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 분석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특히 언어철학과 논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스트리아 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버트런드 러셀의 지도를 받으며 철학을 공부한 그는, 초기 저작인 <논리-철학 논고>를 통해 언어와 세계의 관계에 대한 독창적 이론을 제시했다. 이른바 그림 이론으로 불리는 그의 전기 철학에서, 언어는 논리적으로 구조화된 이상 언어를 통해 세계를 “그림처럼” 정확히 묘사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논고>에서 그는 세계를 사실들의 집합으로 보고, 언어의 의미를 그 사실들을 묘사하는 명제의 논리적 구조에서 찾으려 했다. 이러한 접근은 고틀로브 프레게와 러셀의 논리적 분석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철학적 문제를 언어의 논리 구조를 명확히 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전기와 후기으로 극명하게 나뉘며, 1930년대 이후 그는 자신의 이전 견해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된다. 케임브리지로 복귀하여 철학 연구를 재개한 비트겐슈타인은 학생들과 토론하고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키는 가운데, 언어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이 시기의 철학적 배경에는 논리실증주의의 융성과 위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고>에 영향을 받은 비엔나 학파는 과학적 검증 가능성에 기반해 의미를 파악하려 했으나, 1930년대에 들어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엄격한 논리 체계를 통한 철학적 해법에 회의를 품었고, 언어를 바라보는 자신의 접근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이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 그의 후기 대표작인 <철학적 탐구>이다.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이 생전에 출간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인 1953년에 간행된 것으로, 평범한 언어의 사용을 세밀하게 관찰함으로써 철학적 통찰을 이끌어내는 독특한 저작이다. 전통적인 논문 형식이 아닌 짧은 단상들과 질문들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체계적인 이론 제시보다는 사고 과정을 함께 탐구하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방법을 보여준다. <철학적 탐구>가 집필된 1940년대는 인류 역사상 격동의 시기였을 뿐 아니라, 철학계에도 큰 전환이 일어나던 때였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혼란과 회복기의 문화적 분위기는 거창한 이념이나 체계보다는 일상의 실제와 구체적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을 강화했다. 철학적으로도, 전쟁 이전에 주류를 이루었던 논리실증주의와 형이상학 비판의 열기는 전후에 한풀 꺾이고 있었다. 1940년대 후반 영국 옥스퍼드 등을 중심으로 등장한 일상 언어 철학의 학파는 일상의 언어 사용을 정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철학적 문제를 해소하려 했는데, 이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흐름이었다.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의 관심은 더 이상 이상화된 언어나 추상 이론에 있지 않고, 사람들이 생활 세계에서 언어를 어떻게 쓰는지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소수의 제자들과 활발히 토론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다듬었고, 그러한 문화적·지적 분위기 속에서 <철학적 탐구>의 원고를 완성했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트겐슈타인이 놓여 있었던 두 철학 전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유럽 대륙의 전통으로,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합리론과 그 이후 계승된 관념론적 사유이다. 이 전통에서는 정신의 자율성과 사유의 보편 구조를 중시하여, 개인 내면의 확실성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다른 하나는 영미권의 전통으로, 흄과 러셀, 그리고 논리실증주의로 이어지는 경험론과 분석철학의 맥락이다. 여기서는 과학적 경험과 논리적 명석함에 의지해 철학 문제를 다루었으며, 언어를 이상적으로 정제하여 혼란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졌다.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출신이었지만 학문 활동은 영국에서 펼쳤기 때문에 이 두 지적 흐름의 교차로에 서 있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아 예술과 윤리에 대한 깊은 사색을 남겼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미 분석철학의 최전선에서 언어와 논리에 천착했다. 그가 살았던 문화적 배경—두 차례의 세계대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몰락과 영국 학계에서의 활동—은 그의 철학에 복합적인 흔적을 남겼다. 전쟁의 참상과 문명에 대한 성찰은 거대 이론에 대한 경계를 심어주었고, 이는 철학에서도 겸손하고 실제적인 접근을 선호하는 태도로 이어졌다. 