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기 캉, 크리스 애펠한스, KPOP 데몬 헌터스

KPOP DEMON HUNTERS – (Right) Rumi (voice by ARDEN CHO). ©2025 Netflix

 

<K-Pop Demon Hunters>는 2025년 6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미국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로, K-팝 아이돌 걸그룹이 비밀리에 악마 사냥을 한다는 독특한 콘셉트를 내세운 뮤지컬 판타지 액션이다. 영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3인조 여성 K-팝 그룹 헌트릭스의 이중생활을 그린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는 수백만 팬들의 사랑을 받는 아이돌이지만, 무대 밖에서는 인류를 위협하는 악마를 사냥하는 숨겨진 영웅들이다. 이야기는 화려한 음악 공연과 초자연적 전투가 결합된 세계관을 기반으로 전개되며, 걸그룹 헌트릭스가 라이벌 악마 보이밴드와 맞서 싸워 인류를 지켜낸다는 클래식한 영웅 서사를 담고 있다. 이러한 기발한 설정은 속도감 있는 액션, 유쾌한 유머, 매력적인 음악을 한데 버무려 가족 관객도 즐길 수 있는 경쾌한 오락 애니메이션을 탄생시켰다.

<K-Pop Demon Hunters> 프로젝트는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에서 2021년 초 처음 기획되었다. 한국계 미국인인 매기 캉 감독이 어린 시절부터 좋아해온 K-팝과 한국 설화 속 귀신 사냥무녀 전통을 결합해 영화의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소니 애니메이션 측은 이 독창적인 세계관에 흥미를 느껴 개발을 시작했다. 초기부터 캉 감독은 “한국 문화에 뿌리를 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고, 이에 동참한 크리스 애펠한스 감독은 “이건 쉬고 넘어갈 수 없는 작품”이라며 합류를 자처했다. 두 사람은 음악이 지닌 에너지와 감정 전달의 힘에 깊은 공감을 나누었고, 특히 K-팝이라는 현대적 양식과 악마 사냥이라는 판타지 장르를 융합하는 데 있어 의견을 같이했다. 영화는 원래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으나, 팬데믹 여파로 일정이 불확실해지자 넷플릭스와의 배급 계약이 추진되었고, 이후 넷플릭스 독점 애니메이션 장편으로 제작 방향이 전환되었다. 이 결정은 앞서 소니의 다른 작품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좋은 성과를 거둔 전례에 기반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작품의 음악 역시 제작 초기 단계부터 중심 요소로 설계되었다. K-팝 작곡가 EJAE 등이 참여하여 데모 트랙을 개발하고 투자 유치에 기여했으며, 최종 사운드트랙에는 트와이스 멤버들이 참여한 곡 <Takedown>을 비롯한 신곡들이 다수 삽입되었다. 감독들은 “스토리와 무관한 노래를 나열하는 기존 뮤지컬의 전형은 피했다”며, 이야기와 음악의 유기적 결합을 위해 뮤지컬 넘버를 철저히 서사의 일부로 편입시켰다고 밝혔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이미지웍스가 맡아 2023년부터 캐나다 밴쿠버와 몬트리올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이후 공개된 스틸 이미지와 컨셉 아트, 성우진, OST 정보는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고, 마침내 2025년 6월 20일 전 세계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가 공개되었다. “94% 신선도”라는 로튼토마토 지표가 말해주듯, 작품은 평단으로부터 참신한 콘셉트와 에너지 넘치는 연출, 문화적 다양성을 아우르는 성취로 호평을 받았다. 연출을 맡은 매기 캉 감독은 드림웍스와 워너 애니메이션에서 스토리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마다가스카 2>, <장화신은 고양이>, <레고 닌자고 무비> 등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그녀는 특히 여성 히어로들을 강인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묘사하는 데 강점을 보이며, “섹시하지만 우스꽝스럽고 지저분하기도 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봉준호 감독의 다양한 톤의 혼합 방식에서도 영향을 받아, 코미디와 어두움을 함께 담아내는 연출을 시도한 것이 특징이다. 함께 연출을 맡은 크리스 애펠한스 감독은 일러스트레이터 출신으로, <코렐라인> 등의 비주얼 개발에 참여했고, <위시 드래곤>(2021)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동서양 문화를 넘나드는 감성과 따뜻한 정서를 가진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현대 K-팝을 동화적 판타지로 풀어내는 데 있어 중심적 역할을 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감독의 협업은, <K-Pop Demon Hunters>에 경쾌함과 진정성, 그리고 스타일리시한 에너지까지 불어넣는 데 큰 기여를 했다.

K-팝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의 멤버 루미, 미라, 조이는 무대 위에서는 스타지만, 무대 밖에서는 악마로부터 인류를 지켜온 비밀 헌터의 계승자들이다. 수세기 동안 인간의 부정적 감정을 먹이 삼아온 악마들은 헌터들의 노래를 통한 결계에 의해 봉인되어 왔고, 현대에 이르러 그 임무는 헌트릭스에게 이어진다. 그러던 중 악마왕 귀마는 새로운 음모를 꾸민다. 인간 세계에 침투하지 못하자, 아이돌 팬덤의 에너지를 흡수해 결계를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섯 악마로 구성된 남성 아이돌 그룹 Saja Boys가 결성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헌트릭스는 이들의 정체를 의심하고 맞서지만, 첫 충돌에서 패배하고 만다. 한편 헌트릭스의 리더 루미는 반인반요로, 악마의 피로 인해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 비밀은 양어머니 셀린만이 알고 있으며, 루미는 언젠가 악마가 사라지면 자신의 목소리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싸움 중 악마 진우가 그녀의 정체를 눈치채고, 비밀을 지켜주는 대신 한 가지 거래를 제안받는다. 헌트릭스가 Saja Boys를 무대에서 무찌르면, 진우는 인간 세계에 남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시상식을 앞두고 헌트릭스는 Saja Boys를 겨냥한 곡 Takedown을 준비하지만, 루미는 점점 진우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자신이 악마의 일부라는 사실과 완전히 배치되는 가사에 갈등한다. 결국 공연 당일, 귀마는 혼란을 유도해 루미의 정체를 폭로하고 멤버 간의 불신을 키우며 결계를 무너뜨리려 한다. 루미는 수치심에 무대를 떠나지만, 셀린의 격려로 다시 돌아와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로 새로운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사람들을 최면에서 해방시키고, 헌트릭스는 다시 하나가 되어 귀마와 Saja Boys에 맞서 싸운다. 진우는 루미를 구하기 위해 희생하고, 루미는 그 힘을 받아 헌트릭스의 하모니로 최후의 결계를 발동, 악마들을 봉인한다. 모든 위협이 사라진 후, 루미는 자신의 출신을 숨기지 않기로 결심하고, 헌트릭스는 팬들 앞에 다시 설 준비를 마친다.

비록 애니메이션 영화이지만, <K-Pop Demon Hunters>는 실사 영화에 버금가는 정교한 가상 카메라 워크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감독들은 가상의 카메라를 마치 콘서트 무대 위를 비행하는 드론이나 액션 신의 한복판에 뛰어든 스테디캠처럼 활용하여, 대담하고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을 구현했다. 예를 들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헌트릭스가 전용 비행기 안에서 악마들과 격투를 벌이는 동시에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때 카메라는 좁은 기내 공간을 종횡무진으로 가로지르며 격투의 긴박감과 공연의 역동성을 한꺼번에 담아낸다. 고속 촬영된 팬닝과 틸트, 대각선 구도의 다이내믹한 앵글 등은 아이돌 공연의 현란한 에너지와 전투 액션의 긴장을 효과적으로 융합하며 관객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쾌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카메라 연출은 흔들림 없는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이점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라이브 콘서트 필름이나 뮤직비디오의 생동감을 재현하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숏 구성 면에서도 이 작품은 만화적 상상력과 영화적 구도를 절묘히 결합한다. 각 프레임은 그래픽 노벨을 연상시키는 선명한 색면과 역동적 구도로 채워져 있는데, 이는 2020년대 소니 애니메이션 작품들의 시그니처가 된 스파이더맨 스타일의 영향과 맥을 같이한다. 다만 본작은 스파이더맨의 2D-만화적 요소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2D 효과를 배제한 순도 높은 3D 영상미를 추구한다는 전략을 택했다. 매기 캉 감독은 스파이더맨을 처음 보고 너무나 충격적으로 아름다워서 이와 정면승부해선 안 되겠다고 느껴, 대신 일본 애니메이션의 얼굴 표현과 감성을 3D로 구현하는 쪽을 목표로 삼았다고 밝힌바 있다. 실제로 영화 속 캐릭터 숏들은 일본 애니 특유의 클로즈업 감정 연기를 3D 모델에 입혀낸 듯한 느낌을 주는데, 과장된 눈망울과 입모양, 만화적인 얼굴 변형 등을 통해 감정을 극대화하면서도 입체적인 조명과 질감을 유지한다. 이러한 접근은 2차원의 미학을 지니면서도 3차원의 언어로 구현된 영화라는 제작진의 지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결과적으로 각 숏의 구성은 평면의 그래픽적 임팩트와 공간적 깊이가 균형을 이뤄, 캐릭터들이 만화책을 찢고 나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얻게 되었다. 화면 구도에서는 대조적인 이미지의 병치를 통한 시각적 전달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헌트릭스 멤버들이 아이돌로서 무대 위에 설 때는 대형 와이드 숏으로 세 인물을 대칭적으로 배치해 스타로서의 위용을 강조하지만, 무대 뒤편에서 사소한 일상을 보낼 때는 의도적으로 어수선한 주변 환경 속에 캐릭터를 오프센터에 놓아 평범한 소녀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또한 루미의 내적 갈등 장면에서는 그녀를 프레임 한구석에 작게 배치하고 넓은 여백이나 어둠을 활용하여 고립감과 부담감을 형상화한다. 이러한 구도상의 변주는 아이돌로서의 퍼블릭 이미지와 사적인 고뇌를 시각적으로 대비시키며, 작품의 테마인 이중정체성을 화면 언어로 담아낸다. 전반적으로 <K-Pop Demon Hunters>의 숏 구성은 만화적 상징성과 영상 언어의 섬세함이 어우러져, 볼거리의 재미와 스토리의 의미를 동시에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K-Pop Demon Hunters>는 최근 애니메이션 영화들 가운데서도 단연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영상미를 자랑한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은 <스파이더맨: 인투 더 스파이더버스>로 업계의 시선을 모은 바 있는데, 본 작품에서도 그 연장선상에서 2D와 3D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는 스파이더맨처럼 만화 렌더링을 쓰지는 않았지만, 프레임 속도 조절 등 애니메이션 문법을 적극 활용했다. 이미지웍스의 수석 애니메이터 조쉬 베버리지에 따르면, 이 영화는 동작에 따라 프레임을 2배로 잡는 이른바 애니메이션 온 투스 기법을 상당 부분 활용하였다고 한다. 이는 캐릭터의 움직임을 때때로 12fps 정도의 낮은 프레임으로 보여주어 만화적 잔상 효과와 그래픽적인 임팩트를 준다는 뜻이다. 이러한 기술은 스파이더맨에서 처음 크게 주목받은 것이지만, 본작에서는 여기에 더해 부드러운 렌즈 이펙트와 글램 스타일을 혼합하여 독자적인 느낌을 만들어냈다. 즉, 어떤 순간에는 대담한 저프레임 만화처럼 보이다가도, 다른 순간에는 렌즈의 피사계 심도가 느껴지는 부드러운 3D 애니메이션처럼 보이는 하이브리드적인 영상미를 완성한 것이다. 이외에도 인상적인 연출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감독들은 코미디와 액션을 정교한 숏 구성으로 엮어낸다. 카메라는 비행기 객실 내부를 가로지르며, 전경에는 컵라면을 먹거나 메이크업을 고치는 멤버들이 자리하고 배경에는 좌석 틈에서 악마들이 슬그머니 등장하는 식으로 심도를 이용한 구성을 활용한다. 예컨대 루미가 라면을 젓는 클로즈업 쇼트 뒤로 흐릿하게 악마 실루엣이 다가오면, 카메라는 부드럽게 팬 이동하여 이를 포착하고 루미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다리를 뻗어 악마를 걷어차는 동작을 원테이크에 가까운 흐름 속에 담아낸다. 좁은 기내라는 한정된 공간은 와이드 렌즈로 촬영되어 캐릭터들의 동작을 과장되게 보여주며, 때때로 등장하는 대각선 구도의 캔티드 앵글은 코믹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를 더한다. 멤버들이 각자 악마들과 맞서는 동작들은 리드미컬하게 교차 편집되기보다는, 가상의 스테디캠으로 찍은 듯 한 쇼트 안에서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이를 통해 관객은 멤버들이 일상적인 대화나 행동을 이어가면서 동시에 적을 제압하는 모습을 한 시선 안에 목격하게 되고, 덕분에 그들의 노련함과 여유로운 캐릭터성이 유머러스하게 부각된다. 결국 이 비행기 난투 시퀀스는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카메라 움직임과 공간 활용을 통해 영화의 경쾌한 톤을 발산하며, 마지막에는 악마를 모두 소탕한 헌트릭스가 태연히 무대를 향해 나아가는 컷으로 자연스럽게 공연 장면으로 전환되어 액션의 여운을 뮤지컬 넘버의 흥분으로 연결 짓는다.

