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 아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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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그레이의 인물들은 신념을 가지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떠난다. 그러나 그들의 신념이란 사실 가족사로 인한 열등감(잃어버린도시의 퍼시포셋), 사람들 간의 소통의 거부와 가족이라는 억압, 그걸 느끼는 죄의식(애드아스트라의 아버지)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아버지를 구하러 가는 로이도 결국 아버지의 반복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동료들이 죽어도 관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념은 자신들의 내면의 기저를 감추려는 거대한 포장이기 때문이고 필사적으로 그게 드러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념은 순수한 신념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목표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영화 속의 인물들은 자꾸만 신념이란 이름으로 실패를 위한 자리에 간다. 잃어버린 도시도 3번이나 가는 걸 보여줄 필요가 없는데 굳이 3번의 여행을 가는 걸 영화가 계속 따라가 준다. 그리고 그 신념을 믿어주며 원주민들의 풍광과 정글을아름답게 묘사한다. (잃어버린도시는 그 질감을 위해 다리우스 콘쥐가 필름으로 촬영했다. 그래서 극장에서 봐야 그 진가가 확인된다). 영화의 마지막 퍼시 포셋의 아내가 돌아가는 집은 정글인 것은 그래서이다. 아무튼, 결국 실패의 자리에 도착하자 감독은 퍼시 포셋을 실패와 죄의식, 절망의 자리에서 (마치)차원이 다른 장소로 데려가서 그들에게 안식을 준다. 그게 잃어버린 도시에서의 제임스 그레이의 인물들을 향한 선택, 태도이다. 애드 아스트라에서 인물들은 그 실패를 또 다시 반복한다. 게다가 아버지가 갔던 실패의 자리를 이번에는 아들이 다시 찾아간다. 로이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오직 아버지와의 소통을 위해 떠난다. 아버지를 구해온다는 건 사실 표피이고 내면에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것에 대한 확인을 위해 떠난다. 아버지에게 버림 받지 않았다는 것 만이 오직 자기 스스로를 이 삶에서 구원할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태양계의 끝, 거기서 아버지로부터 다시 버림받는다. 아버지는 신념이라는 포장이 풀어졌고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확인했기 때문에 그는 지구에 돌아올 수 없다. 그러면 로이는 어떻게 해야하나. 또다시 차원의 안식으로 인물들을 반복시킬수 없는 감독은 로이에게 그럼에도 지구에서 필사적으로 사람들과 함께 살아주길 바란다. 그게 제임스 그레이가 같은 주제를 두 번 반복하면서, 로이를 우주여행 내내 함께 해주면서 내린 선택이다. 그래서 그는 필사적으로 그를 다시 지구로 데려온다. 로이가 마지막에 사람들과 손을 잡고 지구의 땅을 밟자 카메라는 우주선에 남아서 그걸 바라본다. 그 마지막 시선에 담겨있는 카메라의 진심이 가슴을 울린다. 2019년 베니스는 애드 아스트라를 두고 조커를 택했다.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제임스 그레이를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