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 미디어에서는 지인들의 성취나 행복을 담은 게시물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누군가 여행 사진과 함께 “작년보다 더 성장한 나😊”라는 글을 올리거나, 자녀의 상장 사진을 공유하며 “우리 아이가 해냈어요!”라고 자랑할 때, 이를 본 다른 사람들은 미묘한 불편함이나 질투를 느끼곤 합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이러한 “슬쩍 자랑”이나 은근한 자기과시 게시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 거슬림, 열등감, 심지어 분노까지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 반응은 드문 예외가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으로 보고됩니다. 예컨대 한 연구에서는 페이스북 사용자의 3분의 1 이상이 친구들의 소식을 접한 뒤 주로 좌절감이나 불만족 등의 부정적 감정을 느꼈으며, 그 주된 이유가 “친구에 대한 부러움”, “설치는게 꼴보기 싫음”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한 소식에 접촉할 기회가 늘어난 소셜미디어 환경은 이러한 사회적 비교와 시기심을 쉽게 촉발하여, 사용자들의 정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소셜미디어 상에서 타인의 성공담이나 행복한 순간들을 관찰하는 행위 자체가 시기심의 핵심 역동을 불러일으키며, 사회관계망 서비스 경험의 일부로 자리잡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고전적 정신분석에 따르면, 타인의 자랑을 보고 느끼는 불쾌감은 개인의 원초적 욕망, 자아의 현실 인식, 그리고 초자아의 이상과 도덕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됩니다. 우선, 이드적 차원에서 무의식적 충동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고 싶은 욕망이나 남이 가진 것을 갖고자 하는 질투심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공격적 충동과도 맞물려, 타인이 누리는 즐거움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불쾌하거나 파괴적인 욕구가 솟아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자아는 타인의 성취를 당장 획득할 수 없고, 공개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낼 수도 없으므로 내적 긴장을 느낍니다. 이때 개인은 이러한 불편한 감정을 방어기제를 통해 처리하려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의 자랑거리를 애써 평가절하하거나 “별것 아니다”라고 합리화하기, 오히려 과장되게 칭찬하면서 속마음의 질투를 감추는 반동형성, 혹은 그 사람을 거만한 사람이라고 폄하하며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그에게 투사하기 등이 흔한 방어반응입니다. 이러한 투사적 방어기제 작용으로, 시기하는 사람은 자신의 불안과 결핍을 마주하지 않고 “저 사람이 잘난 척을 해서 기분 나쁜 것”이라며 책임을 바깥으로 돌리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특히 질투라는 감정을 분석하며 그 안에 여러 심리가 얽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질투에는 상실에 대한 슬픔, 자아에 대한 상처, 성공한 경쟁자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자기비난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실제로 친구의 성공 소식을 접할 때 느끼는 불쾌감 속에는 “나는 그만큼 이루지 못했다”는 열패감과 이에 따른 자기애적 상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 성공을 이룬 라이벌에 대한 무의식적 적대감도 피어날 수 있으며, “왜 나는 그러지 못했는가” 하는 자기비난이나 열등감이 뒤따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우리의 초자아—내면화된 이상과 도덕적 양심—가 작용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초자아는 “너도 저 사람처럼 성공해야 했어” 혹은 “남을 질투하는 너는 나쁜 사람이야”라는 두 가지 메시지로 자아를 질책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자아 이상과 현실 자기 사이의 괴리가 부각되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거나, 동시에 질투심을 품는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기애에 상처를 입는 경험은 분노와 수치심을 동반합니다. 정신분석적 논의에 의하면, 자기애적 성향이 강할수록 외부로부터 사소한 비교나 실패도 자아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질투와 시기는 우리의 지위나 성취를 위협하고, 욕망하던 것을 좌절시킬 때 우리의 자기애에 대한 정면 공격으로 다가온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자존심에 타격을 입은 자아는 불쾌와 분노를 느끼며, 동시에 초자아의 가혹한 목소리로 인해 열등감과 수치심에 시달립니다. 