이러한 시대정신 속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란 거창한 이론 건설이 아니라 잘못된 물음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작업이라고 보게 되었으며, <철학적 탐구>는 바로 그와 같은 철학관을 반영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철학적 탐구>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을 집대성한 저작으로서, 언어의 본성에 대한 혁신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출발점은 언어에 대한 전통적 관념에 대한 비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책의 서두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데, 거기에서는 언어를 단지 사물을 가리키기 위한 이름의 집합으로 파악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그림 이미지의 언어관이 철학자들을 오랫동안 사로잡아 왔음을 지적하며, 바로 그 견해와 결별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한 단어의 의미는 그것이 언어 안에서 사용하는 쓰임새이다”라는 그의 주장은 이러한 결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언어의 의미를 더 이상 단어와 대상 간의 일대일 대응이나 화자 머릿속의 심적 표상에서 찾지 않고, 그 단어가 실제로 쓰이는 방식과 맥락 속에서 파악하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도입한 핵심 개념으로 언어 게임을 제시한다. 언어 게임이란 말 그대로 하나의 게임에 비유되는데, 게임마다 규칙과 목적이 다르듯이 언어의 사용도 상황과 목적에 따라 여러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을 하고 이해하는 행위는 어떤 활동 속의 부분으로 이루어지며, 그 활동의 규칙을 따라야 의미가 성립한다. 예컨대 일상에서 “물!”이라는 한마디는 경우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목마른 사람이 “물!” 하고 외칠 때는 물을 달라는 요청이 되지만, 화학 수업에서 교사가 “물(H₂O)!”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물질에 대한 설명이 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처럼 언어 표현은 언제나 특정한 생활 형태와 활동 안에서 기능하며, 그 사용 맥락을 벗어나서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언어 놀이”라는 개념은 언어의 의미가 고정된 대상 지시나 추상적 정의가 아니라,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참여하는 사회적 활동에서 생겨나는 것임을 강조한다. 언어를 하나의 도구라 한다면, 망치질, 게임, 계산, 명령 내리기 등 각기 다른 활동 속에서 도구가 쓰이듯 언어도 다양하게 쓰이며, 그 다양한 쓰임들이 곧 의미를 결정한다. <철학적 탐구>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개념적 전환은 가족적 유사성의 원리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전통적으로 철학자들이 추구해 온 정의의 개념을 재검토한다. 고전 철학에서는 어떤 일반 개념을 사용하려면 그것에 해당하는 모든 사례들이 공유하는 본질적 속성을 찾아내어 엄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일상에서 우리가 개념을 사용하는 방식을 관찰한 결과, 많은 경우 엄격한 본질적 정의 없이도 잘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는 놀이 개념을 예로 들어, 다양한 놀이들—예컨대 체스, 축구, 카드놀이, 아이들의 술래잡기—사이를 관찰해 보라고 제안한다. 그러면 모든 놀이에 공통인 단 하나의 속성을 꼽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놀이는 경쟁적이지만 어떤 놀이는 비경쟁적이며, 규칙이 엄격한 놀이도 있고 거의 자율적인 놀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들을 모두 “놀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각 놀이들이 서로 일부씩 겹치는 유사성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체스와 축구는 경쟁이라는 요소에서 유사하지만 축구와 아이들의 술래잡기는 신체 활동 측면에서 유사한 식으로, 여러 속성들이 부분적으로 겹치고 이어지면서 가족 구성원처럼 닮은 꼴을 이루는 것이 개념 사용의 실제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은 개념을 정확히 정의해야만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다는 철학적 고정관념에 도전하며, 명확한 정의가 부재해도 언어는 기능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는 이어서 규칙 따르기와 사적 언어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로 전개된다. 그는 언어를 쓴다는 것이 곧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예컨대 우리가 “더하기 2”라는 규칙을 이해했다면, 2, 4, 6, 8,… 식으로 수열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규칙을 이해했다”고 주장하면서 엉뚱하게 2, 4, 6, 9,… 처럼 나아간다면, 우리는 그가 사실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지적할 것이다. 규칙 따르기의 역설은 바로 여기서 생긴다. 규칙은 미래의 무한한 적용 사례를 담고 있지만, 우리는 유한한 사례만 접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올바른 적용을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비트겐슈타인의 대답은, 규칙의 의미 역시 사회적 실천 속에서 확립된다는 것이다. 