이 영화의 편집 리듬은 K-팝 뮤직비디오의 속도감과 애니메이션 코미디의 타이밍을 절묘하게 결합하고 있다. 전체 러닝타임이 약 100분으로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그 안에 액션, 코미디,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톤의 장면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편집을 통해 서로 다른 성격의 시퀀스를 유려하게 이어붙이는 솜씨가 돋보인다. 예를 들어 초반부 세계 투어 장면에서는 도시 곳곳에서 공연하고 악마를 퇴치하는 여러 에피소드를 경쾌한 몽타주로 묘사하는데, 이때 도시 풍경–공연–전투 장면들이 리듬감 있게 교차 편집되어 노래와 이야기의 진행이 한 덩어리로 느껴진다. 이러한 편집 기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한 편의 K-팝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속도감으로 서사에 몰입하게 하며, 쉴 새 없이 에너지 넘치는 작품이라는 느낌을 뒷받침한다. 액션 시퀀스의 구성에서도 편집의 뛰어남이 두드러진다. 액션 장면들은 때로는 음악과 완벽히 동기화된 롱테이크 풍 연출로, 때로는 박진감 넘치는 속도전으로 표현되는데, 편집자는 각 시퀀스의 의도에 맞게 호흡을 조절한다. 예컨대 세 멤버가 한꺼번에 변신하여 악마 군단과 싸우는 하이라이트 장면에서는 비교적 롱 숏을 길게 유지하며 캐릭터들의 합을 보여주다가, 순간순간 비트에 맞춘 컷 전환으로 타격감과 리듬감을 살린다. 이러한 연출 덕분에 관객은 동시에 공연을 감상하고 전투에 참여하는 이중적 체험을 하게 된다. 이는 뮤지컬 장르와 액션 장르의 문법을 결합한 본 영화만의 독특한 편집 미학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본 작품의 편집은 코미디 타이밍을 살리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 대사나 상황의 유머가 화면 전환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웃음의 타이밍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장면이 많다. 예를 들어 한 캐릭터가 진지한 독백을 할 때 바로 다음 컷에 다른 캐릭터의 엉뚱한 행동을 보여주는 L컷 기법이나, 액션 도중 의외의 정적 순간을 끼워넣어 폭소를 유발하는 코미디 비트 삽입 등이 적재적소에 사용된다. IGN의 투생 에건은 이 영화가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스스로를 지나치게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평했는데, 이는 곧 편집 리듬 상에서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의 긴장 완급 조절이 탁월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더랩의 맷 골드버그는 복잡할 수도 있었던 플롯이 “훌륭한 코미디의 연속 덕분에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평가하며, 영화 곳곳에서 K-드라마와 K-팝의 클리셰를 재치 있게 풍자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웃음 포인트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던 데는, 한 박자 앞서가는 편집 타이밍과 맥락 전환의 능숙함이 큰 역할을 했다. 전체적으로 <K-Pop Demon Hunters>의 편집은 경쾌함과 명확함이라는 두 마리를 토끼를 잡는다. 이야기 전개상 중요한 정보는 빠르게 전달하면서도 관객이 놓치지 않도록 명징한 시각적 연결고리를 제공하고, 동시에 장르적 재미를 살리는 리듬으로 연출하여 “빠르지만 혼란스럽지 않은” 서사를 구현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러한 편집 미학은 현대 가족 애니메이션으로서 어린 관객부터 성인 관객까지 모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라 할 수 있다.

K-팝 뮤지컬을 표방한 작품답게, <K-Pop Demon Hunters>의 사운드트랙과 음향 디자인은 영화의 심장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 특히 이 영화는 노래와 극적 상황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음악이 이야기 전개를 추동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는 전통적인 뮤지컬 영화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K-팝 장르의 특성을 반영한 독특한 접근이다. 극중 대부분의 노래는 헌트릭스나 Saja Boys가 공연 또는 연습 상황에서 부르는 다이제시스 내의 음악으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 인물들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극중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형태로 삽입되기에,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 뮤지컬 넘버가 진행 중이라는 의식을 크게 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영화잡지 버라이어티의 평론도 이와 같은 특징을 지적하며, 영화가 “K-팝의 세계를 무대로 하기 때문에 팬들은 자신들이 뮤지컬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평했다. 그만큼 음악이 이야기와 이질감 없이 녹아들어 있다는 뜻이다.

<K-Pop Demon Hunters>는 K-팝이라는 현대적 소재와 악마 사냥 판타지라는 장르적 설정을 조화시켜, 순수 영화적 언어의 힘으로 승화시킨 수작 애니메이션이다. 본 리뷰를 통해 살펴본 것처럼, 이 작품은 카메라, 편집, 조명, 미장센, 사운드, 애니메이션 기법 등 영화의 모든 표현수단을 총동원하여 관객을 웃기고 울리며 흥분시키는 종합 예술을 실현한다. 문화적 맥락을 배제하고 순전히 시네마틱한 완성도에 주목하더라도, <K-Pop Demon Hunters>는 충분히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실제로 뉴욕 타임스는 이 영화를 두고 “어리둥절한 설정 너머에 매력적이고 유쾌하며 예술적으로도 정교한 세계가 펼쳐진다”고 평했고, Variety는 “콘셉트만큼이나 캐치하게 구현된 하이 컨셉 애니메이션”이라며 픽사의 동시개봉작보다도 더 재밌는 작품이라 호평했다. 궁극적으로 <K-Pop Demon Hunters>는 애니메이션 미디어의 강점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영화 문법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화려한 색채와 음악으로 관객의 감각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카메라와 편집, 미장센을 통해 이야기와 정서를 밀도 있게 전달하는 솜씨는 웬만한 실사 영화를 능가한다. 동시에, 애니메이션만이 제공할 수 있는 형식 파괴의 즐거움과 무한한 상상력의 구현을 선보이며, 관객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이러한 미덕들 덕분에 <K-Pop Demon Hunters>는 2025년 애니메이션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성취 중 하나로 손꼽히며, 학술적 분석의 가치와 대중적 오락성을 겸비한 드문 사례로 남을 것이다. K-팝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순수히 영화적인 관점에서 이 작품은 충분히 즐겁고 감탄스러운 경험을 선사한다. 한마디로, 영화적 언어로 완성된 애니메이션 뮤지컬 액션의 쾌거라 평할 만하다.

로망 포르노는 어떻게 일본 영화계를 살렸는가

한국 영화산업은 최근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아니 심각한 위기에 접어들었다라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등 그간 해외영화제에서 각광받는 스타 감독이 등장하였지만, 정작 이들 모두는 50-60대 이상의 연령대이며, 이들을 뒤로하면 최근에는 새롭게 떠오르는 젊은 신인감독의 이름을 찾기 어렵다. 그간 한국 영화계가 엄청난 블록버스터급 성공을 하고 예술적으로도 인정을 받으며 영화산업에 대한 자본유입이 심화되었다. 영화는 더더욱 거대화되었고 그사이 영화 제작은 대형 자본에 의존하는 상업화 구조가 굳어져 제작, 배급, 상영 까지 모든 것이 다 자본의 영향하에 세트로 이루어졌다. 때문에, 젊은 신예들은 자신만의 작은 영화를 찍으며 영화판에 진입할 틈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게다가 넷플릭스를 필두로한 OTT 플랫폼과 인터넷 기반 영화 시청의 대중화로 극장 관객 수가 급감하며 한국 영화계는 더욱 위기를 맞았다. 극장들은 소위 팔릴만한 영화만 걸고싶어하는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으며 스크린은 많은데 정작 볼만한 영화의 편수는 더욱 줄어드는 기현상이 벌여진 것이다. 이러한 양상을 보며 과거 1960년대 일본 영화산업의 침체가 문뜩 떠올랐다.

1960년대에 접어든 일본 영화계는 텔레비전의 급속한 보급으로 심각한 침체를 겪었다. 가정마다 TV가 주요 오락 수단이 되자 극장 관객이 급감했고, 영화 관람은 급속히 대중의 일상에서 밀려났다 . 실제로 1960년 12억 명 수준이던 연간 관객 수는 20년 만에 2억 명 수준으로 줄었을 만큼 타격이 컸다 . 또한 고도경제성장기 젊은 층은 영화보다 텔레비전, 만화, 음악 등 다른 매체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되어 영화산업의 기반이 약화되었다. 한편 전통적인 영화 스튜디오 시스템의 붕괴도 진행되었다. 관객 감소로 수입이 급감하자, 대형 영화사들은 연쇄적인 경영 위기에 처했다. 한때 갱스터물과 청춘영화로 명성을 날리던 닛카츠마저 1970년대 초 영화 제작을 중단해야 할 처지에 몰렸고, 쇼치쿠, 토호 등의 메이저사들도 규모 축소와 외주 제작 전환 등을 모색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1970년대 일본 영화계는 3/4 이상의 관객이 사라지고 스튜디오 절반이 문을 닫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불황에 빠졌다 . 이 같은 위기 속에서 일본 영화사들은 생존을 위한 다양한 모색을 시작했다. 일부는 대작 블록버스터를 통해 관객을 끌어모으려 했고, 또 다른 전략으로 텔레비전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성인 지향의 폭력과 성적 콘텐츠를 과감히 도입하기 시작했다 .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이른바 핑크 영화 산업이다. 핑크 영화란 성인 관객을 겨냥해 노출과 성적 소재를 담은 저예산 영화를 가리키는 일본 특유의 장르로, 1960년대 중반부터 독립 프로덕션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 1971년에는 대형 영화사 토에이가 일부 작품을 ‘포르노’로 광고하고, 닛카츠가 극단적인 결단으로 아예 성인영화 제작으로 전면 전환하면서 메이저까지 성인물 경쟁에 뛰어들었다 . 즉, 성인 지향 영화로 관객을 붙잡고 젊은 감독들을 발굴하려는 시도가 산업 전반에서 나타난 것이다 . 이러한 흐름의 핵심에 선 것이 바로 닛카츠의 “로망 포르노”였다.

