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딸도 아닌 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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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제 미국으로 떠나는 엄마와 이별을 하고 홀로 남게 된 혜원이 불륜 관계이던 교수 성균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몇몇 평론들을 이 영화를 들어 남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던 홍상수 감독이 여자를 화자에 내세워 홀로서기를 하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고 하던데 나의 눈에 더 들어온 것은 여전히 꿈과 현실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표류하는 혜원의 모습이었다. 영화에서 혜원은 세번 어제 일기를 쓴다. 엄마와 서촌에서의 마지막 만남. 남한산성에서 이선균과의 만남. 그리고 도서관에서 잠이 들었던 이야기. 영화에서 혜원은 두번 잠에서 깬다. 한번은 북촌 인근의 한식당에서 잠에서 깨어 제인 버킨을 만나고 또 한번은 도서관에서 잠에서 깨어 미국에서 온 교수를 만난다. 혜원은 이후 남한산성에서 친한 선배 언니를 만나고 또 이선균을 만나는데 이것이 현실인지 또는 환상의 삽입쇼트인지는 불분명하다. 이선균은 카세트로 베에토벤의 교향곡 7번 2악장을 들으며 울고 잠에서 깨어난 혜원은 꿈에서 본 아저씨는 전에 본 착한 아저씨인 것 같다고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혜원은 여전히 잠들어있고 미국 교수와 성균은 같은 아저씨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니깐 이 이야기는 혜원이 엄마와 헤어지고 홀로서기를 하며 자신의 삶을 홀로 살아가는 (남한산성에서 이전에는 안가본 곳 까지 혼자 걸어가보려는) 이야기로 보여지지만 실은 홀로 걸어간 그 길의 끝에는 이선균이 홀로 울고 있으며 잠에서 깨어났음에도 여전히 그녀는 잠들어있는 이야기다. 환상과 판타지는 모두 고독한 죽음과 맞닿아있다. 혜원은 모든 것을 비밀로 하자는 성균의 말에 세상에 비밀은 없고 모두가 다 죽어버리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깐 이 이야기는 혜원이라는 여성이 홀로서기를 하는 것 처럼 위장을 하고 만들어낸 트릭인 셈이다. 처음 본 이 영화에서 나는 홍상수 감독이 무언가 근원적으로 달라졌다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다시 본 그의 작품속에서 홍상수 감독은 여전히 지독한 빠져나올 수 없는 죽음의 알레고리를 그리고 있었던거다. 왜 그는 죽음에 천착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