규칙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공동체가 합의한 방식으로 그 규칙을 적용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뜻이지, 머릿속에 어떤 초월적인 지침이 새겨졌다는 뜻이 아니다. 따라서 규칙을 따르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인 검사와 교정의 가능성을 전제한다. 이 맥락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사적 언어 논증을 펼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신만 알아들을 수 있는 순전히 개인적 언어를 만들어 쓴다고 상상해 보자. 그 언어의 단어들은 오직 그 사람의 내면적 감각이나 경험을 가리키는데, 남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가설적 상황을 검토하면서, 남과 전혀 공유되지 않는 언어는 애초에 언어로 기능할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왜냐하면 언어란 본디 의미의 기준이 존재해야 성립하는데, 혼자만의 언어에는 그 말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점검해 줄 기준이나 오류를 바로잡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내 고유의 감각에 “S”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치자. 오늘 느낀 어떤 감정을 S라고 기록해두고, 며칠 뒤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때 다시 S라고 부른다고 하자. 내가 과연 일관되게 같은 감정에 같은 이름을 붙이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할 길이 있을까? 다른 사람과 상호검증이 불가능한 순전한 개인어에서는 그러한 판단 기준이 성립하지 않으므로, 결국 사적 언어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논증은 철학사에서 오랫동안 당연시되어 온 전제—즉 마음의 사적 영역에 절대적으로 확실한 언어를 구축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적 신념이나, 언어가 마음속 표상과 일대일로 연결된다는 존 로크류의 경험론적 관점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의미가 공적 생활세계에서 형성되고 지탱되며,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러서는 의미 작용이 일어날 수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언어와 정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했다. 요약하자면, <철학적 탐구>의 철학적 핵심 내용은 “의미는 사용 속에 있다”는 통찰로 집약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들이 언어의 작동 방식을 오해함으로써 스스로 혼란의 함정에 빠져들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런 혼란을 풀어내는 방법은 언어를 이상화하거나 이론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언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묘사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철학을 “파리를 파리병에서 탈출시키는 것”에 비유했는데, 여기서 파리란 잘못된 물음에 갇힌 철학자를, 파리병은 언어의 잘못된 사용으로 인한 개념적 혼란을 의미한다. <철학적 탐구> 곳곳에서 제시되는 일상적인 예화들과 질문, 사고실험들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언어 사용을 돌아보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철학적 문제들이 어떻게 발생하고 해소되는지를 깨닫게 한다. 이러한 치유적 접근은 기존 철학의 체계적 논증 태도와는 크게 다르지만, 바로 그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의 혁신이 담겨 있다. 그는 철학이란 단 하나의 방법이나 교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우리의 생각에 얽힌 매듭을 풀어주는 활동이라고 여겼다. <철학적 탐구>는 바로 그런 철학적 활동의 한 본보기로, 독자에게도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함께 “언어 게임”을 탐구해 볼 것을 권유하는 저작이라 하겠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그가 속했던 시대의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과 긴밀히 연결되면서도 결정적인 대립점을 보여준다. 우선,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열쇠는 비트겐슈타인 자신과의 대화, 즉 초기 철학과 후기 철학의 대비에 있다. 전기의 비트겐슈타인이 러셀과 함께 논리적 원자론의 관점을 공유하면서 완전한 논리언어로 세계를 기술하려 했다면,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그런 이상을 철저히 버리고 일상 언어의 다채로운 모습 속에서 철학적 진리를 찾고자 했다. 이 자아 내부의 변혁은 동시대 철학사조들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그의 초기 사상을 적극 받아들였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경험과 논리에 근거한 엄격한 의미 기준을 세우려 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후기 저작에서 그러한 시도가 언어의 실제 사용을 무시한 채 추상적 이론에 집착한 나머지 의미의 풍부함을 놓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예컨대 논리실증주의는 과학적 검증 가능성이 없는 형이상학적 진술은 무의미하다고 배격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의미를 판단하는 기준을 그런 단선적인 잣대로 파악하기보다는 맥락과 쓰임새에 따른 의미의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그가 한때 사숙했던 프레게와 러셀의 노선과 결별한 지점이기도 하다. 