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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20년, 그 유명한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사건을 통해서였다. 당시 문학상 운영 주체인 문학사상사가 내건 수상 조건에는 저작권 양도, 표제작 불허 등 작가의 고유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불합리한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그냥 넘기면 앞으로 작가 생활을 하는 데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밝히며, “문학과 출판이 사람의 정신적 영역을 다루는 산업인데, 그런 부당함을 생산자인 작가에게 요구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뉴스를 우연히 접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어느 인터뷰에선가, 그가 대학 졸업 후 약 6년간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 바 있었다. 업무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야근이 잦아 글을 쓸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러다 등단도 못한 채 인생이 지나가는 건 아닐까’ 하는 절박감이 밀려오던 중 이었다. 하루는 출근길 버스를 타려다 크게 넘어진 일이 있었다. 아마 그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까? 그는 결국 출판사를 그만두고 글쓰기에 전념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둔 이듬해인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며 드디어 등단을 하게된다. 이후 첫 번째 소설집인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로 신동엽문학상을, 단편 <너무 한낮의 연애>로 젊은작가상 대상을, 단편 <체스의 모든 것>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하며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동시에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펴내며 또 한 번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김금희의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1900년대부터 2020년대에 이르는 시간의 층위 속에서 개인의 상처와 역사의 트라우마를 섬세하게 직조한 작품이다. 창경궁 내 오래된 대온실을 복원하는 과정을 다룬 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건축물 수리의 기록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기억과 역사, 윤리와 치유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어떻게 불러내고 다룰 것인가, 흩어진 역사적 진실의 파편들을 어떻게 이어 붙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소설 전반에 흐른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영두는 30대의 문화재 보존 전문가로, 창경궁 대온실 복원 공사의 백서(수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한적한 섬마을인 강화도 석모도 출신인 영두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읜 뒤 서울 원서동에 있는 ‘낙원하숙’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다. 그 하숙집의 주인이 바로 문자 할머니였고, 그녀의 손녀인 리사와 영두는 한 집에서 지냈지만 왠지 모르게 서로 가까워지지 못한 채 어색한 사춘기를 보냈다. 영두는 그 시절 첫사랑이었던 순신과의 이별과 가족 상실의 아픔을 가슴에 품은 채 성장했고, 현재는 오랜 친구 은혜와 그녀의 어린 딸 산아와 함께 서울에서 생활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있다. 영두에게 내려진 대온실 수리 보고서 작성 업무는 단순한 기록 작업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와 대면하는 계기가 된다. 창경궁 대온실 보수 현장에서 작업을 하던 중, 온실 바닥 아래에서 모두를 놀라게 할 충격적인 비밀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던 사람의 유해였다.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뜻밖에 인골이 나오자 현장은 발칵 뒤집히고, 영두는 그 유해가 혹시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문자 할머니의 지나온 삶과 관련이 있을지 직감한다. 평소 과묵하고 조용히 하숙집을 운영해온 문자 할머니에게는 말하지 못한 비밀스러운 과거가 있음을 영두는 어렴풋이 느껴왔던 터였다. 영두와 동료들은 계획에 없던 추가 조사를 시작하며 이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풀고자 한다. 이야기는 현재의 영두 시점과 더불어, 약 20여 년 전 영두가 낙원하숙에서 보낸 사춘기 시절의 회상, 그리고 20세기 초 일제강점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 장면들이 교차되며 전개된다. 영두가 동료들과 함께 대온실 지하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과 병행하여, 한편으로는 문자 할머니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서서히 밝혀진다. 문자 할머니의 본명은 일본식 이름인 ‘마리코’로, 그녀는 태평양전쟁 말기 조선에 살던 일본인이었다. 1945년 일본의 패전과 광복 직후 혼란의 와중에 마리코(문자)는 사랑하는 이를 비극적으로 잃게 되고, 그 시신을 몰래 창경궁 대온실 부근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참담한 과거가 있었다.