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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간혹 하곤 한다. 특히나 주변의 상식과 좀 벗어난 행동들, 엉뚱한 말이나 행동들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별명처럼 붙이기도 한다. 또한, 누군가 상당히 우스운 말을 했는데 그 속뜻을 늦게 파악하고 뒤늦게 웃거나 이해하는 사람을 ‘형광등’이라고도 한다. 이런 경우 보통 시간의 문제일 것이다. 길은 바로 찾아가지만, 이해의 속도가 늦은 것이다. 반면 4차원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우는 이해의 속도는 빠르지만, 애당초 길을 바로 찾아가지 못한다.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공통의 컨센서스가 이루어질 때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것과 상반된 또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즉 공간의 문제. 모든 사람이 모여있는 곳과 다른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모든 인간 집단에는 권력이 작용한다. 몇 명끼리의 또래 친구집단에도 외형적으로는 리더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집단의 흐름을 좌우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이 참여하면 모임이 이루어지고 아니면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든지, 그 사람이 모임 막바지 집에 가게 되면 모임이 파장되지만, 다른 사람이 중간에 가야 할 때는 ‘잘 가 안녕’하고 모임은 지속된다던지 하는 모습들.식사하러 갈 때 어디를 갈까 의견을 모을 때도 누군가의 말은 소수의견이 되고 누군가의 말은 갑자기 모임의 방향을 이끄는 말이 된다. 아무튼 어떤 모임이던 그 모임에는 늘 중심이 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집단 속에서 4차원인 어떤 사람이 그 중심이 되는 인물에 반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되면 그 순간 그 사람은 4차원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재수없다’던지 ‘이상한놈’이라던지 좀 더 적나라한 지칭을 받게 된다. 결국 4차원의 꼬리표를 붙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체제에 순응하고 질서에 반하지 않는 선상에서 공통의 분모를 형성하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는 사람인 셈이 된다. 그러고 보면 완전한 반사회성을 가진 사람이나 경계성 인격장애가 아닌 이상 4차원이라 지칭 받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는 집단의 권력 관계, 질서, 체제의 흐름을 감지하고 있다는 셈이 된다. 그 안에서 자유분방하게 자기 멋대로 하고 노는 것들. 혼자서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헛소리를 하고 다니지만 남들이 보기엔 독특하고 별나지만, 모두가 싫어하고 혐오하는 선을 넘지 않는 것들. 4차원은 생각해보면 몇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로 대뇌의 사회인지기능이 남들보다 떨어지는 것. 그 중에서도 사회적 체계내에서의 그것을 둘러싼 공기감을 포착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있다. 예를들어 회의를 하다가 발표가 길어며 버벅대고 있을 때, 부장이 한 소리를 하면 즉각 ‘대충 빨리 마무리하라’라는 뜻을 빨리 파악하고 끝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를 못알아듣고 부장의 질문에 또다시 장황하게 아는 지식을 동원해서 대답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또 모임에서 누군가 말로 하지 않고 모두 암묵적 동의의 미소를 지을 때 그 미소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뭔데 뭔데? 하고 되묻는 사람들. 결국 인지기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컨택스트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미쳐 눈치채지 못해서 ‘왜 모두들 저러고 있지?’ 라며 ‘회사 사람들은 모두 답답하다.’ 라던지 ‘나는 회사사람 전체를 왕따시킨다’ 따위의 자기 위안을 하게 된다. 물론 그렇게 합리화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의 열등한 부분을 의식하면서 대인공포 비슷한 불안감을 간직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줄도 모르고 잘도 헤헤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둘째로는 자신의 성장환경과 내면의 문제로 인하여 질서나 체계를 무의식적으로 반항하는 경우이다. 말 그대로 모두가 공유하는 컨택스트를 받아들이기가 싫은 것이다. 그러니 그 어느 순간에도 남들과 다른 나만의 공간을 찾게 되고, 자기만의 것, 독특한 개인 취향의 어떤 것. 남들은 이해 못하지만 자신에게는 의미있는 어떤 장르, 대상, 사물에 몰두하게 된다. 그럼으로서 남들에게서 이해받지 못하고 별나다 독특하다 라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있다. 모두들 공통의 화제를 꺼내어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반대되는 정말 독특한 이야기를 한다던가 하는 경우 말이다. 남자친구에게 선물 받은 핸드백 이야기를 하면서 다 같이 부러워하며 이야기하는데 자신은 ‘비닐봉다리에 물건 넣어 다니는게 편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던지.. 결국 남들과 동화되지 않는 사고, 행동의 기저에는 그러한 공통되는 것에 대한 굴레 안으로 소속되기를 거부하는 심리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개인사마다 다양하겠지만 말이다. 세번째는 말 그대로 계산된 쇼맨십과 연출인 경우일 것이다. 남들과 다르고 싶은 하나의 방식으로 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본인에게 이득이 된다고 계산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4차원이라고 불리우는 경우는 그렇게 긍정적인 뉘양스가 아니라는 점만은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한편으로는 다수가 행사하는 폭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사회의 질서체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 이후 다시 그것을 초월하여 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많은 경우는 본인의 내적 사고체계와 다수의 공통 사고체계의 조화에 실패하여 벌어지는 불편감, 위협감, 부적절감의 회피 도는 합리화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그 충돌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을 회피하는 또 다른 방법 또는 대안으로서의 형태가 4차원일 경우가 많은 것이다. 4차원은 사실 바람직한 표현이 절대 아니다. 그 뉘양스는 사실 넌 우리가 하는 말을 못알아듣고 나도 니가 하는 말을 못알아 듣겠다. 이른바 소통불가의 순화된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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