닛카츠 로망 포르노는 일본 최고의 영화사 닛카츠가 1971년 11월부터 전면 도입한 극장용 성인영화 브랜드다 . 당시 닛카츠는 지속된 적자로 사실상 도산 직전이었고 직원들 사이에서도 위기감이 팽배했다. 정상 영업이 어려울 정도로 제작 여건이 악화되자 닛카츠 경영진은 “회사를 살리자”는 절박한 목표 아래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남은 인력으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모색하게 된다. 그 결과 탄생한 전략이 매달 일정 편수의 성인 영화를 공장 제품 찍어내듯이 빠르게 만들어내는 로망 포르노 시리즈였다 . “로망 포르노”라는 명칭에서 ‘로망’은 프랑스어로 이야기 혹은 낭만을 뜻하는 말로, 단순한 포르노가 아닌 “줄거리와 미학이 있는 에로 영화”임을 표방한 이름이었다 . 다시 말해 노골적인 하드코어가 아닌, 서사가 있는 연성 포르노 장르로서 사회적 수용도를 높이려 한 것이다. 닛카츠의 새 전략 하에서 제작 시스템은 철저히 상업적 효율을 쫓도록 재편되었다. 로망 포르노 영화들은 러닝타임이 약 60~70분 내외로 비교적 짧았고, “10분마다 1번씩 성애 장면을 넣는다”는 엄격한 제작 원칙이 부과되었다 . 이를 위해 시나리오 단계부터 일정 간격으로 베드신이나 노출신을 배치하는 것이 규칙이었으며, 촬영 현장에서도 이 원칙 준수를 철저히 요구받았다. 대신 이 원칙만 지킨다면 내용과 연출에는 최대한 자유를 보장하는 파격적인 방침을 내세웠다 . 닛카츠 경영진은 감독들에게 “노출 장면 최소 4개 이상만 넣으면 무엇이든 찍어도 좋다”는 식의 자유를 허용했고 , 이러한 조건부 자유화는 당시 보수적인 일본 영화계에서 이례적인 것이었다. 실제 닛카츠 로망 포르노의 대표 감독이었던 코누마 마사루는 “로망 포르노 제작 과정은 일반 핑크영화와 동일하되 예산만 더 많았다”고 회상하며, 그만큼 기술적 완성도나 표현의 폭이 기존 독립 에로영화보다 넓었다고 증언한다 . 이러한 “자유 속의 규율” 전략은 흥행을 위한 성적 자극과 예술성을 절묘히 양립시키고자 한 것이었다. 예컨대 당시 로망 포르노 작품들에는 명시적 정사 장면과 노출이 반드시 등장하지만, 일본 영화윤리위원회의 검열 기준에 따라 노골적인 성기 노출이나 실제 성행위는 피하고 카메라 앵글, 소품 배치, 모자이크 등으로 우회하였다 . 이는 일본의 법적 한계 안에서 최대한 수위를 높인 것이었으며, 동시에 검열이 강요한 제약이 오히려 독특한 미학을 낳았다는 평가도 있다 . 한 편 한 편의 예산은 대폭 삭감되어 소품과 세트도 최소화되었지만, 그 대신 감독의 창의성과 실험정신으로 승부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즉 “몇 분마다 관객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라”는 상업 공식을 지키는 한편, 그 사이사이에는 신진 감독들의 개성적인 아이디어를 비교적 자유롭게 녹여낼 공간이 마련된 셈이다 . 닛카츠 로망 포르노는 출범 이후 매월 2~3편씩 꾸준히 신작을 개봉하는 체제로 운영되었다. “한 달에 3편”은 닛카츠가 내건 생산 목표였고, 실제 1970년대 중반엔 연간 30편 이상, 많게는 50편에 육박하는 작품이 발표되었다. 1971년 첫 작품인 <아파트와이프>를 시작으로 1988년까지 17년 동안 약 1,100편의 로망 포르노 작품이 쏟아졌다 . 작품들은 대개 저예산으로 빠르게 제작되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유지하도록 전문 스태프와 필름 촬영을 고수했다 . 또한 대부분 성인 전용극장에서 3편씩 묶어 세트 상영되는 형태로 유통되어, 관객들은 한 장의 티켓으로 연달아 세 편의 성인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이러한 공장제 시스템은 “영화를 찍어내듯 만들어낸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 오히려 정기적인 신작 공급으로 매니아 관객층의 충성도를 유지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한편 성적 자극과 작가주의의 공존은 로망 포르노를 차별화한 중요한 특징이었다. 로망 포르노 영화들은 노골적인 포르노그라피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관객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르 영화였다. 선정적 제목과 홍보 포스터, 에로틱한 소재들은 관객을 불러모으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틀 안에서 젊은 감독들은 자신만의 예술적 개성을 실험할 수 있었다. 닛카츠는 “러브신 몇 분 이상” 등의 최소한의 조건만 제시하고, 스토리 전개나 연출 스타일에는 간섭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 당시 조감독으로 현장을 밟았던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상영 시간 70분 남짓에 러브신이 반드시 나온다는 조건만 지키면 어떤 이야기든 찍을 수 있었다. 그 자유롭고 아방가르드한 분위기가 좋았다”고 회고한다 . 이처럼 기성 상업영화에선 보기 어려운 파격적 주제의식과 실험적 기법이 로망 포르노에선 가능했고, 덕분에 작품들마다 독특한 색채를 띠게 되었다. 예를 들어 공포영화 거장으로 훗날 이름을 날린 구로사와 기요시도 데뷔작 <간다천 음란전쟁>에서부터 괴기와 에로를 결합한 신선한 연출을 시도했는데, 이런 과감한 시도들이 가능했던 배경이 로망 포르노의 상대적 자유로움이었다고 평가된다 . 물론 이러한 환경이 모든 감독에게 매력적으로 보인 것은 아니었다. 오시마 나기사나 와카마츠 코지 등 기존 독립예술영화의 기수들은 닛카츠의 상업적 성인물 제작에 동참하기보다, 각자 독립적인 경로로 자신들의 성인영화를 만들었다. 오시마 나기사는 1976년 <감각의 제국>을 통해 실제 정사 장면을 담은 예술영화를 제작하여 파격을 일으켰는데, 이는 닛카츠 로망 포르노의 수위 제한에 만족하지 못한 거장의 다른 선택이었다. 와카마츠 코지 역시 독자적으로 저예산 핑크영화를 제작하며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추구했다. 즉 로망 포르노는 철저히 상업적 생존전략의 산물이었기에, 일부 리얼한 표현을 지향하는 예술영화 감독들에겐 제약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신진 감독들에겐 로망 포르노가 등용문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 보수적인 일본 영화계에서 젊은 연출자가 장편 영화를 맡아 자기 색깔을 보여줄 기회는 매우 드물었는데, 로망 포르노가 바로 그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로망 포르노 시리즈는 개봉 초기부터 뚜렷한 수익 성과를 거두며 닛카츠의 구원투수가 되었다. 1971년 11월 첫 작품 <아파트와이프>은 흥행에 성공해 7년 간 20편이 넘는 후속 시리즈를 낳았고, 주연 시라카와 카즈코는 닛카츠 첫 번째 로망 포르노 퀸으로 떠올랐다 .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닛카츠는 사실상 본사 제작영화를 로망 포르노로 한정하고 이후 17년간 성인물 제작에 주력했다 . 관객층은 주로 2040대 남성이었지만, 자극적인 제목과 소문에 이끌려 호기심에 극장을 찾는 관객도 많았다. 1970년대 중반까지 로망 포르노와 독립 핑크영화는 일본 영화 전체 생산 편수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시장의 중심이 되었다 . 흥행 측면에서 보면, 1980년대 중반 AV의 부상 전까지 로망 포르노는 꾸준히 일정 수익을 내주며 닛카츠를 떠받쳤다. 로망 포르노 덕분에 닛카츠는 한때의 황금기를 구가했고, 일본 영화산업은 완전 붕괴를 면했다는 평가도 있다 . 특히 197080년대 닛카츠 로고가 붙은 영화들은 매달 정기적으로 개봉되어 “니카츠 로망”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될 만큼 자리잡았다.

평단의 반응 또한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으나 점차 호의적인 재평가가 이뤄졌다. 당대 주요 언론인 아사히 신문과 영화잡지 키네마 준보 등은 해마다 올해의 일본영화 베스트10을 선정했는데, 1971년 이후 매년 1~2편 정도의 로망 포르노 작품이 베스트10에 꼽힐 정도로 인정받았다고 전해진다 . 초기작 <이치조 사유리: 젖은 욕정>이나 <빨간 머리의 여자> 등의 작품이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아, 성인물이면서도 예술적으로 완성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특히 구마시로 타츠미 감독은 여러 작품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일본 영화사에 전례 없는 비평적·상업적 성공을 동시 달성한 감독으로 기록되었다 . 그는 이 성공으로 로망 포르노의 제왕이라는 별칭까지 얻었고, 작품들은 독창적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 또한 다나카 노보루 감독의 <사다 아베 이야기>는 여러 평론가들이 로망 포르노 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을 만큼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 이 외에도 SM을 소재로한 코누마 마사루 감독의 <꽃과 뱀>은 SM퀸 배우 타니 나오미의 열연과 파격적 묘사로 관객과 평단 모두에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프랑스 등 해외에 소개되어 주목받는 등 국제적 반향도 있었다 . 이러한 사례들은 로망 포르노가 단순한 에로 영화에 머무르지 않고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독특한 장르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물론 로망 포르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긍정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보수적인 대중 정서는 여전히 포르노 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가졌고, 여성 단체 등에서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일본 사회 전반에 퍼진 성 문화의 개방 풍조 속에서 로망 포르노는 생각보다 큰 논란 없이 산업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엄연히 심의 등급 하에 성인만 관람하는 극장용 영화였고, 노골적인 외설물을 배척해온 일본 검열제도 아래에서 어느 정도 선을 지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 로망 포르노는 “야하되 저속하지 않은 에로”를 표방하며, 관객에게 일정한 판타지적 해방감을 주는 문화상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일부 영화 평론가는 “미국의 포르노가 노골적 성행위 묘사에만 머물러 영원히 저급한 수준에 머무는 반면, 일본의 에로 영화들은 보여줄 수 없는 제약 덕분에 다른 것을 해야 했고, 그 좌절된 충동이 몇몇 걸작을 만들어냈다”고 평하기도 했다 . 로망 포르노 중 최고작들은 지금까지도 컬트적 지지를 받으며 재평가되고 있다.

로망 포르노의 가장 큰 유산 중 하나는 영화 인재 양성의 통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 닛카츠는 로망 포르노 제작 당시 젊은 감독들에게 파격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그 결과 1970~80년대에 활약한 수많은 영화감독들이 로망 포르노 혹은 핑크영화 경력을 발판으로 성장하였다. 예컨대 훗날 <탐포포> 등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타미 주조 감독은 배우 출신으로 1984년 늦은 나이에 상업영화에 데뷔했지만, 그 이전에 영화 현장에서 연출 수업을 받은 곳 중 하나가 저예산 핑크영화 분야였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1983년 로망 포르노 <간다천 음란전쟁>으로 공식 데뷔하여, 이후 공포영화와 예술영화를 넘나드는 거장이 되었다 .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 역시 초기 커리어에서 핑크영화 연출을 경험하며 연출력을 다졌고, 훗날 <가족 게임> 등으로 1980년대 일본영화 뉴웨이브를 이끌었다. 특히 다키타 요지로 감독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치한여교사> 로 데뷔해 <치안전차> 등 20 편 이상의 애로영화 연출을 하며 경력을 쌓았고, 이후 2008년 영화 <굿바이>로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 실제로 “닛카츠 로망 포르노 출신 감독”들의 면면을 보면 구로사와 기요시, 모리타 요시미츠, 다키타 요지로 등 한국에도 익숙한 이름들이 다수이다 . 이들은 로망 포르노에서 연출 데뷔 또는 조감독 수련을 거치며 현장 경험을 축적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후 주류 상업영화나 예술영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러한 사실은 로망 포르노가 젊은 영화인들에게 훌륭한 훈련장이자 등용문이었음을 보여준다 . 로망 포르노가 없었다면 빛을 보기 어려웠을 신예들이 성인영화라는 틈새를 통해 경력을 시작했고, 일본 영화계 전체로 보면 세대 교체와 창작자 풀의 확장에 기여한 것이다. 다만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로망 포르노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는다. 1981년 가정용 비디오의 보급과 함께 등장한 성인 비디오가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더 이상 관객들이 극장에 나와 연성 포르노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 여기에 더해 1980년대 중반 정부의 영상물 규제 강화와 영화윤리위원회의 등급 규정 변화로 로망 포르노 상영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 예컨대 1984년 새로운 검열정책으로 극장용 성인영화의 성표현에 대한 규제가 심화되었고, 1988년에는 성행위 관련 묘사에 대한 더욱 엄격한 규정이 도입되었다 . 이로써 극장용 에로 영화의 설 자리가 급격히 축소되었다. 결국 닛카츠는 1988년 <침대 파트너>를 마지막으로 17년 역사의 로망 포르노 시리즈를 공식 중단하였다 . 닛카츠는 이후 일반 영화를 재건하려 했지만 이전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1993년 결국 파산 보호 신청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 한편 독립 핑크영화 계열은 명맥을 이어갔지만, 90년대 이후로는 규모가 대폭 줄어들고 소수 애호가의 영역으로 남았다 . 로망 포르노의 종언은 일본에서 극장용 연성 성인영화 시대의 마감을 의미했다. 일본의 로망 포르노와 유사하게, 다른 나라들도 영화산업 위기 시기에 성인 지향 콘텐츠로 활로를 모색한 사례가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영화산업의 “뉴 할리우드” 시기를 들 수 있다. 1960년대 말 헐리우드는 관객 감소와 경직된 제작 관행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1968년 영화등급제도 도입으로 엄격한 사전 검열이 폐지되자 폭력과 섹스를 다룬 혁신적 영화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보니와 클라이드>, <미드나잇 카우보이> 등은 당시로선 파격적 폭력 또는 성적 묘사와 사회적 금기를 담아냈고, 젊은 관객들의 관심을 되찾아왔다. 이는 헐리우드가 검열 완화를 통해 스콜세지와 코폴라 등 새로운 창작 세대를 등용하고 침체를 탈출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또한 유럽 영화계 역시 1970년대에 성애 영화 붐을 겪었다. 프랑스의 <엠마뉴엘>은 여성의 관능적 모험을 그린 소프트코어 영화로 프랑스에서만 약 88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해외에서도 2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려 국제적으로도 돌풍을 일으켰다 . 이 영화의 성공으로 1970년대 중후반 유럽에서는 엠마뉴엘 시리즈를 비롯한 여러 성인 취향의 에로틱 영화가 잇달아 제작되었고, 이는 침체된 유럽 영화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가 있다. 아시아에서도 홍콩의 카테고리 III 영화 붐이 한 사례다. 1988년 홍콩이 영화 등급분류에 Category III(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신설하자, 1990년대 초 홍콩에서는 노골적 성애나 폭력 소재의 성인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옥보단>은 당시 선정적인 내용으로 논란이 되었으나 홍콩 역대 청불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 이 영화는 홍콩에서 2백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두고 10년 넘게 최고 흥행 성인영화 기록을 지켰으며 , 주연 배우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홍콩 영화계는 이러한 Category III 영화 붐을 통해 90년대 초 한때 침체를 돌파하고 수출시장에서도 주목받았으나, 이후 1997년 홍콩 반환 전후로 제도 변화와 시장 포화로 급속히 시들었다. 그럼에도 홍콩의 성인영화 실험은 짧지만 강렬했던 현상으로 남아 있다. 이런 해외 사례들은 검열 완화와 성인 지향 영화의 제작이 산업에 일시적 활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문화적 배경과 산업 구조가 달라 일률 비교는 어렵지만, 공통적으로 기존 질서가 막혀 있을 때 파격적인 콘텐츠로 돌파구를 찾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로망 포르노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각국의 사례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부작용을 모두 남겼다.