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마리코는 이후 한국에 남아 ‘문자’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살아왔지만, 그 날의 상처와 죄책감을 평생 마음 속에 묻고 지낸 것이다. 영두는 마침내 문자 할머니가 간직해온 사연의 전모를 알아내고 깊은 충격과 슬픔을 느낀다. 동시에 과거의 진실을 밝힘으로써 문자 할머니와 리사, 그리고 자신까지도 얽매어 있던 오랜 응어리가 풀리는 것을 경험한다. 문자 할머니는 오랫동안 감춰왔던 비밀을 털어놓으며 비로소 가슴 속 짐을 내려놓게 되고, 영두와 리사는 비극적인 역사의 목격자이자 생존자로서 서로를 이해하며 화해에 이른다. 그러나 발굴된 유해의 존재는 공식 보고서에 쉽게 담을 수 없는 민감한 문제였고, 영두는 고뇌 끝에 수리 보고서를 완성하지 못한 채 프로젝트를 떠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영두는 다시 창경궁을 찾았을 때, 과거 배양실이 있던 자리에 이름 없는 국화밭이 조성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누군가의 희생을 기리는 비석 하나 없이 조용히 피어난 국화꽃을 바라보며, 영두는 과거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기억 속에 살아 있도록 둔 그 풍경에 안도를 느낀다. 역사의 아픔을 가슴에 품은 공간은 이렇게 소박한 꽃들의 숨결 속에서 현재와 이어지며, 영두는 자신의 삶 역시 그 연장선 위에서 새롭게 이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보고서” 형식을 전면에 내세운다. 극중 주인공 영두는 창경궁 대온실 보수 공사의 백서를 작성하는 임무를 맡게 되며, 소설은 바로 그 보고서를 “쓰기 위한 과정”을 따라간다. 보고서는 원래 사실을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문서지만, 김금희는 이 메타픽션적 장치를 통해 진실조차 허구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면 독자는 정작 공식 보고서의 내용을 보지 못한다. 대신 보고서에 담기지 못한, 혹은 담겨서는 안 될 이야기들을 알게 되며, 이것이 이중적인 서사 구조의 묘미다. 겉으로는 공사 경과를 다루지만, 실제로는 보고서에 적히지 않은 진실이 중심이다.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서사와 인간적인 진실의 서사 사이에서 영두는 갈등한다. 그녀가 끝내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음으로써, 진실을 수치로 환원하는 일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보고서라는 장르 자체의 한계가 드러난다. 과연 중요한 것은 완벽히 정리된 결과물인가, 아니면 문서에 담기지 못한 진실인가? 김금희는 분명히 후자에 무게를 둔다. 작품은 장르적 혼종성 또한 뚜렷하다. 기본적으로 역사소설로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실재 사건을 배경으로 하며, 문자(마리코) 할머니의 과거를 복원한다. 동시에 영두라는 여성의 상처와 회복을 다룬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서울 유학 시절의 상처를 지닌 영두는 대온실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를 마주하고 연대와 화해를 배운다. 플롯 자체는 전형적인 성장서사의 궤적을 따른다. 또한 액자소설 형식으로, 현재의 영두가 보고서를 쓰는 프레임 안에 2003년 과거의 에피소드,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 1940년대 문자의 이야기가 포개진다. 이 다층적 구조는 독자에게 시간의 층위를 따라가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영두가 구술과 기록을 인용하는 방식은, 사실 김금희 작가의 상상과 취재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허구임을 드러내며, 메타픽션적 자기반영성을 낳는다. 이처럼 현실의 작가, 작품 속 작가, 기록된 이야기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지고, 독자는 무엇이 사실이고 허구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 작품은 팩션이나 전기적 요소가 혼합된 현대소설의 경향을 반영하며, 진실의 복잡성과 불가능성을 함께 사유하게 한다. 역사란 순수한 팩트도 완전한 허구도 아닌, 그 경계에 존재하는 것이며, 소설도 그런 장르의 혼종을 택한다. 대온실 지하에서 발견된 유골과 관련된 진실 역시 끝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데, 이것은 역사란 본래 불완전하며 다만 추정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결국, 독자가 읽게 된 것은 영두가 끝내 제출하지 못한 그 보고서의 ‘빈자리’이다. 소설은 완전한 진실이 아닌, 진실을 추적하는 여정 자체에 의미가 있음을 말한다. 메타픽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 작품은 진실을 쓰기보다 진실에 다가가는 시도 자체에 가치를 부여한다.