프레게와 러셀은 모호한 자연언어 대신 인공적 논리기호로 완벽히 명시적인 언어 체계를 구축하고자 했으나, 비트겐슈타인은 오히려 자연 언어의 “불완전함”이 인간 삶의 반영이며 철학적으로 중요하다고 역설한 셈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영미 철학계에서 동시대에 일어난 일상 언어 철학과 상호작용을 했다. 길버트 라일, 스틴, 스트로슨 같은 철학자들은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에 걸쳐 일상 언어의 실제 쓰임을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을 전개했는데, 이는 비트겐슈타인의 영향 아래 이루어진 흐름이었다. 오스틴의 “말로 하는 행위” 이론이나 라일의 마음 개념 비판 등은 모두 “말이 실제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비트겐슈타인과 철학적 문제의 접근법을 공유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제자들에게 남긴 사상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이들 철학자에게 전달되어, 논리실증주의의 이상언어 탐구에 맞서 일상 언어의 섬세한 분석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요컨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은 분석철학 내부의 세대 교체를 상징하며, 그의 언어관은 동시대 철학자들의 연구 경향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한편,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더 거시적인 철학사적 맥락에서도 여러 사상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의 “의미는 쓰임새 속에”라는 입장은 전통 형이상학의 보편 개념의 실재성에 대한 도전이며, 의미를 관념적 실체로 간주했던 견해와 대립한다. 또한 그의 견해는 프레게가 제시한 의미/지시체구분과도 거리를 둔다. 프레게는 언어 표현이 지시하는 대상뿐 아니라 고정된 의미 내용을 지닌다고 보았으나, 비트겐슈타인은 그런 고정된 의미 내용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사용의 맥락에서 드러나는 기능만을 문제 삼았다. 이렇듯 그는 언어와 세계의 대응 관계를 일대일로 설정하려는 시도를 비판하고, 그 대신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다양한 실천과 활동의 관계로 파악한다. 이러한 전환은 과거 철학자들, 특히 라이프니츠나 데카르트처럼 보편적 언어 혹은 사고의 명증한 표현을 추구했던 이들의 이상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라이프니츠가 꿈꾸었던 보편 특성언어나 데카르트적인 투명한 자기의식 언어는 비트겐슈타인에게서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그는 차라리 인간이 살아가는 문화와 생활양식 속에서 언어를 찾으려 하였고,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인 이성 중심 철학에 대한 일종의 교정 역할을 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은 동시대 대륙철학과도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20세기 중엽 유럽 대륙에서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이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부상하며 언어보다는 존재와 주체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주제들을 직접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의 철학이 강조하는 맥락 속의 언어라는 관점은 훗날 일부 해석자들에 의해 존재론적·사회적 함의를 지닌 것으로 재평가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형식적 이론의 거부와 구체적 생활세계의 중시라는 측면에서,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 사이에 의외의 공명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철저히 분석철학의 문제의식 속에서 전개된 것이며, 그가 대륙철학과 교류하거나 직접 논쟁을 벌인 바는 없었다. 그 대신 그의 영향력은 주로 영어권 철학자들과 학파들을 통해 발휘되었다. 끝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프래그머티즘 등의 다른 전통과 비교되기도 한다. 미국의 철학자들이 발전시킨 프래그머티즘은 언어와 개념의 의미를 실용적 효과와 행위의 맥락에서 파악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비트겐슈타인의 “의미는 사용”이라는 명제는 이러한 실용주의적 통찰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다만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을 어떤 학파로 분류하지 않았고, 그의 접근법은 경험주의나 관념론, 실용주의 어느 하나에 그대로 귀속되지 않는 독자성이 있었다. 