그렇다면 이러한 “로망 포르노식” 성인영화 장려 전략을 한국에 도입할 수 있을까? 이는 산업적·문화적 측면에서 여러 함의를 지닌 문제다. 한국 영화계도 최근 대형 자본 위주의 블록버스터와 프랜차이즈에 집중되면서 장르와 규모의 다양성 상실이 지적되고 있다. 젊은 감독들이 도전할 수 있는 중저예산 영화의 입지가 줄어들고, 창의적 실험이 설 자리가 좁아지는 현실에서 새로운 활력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로망 포르노와 같은 소규모 성인 영화 분야를 활성화하면,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제작 가능하고 흥행 실패에 따른 리스크도 낮아 신인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 일본의 사례에서 보았듯, 제한된 예산과 조건 속에서도 감독들의 역량에 따라 독창적 작품이 탄생할 수 있고, 오히려 그런 제약이 새로운 표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로망 포르노식 제작을 추진하려면 법·제도적 장벽부터 논의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 법령상 포르노그라피의 제작·유포는 불법이며, 영상물 등급제에서도 가장 높은 수위인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으면 사실상 상영 불가 판정을 의미한다 . 한국영상등급위원회는 제한상영가 영화를 법으로 지정된 제한상영관에서만 틀 수 있도록 하지만, 전국에 제한상영관이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에 제한상영가 판정은 사실상 개봉 금지와 같다고 지적된다 . 즉 현재 제도로는 성인만 관람 가능한 영화라도 노출 수위가 높으면 일반 극장 공개는커녕 광고나 홍보조차 할 수 없고, 유통 경로가 전무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식 로망 포르노에 해당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등급 문제로 공개 상영이나 수익 창출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최근 OTT 플랫폼 등의 등장으로 규제가 다소 완화된 면이 있으나, 여전히 한국 사회는 영상물의 성적 묘사에 민감하며, 창작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규범 사이의 줄타기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로망 포르노식 성인영화를 장려하려면 우선 제도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컨대 제한상영가 등급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실제 제한상영 전용관을 허가·설치하거나, 등급 체계를 개편해 성인물을 아우를 새로운 유통 창구를 마련하는 등의 방안을 고민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영화진흥법상의 표현 검열 기준을 완화하고, 예술영화로서 일정 수준의 성표현을 허용하는 명문화된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선정적 콘텐츠를 풀어준다는 차원을 넘어, 영화 창작의 다양성 확보와 성인 관객의 선택권 존중이라는 문화적 가치와 연결된다.

물론 사회적 저항과 부작용에 대한 대비도 중요하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유교문화와 보수적 윤리가 강하고, 영상물에 대한 규제 논란이 반복되어 왔다. 2000년대 초 <거짓말>이나 <욕망> 등의 국내 영화들이 수위 논란으로 검열에 걸러지고 법정 공방까지 간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만약 일본식 성인영화 제작을 독려한다면, 보수 단체나 학부모 단체 등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들은 청소년 보호와 사회적 도덕성을 이유로 들며 정책 추진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성인영화 활성화가 가져올 부작용으로 저급한 에로물 범람, 여성에 대한 객체화 조장, 배우 혹은 스태프에 대한 착취 문제 등이 우려된다. 실제 일본 로망 포르노 당시에도 일부 여성 배우들은 노출을 강요당하거나 이미지 소모를 겪었고, 이러한 업계 관행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제작 여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성인물이 난립하면 퀄리티보다는 자극에만 치중한 B급 영화의 양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하드코어 포르노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과연 연성 포르노 영화가 관객에게 매력적인 상품이 될지 의문이라는 현실적 지적도 있다. 즉 1970년대의 로망 포르노 모델을 2020년대에 단순 이식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시대에 맞는 새로운 콘텐츠 기획이 필요할 것이다. 여성에 대한 대상화는 오늘날의 성, 윤리의식에 전혀 맞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를 들면 또다른 기대도 가능하다. 일본의 1970년대 로망포르노이후 2016년 닛카츠는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장르는 완전히 잊히지 않고, 일본 영화사에서 하나의 전설적 챕터로 회자되었다. 2016년 닛카츠는 로망 포르노 탄생 45주년을 맞아 소노 시온, 유키사다 이사오, 나카타 히데오 등 중견 감독 5인에게 로망 포르노를 리부트한 작품을 의뢰하는 특별 기획을 선보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지금껏 포르노가 남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소비되어왔다면, 로망포르노 리부트에서는 바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성관객들도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들로 탈바꿈하였다. 실제 이 리부트 프로젝트를 통해 <화이트 릴리>를 선보인 감독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시대가 바뀌었고 반드시 남성위주의 영화를 만드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여성들만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를 만들었다라고 인터뷰를 한 바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움직임은 로망 포르노가 남긴 유산 – 젊은 영화인들의 창의 실험장, 산업의 최후 보루로서의 역할 – 을 현대적으로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로망 포르노는 영화산업 침체기에 등장한 파격적 돌파구였으며, 상업적 성공과 더불어 수많은 영화 인재를 배출하고 독특한 영화 문화를 형성했다. 비록 시대 변화에 따라 사라졌지만, 그 17년간의 실험과 성취는 오늘날까지 영화사에 의미 있는 사례로 남아 있다. 한국 영화계도 산업적·창작적 침체를 겪는 지금, 로망 포르노가 던진 시사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물론 사회·문화적 환경 차이와 법적 제약을 감안하면 동일한 모델을 도입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핵심은 검열의 완화와 창작 자유의 확대, 신진 영화인들에게 기회의 장을 열어주는 것이다. 성인 관객을 위한 영화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다양한 시도를 수용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든다면, 그것이 꼭 로망 포르노와 같은 형태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영화 움직임을 촉발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영화예술의 발전은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에 달려 있다. 자본에 지나치게 종속된 환경에서는 모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이 나오기 어려운 법이다. 일본 닛카츠가 로망 포르노를 선택했던 “절박함”처럼, 우리 영화계도 기존의 틀을 깨는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일지 모른다. 물론 그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겠지만, 한계 상황에서 탄생한 로망 포르노의 교훈은 분명하다. 규제를 유연하게 조정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을 때 비로소 젊은 재능이 꽃피고 산업에 활력이 돈다는 것이다 . 이런 맥락에서 정부와 영화계가 협력하여 일정 부분 규제를 풀고 창작을 지원한다면, 일본 로망 포르노와는 또 다른 한국형 성인 영화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풍부한 웹툰이나 소설 IP 중 성인물을 영화화하여 OTT나 제한 상영으로 선보이는 프로젝트를 지원한다면, 신인 감독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다. 또한 성인물을 단순히 흥행 수단이 아니라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중간지대로 포지셔닝하여, 새로운 영화제 섹션이나 기금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한국 영화계가 미래 세대의 이창동이나 봉준호를 맞이하기 위해 어떤 환경을 마련해야 할지, 로망 포르노의 역사는 한 가지 힌트를 제공하고 있다. 다양성과 창의성이 존중받는 풍토 속에서, 설령 그것이 논란을 동반한 길일지라도, 영화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는 도전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형 새로운 돌파구의 모색이 절실한 지금, 일본 로망 포르노의 성공과 한계를 타산지석 삼아 지혜로운 정책적 결단과 업계의 용기를 기대해본다.

교토 영화공간 데마치자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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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초, 교토의 릿세이(立誠) 소학교 자리에서 일본 최초의 영화 상영 시연이 이루어졌다. 이케하타 가쓰타로라는 사업가가 프랑스 루미에르 형제를 직접 만나 들여온 발명품, 시네마토그래프를 통해서였다. 그는 1896년 프랑스 방문 중 오귀스트 루미에르로부터 “움직이는 사진” 즉 영화 기술을 소개받고 장비를 구해와, 1897년 1월에 프랑스 기술자 콘스탄 지렐과 함께 귀국하였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1897년 1월 하순 교토 전등 회사의 중정(훗날 릿세이 소학교 부지)에서 시험 상영에 성공하였다. 이 역사적인 시연은 일본에서 영화가 처음 선보인 순간으로 기록된다. 당시 교토 전등은 전기를 공급하던 회사로, 시네마토그래프의 작동에 필요한 전력 등 기술적 지원을 제공했다. 그 결과 1897년 2월, 교토에서 루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시험적으로 공개 상영하는 데 성공하여 일본 영화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 릿세이 소학교 부지는 훗날 ‘일본 영화 발상지’로 불리게 되었고, 학교 건물 앞에는 이를 기리는 표석도 세워졌다. 실제로 “본 교정은 1897년 루미에르 시네마토그라프의 시험 상영이 이루어진 곳”이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이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고 있다. 이는 루미에르 형제가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영화를 공개한 지 불과 2년 후에 일본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교토의 릿세이 소학교는 이렇게 일본 영화 탄생의 무대가 되었고, 교토 시민들에게 최초로 “움직이는 영상”을 선보인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다.

