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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20세기 초반 유럽 지성사의 이정표로 꼽히는 발터 벤야민은 철학과 문학, 미학과 문화비평을 넘나든 독창적인 사상가이다. 그는 유럽 모더니티가 낳은 최고의 비평가 중 한 사람으로,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유년을 보냈지만 대학 시절부터 방랑하는 유학생이자 망명자로 살아야 했다. 벤야민은 일생 동안 전통적인 학계에 안주하지 않고, 낭만주의, 괴테, 독일 바로크 비애극 등을 주제로 한 연구와 더불어 <일방통행로>, <사진의 작은 역사> 같은 실험적 에세이를 발표하며 대중문화와 예술을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했다. 특히 예술 작품의 재현 가능성 문제나 아우라 개념을 다룬 논문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과, 미완으로 남았으나 방대한 인용으로 근대 자본주의 도시를 해부한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그가 남긴 가장 영향력 큰 업적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독특한 사유의 문체를 벤야민은 스스로 “사유 이미지”(Denkbild)라고 불렀는데, 이는 철학적 사유의 순간들을 인상적인 이미지와 단편적 문장들로 포착하는 형식이었다. 1940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스페인 국경을 넘다가 생을 마감하기까지, 발터 벤야민은 현대 사상과 문화비평의 지형을 바꿔놓은 수많은 작업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베를린의 유년시절, 1900년 무렵, Berliner Kindheit um 1900>은 벤야민이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토대로 집필한 독특한 산문 모음집이다. 이 책은 전통적인 자서전이나 회고록과는 달리, 일정한 서사적 연대기 없이 약 30편 가량의 짧은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단편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베를린 도시의 한 장면, 하나의 장소나 사물, 혹은 어린 시절의 특정 순간을 포착하여 묘사한 작은 기억의 파편이다. 벤야민은 이를 통해 “대도시를 살아가는 한 부르주아 가정 아이의 시각으로 포착한 영상들”을 재현하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해 베를린이라는 근대 도시의 풍경과, 그 속에 어린아이로 존재했던 자신을 둘러싼 경험 세계를 시적인 언어로 새겨 넣은 것이다. 이러한 단편들은 때로 산문시를 연상시킬 만큼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를 띠며, 동시에 사회비평적인 통찰을 품고 있어 독자에게 다층적인 울림을 준다. 벤야민이 이 책을 집필한 배경에는 1930년대 유럽의 격동과 그의 개인적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1932년 무렵 벤야민은 이탈리아의 한 해변 마을에서 처음 이 자전적 글쓰기의 실마리를 잡았고, 그해 <베를린 연대기>라는 제목으로 초기 원고를 완성했다. 그러나 이 원고는 다소 전통적인 연대기 형식을 띠고 있었고, 벤야민은 곧바로 서술 방식을 수정해 나갔다. 1933년 히틀러 집권으로 독일을 떠나 파리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기억과 역사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더욱 세련된 이미지들로 재구성하며 단편들을 다듬었다. 1938년에는 최종적으로 원고를 정리하면서 서문을 덧붙였는데, 벤야민은 이 글에서 “지나간 과거를 개인사적이고 우연한 것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필연으로 통찰하고자 했다. 그리고 유년시절의 이미지들 속에 ‘미래의 역사적 경험’이 미리 형상화되어 있음을 확인하고자 했다”고 밝힌다. 이러한 자기 고백은 그가 단순히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향수에 잠긴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미래를 비추어보고자 했던 비판적 의도를 보여준다. 실제로 벤야민은 1930년대 나치 독일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개인의 기억을 당대 사회의 위기와 교차시키며 역사 철학적 통찰을 얻고자 이 글을 썼다. 다만 생전에는 이 책을 완간하지 못하고 일부 단편들만 신문 등에 발표했을 뿐이며, 전쟁 후인 1950년대에야 비로소 편집된 책으로 출간되었다. <베를린의 유년시절>은 그 구성에서부터 매우 독특하다. 