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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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개척시대는 보통 1850년에서 1890년이라고 정의하곤 하는데 정작 할리우드에서 서부극이 나온 것은 1903년 대열차강도를 시초로 해서 1930~1960년대이다. 그러니깐 서부극은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사실은 20세기 초중반의 이야기를 그린 셈이다. 1, 2차 대전을 치르면서 세계의 무게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오던 시대 말이다. 물론 영화평론가 허문영씨 같은 경우에는 이미 서부극의 초기부터. 그러니깐, ‘철마’, ‘역마차’, ‘닷지시티’ 같은 작품에서부터 이미 수정주의 서부극이라고 불릴 수 있는 특성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 그런 예를 흔하게 보이는 흐름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서부극이 한참 붐이던 그 당시는 대부분 전형적인 프론티어 정신에 부합하는 영화들 그러니깐 선과 악의 구도가 명확한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봐야 한다. ‘수색자’, ‘붉은 강’, ‘리버티 발랜스를 쏜 사나이’와 같이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형성에서 혁명적으로 많이 나아간 영화는 사실 흔치 않다. 1990년대 초반 ‘늑대와 함께 춤을’ 또는 ‘라스트 모히칸’ 같은 작품에 이르러서야 또는 좀 더 뒤의 ‘용서받지 못한 자’ 정도에 이르러야 진정한 의미의 수정주의 서부극이 주류 할리우드에 등장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암튼.. 재미난게 과거 그 시절의 서부극은 대부분 별다른 스트레스가 없이 그저 즐겁게 영화를 볼 수 있다는거다. 오늘날 많은 영화들처럼 가슴을 졸이고 두근두근하면서 뒤의 이야기에 마음 졸이거나 반전에 뒤통수를 맞는 영화들이 별로 없다. 그냥 광활한 황무지가 펼쳐져 있고, 외부의 위협이 존재하며 인물들은 모두 실존적으로 또는 즉물적으로 행동할 뿐이다. 거기에 복잡한 서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구질구질한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선과 악이 거의 대부분 명확히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영화는 복잡한 심리적 갈등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의 번민을 다룰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후기로 오면서 나쁜 백인과 좋은 원주민들이 혼재될 때, 사연이 있는 악당들과 돈에 눈먼 보안관들이 뒤섞일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헷갈리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더 많은 스트레스 (또는 긴장감)와 함께 영화를 보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가지는 분리(splitting)라는 방어기제를 쉽게 이해할 법도 하다. 그들은 자신이 애정을 품은 대상이 가지는 여러가지 색깔을 받아들일 충분한 용량이 안되기 때문에.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을 분리하고 색깔을 뚜렷이 구분해 놓을 때 비로소 안정을 찾을 수 있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