릿세이 소학교는 메이지 2년(1869년) 설립된 교토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소학교 중 하나로, 1928년에는 현재 남아있는 철근콘크리트 교사 건물이 준공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 도심 인구구조 변화와 학생 수 감소로 운영이 어려워졌고, 124년의 역사 끝에 1993년 3월 31일 폐교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폐교 직전인 1992년도 졸업생은 불과 11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학생 수가 줄어들어 있었으며, 학교 통폐합 정책에 따라 주변 4개 학교와 합쳐 새 학교가 개교하게 되었다. 폐교식은 1993년 3월 25일에 거행되어, 지역주민과 졸업생들이 모인 가운데 교토 중심부의 오래된 소학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짐을 기렸다. 다행히도 릿세이 소학교의 아름다운 교사 건물은 즉시 철거되지 않고 보존되었다. 학교가 문을 닫은 후에도 이 건물은 지역 사회의 공간으로 적극 활용되었다. 폐교 직후부터 주민들은 이 공간을 지역 문화활동 거점으로 되살리고자 하였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2000년대에 걸쳐, 영화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문화 이벤트가 옛 교실과 강당 등에서 열렸다. 예컨대, 교토 기반 영화사인 시마필름과 영화인 교육단체 “영화24구” 등은 빈 교실을 활용해 영화 제작 워크숍을 진행했고, 학생극이나 음악 공연도 수시로 열렸다. 이로 인해 폐교 후 옛 릿세이 소학교 건물은 “릿세이 문화의 마을”이라 불리며, 관서 지역 예술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교실 벽에는 과거 학교 졸업생들의 단체 사진이 계속 걸려 있었는데, 연도별 졸업생 수가 점차 줄어들다가 폐교 시엔 아주 적었다는 사실이 이 사진들로도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남겨진 학교 건물을 무대로 지역 주민들은 축제, 전시회, 세미나 등을 열면서 도심 속 문화 플랫폼으로 재탄생시켰다. 특히 릿세이 소학교 건물이 위치한 교토 기야마치 지역은 폐교 이후 규제가 풀리면서 유흥업소가 급증해가는 상황이었다. 오랜 세월 동네 아이들을 키워왔던 학교가 사라지자 주변 거리가 퇴폐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본 지역주민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이에 주민들은 릿세이 자치회를 중심으로 건물을 활용한 건전한 문화활동으로 동네의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했다. 2005년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12년 만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지는 행사가 열렸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이는 폐교 이후 늘어난 퇴폐업소를 몰아내고 지역을 지키려는 움직임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에서 2007년, 교토시는 “문화예술을 통한 마을 만들기” 구상의 하나로 릿세이・문화의 마을 프로젝트 운영위원회를 결성하여 이 공간을 지원했다. 이후 이곳에서는 연극 축제, 독립영화 상영회, 음악회 등이 개최되었고, 옛 학교는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문화공간이자 만남의 장소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2013년, 옛 릿세이 소학교 건물 3층 교실 한 칸에 작은 영화관이 문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교토시와 민간 영화사 시마필름이 공동 주최한 이 프로젝트는, 교토 영화문화 부흥을 위한 실험적인 시도였다. 대표인 시마 토시키는 교토 출신의 영화 프로듀서로, 이전부터 지방 소도시의 극장을 인수해 운영하거나 독립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등 지역 영화문화 유지에 열정을 보여온 인물이다. 실제로 시마필름은 교토부 마이즈루시의 야치요관 영화관과 후쿠치야마시의 후쿠치야마 시네마 등, 대형 멀티플렉스가 진출하지 않은 지역의 오래된 극장들을 인수하여 운영해 왔다. 시마 토시키 사장은 “마을에 영화관이 없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지방의 극장을 지켜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철학을 지닌 시마필름이 교토 도심 한복판, 일본 영화 탄생지인 옛 릿세이 학교에 작은 예술영화관을 꾸민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는 2013년 4월에 공식 출범하여, 2014년 4월 상설 독립영화관 형태로 본격 개관했다. 운영 책임자는 시마필름 소속의 타나카 세이이치로, 그는 프로젝트 기획 단계부터 실행을 이끈 젊은 영화인이었다. 타나카를 비롯한 기획진은 옛 학교 교실 하나를 극장으로 개조하였는데, 나무 바닥과 칠판, 창틀 등 옛 모습은 최대한 보존한 채 영사 스크린과 음향을 설치했다. 좌석은 다리를 밑으로 내려넣을 수 없는 좌식형 좌석으로 배치되어 특유의 옛 교실 분위기를 살렸으며, 난방이 충분치 않아 겨울엔 썰렁하고 의자가 딱딱하다는 불평도 나왔지만 오히려 그런 환경까지 영화 감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관객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상영관은 매일 운영되었고, 일본 독립영화와 해외 예술영화, 고전 영화 등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개관 이후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상영한 작품 수만 400편이 넘었고, 40여 회의 기획전을 개최하는 등 열정적인 프로그램 운영을 했다.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의 핵심 철학은 단순히 영화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를 배우고 창작하는 체험의 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시네마 프로젝트와 동시에 “시네마 칼리지 교토”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병행하였다. 시네마 칼리지는 배우, 시나리오 작가, 영화배급 기획자 등 영화산업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일종의 영화 학교로, 배우 연기 코스, 시나리오 창작 코스, 영화마케팅・배급 코스의 세 가지 과정을 운영했다. 이는 교토시와 시마필름, 그리고 영화교육단체인 “영화24구”가 협력하여 만든 프로그램으로, 매년 신진 영화인을 모집해 교육하고 실제 단편 영화 제작까지 해보는 실습 위주 커리큘럼이었다. 타나카 세이이치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영화 제작자와 관객이 만나는 학교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릿세이 시네마에서는 상영작의 감독이나 배우를 초청해 관객과의 대화를 정기적으로 열었고, 시네마 칼리지 수강생들이 직접 단편 영화를 만들어 발표하는 자리도 마련되었다. 즉, 영화를 보고, 배우고, 직접 만들어보는 일련의 과정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러한 철학 덕분에 릿세이 시네마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러 간다’는 행위 전체가 하나의 문화적 체험이 되도록 하는 특별한 장소로 성장했다. 또한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는 지역 밀착형 운영을 지향했다. 상영 프로그램은 교토 국제학생영화제 등 지역 영화행사와 연계되기도 했고, 극장 로비에는 인근 서점이나 예술가들의 소규모 전시도 열렸다. 인근에 거주하는 시니어 관객을 위해 평일 낮시간 상영을 늘리고, 학생 관객에겐 할인과 회원제 혜택을 제공하여 저변을 넓혔다. 이런 노력으로 릿세이 시네마는 교토 도심의 예술영화 사랑방 역할을 수행했고, 오래된 학교 건물의 향수를 느끼려는 원로 졸업생부터 영화 공부를 하러 오는 젊은 학생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교류하는 공간이 되었다. 졸업생 출신 어르신들은 옛 교정을 찾아와 극장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며 옛 추억을 나누기도 했고, 이로 인해 “졸업생들이 언제든 찾아와도 환영받는 장소”로 거듭났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처럼 시마 토시키와 시마필름이 이끈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는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문화운동이었다. 상업적인 이익보다는 교토라는 도시가 지닌 영화사의 뿌리를 되살리고 새로운 세대와 연결하는 데 방점을 찍었으며, 이는 일본의 미니시어터 운동의 모범적인 사례로 회자되었다.

2017년,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교토시가 오랜 기간 공백지로 남겨두었던 옛 릿세이 소학교 건물 부지의 민간 개발을 본격 추진하게 되면서, 더 이상 그곳에서의 영화관 운영을 지속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교토시는 2016년부터 이 부지 활용을 위한 사업 제안 공모에 착수했고, 2017년 초 민간 사업자에게 건물을 장기 임대하여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애초에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예고된 일정이기도 했다. 타나카 세이이치는 “원래 한시적 조건으로 사용해온 공간”이었음을 언급하며, 2017년도 말까지 건물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밝혔다. 시네마 프로젝트 측은 교토시에 대체 공간을 알아봐 줄 것을 요청했지만 “마땅한 답을 얻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결국 2017년 7월, 릿세이 시네마는 건물 리노베이션 공사 일정에 맞춰 영업 종료를 결정하게 된다. 릿세이 시네마 폐관 소식은 지역 영화 팬들과 문화계에 큰 아쉬움을 불러일으켰다. 90년 가까이 된 역사적 교사에서 운영되던 “영화 발상지의 작은 극장”이 사라진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2017년 6월 중순 공식 발표된 폐관 소식에 이어, 7월 한 달간은 “릿세이 시네마 라스트 런”이라는 특별 프로그램이 편성되었다. 마지막 달에는 지금까지 릿세이 시네마가 사랑받았던 작품들을 다시 스크린에 걸었다. 또한 7월 22일부터 폐관 당일까지 일주일간 “릿세이 시네마 라스트 흥행 특별주간”을 열어, 인기 일본 독립영화 감독 작품이나 음악 다큐멘터리 등을 앙코르로 상영했다. 관객들은 폐관을 앞둔 극장의 정취를 느끼며 마지막 상영작들을 관람했고, 일부 상영은 매진 사례를 이루기도 했다. 폐관 당일인 2017년 7월 30일에는 마지막 상영으로 애니메이션 ‘이 세상의 한구석에 (가장 장기 흥행했던 영화)’가 상연된 후, 관객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관객들은 교실 3층에 마련된 작은 상영관에서 마지막 영화를 보고 나오며 서로 사진을 찍고, 일부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상영관 입구에는 단골 관객들이 손수 만든 응원 메시지와 “다시 만나요!”라는 문구가 붙어 있어 새로운 극장에서의 재회를 기약하기도 했다. 지역 언론은 “교토의 폐교 시네마, 재개발로 문닫아…‘영화 발상지’ 90년 건물에 막 내려”라는 제목으로 이 소식을 전하며, 많은 시민들이 가진 아쉬움과 동시에 새로운 장소로 이어질 계획에 대한 기대를 함께 보도했다. 한편, 릿세이 시네마 팀은 완전히 좌절하지 않고 “계속 상영을 이어나갈 새로운 거점”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타나카와 시마 토시키 사장은 폐관을 결정하면서 동시에 “릿세이 소학교 교정에서 키운 정신을 이어, 새로운 땅에서 문화를 계속 발신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폐관 발표와 동시에 새로운 극장 건립 계획이 언급되었고, 폐관 이후 석 달 뒤에 열릴 행사의 예고도 나왔다. 2017년 10월에는 옛 릿세이 학교 건물에서 마지막 작별 행사로 “고마워요 릿세이”라는 이름의 복합 이벤트가 3일간 개최되었다. 이 행사에는 그동안 릿세이 시네마를 거쳐 간 많은 영화인들과 관객들이 모여 폐교 건물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는 비록 장소는 잃었지만 공동체로서의 유대와 열정은 오히려 재확인되었다. 지역 주민들과 영화 팬들은 “새로운 극장이 문을 열 때까지 함께 돕자”는 의지를 다지며 프로젝트 팀을 응원했다. 참고로, 옛 릿세이 소학교 건물은 이후 민간 개발사인 휴릭이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여, 외관은 보존하고 내부를 개수한 복합 문화시설 “릿세이 가든 휴릭 교토”로 2020년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 시설에는 호텔과 지역 도서관, 작은 이벤트 홀 등이 들어섰다. 옛 학교의 역사적 일부는 건물 내에 전시되어 있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 그 자리에서 영화관은 운영되지 않는다.