요컨대, 고전적 관점에서 소셜미디어 속 타인 자랑을 보고 느끼는 불편함은 무의식적 질투심과 자기애적 상처로 인한 감정적 혼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의식적 자제만으로 통제되지 않으며, 방어기제를 동원해 자아를 보호하려는 심리가 작동합니다. 예컨대 상대의 성취를 깎아내리거나, 상대를 비난하면서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행동 등은 시기심의 파괴적 표현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아는 당장의 열등감과 불쾌감을 누그러뜨리지만, 근본적인 질투의 원인은 무의식 속에 남아 계속하여 갈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반면, 대상관계이론에서는 개인의 초기 대인관계 경험과 내면화된 대상이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특히 멜라니 클라인은 시기심의 기제를 깊이 탐구하여, 타인의 좋은 것을 보고 불쾌해하는 심리의 근원을 설명했습니다. 클라인에 따르면 시기심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원초적 정서로서, 가장 파괴적인 원시적 감정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시기심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누리는 바람직한 무엇인가에 대해 느끼는 분노 어린 감정으로, 시기하는 사람의 충동은 그것을 빼앗거나 망쳐버리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예컨대 소셜미디어에서 친구가 행복한 결혼생활이나 훌륭한 직업 성취를 자랑할 때, 이를 본 사람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 “그 행복을 없애버리고 싶다”는 무의식적 충동까지 내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클라인은 이러한 시기심의 원형을 영아기 모유수유 장면에서 찾았습니다. 아기는 엄마의 젖(좋은 대상)을 통해 욕구가 충족되지만, 충분히 얻지 못하면 좌절과 분노를 느낍니다. 이때 아기는 좌절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엄마의 젖가슴이라는 좋은 대상을 공격하고 파괴하고 싶어하는 충동을 품게 되는데, 이것이 시기심의 원형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좋은 엄마의 젖”에 대한 부러움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 초기 경험에 존재하며, 아기는 그 분노를 투사하여 “나를 좌절시킨 나쁜 젖”이라는 환상적 분열을 일으킵니다. 이렇게 대상을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으로 이분화하는 심리를 클라인은 분열(splitting)이라 불렀습니다. 분열의 기제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서 누군가 자랑을 하면 보는 이는 그 사람을 양가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러운 좋은 대상”이지만, 시기심이 강해지면 그 대상을 전적으로 악의적이고 거만한 존재로 인식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마음속 모순적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대상 이미지를 극단으로 나누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원래는 친한 친구였던 사람이 소셜미디어에 행복한 소식을 올리면, 시기하는 입장에서는 무의식 중에 그 친구를 미워하게 되고, “잘난 척 하는 밉상”으로 대상 표상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본래 친구에게 느끼던 호의마저 사라지고 온통 부정적 정서로 덮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시기심에 의해 좋았던 대상이 ‘나쁜 대상’으로 변질되는 분열의 현상입니다. 동시에 클라인은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으로 시기심의 역동을 설명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부정적 감정이나 속성을 타인에게 투사하고, 그 투사된 부분과 자신이 동일시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시기하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열등감, 분노와 같은 견디기 힘든 감정을 상대방에게 밀어넣습니다. 예를 들어, 타인이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은 남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잘난 척을 해대는구나”라고 느낀다면, 사실 그 불편함과 적의는 시기하는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 시기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질투심 유발자이자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해자로 여기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시기하는 자신은 피해자처럼 느껴져 오히려 도덕적 우위에 서게 되고, 상대를 비난하거나 미워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무의식적 방어로서, 자기 자신의 부정성을 인정하지 않고 타인에게 넘겨버림으로써 자아를 보호하려는 심리입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대인관계는 왜곡되고, 실제로는 친구의 성공을 축하해주고 기뻐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적개심과 고립감을 느끼게 되니 심리적 고통이 수반됩니다. 