적이면서도 품위 있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하였고, 국제적으로도 “사실적이고 진지하며 도덕적 무게를 지닌” 뛰어난 단편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인간 내면의 흔들림과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대한 통찰을 담은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우리 자신의 삶 속 타자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나아가 문학이 어떻게 언어의 틈새로 인간의 진실을 포착하고 윤리적 성찰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예라고 하겠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조용한 문장들 사이로 진심 어린 울림이 배어 나오는 <쇼코의 미소>는,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특별한 미소와 함께 기억될 작품임에 틀림없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