한마디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동시대 철학자들의 사상과 활발한 교류를 이루면서도 어느 한쪽에 완전히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지평을 연 독창적 사유였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는 20세기 철학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기념비적 저작이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의의는 철학의 언어적 전환을 한 단계 진전시켰다는 데 있다. 20세기 들어 철학자들은 언어 분석을 통해 전통 문제들을 새롭게 다루기 시작했는데, <철학적 탐구>는 그 흐름 속에서도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평가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책을 통해 철학이란 언어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반성하는 작업임을 보여주었다. 이는 철학을 지식의 체계적 구축으로 보는 관점에서, 철학을 개념적 치료와 명료화의 활동으로 보는 관점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결과적으로 <철학적 탐구> 이후의 분석철학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1950년대 이후 옥스퍼드 학파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일상 언어의 분석을 핵심 과제로 삼았고, 형이상학이나 인식론의 전통적 논제들도 언어적 맥락 속에서 재검토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의 사상적 원천에 비트겐슈타인의 아이디어가 놓여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철학적 탐구>의 영향력은 언어철학에 국한되지 않고 철학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미쳤다. 마음의 철학 분야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사적 언어 논증과 규칙 따르기 고찰은 정신 현상의 공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심리철학의 논의를 변화시켰다. 이후 철학자들은 개인적 의식 경험조차도 언어와 사회적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통찰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되었다. 또한 인지과학과 언어학 분야에서도 “의미는 사용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은 언어 의미론과 의사소통 이론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었다. 비트겐슈타인의 개념인 언어 게임과 가족적 유사성은 형식언어학의 범주를 넘어, 의미의 유연성과 범주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응용되었다. 철학자들이 아닌 학자들—예컨대 사회학자나 인류학자—도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을 참조하여, 문화와 언어의 관계, 사회적 규범의 성립 등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철학적 탐구>는 단순히 한 철학자의 개인적 견해를 넘어서 다양한 학문과 담론에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철학사적 맥락에서 볼 때, <철학적 탐구>는 흔히 칸트 이후 최고의 철학적 저작 중 하나로 꼽힌다. 칸트가 근대 철학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듯이, 비트겐슈타인은 현대 철학의 문제 설정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분석철학 진영 내에서는 이 책이 보여준 방법론—즉 엄밀한 논증보다도 사례 중심의 서술과 반성적 질문을 통한 문제 해결—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물론 모든 철학자들이 비트겐슈타인의 접근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러셀을 비롯한 일부 전통파 철학자들은 <철학적 탐구>의 비체계적이고 파편적인 서술 방식에 회의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트겐슈타인의 통찰은 더욱 폭넓게 재평가되었고, 그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한 심화 연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20세기 후반에는 솔 크립키가 비트겐슈타인의 규칙 따르기 문제를 재해석하며 “회의적 역설”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고, 수많은 주석가들이 <철학적 탐구>의 각 절마다 담긴 뜻을 해명하고 확장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이러한 지속적인 관심은 <철학적 탐구>가 철학자들에게 무궁한 사고의 자극을 제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는 철학적 사유 방식의 지형을 바꾸어 놓은 역작이다. 이 책은 언어를 통해 인간의 삶과 철학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였고, 그 영향력은 동시대에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철학사에서 이 저작이 갖는 의의는, 철학이 언어를 도구삼아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고유한 활동임을 일깨워준 데에 있다. <철학적 탐구>를 통해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들에게 겸허히 일상으로 눈을 돌리라고 권유했고, 바로 그 자리에서 심오한 통찰이 솟아날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 이런 이유로 <철학적 탐구>는 단순한 철학서 한 권을 넘어, 20세기 인문지성사에 길이 남을 지적 이정표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