폴 리쾨르의 “기억의 윤리”는 과거를 정직하고 책임 있게 기억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기억의 보존이 아니라, 사실에 충실하며 왜곡 없이 기억하고, 그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고통스러운 역사를 다룰 때, 정직한 기억과 증언은 화해와 치유의 출발점이 된다. 한편 발터 베냐민은 역사를 승자의 서사가 아닌, 패자와 잊힌 이들의 파편적 기억으로 보았다. 그는 과거를 하나의 내러티브로 완결하기보다, 현재의 시선으로 과거의 조각들을 불러와 잇는 작업에 진실의 의미를 두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이러한 철학적 사유를 서사로 구현한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기억을 소환하며, 리쾨르가 말한 기억의 윤리를 실천하는 방식으로 과거와 마주한다. 주인공 영두는 창경궁 대온실 복원 작업을 맡으며 옛 기록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발견한 뼈와 사연을 자극적 사건이 아닌 윤리적 기억으로 대한다. 그녀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존중하며, 피해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과거를 다룰 때 요구되는 도덕적 자세를 환기시킨다. 또한 이 작품에서 역사적 진실은 단일한 내러티브가 아니라 파편으로 존재한다. 영두는 옛 설계도, 인터뷰 조각, 노파의 회상 등을 모아 하나의 진실에 다가간다. 이 과정은 베냐민의 역사관처럼, 완전한 재현이 아닌 단편들의 연결을 통해 어렴풋이 전체상을 드러내는 시도이다. 진실은 한 문서나 증언에 담기지 않으며, 오직 다각적 조합을 통해 나타난다. 결국 김금희는 역사를 공식 기록이 아닌 기억의 파편 속에서 찾아낸다. 이 소설은 기억의 윤리와 역사의 파편성을 긴밀히 결합하며, 과거를 윤리적으로 기억하고 그 파편을 더듬어 진실에 다가가려는 문학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미셸 푸코는 현실 속 특별한 공간들을 “헤테로토피아”라 불렀다. 이는 사회 안에 실제로 존재하지만 일상적 질서에서 벗어나 현실과 비현실이 중첩되는 공간을 의미한다. 박물관, 정원, 공동묘지 등이 대표적인 예이며, 창경궁의 대온실 역시 이러한 헤테로토피아적 성격을 강하게 띤다. 서양식 유리온실인 대온실은 전통 궁궐 한복판에 삽입된 근대적 이질성으로, 일제강점기 식민지 오락 공간의 산물로 남겨졌다. 현재는 복원 대상 문화재이자 식민지, 전쟁, 현대 복원이 겹겹이 쌓인 복합적 장소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영두가 온실에 들어설 때, 독자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몽환적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대온실은 현실의 서울 궁궐 안에 존재하지만, 시간과 상징이 비현실적으로 떠도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증언의 윤리’와 ‘망각의 정치’라는 역사철학적 쟁점을 드러낸다. 문자 할머니는 일제 말기 조선에 숨어든 일본인 마리코였으며, 광복 후 ‘문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그는 오랫동안 침묵 속에 과거를 봉인해왔지만, 이는 단지 개인적 트라우마가 아니라, 해방 이후 사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서사를 둘러싼 집단적 망각과도 관련이 있다. 한 일본인 소녀의 생존담은 당시 한국 사회에서 쉽게 수용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리쾨르의 ‘기억의 윤리’가 요구하듯, 과거의 고통은 침묵 속에 묻히기보다 정직하게 증언되어야 한다. 영두는 할머니의 직접 고백이 아니라, 그 침묵의 층위 자체를 읽어내며 진실에 다가간다. 그렇게 반세기 넘게 묻혀 있던 기억이 조심스럽게 떠오르며, 작가는 문자를 심판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인간으로 이해하려는 윤리적 태도를 견지한다. 흥미롭게도, 영두는 결국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완성하지 못한 채 현장을 떠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녀는 배양실 자리에 기념비 대신 조성된 국화밭을 발견한다. 영두는 그 무표정한 풍경에서 오히려 안도하며, 말 없는 꽃밭이 진실에 더 가까운 것처럼 느낀다. 이는 과도한 기념이 오히려 기억을 틀에 가두거나 지워버릴 수 있다는 점을 환기한다. 국화는 피고 지지만 말을 하지 않고, 그 침묵은 때로 말보다 강한 증언이 된다. 김금희는 이 장면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헤테로토피아적 온실에서 시작된 이 서사는, 결국 과거를 증언하되 그것을 다시 억압하는 또 다른 장치로 만들지 않으려는 섬세한 균형 속에서 마무리된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의 서사는 정신분석의 언어, 특히 “억압된 기억의 귀환”이라는 개념으로 깊이 읽힌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나 욕망은 무의식에 억압되지만, 어느 순간 상징적 형태로 재귀한다. 작품 속 창경궁 온실 지하에서 발굴된 유해는 무의식의 트라우마가 재현된 사건처럼, 억눌린 과거의 귀환을 상징한다. 이 사건은 주인공 영두를 비롯해 관련 인물들의 내면 깊은 기억을 흔들어 깨운다. 영두는 청소년 시절 서울 기숙생활에서 트라우마를 겪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폐적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이후 대온실 복원 작업을 맡으며 과거와 마주하고, 낙원하숙의 문자 할머니, 소녀 리사, 첫사랑 순신 등 잊고 지낸 존재들과 재회한다. 과거를 떠올리는 이 과정은 마치 환자가 무의식의 상처를 직면하며 치유해가는 심리치료와 유사하다. 영두가 유골을 조사하는 행위는 외적으로는 역사 발굴이지만, 동시에 자신 안에 묻어둔 감정을 끌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문자 할머니(마리코) 역시 일제 시절의 고통을 평생 억압하며 살아왔고, 영두라는 청자를 만나며 처음으로 그 기억을 표면화한다. 조카 산아와 리사 역시 각자의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영두는 이들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과거와도 화해하게 된다. 특히 리사는 어린 시절 영두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훗날 그녀의 행동이 내면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으며 영두는 연민과 이해로 감정을 전환한다. 이처럼 소설은 트라우마가 인물 간 관계를 통해 확산되고, 다시 그 관계 안에서 치유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신분석에서는 언어화를 통한 기억의 재구성이 곧 치유의 핵심이라고 본다. 