각 단편에는 “티어가르텐(공원)”, “카이저 파노라마”, “전화기”, “나비채집”, “색채들”, “학급문고”, “크리스마스 천사” 등과 같이, 언뜻 보면 연결 고리가 약해 보이는 제목들이 붙어 있다. 벤야민 자신의 삶을 통합적으로 전기처럼 그려내기보다, 그는 과거의 한 장면장면들을 촬영한 사진처럼 독립된 이미지들로 펼쳐 보인다. 가령 〈나비채집〉 단편에서 그는 여름날 공원에서 나비를 쫓아다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당시 공기 속에 배어 있던 한 단어를 회상한다. “그 단어는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내 귀에 들린 적도 내 입에 올린 적도 없었다. 그 단어는 어린 시절에 알던 이름들이 그렇듯이, 어른이 된 내게 무언가 규명하기 어려운 것으로 다가왔다. 오랜 세월의 침묵은 그런 이름들을 신성하게 만들었다”고 그는 적는다. 오랫동안 망각 속에 묻혀 있던 어린 시절의 지명이 불현듯 떠오르는 순간, 그 이름은 세월의 침묵을 입고 성스러운 여운을 풍기게 된 것이다. 또 다른 단편 〈글자상자〉에서 벤야민은 어린 시절 자신이 갖고 놀던 글자 맞추기 장난감을 통해 쓰기와 읽기의 세계에 입문하던 기억을 더듬는다. 그는 “우리는 우리가 잊었던 것을 결코 온전히 되찾지는 못한다. 과거를 다시 찾게 된다면 그 충격이 너무 파괴적이다”라고 단언하면서도, 한편으로 어린 날의 물건들이 어떻게 우리의 습관과 재능을 형성하는 씨앗이 되었는지를 사색한다. 이처럼 책에 수록된 여러 일화와 이미지들은 겉보기에는 사소하고 개인적인 기억의 파편들이다. 그러나 벤야민의 섬세한 문체와 통찰을 통해 각 파편은 당대 베를린이라는 도시공간, 그리고 근대 문명 전환기의 풍경을 비추는 거울로 거듭난다.

기억, 도시, 사물, 유년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들이다. 우선 벤야민에게 기억이란 과거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이미지들과 대화하는 하나의 극장이다. 그는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을 마치 “잠에서 막 깨어난 이가 방금 꾸었던 꿈을 기억해 내면서 동시에 그 꿈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에 비유했다. 다시 말해 기억은 수동적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을 받아적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의식이라는 빛 아래에서 과거의 파편들을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창조적 작업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벤야민은 망각의 역할도 중요하게 보았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못하는 것들, 잊힌 것들이라도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언젠가 특정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꼽추 난쟁이〉라는 마지막 단편에서 등장하는 작은 곱추 요정은 기억 속에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나는 망각의 신비를 상징하는 존재로 해석되곤 한다. 베를린이라는 도시 역시 이 책의 중요한 무대이자 주인공이다. 벤야민이 어린 시절을 보낸 1900년 무렵의 베를린은 한편으로는 화려한 제국 수도로서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곳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모순과 불안이 교차하던 공간이었다. 벤야민은 이 대도시를 하나의 신화적 미로처럼 그려낸다. 아이의 눈에 비친 베를린은 거대한 놀이터이자 때로 길을 잃게 만드는 미궁이다. 그의 기억 속 장소들은 단순한 지리적 배경이 아니라, 기다림을 아는 문지방 신들이 지키는 집의 현관처럼 의미화된 공간들이다. 예컨대 그가 어린 시절 거닐던 티어가르텐 공원, 어둑한 골목과 다락방, 번화한 시장과 극장 등은 모두 거기에 얽힌 감정과 분위기를 통해 하나의 기억의 지도를 이룬다. 벤야민은 도시 곳곳에서 마주친 풍경과 소리, 빛과 냄새의 인상을 포착하여, 근대 도시 베를린의 문화지리학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를테면 〈카이저 파노라마〉 단편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입체 사진극장 속에서 낯선 세계를 엿보던 경험을 통해, 새로운 기술 매체가 가져온 이미지의 홍수와 아이의 경이로움을 동시에 전한다. 〈전화기〉에서는 집 안에 처음 놓인 전화기의 벨소리가 아이의 상상을 자극했던 일화를 통해, 근대 기술문명의 진입이 개인의 일상에 준 충격을 보여준다. 이렇게 도시의 풍경과 사물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계기이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장치로 기능한다.