클라인은 이러한 시기심의 작동 배후에 흥미로운 메커니즘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즉, “좋은 대상”을 시기하여 공격하려는 동시에,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그 대상을 자신의 일부로 동일시하고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기하는 대상과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하고자 하기 때문에, 더욱더 그 대상을 파괴하고 싶은 양가감정에 시달린다는 것입니다. 소셜미디어에서 누군가 눈부신 성취를 보일 때, 그를 미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동경이 공존하기에 갈등이 심화됩니다. 이렇듯 대상관계이론 관점에서 보면, 온라인상의 질투와 불쾌감은 단순히 개인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와 대상 간의 관계적 산물입니다. 초기부터 형성된 시기ㅇ ㅘ 감사의 역동이 어른이 되어서도 재현되어, 타인의 자랑 앞에서 감사의 마음 대신 시기와 공격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클라인은 건강한 발달의 징표로 감사의 능력을 들었는데, 이는 곧 타인의 좋은 점을 시기하지 않고 인정하고 기뻐해줄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만약 이러한 감사의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면, 성인은 계속해서 타인의 행복을 자신의 박탈로 인식하며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유독 남의 자랑에 예민하게 상처받는 사람은, 이러한 원초적 시기심과 분열의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하인즈 코헛의 자기심리학은 인간의 자기가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안정되고 발전한다고 봅니다. 코헛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타인을 자기대상으로 사용하면서 살아갑니다. 즉, 중요한 타인은 우리의 자기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거나, 우리가 이상화하여 따르는 이상적 대상이 되거나, 혹은 공통의 경험을 나누는 쌍둥이 자기대상이 되어 우리의 자기애적 안정감을 지지해줍니다. 건강한 자기 발전에는 적절한 외부의 인정과 공감이 필요한데, 소셜미디어 환경에서는 이러한 인정 욕구와 시기심이 복잡하게 교차합니다. 타인의 자랑을 보고 불편함이나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의 심리를 자기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그것은 곧 자기의 균형이 흔들리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유지되던 자기애적 안정감이, 남의 성취 소식으로 인해 비교와 함께 균열이 생기는 것입니다. 코헛의 이론에서 자기애적 분노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자기가 기대던 자기대상이 충분히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거나, 자기의 가치를 손상시킬 때 나타나는 분노입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친구들의 자랑 글은 일종의 자기대상의 역할 역전을 일으킵니다. 원래 친구나 지인은 서로의 소소한 성취를 공감해주며 자기애를 지지해주는 거울 자기대상이 되어줄 수도 있는데, 정작 그 친구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면, 보는 입장에선 자신이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비교당하는 입장이 되어버립니다. 이는 자기대상이 나를 비춰주기는커녕 나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나게 만드는 거울로 변한 셈입니다. 그 결과 자기에 대한 자존감이 흔들리며, 자기애적 균형이 깨지게 됩니다. 자기 심리학 관점에서 이러한 순간은 심리적으로 자기애적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수치심과 분노를 유발합니다. “저 사람의 성공이 곧 나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 같다”거나 “왜 나는 저런 인정을 받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무력감이 찾아오지요. 