릿세이 시네마가 문을 닫기 전부터, 시마필름과 운영팀은 새로운 대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교토시의 지원 없이 완전 민간 주도로 새로운 영화관을 설립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2017년 당시에 새로운 독립영화관을 신설한다는 것은 재정적으로 큰 모험이었다. 적당한 장소를 구하는 것부터 자금 마련까지 넘어서야 할 산이 많았다. 특히 재정 측면에서, 시마 토시키 대표와 타나카 세이이치는 “이 시대에 새로운 극장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큰 리스크지만, 영화인으로서 승부를 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이들은 영화관을 지속하기 위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새 영화관 설립을 위한 자금 조달 방법으로 선택된 것은 클라우드펀딩이었다. 타나카 세이이치는 애초에 클라우드펀딩에 회의적이었지만, “문화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 자체를 공유하려면 이만한 방법이 없다”는 판단으로 실행을 결정했다고 한다. 2017년 6월 중순, 릿세이 시네마 폐관 발표와 거의 동시에 온라인 플랫폼 모션 갤러리를 통해 “새 극장 설립 후원회원 모집”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목표 금액은 300만 엔으로 책정되었는데, 이는 극장 설립에 필요한 예산 전체라기보다 새로운 공간을 “함께 만들어갈 협력자를 모신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실제 소개 문구에서도 “목표액에 못 미치더라도 자체 자금으로 새 극장은 오픈할 것이지만, 우리의 뜻에 공감해 이 장소를 함께 꾸려나갈 협력자를 모으기 위한 크라우드펀딩”이라고 명시했다. 모금 캠페인은 2017년 6월~8월 약 두 달간 진행되었다. 그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 목표했던 금액의 3배를 넘는 약 900만엔이 모였고, 총 724명의 후원자가 참여하였다. 이는 교토 지역의 영화팬들뿐 아니라 일본 전국의 미니시어터 애호가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깊이 공감했다는 증거였다. 캠페인 초반에 목표액 300만 엔은 시작 하루만에 돌파되었고, 이후로도 지원이 쇄도하여 최종적으로 목표의 300% 이상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모션 갤러리측에서도 “극장 설립 관련 프로젝트로는 이례적인 규모의 성원”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동안 릿세이 시네마를 사랑했던 관객들은 물론, 직접 가보지 못했던 타지의 영화팬들까지 “영화관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취지에 감동하여 지갑을 열었다. 클라우드펀딩에는 여러 단체와 개인이 다양한 형태로 참여하였다. 우선 가장 중심이 된 것은 시마필름과 릿세이 시네마 운영진으로 구성된 “데마치자 설립 준비위원회”였다. 이들은 온라인 홍보 영상과 상세 계획안을 공개하여 신뢰를 얻었고, 보상으로 제공되는 회원권, 영화 관람권, 굿즈도 알차게 구성했다. 한편, 지역 상권인 데마치야나기 마스가타 상점가 측도 협력했다. 새 극장이 들어설 상점가에서 전단지를 비치하고, 조합원들에게 취지를 설명하여 지역주민들도 작은 금액이라도 후원에 동참하도록 독려했다. 또한 교토 출신의 영화감독이나 배우, 문화예술인들도 SNS 등을 통해 이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이를 통해 영화계를 넘어 지역 전체가 함께 만드는 극장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릿세이 시네마 시절부터 꾸준히 인연을 맺어온 교토 문화박물관 등 도 새 극장이 생기면 협력 행사를 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다양한 연대가 이뤄졌다. 이렇게 모인 자금은 새 극장의 극장용 좌석 구입, 영사기 및 음향설비 설치, 내부 인테리어 공사 등에 소중히 사용되었다. 실제로 데마치자의 극장 좌석은 도쿄의 한 폐관한 영화관으로부터 저렴하게 양도받아 운송・설치했는데, 이 또한 예산을 절약하면서 영화인들의 연대를 보여주는 일화로 회자된다. 아무튼, 2017년 여름 진행된 클라우드펀딩은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통해 릿세이 시네마 팀은 재정적 기반과 더불어 “이 극장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라는 공동체 의식을 얻을 수 있었다. 후원자 명단은 이후 데마치자 극장 로비 벽면에 Special Thanks 형태로 게시되어, 극장을 방문하는 이들이 함께 이루어낸 공간임을 기념하고 있다. 또한 이 경험은 일본의 다른 지역 미니시어터들에게도 귀감이 되어, 이후 여러 극장이 클라우드펀딩을 통해 관객들과 연대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과 성원에 힘입어, 새로운 문화공간 데마치자”가 마침내 문을 열었다. 2017년 12월 18일, 교토시 카모가와델타 부근의 조용한 상점가 한 모퉁이에 개관하였다. 장소는 교토 시내 데마치 마스가타 상점가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지상 3층・지하 1층 규모의 건물이었다. 참고로, 영화관의 이름인 데마치자는 한자로 出町座인데 그대로 읽으면 출정자이다. 앞의 출정은 나가는 동네라는 뜻이고 뒤의 자는 극장, 좌석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이 동네의 위치가 카모강 상류에 물줄기가 갈라지는 곳이라 교토 북부로 나가는 마지막 동네여셔었던듯 하다. 아무튼 과거에 약국으로 쓰이던 오래된 빌딩을 개조하여, 1층에는 카페 겸 서점, 지하 1층과 지상 2층에는 소형 영화관, 그리고 지상 3층에는 강좌나 전시를 열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꾸몄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에는 각각 42석과 48석 규모의 상영관이 자리하고 있다. 좌석 수는 릿세이 시네마 시절과 비슷하지만, 천장고와 화면 크기는 조금 더 확보되었다. 2층 상영관은 세로로 긴 구조라서 뒷열 좌석 높이를 더 높게 설계했고, 지하 1층 상영관은 비교적 가로로 폭이 넓다. 두 상영관 모두 최신 디지털 영사 시스템과 5.1채널 서라운드 음향을 갖추고 있어, 비록 소형 극장이지만 상영 환경은 뛰어난 편이다. 한편으로 8mm, 16mm 필름 영사기도 구비해 두어, 영화제가 있을 때 필름 상영도 가능하도록 했다. 상영관 내부에는 릿세이 시네마 시절 찍어둔 흑백 사진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낡은 학교 복도의 모습과 가득 찬 관객들의 모습이 담긴 이 사진들은 새로운 공간에도 과거의 추억을 이어주는 상징이 되고 있다. 상영 프로그램은 하루 10편 내외의 다양한 작품들이 교차 상영되는 형태다. 일본 최신 독립영화나 예술성이 높은 해외 영화, 지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등 멀티플렉스에서 보기 힘든 양질의 영화들이 주로 걸린다. 동시에 유명 클래식 영화 회고전이나 애니메이션 특별전처럼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기획들도 자주 열어 다양한 관객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예매는 현장 발권기에서 좌석지정권을 뽑는 아날로그 방식과 온라인 예약을 병행하는데, 좌석 수가 적어 인기 상영은 빨리 매진되므로 관객들은 부지런히 스케줄을 체크하곤 한다. 데마치자 개관 첫날 첫 상영작으로는, 루미에르 형제가 촬영한 단편들을 묶은 다큐멘터리 ‘뤼미에르!’가 상영되었다. 이는 일본 영화의 아버지인 이케하타 가쓰타로가 루미에르 시네마토그래프를 선보였던 역사를 기념하며 선정한 개관작이었다. 개관 첫 회는 만석을 이뤘고, 교토 문화박물관 영화부장인 모리와키 씨가 상영 전에 나와 “영화 발상지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남겼다. 3층은 시네마 칼리지 교토의 교실 및 다목적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릿세이 시네마 때 시작된 시네마 칼리지 프로그램은 지금도 이어져, 이 3층 공간에서 강의나 워크숍을 연다. 또한 독립영화 제작 발표회, 동네 예술가들의 소규모 전시, 북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문화 살롱 역할도 한다. 일반 관객들도 참여할 수 있는 영화 관련 강연이나 북클럽 모임도 정기적으로 열려, 데마치자는 영화를 매개로 한 지역 커뮤니티 허브로 기능하고 있다.

극장의 운영은 시마필름 주도로 이루어지지만, 단순한 영리기업 형태가 아닌 지역 협동조합적 색채를 띠고 있다. 앞서 모집한 클라우드펀딩 후원자들 중 일부는 “데마치자 설립준비 서포터 회원”으로 등록되어 극장 운영에 자문을 하거나 홍보를 돕고 있다. 예를 들어 프로그램 편성에 관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임을 갖기도 하고, 지역 대학 영화동아리와 협력하여 특별 상영을 마련하기도 한다. 상영관 안내, 굿즈 개발 등에도 자원봉사 형태로 참여하는 지역민들이 있어, 모두가 주인인 극장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개방적 운영 덕분에 극장은 개관 이후 단순한 “영화 상영 공간”을 넘어 동네 사랑방이자 문화발신지로서 자리매김했다. 상점가 상인들은 극장에 들르는 젊은 손님들로 거리에 활기가 돌았다며 환영했고, 카페에 책을 보러 오는 주민들과 영화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새로운 교류의 장이 만들어졌다. 교토 릿세이 소학교에서 시작되어 데마치자로 이어진 이 모든 과정은, 단순히 한 극장의 흥망사가 아니다. 이는 지역 영화문화운동의 한 줄기로서, 과거와 현재를 잇고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의미 있는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지역 공동체의 측면에서 볼 때도, 이 움직임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도심 재개발 압력 속에서도 주민들은 스스로 문화공간을 가꾸어 나갔고, 이는 관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 마을만들기의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릿세이 시네마가 폐관 위기에 몰렸을 때 시민들이 발벗고 나서 자금을 모으고 새 터전을 마련한 과정은, 풀뿌리 문화 운동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시민 참여형 모델은 이후 일본 각지의 미니시어터가 경제적 어려움이나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벤치마킹할 선례가 되었다. 실제로 코로나로 미니시어터들이 고사 위기일 때, 극장 역시 “데마치자 미래권”이라는 이름의 두 번째 클라우드펀딩을 실시하여 약 1500명의 참여로 약 350만 엔을 모은 바 있다. 이는 지역 관객들이 “우리의 극장”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따. 또한 이 일련의 과정은 영화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재발견하게 했다. 멀티플렉스이 대형 자본과 최신 시설로 무장한 편안한 관람환경을 제공하는 반면, 데마치자와 같은 공간은 영화 관람 행위 그 자체의 문화적 의미를 부각시킨다. 타나카 세이이치의 말처럼 “영화를 보러가는 행위 전체를 포함한 영화 체험의 장”을 만들어냄으로써, 관객들은 영화를 매개로 서로 소통하고 추억을 공유하며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오프라인 문화 공동체의 부활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데마치자에 가면,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이 1층 카페에서 자연스레 토론을 하거나, 서점 코너에서 방금 본 영화의 원작 소설을 찾아 읽어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떤 관객에게는 상점가를 지나 극장에 들어가는 일상의 산책로가 생겼고, 어떤 지역 어린이에게는 데마치자에 걸린 영화 포스터들이 예술적 영감을 주는 “거리의 미술관”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한 작은 극장이 만들어내는 파급효과는, 지역 문화생태계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아무튼 교토 릿세이 소학교에서 시작되어 릿세이 시네마 프로젝트를 거쳐 데마치자에 이르는 이야기는 과거의 유산을 현재의 활력으로 승화시킨 지역 영화문화운동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1897년 일본 최초의 영화가 비춰진 그 자리에서 싹튼 영화 사랑이 120여 년의 시간을 넘어 현재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이 운동을 통해 한때 잊혔던 공간은 부활했고, 새로운 문화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일본 영화 문화는 풀뿌리 수준에서 든든한 지지 기반을 얻었다. 교토 시민들은 물론 전국의 영화 애호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데마치자는 이제 단순한 극장을 넘어, 영화가 예술이고 삶이며 공동체임을 증명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릿세이-데마치자의 여정은 지역 문화가 어떻게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희망찬 사례이며, “영화의 도시” 교토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밝은 등불이라고 하겠다.

홍상수와 김민희

홍상수는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여러 인물의 시선을 교차시키며 서사를 전개했고 , <강원도의 힘>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평행 서사를 통해 우연과 운명의 아이러니를 그렸다. <오! 수정>은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에 동일한 사건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여 보여주는 파격적인 실험을 선보였으며, 흑백 촬영과 챕터 구성을 통해 남녀 기억의 차이를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 등 2000년대 중반까지의 작품들에서도 남녀 관계의 미묘한 심리전과 남성의 자기모순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한편, 영화 안팎의 경계를 넘나드는 메타적 장치를 활용했다. 예를 들어 <극장전>에서는 영화 속 주인공이 극 중에서 본 영화 내용이 현실에 반복되는 영화-현실의 겹침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메타서사와 반복 구조는 홍상수가 서사를 구조적으로 쪼개고 재배치하는 데 관심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2000년대 후반의 작품들로 가면 <해변의 여인>, <밤과 낮>,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 <옥희의 영화> 등에서 조금씩 변화된 어조가 감지된다. 여전히 술자리에 모인 남녀의 어색한 대화와 관계의 암투가 이어지지만,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는 좀 더 느슨하고 일상적인 흐름이 나타난다. 후기 평론에 따르면, 홍상수 영화에는 세 가지 창작 단계가 있으며, 2000년대 후반은 두 번째 단계로서 “이야기를 던져놓고 그 속에 인물들을 살아가게 하는” 시기라고 평가된다. 즉, 이전처럼 뚜렷한 기승전결이나 메시지를 강조하기보다, 설정된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자율적으로 부딪치고 일상을 이어가도록 내버려두는 연출이 두드러진 것이다. 이 시기의 여성 캐릭터들은 초창기보다 한층 의뭉스러운 존재로 그려져 남성들을 당황시키곤 하지만, 여전히 이야기의 주도권은 남성 시점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남성들은 실수를 반복하고 잘못을 잊으며 자기합리화를 거듭하지만, 영화는 그런 모순조차 삶의 일부로 포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요컨대 김민희 배우와 만나기 전까지 홍상수의 영화세계는 남성 중심의 서사 속에서 반복되는 인간관계의 아이러니를 사실적으로 담아내되, 형식적으로는 분절과 반복의 구조를 통해 삶의 우연과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2015년 개봉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배우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의 첫 협업작으로, 홍상수 영화 특유의 이중 구조 서사를 가장 명쾌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이야기 자체는 중년 남성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 분)와 젊은 여성 화가 윤희정(김민희 분)이 하루 동안 만나 교감하는 단순한 내용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1부와 2부에서 거의 같은 시간대의 사건이 약간씩 다른 형태로 반복된다. 1부에서는 남성 감독의 나르시시즘과 거짓말로 인해 어긋난 만남이 그려지고, 2부에서는 미세한 변화들을 통해 두 사람이 진솔하게 소통하며 완전히 다른 결말로 나아간다. 이러한 반복변주서사 속에서 관객은 같은 대화와 행동의 미묘한 차이가 인물 관계의 향방을 어떻게 바꾸는지 지켜보게 된다. 특히 2부에서 윤희정 캐릭터의 반응과 태도는 1부와 대비되는데, 이를 통해 여성 캐릭터의 주체적인 선택이 서사의 결과를 바꾸는 힘을 지닌다는 점이 암시된다. 실제로 2부에서 윤희정은 자신의 그림에 대해 함 감독이 무례하게 평가하자 즉각 불쾌감을 드러내며 그를 꾸짖는데, 이 장면에서 두 인물은 보다 대등한 구도로 포착된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홍상수의 시선 변화를 예고하며, 김민희가 연기한 윤희정이라는 인물이 홍상수 영화 세계에 새로운 활력과 균형을 불어넣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홍상수 감독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로 처음 김민희를 주연으로 기용하며 자신의 영화적 실험에 새로운 파트너를 얻었다. 이 작품은 2015년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하고, 김민희에게 최우수여배우상을 안긴 바 있다. 영화는 앞서 언급한 이분법적 구조를 통해 동일한 만남의 두 가지 버전을 제시하는데, 김민희는 2부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연기로 캐릭터에 입체감을 부여했다. 1부에서 그녀가 보여준 소심하고 순응적인 태도는 2부에서 어느 정도의 데자뷰를 지닌 채 더 적극적이고 당당한 모습으로 변주된다. 이를 두고 평론가들은 김민희 배우가 관습적인 뮤즈나 피사체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서사의 균형을 조율하는 존재로 등장했다고 해석한다. 실제로 홍상수는 이 작품의 2부를 촬영할 때 1부 영상을 배우들에게 미리 보여주어, 배우들이 “다른 우주의 자기 캐릭터”를 의식하며 연기하도록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런 메타적 연기 과정에서도 김민희는 미묘한 표정 변화와 대사 톤의 차이를 통해 동일인물의 다른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결과적으로 홍상수 영화에 새로운 챕터의 개막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되며, 김민희의 등장은 홍상수의 영화언어에 변화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