벤야민의 유년 회고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한 개인의 노스탤지어를 넘어서 역사적 성찰의 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들과 더불어, 그때 막연히 감지된 불안과 그림자의 정서도 포착해낸다. 실제로 책의 여러 단편들 속에는 빛과 어둠, 안정과 불안이 공존한다. 앞서 언급한 〈무메레렌〉이나 〈색채들〉, 〈오락서적〉 같은 단편들은 유년기의 즐거움과 환희의 정서를 담고 있는 반면, 〈카이저 파노라마〉나 〈나비채집〉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긴장감이나 불길한 예감이 스며 있다. 벤야민 자신의 말대로 “유년시절이 준 안전이 훗날 얼마나 철저히 빼앗기게 되는지”를 그는 예리하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누렸던 평온 속에도 세계의 폭풍이 들이닥칠 징후가 있었다는 깨달음, 그리고 순수하던 어린아이에게조차 당시 사회의 공기가 어떤 형태로 각인되어 있었다는 통찰이, 이 유년 회고담 곳곳에 암시되어 있다. 이는 곧 개인의 기억이 역사의 한 단면임을 드러낸다. 벤야민의 유년 서사는 파편적인 개인사가 아니라, 근대 도시 경험의 한 축소판으로 읽힌다. 문체적 특징에서도 이 책은 상당한 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우선 전형적인 자서전이 취하는 연대기적 서술과 달리, 벤야민은 모자이크처럼 글을 구성한다. 각 단편은 서로 연결고리가 분명치 않은 듯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베를린이라는 공간과 벤야민의 내면을 중심으로 은밀한 연결망을 형성한다. 독자는 이 책을 읽을 때 선형적인 삶의 이야기를 추적하는 대신, 일종의 꿈의 조각들이나 기억의 앨범을 들춰보듯 단편 하나하나를 음미하게 된다. 벤야민의 문장은 짤막하면서도 암시적이며, 때로 난해한 비유와 상징이 등장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문장 속에 숨은 의미를 곱씹고, 각 이미지의 연관을 스스로 찾아내도록 유도한다. 일례로 벤야민은 어느 단편에서도 자신이 “이러이러했다”는 식의 자기 고백이나 교훈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어린 시절의 감각과 정황을 면밀히 포착하여 제시할 뿐, 그 속의 의미망은 읽는 이가 재구성하게 만든다. 이러한 암시적 서사와 시적인 언어는 벤야민 특유의 미학으로, 훗날 많은 예술가와 이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실제로 수전 손택이나 존 버거 같은 비평가들이 벤야민의 산문에서 글쓰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어냈고, 오늘날 에세이라는 장르의 실험적 확장에도 그의 문체가 미친 영향이 크다고 평가된다. 또한 개념적으로 볼 때, 이미지와 알레고리를 통해 사유를 전개하는 벤야민의 방법론이 이 책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각 기억의 장면들을 단순한 회상이 아닌, 하나하나 사유의 단초로 삼는다. 예를 들어 〈장롱들〉 단편에서 여러 개의 오래된 장롱 묘사는 단순한 가구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은폐와 저장이라는 기억의 메커니즘을 상징하는 알레고리가 된다. 이렇듯 일상의 사물을 철학적 사유의 매개로 전환시키는 기법은 벤야민 사유 이미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언어는 구체적 사물과 추상적 개념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독자로 하여금 한 문장 안에서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게 만든다. 이러한 문체와 구성은 독자에게 쉬운 읽기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능동적 해석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독자는 벤야민이 남긴 어렴풋한 흔적들을 따라가며, 마치 고고학자가 유물의 파편을 맞추어 가듯 자신의 의미 체계를 만들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베를린의 유년시절>의 현대적 의의는 여러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기억 연구의 관점에서 볼 때 벤야민의 이 작업은 개인의 기억을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모범을 보여준다. 