코헛 이후의 연구자들도 자기애적 취약성이 큰 사람일수록 타인의 성공에 대한 질투와 상처를 심하게 경험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그들의 자기 구조가 외부의 칭찬, 인정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 남이 주목받는 것을 보면 마치 자기에게 돌아와야 할 애정이 뺏긴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코헛은 건강한 자기애는 어느 정도 자기 대상에의 의존을 필요로 하지만, 결국 자기 대상과의 동일시를 통해 자기 내부에 건강한 자존감의 원천을 구축해나가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안정된 자기구조를 확립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 타인의 성취를 접하면 그것이 곧 자신의 자기 가치에 대한 위협으로 작용합니다. 마치 자기에게 필수적인 정서적 영양 공급원(타인의 인정)을 누군가 가로채는 듯한 느낌, 또는 자기와 타인을 구분하지 못한 융합적 상태에서 타인의 성공을 자기의 실패로 받아들이는 왜곡이 일어납니다. 결국 이들은 남의 자랑을 “내가 거울을 통해 보게 된 나의 결핍”으로 인식하여 심한 불쾌감에 빠집니다. 자기애적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극단적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울과 위축입니다. 자기대상이 주는 좌절을 견디지 못하고, “역시 나는 형편없어”라는 무력감에 빠지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분노와 공격성입니다. 코헛이 말한 자기애적 분노로, 자신에게 수치감을 준 대상을 미워하고 깎아내리며 공격하는 태도입니다. 소셜미디어 상에서 인기 있는 친구를 몰래 험담하거나, 그 사람의 성취를 깎아내리는 댓글을 다는 행위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앞서 논의한 클라인의 시기적 공격성과도 일맥상통하지만, 자기심리학에서는 그 원인을 취약한 자기구조와 외부 자기대상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설명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즉, 자신의 내적 자원이 부족하니 남의 성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일종의 정서적 기생 관계가 성립되어 있는 셈입니다. 또한 자기심리학은 발달적 관점에서, 왜 어떤 사람들은 특히 타인의 자랑에 민감하게 상처받는지를 설명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충분한 공감과 인정을 받지 못한 경우, 성장이 되어도 자기애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늘 굶주린 상태로 남습니다. 이런 사람은 친구들의 작은 성공이나 행복에도 과민하게 반응하여 “왜 나는 저런 사랑을 못 받지?” 하는 부족감에 쉽게 사로잡힙니다. 반대로 어린 시절 과도하게 칭찬만 받고 자라 자기애가 비대해진 경우에도 문제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늘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무의식적) 전제를 가지는 데, 현실에서 타인이 주목받으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질투심에 휩싸입니다. 즉, 온 세상이 나의 이상화된 부모여야 한다는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분노하는 것입니다. 소셜미디어는 이러한 자기애적 욕구를 자극하는 무대가 됩니다. “좋아요” 숫자나 팔로워 수가 일종의 사랑의 지표처럼 느껴져서, 누군가 그것을 많이 받고 있으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 듯한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코헛의 관점에서 치유 혹은 대처는 결국 새로운 자기대상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치료자나 가까운 사람이 지속적으로 공감과 현실 검증을 제공하여, 자신의 가치와 타인의 가치를 보다 분리해서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자기애적 균형이 잡히면, 타인의 성취를 보더라도 그것이 곧 나의 무가치함을 뜻하지 않음을 이해하게 되고, 오히려 건강한 자부심과 동기부여로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셜미디어 속 타인의 자랑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질투심의 자극제가 아니라 “나도 저런 부분이 있지”, “열심히 하면 저렇게 될 수 있겠어”와 같은 통합적 사고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타인의 자랑을 보고 느끼는 불쾌감과 질투심이라는 한 현상에 대해서도 정신분석의 여러 학파는 각기 다른 층위에서 설명을 제공합니다. 고전적 프로이트의 관점은 개인의 내적 갈등과 무의식적 방어에 초점을 맞추어, 질투가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산물임을 보여줍니다. 이 입장에서는 자기애적 상처와 열등감, 그리고 이를 덮기 위한 방어기제들이 강조되며, 개인이 겉으로는 태연해 보여도 속으로는 심한 자존심의 손상을 입고 투사, 합리화 등의 심리 기제를 동원한다는 통찰을 줍니다. 반면 멜라니 클라인을 대표로 하는 대상관계이론은 이러한 감정을 관계적 맥락에서 이해합니다. 