2016년경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 배우의 사적인 관계가 알려지면서 두 사람의 협업은 더욱 긴밀해졌다. 김민희는 이후 홍상수의 작품에 연인 관계로 발전한 파트너이자 주요 배우로 지속 참여하게 된다. 이 시기에 홍상수 영화는 뚜렷한 변곡점을 맞이하는데, 영화평론가들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기점으로 홍상수의 영화가 “후기” 단계, 즉 “인물 속에 이야기가 살아가도록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이는 곧 영화의 서사가 캐릭터의 내면에 깊이 의존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2017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김민희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상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직설적이고도 내밀한 감정을 담은 작품으로 꼽힌다. 이 영화에서 홍상수는 처음으로 남성 예술가 캐릭터를 철저히 주변화하고, 극의 주체를 여성 캐릭터에게 완전히 이양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영화감독과의 불륜으로 상처받은 여배우 영희(김민희 분)가 고독과 자기성찰의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다룬다. 1부에서는 독일 함부르크에 머무르는 영희의 하루를 그리고, 2부에서는 한국 강릉으로 돌아온 그녀가 옛 연인과 재회하는 과정을 그린 2장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에서 홍상수는 기존 작품에서 거의 시도하지 않던 미학적 숏들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함부르크 공원의 잔디 언덕을 멀리서 잡은 익스트림 롱숏 장면에서는 화면 대부분을 채운 초록 언덕과 구성미 있는 구도가 등장하여, 그간 홍상수 영화의 건조한 화면에서는 볼 수 없던 회화적인 이미지를 연출했다. 또한 영희가 호숫가 다리 위에서 절을 한 직후 호수 수면에 비친 나무 그림자를 비추는 숏에서는 슈베르트의 낭만적인 음악까지 더해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이 펼쳐진다. 평론은 이를 두고 홍상수가 마침내 여성 주인공의 심리를 풍경과 미장센으로 형상화하는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이전까지는 실용적이고 건조한 화면 구성으로 일관했던 그의 스타일이 영희라는 여성 캐릭터의 주관적 정서를 담아내기 위해 미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특히 <밤의 해변에서 혼자> 2부 서두, 어두운 극장 안에서 영희가 혼자 영화를 보고 난 뒤 조명이 켜지는 장면은 약 2분간 지속되는 줌 아웃 숏으로 유명하다. 카메라는 영희의 얼굴을 응시하며 서서히 멀어지는데, 영희의 붉게 충혈된 눈망울은 현재와 과거, 현실과 기억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 이때 화면에 담긴 영희의 표정은 관객이 알지 못하는 그녀만의 내면의 시간을 짐작하게 하는데, 프랑스의 클레르 드니 감독은 “홍상수 영화에서 여성은 영화의 시간축과 같다. 여성들은 자기만의 시간의 흐름을 가지고 있으며, 메트로놈처럼 영화의 시간을 조율한다”고 평한 바 있다. 실제로 이 장면에서 영희가 극장을 박차고 나가는 순간이 바로 영화의 전환점이 되어 2부의 이야기가 본격화되는데, 이는 마치 여성 캐릭터의 선택이 영화의 시간적 진행을 추동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홍상수는 여성의 시선과 감정에 영화의 리듬을 맞추는 새로운 영화적 흐름을 만들어냈고, 김민희가 연기한 영희는 그 중심에서 영화 전체의 작동방식을 주조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홍상수는 2017년에만 김민희와 세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며 창작의 절정기를 보냈다. <그 후>는 흑백 영상으로 출판사 편집장(권해효 분)과 신입 여직원 아름(김민희 분)의 하루를 그린 작품으로, 코믹한 불륜소동극의 형태 속에 인물들의 도덕적 관조를 담았다. 이 작품에서 김민희가 연기한 아름은 억울한 오해와 폭력을 당하지만 끝내 조용한 성찰과 미소로 사건을 마무리짓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눈 내리는 날 택시 안에서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미소 짓는 아름의 얼굴은, 주변의 치정극을 잊은 채 고요한 정경처럼 화면에 남는다. 이는 이후 홍상수 영화에서 김민희가 맡은 캐릭터들이 점점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자체로 영화적 순간을 성립시키는 존재로 변화해감을 예고한다. 실제로 <그 후> 이후 비교적 형식적 실험이 돋보였던 <탑>이나 <물안에서>, <여행자의 필요> 등에서는 김민희의 출연 비중이 크게 줄거나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이는 홍상수 영화가 새로운 형식성을 모색할 때 김민희라는 존재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리고 마침내 <수유천>에서 김민희는 아예 “가만히 있기”에 이르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이 영화에서 그녀가 맡은 ‘전임’은 말 그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정적인 존재로,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에게 부여되던 보통의 임무와 감정적 사건들을 완전히 이탈해버린다. 영화 후반부 전임이 강변에 누워 있다가 천천히 일어서는 모습을 하늘을 향해 틸트업하는 숏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앞서 밤하늘의 달이나 대낮의 강물을 비추던 숏들과 병치되며 자연 속 정물 같은 인물로서의 전임을 부각시킨다. 결국 <수유천>의 전임(김민희 분)은 인간이라기보다 하나의 자연물에 가까운 존재, 말 그대로 화면 속 정물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처럼 김민희의 등장은 홍상수 영화에 새로운 여성 캐릭터상의 탄생을 알렸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캐릭터는 점차 말하고 행동하기보다는 존재 그 자체로서 영화의 한 요소가 되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김민희와의 협업 이후 홍상수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에는 몇 가지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났다. 우선 이야기의 중심축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동하면서, 서사를 이끌던 인물 간 권력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전통적으로 그의 영화에서 남성 예술가는 이야기를 주도하고 여성은 그에 반응하는 위치에 있었으나,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이후로는 여성 인물의 심리와 선택이 곧 이야기의 방향을 결정짓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도망친 여자>에서는 감희(김민희 분)가 남편을 잠시 떠나 세 명의 지인을 차례로 만나는데, 이 작품에는 남편 남성의 모습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감희의 시선과 대화만으로 영화가 진행되며, 그녀가 직접 겪거나 듣는 이야기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룬다. 이러한 여성 주인공의 단편적 에피소드 연결 방식은 과거 홍상수 작품들의 챕터 구성과 유사해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그 의미공간이 여성의 내면에 귀속된다는 차이가 있다. 또한 반복과 변주의 방식은 여전히 홍상수 영화의 핵심적 특징으로 남아 있지만, 그 쓰임새에는 변화가 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처럼 아예 한 영화 안에서 똑같은 사건을 반복시키는 극적인 형태도 있지만, 더 눈여겨볼 것은 여러 영화에 걸친 느슨한 변주다. 김민희와 작업한 영화들 속 그녀의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이름에 공통적으로 ‘~희’가 들어가기도 하고(희정, 영희, 아름, 만희, 감희 등) 각기 다른 영화의 여성 주인공들이 어딘가 닮은 모습으로 연속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평론가 이수향은 이러한 여성 인물들이 모두 <도망친 여자>라는 제목에 수렴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한다. 즉, 영화 안에서는 직접 언급되지 않지만 이들 여성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쳐 나온 주체이며, 각 영화는 일종의 “도망친 그녀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라는 질문에 답하는 이야기처럼 읽힌다는 것이다. 실제로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영희는 연인에게서 떠나온 후 자아를 탐색하고, <클레어의 카메라>의 만희는 해고당한 후 귀국하지 않고 외국 도시를 떠돌며, <도망친 여자>의 감희는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 없이 홀로 여행을 나선 설정이다. 이처럼 여러 작품에 걸쳐 반복되는 여성 캐릭터의 모티프는 홍상수 영화 세계에 연속성과 응집력을 부여하는 동시에, 각 작품마다 미묘한 변주의 차이를 감상하게 한다. 예를 들어 같은 김민희가 연기하지만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영희는 분노와 상처를 표출하는 인물인 반면, <도망친 여자>의 감희는 평온한 미소 뒤에 결핍을 감춘 듯한 인물이다. 이러한 성격과 톤의 변주를 통해 홍상수는 반복되는 테마 속에서도 다른 리듬과 정서를 창출하고 있다. 한편 형식적인 실험은 김민희 등장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클레어의 카메라>는 짧은 러닝타임 속에 시간순서가 뒤섞인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며, 칸 영화제라는 실제 공간에서 즉흥적으로 찍은 듯한 자유로운 구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풀잎들>은 특정 카페 공간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람들의 대화를 옴니버스처럼 엮었고, 김민희는 이 대화들을 관찰자 위치에서 지켜보는 역할을 맡아 메타적 장치로 기능한다. <인트로덕션>은 세 개의 단막으로 이루어진 단편적인 구성을 취해 과감한 생략과 여백의 미학을 선보였고, <탑>은 건물 층계를 올라갈 때마다 시간과 상황이 건너뛰는 독특한 구조로 중년 남성 감독의 삶의 단면들을 실험적으로 제시했다. 이렇듯 김민희와 함께 한 시기에도 홍상수는 내러티브의 변형과 파편화를 멈추지 않았지만, 그 초점은 캐릭터의 내적 진실에 맞춰져 있었다. 이야기 구조 자체보다 인물 간 대화의 미묘한 뉘앙스, 눈빛과 침묵이 주는 의미에 관객이 주목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근본에는 서사를 이끌던 동력이 남성의 행동에서 여성의 존재로 옮겨간 점이 자리하며, 결과적으로 그의 영화언어는 더욱 은유적이고 시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홍상수 영화의 촬영 및 연출 스타일은 김민희와 작업하면서 몇 가지 새로운 경향을 띠게 되었다. 우선 앞서 언급했듯이 일부 작품에서 미학적으로 인상적인 숏들이 도입되는 변화가 있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초록 언덕 롱숏이나 호수 풍경, <강변호텔>의 눈 덮인 강가를 담은 정경 등은 모두 자연과 풍경을 활용한 회화적 이미지들이다. 이는 기존 홍상수 영화의 건조하고 평면적인 미장센과 대비되며, 여성 주인공의 정서나 노년 시인의 고독 같은 테마를 시각화하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반면 카메라의 기본운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줌 인/줌 아웃을 적극 활용하고, 거의 흔들림 없는 고정 샷을 유지하는 스타일이 지속되었다. 다만 김민희 등장 이후 몇몇 영화에서는 롱테이크의 활용 빈도가 늘어나고, 편집을 최소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인물들이 식탁에 마주 앉아 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오랫동안 끊지 않고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배우들의 즉흥적 호흡과 미세한 연기 변주를 포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로 홍상수 감독은 촬영 당일 아침에 그날 찍을 분량의 대사를 써서 배우들에게 건네주는 독특한 즉흥식 연출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며, 소규모 스태프와 저해상도의 단일 카메라로 촬영하여 민첩하게 순간순간의 영감을 담아낸다. 이러한 날것 그대로의 제작방식은 작품에 솔직하고 친밀한 느낌을 주며, 배우들로 하여금 현장에서 탄생하는 생생한 연기를 펼치도록 유도한다. 김민희 역시 다수의 작품에 프로덕션 매니저으로 참여하며 현장 운영에 깊이 관여했는데, 이는 두 사람이 창작 전반을 협업하는 형태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자전적인 요소는 김민희의 등장 이후 홍상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가 되었다. 2016년 두 사람의 관계가 알려진 이후, 그 다음 작품인 <밤의 해변에서 혼자>부터는 영희 캐릭터에 감독과의 스캔들로 상처받은 여배우라는 설정을 부여하여 현실을 직접 투영했다. 극 중 영희가 술자리에서 “난 폭탄이에요!”라고 울분을 토하며 연인(극중 영화감독)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는 장면이나, 연인이 사람들 앞에서 머뭇거리며 해명하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홍상수-김민희 본인의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도발적인 자기반영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 후> 역시 저명한 출판사 편집장(홍상수의 페르소나로 읽히는 인물)과 아내, 그리고 새로운 여직원 사이의 오해와 갈등을 그리며 유부남의 불륜이라는 소재를 정면으로 다뤘다. 이러한 작품들은 일각에서 “홍상수가 영화로 자기변명을 한다”는 비판을 부르기도 했다. 실제로 어떤 관객들은 “영화 속 대사 하나하나가 홍상수 본인 이야기로 들린다”며 불편함을 표시했고, 홍상수 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작품과 삶의 긴밀한 상호작용이 오히려 홍상수 영화에 새로운 진정성을 부여했다고 평가한다. 감독 개인의 경험과 감정이 녹아든 캐릭터와 사건들은 지난 시간 홍상수라는 예술가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 삶과 예술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성찰하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홍상수의 최근 작품들을 보면 삶에서 직접 길어올린 소재들이 서사에 녹아 있으면서도, 그것을 무조건 미화하거나 감추지 않고 때로는 스스로를 풍자적으로 드러내는 솔직함이 느껴진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홍상수가 예술로 삶을 반추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자전적 소재를 보편적 정서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평한다. 결국 김민희와의 관계를 통해 촉발된 이러한 자전적 경향은 홍상수 영화의 주제 의식과 정서적 무게를 한층 깊게 만들었다.