영두는 처음엔 ‘보고서’를 쓰려 하지만, 결국 그 과정은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하는 작업이 된다. 그녀가 완성한 것은 보고서라기보다 억압된 기억의 윤리적 재구성이다. 과거의 자신, 문자 할머니의 청춘, 리사의 상처와 산아의 고뇌가 모두 이 이야기 안에서 교차하며 의미를 갖는다. 이 작품은 개인의 심리적 트라우마와 역사적 상처의 회복을 연결시킨다. 영두의 내면 회복은 문자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다시 말해 역사적 진실의 복원을 통해서야 가능해진다. 개인과 역사는 분리될 수 없으며, 과거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일은 곧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의 구원과도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김금희는 이 복잡한 구조를 치밀하게 설계하고 섬세하게 묘사하여, 독자 역시 주인공과 함께 무의식의 심연을 통과하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만든다. 정신분석적 울림이 이 소설의 깊이를 만들어주는 핵심이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독자에게 특별한 체험을 선사하는 소설이다. 그 중심에는 비선형적 서사 구조와 감각적인 문체가 있다. 이야기의 현재는 2020년대 영두가 대온실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시점이지만, 곧 서사는 2000년대 초 영두의 학창시절, 더 나아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의 과거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복원 과정 중 발견한 유물 하나가 과거의 시공간을 호출하며, 현재와 과거는 끊임없이 교차하며 병렬된다. 이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시대를 넘나드는 평행적 몽타주처럼 작동하며,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바라보게 만든다. 영두와 마리코(문자 할머니)가 각기 겪는 고립과 선택이 겹쳐지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인간 경험이 드러난다. 문체 또한 김금희의 장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온실 내부의 공기, 햇빛, 흙냄새와 식물의 향을 묘사하는 표현은 독자의 오감을 자극하며, 단순한 공간 묘사를 넘어 기억을 환기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국화꽃은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상징으로, 아무 표지 없이 조성된 국화밭은 조용하지만 강한 감정의 울림을 준다. 이는 말보다 침묵과 풍경이 더 깊은 증언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김금희는 언어보다는 여백과 사소한 제스처로 인물의 감정을 드러낸다. 영두와 문자 할머니의 관계나, 산아와의 교감은 대화보다도 손을 잡아주는 장면, 차를 건네는 행동 등을 통해 표현되며, 이 작은 몸짓에는 과거와 현재가 겹쳐져 있다. 현재의 제스처는 과거의 기억을 반추하게 하며, 독자는 시간의 두께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김금희는 복잡한 플롯과 섬세한 묘사를 결합하여, 역사와 개인 기억의 중첩을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독자는 어느 순간 일제강점기의 온실 안에 있다가도 곧 현재의 서울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두 시점은 분리되지 않는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고, 현재는 과거의 의미를 되살린다. 작가는 우리 모두가 과거의 기억 위에 서 있으며, 현재의 행동이 미래의 기억을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한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과거를 기억하는 일과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예리하면서도 따뜻하게 보여주는 수작이다. 작품은 건축물의 물리적 수리(repair)를 매개로 삶의 은유적 치유(healing)를 그린다. 금이 가고 부서진 온실을 복원하는 일은 상처 입은 마음과 역사적 균열을 되돌아보는 과정과 겹친다. 그러나 작가는 모든 상처가 완벽히 치유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결말에서 보고서는 미완으로 남고, 국화꽃만이 조용히 피어 있을 뿐이다. 이 열린 결말은 치유와 화해가 완료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역사는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개인의 상처 역시 시간과 세대를 넘어 지속된다. 그렇기에 윤리적인 기억의 전승과 희망을 잇는 책임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영두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보고서는, 소설을 읽는 이가 이어가야 할 과제로 제시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소설이나 휴먼 드라마를 넘어, 문학과 철학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김금희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예리한 역사 인식을 함께 품으며, 독자가 자연스럽게 기억의 윤리와 증언, 진실, 치유의 의미를 사유하게 만든다. 창경궁 대온실이라는 공간은 과거의 기억이 현재에 어떻게 스며 있는지를 상기시키며, 우리가 그 기억을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음을 조용히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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