어린 시절의 시기심 대 감사 경험, 분열과 투사적 동일시의 메커니즘이 그대로 성인기의 대인관계에 재현되어, 타인의 행복을 보지 못하고 분노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클라인은 시기심이 일차적으로 파괴적 충동이며, 그것이 좋은 대상을 공격하고 관계를 분열시키는 힘임을 일깨워주어, 질투에 휩싸인 개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선악의 분할 과정을 이해하게 합니다. 자기심리학은 또 다른 시선을 제시하는데, 여기서는 개인의 자기애적 안정감과 외부 인정에 대한 의존을 개념화함으로써, 왜 일부 사람들은 유독 남의 자랑에 취약한지를 설명합니다. 자기심리학적 시각은 발달적 결손이나 자기애의 취약성에 주목하여, 이러한 경우 타인의 성공이 자신의 자기 가치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와 심한 수치심과 분노를 유발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질투심을 가진 사람에 대한 공감적 이해를 높여주며, 단순히 심술로 치부하기 쉬운 반응 뒤에 사실은 상처입기 쉬운 자기가 숨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이러한 각 이론들은 관점과 언어는 다르지만 상호보완적인 관계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인의 자랑에 대한 불쾌감을 느끼는 실제 한 사람을 상상해보면, 그 마음속에서는 원초적인 시기심(클라인)이 꿈틀대고, 자기애적 자존심(프로이트/코헛)이 상처받아 분노하며, 초자아의 꾸짖음(프로이트)이 죄책감을 일으킵니다. 어느 하나의 관점만으로 그 복합적 심리를 모두 설명하기 어렵기에, 이들 이론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치료 현장에서는 우선 표면에 드러난 방어(비난, 냉소 등)를 이해하고(고전적 관점), 그 밑에 깔린 관계적 상처(상대에 대한 분열된 인식와 투사, 대상관계 관점)를 탐색하며, 동시에 그 사람의 자기 구조적 취약성(자기심리학)을 공감해 주는 것 모두 유용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개인이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고 수용함으로써, 더 이상 타인의 자랑이 내 결핍의 증명이 아니라 독립된 타인의 서사로 인정될 수 있어야 합니다.
끝으로, 온라인 시대의 자기애적 균형과 감정 조절에 대해 몇 가지 시사점을 덧붙입니다. 첫째, 남의 자랑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겪는 인간적 반응임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자기 비난을 줄이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현대 연구들은 소셜미디어 사용이 보편적으로 시기심을 유발하며 이는 삶의 만족도 저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부정적 감정을 느낄 때 자신만 나쁘다고 억압하기보다, 그 감정의 보편성과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둘째로 자신이 취하는 심리적 방어(예: “저 사람은 잘난 척이 심해”라고 폄하함으로써 느끼는 일시적 우월감)를 인식하고, 그것이 진정한 해결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대신 승화나 동기부여로 전환하는 건강한 전략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친구의 성공담을 질투하기만 할 게 아니라 자신의 목표를 재정비하고 노력하는 계기로 삼는 것은 성숙한 방어에 해당합니다. 셋째, 클라인이 강조한 “감사 대 시기”의 태도에서, 의식적으로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표현하는 연습은 시기심의 파괴성을 중화시킵니다. 처음에는 가식처럼 느껴질지라도, 타인의 행복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실천하면 점차 내적 여유와 관계의 온전함이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넷째, 자기애적 결핍을 메우기 위해 건강한 자기대상을 삶에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프라인에서 진정으로 나를 이해해주고 인정해주는 인간관계를 갖추면, 온라인상의 비교 자극에 휘둘릴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자기애적 균형을 유지하고 타인의 자랑에 대한 감정을 조절하는 일은 현대인에게 새로운 과제입니다. 정신분석의 다양한 이론은 각기 유용한 통찰을 제공하며, 이를 종합하면 우리는 질투와 시기심을 더 깊이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타인의 성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를 존중하는 태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자기 이해와 심리적 성찰을 통해 충분히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입니다. 결국, 타인의 자랑도 내 삶의 서사와 조화롭게 공존시킬 수 있는 건강한 자기를 가꾸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일 것이며, 정신분석학적 통찰들은 그 여정에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