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와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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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네마테크에 들려 다무라 마사키 촬영감독의 회고전 프로그램인 사코 마코토 감독의 자아와 타자를 보았다. 한 시간이 채 안되는 이 다큐멘터리는 짧은 러닝타임만큼이나 짧은 삶을 살고 갔던 사진가 고초 시게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코 마코토 감독의 다큐작품은 말만 듣고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형식적으로는 꽤 실험적이었음에도 텍스트 자체로는 거의 연출이 없는 듯 연출하는 것이 좀 독특했다. 사실 다무라 마사키 촬영감독에 대해서는 그리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일견 네스토르 알멘드로스을 연상시키는 자연광 아래 촬영이 꽤 인상적이었고 영화 속 고초 시게오의 마지막 사진집인 ‘친근한 거리 장면’ 속 요코하마 거리를 묘사한 따스한 코다크롬의 컬러와 잘 공명하는 듯하여 좋았다. 아마 감독의 의도이지 않았을까? 이에 반해서 사운드에 사용은 다소 유치했던 게 좀 아쉬웠다. 암튼.. 사실 이걸 보려고 마음먹은 까닭은 바로 지난달에 너무 인상적으로 봤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아사코 I&II 때문이었다. 영화 중반에 아사코와 료헤이가 시내의 한 사진전을 보러 함께 가는데 그때 전시되고 있던 작품이 바로 고초 시게오의 사진전이었던 거다. 약간 그로데스크한 미를 더한 오즈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었는데 마침 그에 대한 다큐를 하기에 보러 오게 되었다. 고초 시게오는 4세경 척수결핵을 앓게 되었고 죽을뻔하다 겨우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1946년생인데 최초의 결핵약인 스트렙토마이신이 1943년 셀만 왁스만에 의해서 발견되고 1949년 첫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한 뒤로 본격적으로 임상에 도입되었으니 아마 시간상 49년에서 50년 즈음에 일본에서는 최초로 들여온 결핵약을 통해 치료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1년만 더 빨리 태어나거나 병이 1년만 더 일찍 찾아왔었더라도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 병은 척수 내에 커다란 구멍을 숭숭 만드는 치명적 부작용이 있고 그 덕분에 그는 마치 곱추처럼 작고 구부정한 몸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 몸속에 고립되어있는 그의 삶이 아마도 그의 작품 속에 그렇게 묘사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그가 생전에 가족들과 주고받았던 편지의 나레이션, 그가 잘 다녔던 거리들, 그의 사진 속 촬영된 인물들의 인터뷰 (재미나게도 그들은 나레이션으로만 등장하고 화면에 얼굴을 비추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의 사진집 속 사진들을 계속 교대로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전체적으로 좋게 보면 시적편집이긴하고 화면도 참 아름답기는 한데 영화적 의미에서 큰 인상을 받기는 어려웠다. 그의 두 번째 사진집의 제목을 따 영화 역시 자아와 타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감독은 자아와 타자라는 주제를 이 작품을 통해 응축하여 드러내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사진 속 등장하는 인물이었던 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 것 그리고 그들을 실제 바라보았을 감독의 시선이 어떻게 마주하고 어긋나는지에 대한 화학적 결합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그러다 보니 다무라 마사키가 아름답게 잡아낸 화면만 기억에 남고 고초 시게오의 마음, 그가 느꼈을 세상은 흐릿하게만 남았다. 정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그의 3권의 사진집보다 1992년 발행된 일본의 사진잡지 deja-vu 에 담긴 그의 초상사진이었다. 그가 직접 그린 로샤 그림 액자를 뒤로한 채 구부정하게 서 있는 사진인데 아마 로샤 처럼 그의 삶 전체를 드러낸 한 장의 사진이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