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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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 스기야마는 우연히 친구들과 하이킹을 하다가 가네코라는 젊은 여성을 알게 되고 불륜에 빠진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가출을 하고 스기야마의 친한 친구는 죽게 되고 자신은 지방 공장으로 내려가게 된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이른 봄은 동경이야기를 찍은 지 3년 뒤인 1956년 제작되었다. 늘 부모와 자식 사이의 소소한 다툼과 순환하는 시간에 대해서 다루던 그가 부부간의 불륜을 다룬 이 영화는 다소 이례적이다. 이 영화에서 유독 눈에 띄는 점은 마치 미래사회 디스토피아의 단면처럼 느껴지는 로봇들 같은 사람들의 모습들이다. 인간이 아닌 것처럼 영혼이 없는 기계의 부품들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그러고 보면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늘 혼자만의 공간에 고립되어있다. 그의 작품들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미가 보이는 자주 등장하는 공간은 해변이 내다보이는 산책길 시퀀스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여기에서마저도 다다미 쇼트로 촬영을 하는 바람에 땅이 잘 보이지 않고 주된 배경은 하늘 뿐이다. 지상이 아닌 하늘나라에서나 우리는 마음을 열고 소통할 수 있는 걸까? 오즈는 젊은시절 일본이 벌인 태평양전쟁의 막바지 중국에서 군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실은 중국이 아니라 태평양 한가운데 학살이 일어났던 어느 섬이라는 말도 있는데..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 속에서 그는 조국의 패망과 군 생활의 종료를 맞이했을 거라고 생각이 된다. 그의 작품 속 승강장의 기계부품 같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문득 비트겐슈타인이 생각이 났다. 그의 전쟁일기나 논리철학논고 철학적 탐구를 보다 보면 인간은 실종하고 논리의 알레고리만 남아있다는 생각을 받곤 하는데 그게 오즈의 작품속 사람들과 무척 닮아있단 생각이 든다. 비트겐슈타인 역시 목숨이 무의미한 이차세계대전의 전쟁 속에서 무엇을 느꼈던 걸까? 그의 전기를 보면 보병으로 편입된 그는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던지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는 정말 자신의 신념처럼 자신의 목숨마저 논리의 기호 한조각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즈의 이른 봄 마지막 장면은 지방으로 전출 온 스기야마의 집으로 아내가 찾아오고 둘이 화해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둘은 여전히 마주 보지 않고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공장 굴뚝들의 검은 매연을 함께 바라보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죽음과도 같은 엔딩이다. 함께하게 되었지만 결국 또 혼자 남게되는 그의 영화속 알레고리.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 본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아사코의 엔딩도 정확히 동일하다. 영화의 마지막 범람하는 강물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죽어가는 일본을 살아가야하는 참혹한 어두움의 증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