오늘날 심리학이나 문화연구 분야에서 기억의 구성과 집단기억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벤야민은 이미 어린 시절의 사소한 기억들 속에 당시 시대정신과 사회 구조의 흔적이 배어 있음을 밝힘으로써 이러한 현대 연구들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그의 회고록은 문화기억의 보고이자, 기억을 통한 자아 탐구의 한 실험적 형식으로 평가받는다. 둘째, 이 책은 도시 문화사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세기 말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일상사를 미시적으로 포착한 벤야민의 기록은, 거시적 역사 서술이 담아내지 못하는 도시인의 생활 감각을 전해준다. 오늘날 도시 연구자들이 한 도시의 기억 지리를 복원하고자 할 때, 벤야민이 사용한 개인적 체험을 통한 도시 묘사는 하나의 독창적 방법론이 된다. 특히 급속한 근대화와 도시화의 경험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흔들리는지를 보여주는 그의 통찰은, 현대 대도시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성찰하는 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셋째, 이 책은 자아의 서사성 문제와 관련해 현대 문학과 철학에 지속적인 화두를 던진다. 20세기 후반 이후로 개인의 정체성과 경험을 더 이상 선형적 이야기로 파악할 수 없다는 자각이 퍼졌는데, 벤야민의 단편적 자서전은 바로 그러한 비결정성을 미리 체현한 작품이다. 즉, 완결된 하나의 “나의 이야기”를 제시하는 대신, 다수의 파편적 “나”의 모습들을 통해 오히려 주체의 진실에 다가가려 한 것이다. 이는 나아가 전통적인 자서전의 진실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대신 프루스트식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는 현대적 자서전 미학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개별 독자에게 주는 의미도 짚어볼 수 있다. 벤야민의 유년 시절 베를린은 이제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시간과 공간이지만, 그가 풀어낸 기억의 조각들은 이상할 만큼 오늘날 우리의 감수성과 공명한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있고, 또 각자의 도시와 공간에 대한 추억이 있다. 벤야민은 자신의 독특한 시선으로 그러한 기억들을 해석하고 형상화해 보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 내면의 어린 시절 풍경을 새롭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것은 단순한 향수 여행이 아니라, 자기 이해의 한 과정이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이야기와 이미지들이 곧 나를 둘러싼 세계의 일부였음을 깨닫게 될 때, 개인의 추억은 보다 보편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벤야민의 <베를린의 유년시절>은 바로 그런 깨달음을 선사하는 책이다.

총체적으로 볼 때, <베를린의 유년시절, 1900년 무렵>은 문학적 아름다움과 사상적 깊이를 겸비한 걸작이다. 발터 벤야민은 이 짧은 유년기 회고담을 통해, 기억의 시학과 역사철학을 교차시키는 자기만의 방식을 선보였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필치로 어린 시절의 정경을 그려내면서도, 그 밑바닥에는 근대의 빛과 그늘을 통찰하는 예리한 지성이 자리한다. 그러기에 이 책은 한편으로 한 예민한 영혼의 자전적 에세이로 읽히고, 다른 한편으로 20세기 모더니티를 반추하는 철학적 에세이로도 읽힌다. 벤야민이 남긴 유년의 베를린은 더 이상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지만, 그의 글을 따라 걷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자기 자신의 기억 속 도시를 거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벤야민의 유년시절 베를린은 곧 우리의 마음 속 기억의 도시이며, 그곳에서 한 사람의 자아와 한 시대의 역사가 만나 찬란한 파편들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벤야민의 이 책이 오늘날까지도 독자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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