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트리스

80673681_123411472465988_3424666622428708864_o

거스 반 산트 감독의 2011년 작 레스트리스를 다시 보았다. 다음의 영화소개를 살펴보니 ‘세상 밖으로 발을 디딘 소년 세상과 이별을 해야만 하는 소녀 그들이 함께한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나온다. 네이버 블로그들의 감상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감성 충만 가을 로맨스라나.. 내가 맨날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예전에 이 영화에 관해서 쓴 글이 남아있질 않은데 사실 엘리펀트 이후 라스트데이, 파라노이드파크, 밀크 그리고 이 레스트리스 까지 이어지는 거스 반 산트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정말 이상할 지경이다. 젊은 시절 게이감독으로서 말라노체, 약방의 카우보이 그리고 아이다호에서 보여주었던 세상에 대한 반항의 기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죽어서 영혼이 외계인에게 갔다가 다시 부활해서 돌아온 것인지 기이한 시선들을 보여주곤 한다. 그의 영화 속 세상은 모두 죽음으로 가득 차 있고 인물들은 모두 유령으로 보인다. 예전에 정성일 평론가가 서편제를 유령들의 저세상 이야기로 해석을 한 바 있는데 사실 거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도 비슷한 느낌을 곧잘 받게 되는거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이미 다들 죽었고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혼령들이 바라보는 세상이라는 가정을 하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 쇼트들이 너무나도 많다. 예를들어 시점 쇼트를 보여주고 다시 리버스 쇼트를 보여주는데 거기에는 아무도 없는거다. 어 그럼 누가 보고 있는거지? 바로 전 밀크에서도 주인공이 혼란을 겪는 어느 장면에서인가 정확하게 동일한 쇼트가 나온 기억이 있다. 또 다른 쇼트에서는 제 삼자의 시선으로 인물들과 배경들을 보여주다 시점쇼트로 시작되는데 거기에는 지금까지 바로 앞에 있던 인물의 턱 아래만 보여주며 몸은 보이지만 얼굴을 보이지 않게 배치한다. 그럼 너는 누구지? 이런 쇼트들을 연달아 보면서 문득 나는 귀신들과의 대화를 보고 있었나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재미난 것이 거스 반 산트는 아나몰픽 와이드스크린 포맷으로 이 영화를 촬영했다는 사실이다. 아시다시피 이 포맷은 1.85:1의 비율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퍼스팩티브로 시점쇼트를 촬영하면 인물의 머리는 잘려서 나올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런 관점으로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영화를 아름다운 로맨스로만 보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감독이 로맨스 영화로 포장해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정작 무엇이었을까? 어떤 감독들은 등장인물의 대사를 빌어서 또는 배경음악을 빌어서 창작 의도를 설명하려고 하는데 또 어떤 감독들은 쇼트와 쇼트의 배치를 통해서 카메라의 시선과 포맷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므로 그걸 대놓고 설명해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이 알아듣건 말건 그냥 그런 식으로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뭐 그게 자신들의 말하는 방식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