김민희가 홍상수 영화에서 연기한 일련의 여성 캐릭터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리듬과 표현 양식을 창출해냈다. 우선 이들의 서사적 기능이 기존 여성 캐릭터와 확연히 달랐다. 예전 홍상수 영화의 여성들이 대체로 남성 주인공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나, 남성들의 행동을 촉발하는 계기로 소비된 면이 있었다면, 김민희의 캐릭터들은 자신만의 욕망과 혼란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서사의 중심 축을 담당한다. 이는 곧 영화의 리듬감과 시선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남성 인물들이 주도할 때는 술김에 튀어나오는 충동적 사건이나 소동 위주로 산만하고 격하게 흘러가던 이야기들이, 김민희 캐릭터가 중심이 되면 보다 차분하고 내면적인 템포로 진행된다. 그녀의 캐릭터들은 대개 많이 말하기보다 관찰하고 반응하는 시간을 갖는데, 이러한 침묵과 여백의 순간들이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앞서 언급한 극장 장면에서처럼, 카메라는 그녀의 정지된 얼굴에 오래 머무르며 감정의 파동이 잔잔히 퍼져나가도록 시간을 부여한다. 김민희의 존재감은 이렇게 영화의 메트로놈처럼 박자를 맞추고 호흡을 조절하는 효과를 내며, 이는 홍상수 영화 전반의 리듬 변화를 이끈 핵심 요소라 볼 수 있다. 동시에 김민희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독특한 표현 양식을 보여준다. 그녀는 극단적인 감정 표현에 의존하지 않고, 미세한 표정 변화와 눈빛, 말의 억양으로 캐릭터의 내면을 드러내는 연기 스타일을 선보여 왔다. 예를 들어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클라이맥스인 식사 장면에서, 영희는 옛 애인 앞에서 연민에서 분노로, 다시 냉소로 복잡하게 일렁이는 얼굴 표정을 보여준다. 카메라가 당겨지자 드러나는 그녀의 얼굴은 방금 전까지 눈물을 머금다 이내 냉정한 웃음을 띠는 등 복합적인 감정의 층위를 한 화면 안에서 구현해낸다. 이러한 연기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진실을 전달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의 내면을 추측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또한 김민희의 캐릭터들은 영화 속에서 사유하고 창조하는 주체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희정은 화가이고,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영희는 배우이며, <클레어의 카메라>의 만희는 사진을 찍는 인물이다. <풀잎들>에서 그녀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소설가의 영화>에서는 실제로 즉석에서 영화 만들기에 동참하는 배우로 그려진다. 이렇듯 예술 행위와 맞닿아 있는 캐릭터들은 홍상수 작품 세계에 메타적 색채를 더해준다. 김민희가 연기하는 여성들은 창작의 뮤즈임과 동시에 창작의 동반자로서 기능하고, 때로는 감독의 얼터에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결과 그녀들이 화면에 존재할 때, 영화는 더욱 자기반영적인 분위기를 띠며, 현실과 예술의 경계가 흐려지는 독특한 표현 양식이 형성된다. 이는 김민희의 캐릭터들이 영화 속에서 그저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에 그치지 않고, 현실의 김민희와 홍상수의 관계마저 어렴풋이 투영하는 이중적인 존재감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민희의 캐릭터들이 불어넣은 새로운 리듬과 표현은 홍상수 영화의 지속적인 진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녀가 등장한 이후 홍상수는 여성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영화적 어휘를 확장시켰으며, 그 결과 영화들은 더욱 섬세하고 내밀한 결을 지니게 되었다는 평가다. 여성 인물들이 고통의 자각 속에서 스스로를 성찰하며 윤리적 주체로 서게 된 것은 홍상수 영화에 도덕적 상징성과 깊이를 부여했고, 이는 스타일의 측면에서도 화면에 비치는 그녀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자연 풍경과 조응하는 시적 이미지가 되게 했다. 결국 김민희와 함께 한 시기 홍상수의 영화언어는 내러티브와 형식, 스타일과 주제의식 모든 면에서 중요한 변화를 맞이했다. 그것은 남성 중심에서 여성 중심으로의 시선 교정, 삶의 파편에서 시를 길어올리는 영화미학의 성숙, 그리고 현실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용기있는 자기 고백의 방향이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홍상수는 여전히 어제와 다른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임을 증명했고, 김민희라는 동반자와 함께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한층 더 풍부하고 다층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에드워드 양, 하나 그리고 둘

에드워드 양은 1980년대에 등장한 대만 뉴웨이브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사람이다. 1947년 타이베이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에서 공학을 공부하고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뒤늦게 감독의 길에 들어섰다. 1983년 옴니버스 영화 <해변의 하루>로 데뷔한 이후, <공포분자>, <타이페이 스토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등 현대 대만 사회를 깊이 있게 그린 작품들을 선보였다. 에드워드 양의 작품 세계는 도시 속 개인의 고독과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복잡한 도시 풍경 안에 인간 군상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긴 호흡의 정적인 미장센을 통해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동시대의 허우샤오시엔, 차이밍량 등과 함께 대만의 뉴웨이브 운동을 이끌며, 전통적인 멜로드라마 위주의 대만 영화계에 현실적이고 작가주의적인 바람을 불어넣었다. 에드워드 양은 2000년 작품 <하나 그리고 둘>을 마지막으로 비교적 이른 나이인 59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영화들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예술성과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다. <하나 그리고 둘>이 개봉한 2000년 무렵의 대만은 급격한 현대화와 도시화를 겪은 사회였다. 1980년대 이후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형성되고 타이베이 같은 도시에는 고층 아파트와 네온사인이 가득한 도시 풍경이 일상화되었다. 정치적으로는 1990년대에 접어들며 민주화와 다원화가 진행되어, 2000년에는 최초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 등 사회 전반에 변화의 물결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 그리고 둘>은 이러한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평범한 도시 중산층 가족의 일상 속에 스며든 변화를 포착한다. 당시 대만의 가족 구조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예컨대 이 영화의 주인공 가족처럼 3세대가 한 지붕 아래 사는 경우도 여전히 많았지만, 동시에 부부가 맞벌이를 하거나 청년들이 서구식 연애를 하는 등 새로운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대만 사회는 글로벌 경제와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청소년 문화도 빠르게 변모했다. 젊은 세대는 해외 영화와 음악, 최신 기술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효 문화나 공동체 의식도 남아 있어,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에 가치관 충돌과 세대차가 생겨나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나 그리고 둘>은 바로 이런 시대의 교차로에 선 대만 사회를 배경 삼아, 도시적 삶의 풍경과 그 이면의 가족 및 개인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타이베이에 사는 중산층 젠 가족의 삶을 담담하게 그린다. 이야기의 시작은 결혼식 장면이다. 가족의 가장 NJ와 아내 민민은 민민의 남동생 아디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있다. 겉보기엔 평범하고 단란해 보이는 이 결혼식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지는데, 아디의 옛 여자친구가 예식장에 들이닥쳐 과거의 상처를 토로하면서 시작부터 파란을 예고한다. 그날 밤 결혼식 뒤풀이에서 NJ는 우연히 첫사랑 셰리를 30년 만에 재회한다. 셰리는 이제 미국에 건너가 가정을 꾸렸지만 두 사람은 반가움과 묘한 긴장 속에 옛 추억을 나눈다. NJ는 그녀에게 연락처를 받고, 한때의 설렘과 현재의 책임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린다. 한편 집으로 돌아온 가족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닥친다. 함께 살고 있던 할머니가 그날 밤 뇌졸중으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가족들은 충격에 빠지고, 할머니는 병원에서 의식 없이 지내게 된다. 의사는 환자에게 매일 말을 걸어주라고 권하지만, 딸인 민민은 의식 없는 어머니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한다. 결국 민민은 깊은 우울감에 빠져 일상을 견디지 못하고 요양을 위한 절로 떠나 마음의 안식을 찾기로 한다. 이렇게 집을 비운 사이, 남편 NJ와 두 자녀는 각자 삶의 도전에 직면한다. NJ는 한편 회사에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가 몸담은 소프트웨어 회사는 경영난에 처해 일본 기업과의 사업 계약을 타진하는 중이다. 동료들은 신제품 개발을 위해 일본인 프로그래머 오타를 영입하려 하지만, 뒷거래와 눈속임을 일삼는다. 양심적이고 음악을 사랑하는 NJ는 회사의 부정한 관행에 염증을 느낀 상태다. 그는 통역을 맡아 타이베이에 온 오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뜻밖의 우정을 쌓는다. 두 사람은 세대와 국적을 뛰어넘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인생과 두려움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다. NJ는 오타와의 만남으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옛 연인 셰리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나 혼란스러워한다. 출장차 일본으로 간 NJ는 셰리와 재회하여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갖지만, 결국 가족 있는 자신의 현실로 돌아오는 길을 택한다. 그의 내면에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과 지금의 삶에 대한 책임감이 교차한다. NJ와 달리 이제 막 삶의 첫사랑과 좌절을 맛보는 이는 딸 팅팅(켈리 리 분)이다. 틴에이저인 그녀는 이웃에 사는 또래 친구 리리와 가깝게 지내는데, 리리의 개인사에 휘말리게 된다. 리리에게는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복잡한 관계로 잠시 헤어진 상태다. 리리가 다른 나이 많은 남자와 어울리는 사이, 팅팅과 팡즈는 우연히 서로에게 이끌려 풋풋한 교제를 시작한다. 처음 느껴보는 설렘에 가슴 뛰던 것도 잠시, 이 삼각관계는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치닫는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팡즈가 리리의 새 남자를 흉기로 해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팅팅은 충격과 죄책감에 휩싸인다. 사실 그녀는 할머니가 쓰러진 날 쓰레기를 내다놓지 않아 대신 할머니가 나갔다 변을 당했다고 자책해 왔는데, 이제 친구의 불행까지 목격하며 마음의 짐이 한층 무거워진다. 소녀는 혼자 번민하지만 속시원히 털어놓을 사람도, 집에 엄마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팅팅은 혼수상태의 할머니 곁을 지키며 눈물로 용서를 빈다. 할머니의 침묵 앞에서 그녀는 자신의 잘못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토해내며, 삶의 복잡함을 처음으로 마주한다. 한편 막내아들 양양의 눈에 비친 세상은 또 다르게 돌아간다. 8살인 양양은 호기심 많고 창의적인 아이지만 학교에서 종종 괴롭힘을 당한다. 짓궂은 여자아이들에게 물폭탄 세례를 받기도 하고, 반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양양은 특유의 천진함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대응한다. 그는 아빠의 낡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독특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의 피사체는 다름 아닌 사람들의 뒷모습이다. “왜 뒷모습을 찍니?”라는 물음에 양양은 천연덕스럽게 답한다. “앞에서는 보이지만 뒤에서는 안 보이니까요. 우리 눈에 보이는 건 반쪽뿐이라서요.” 양양은 사진으로 타인도 자신도 볼 수 없는 세계의 절반을 포착해내려 한다. 그의 엉뚱하지만 순수한 예술 행위는 영화 전반에 걸쳐 중요한 상징이 된다. 양양의 사진들은 가족에게 때론 웃음을, 때론 잔잔한 깨달음을 준다. 예컨대, 삼촌 아디에게 자신이 찍은 뒷모습 사진을 선물하며 “이제 형도 자기 등짝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은 관객에게 미소를 짓게 한다. 양양은 어린 나이에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며, 종종 영화의 현자 같은 역할을 한다. 이렇듯 NJ, 팅팅, 양양 각자의 에피소드가 병렬적으로 전개되며, 이야기는 결혼식으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난다. 여러 갈래의 사건들은 한 가족이라는 큰 흐름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교차된다. 영화 후반, 결국 할머니는 긴 혼수 상태에서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가족들은 슬픔 속에 장례식을 준비하며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미국에서 셰리도 조의를 표하러 오고, 절에 들어갔던 민민도 돌아온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 양양은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준비해 온 편지를 읽는다. 그는 맑은 목소리로 “할머니, 저는 앞만 볼 수 있어서 반쪽밖에 모르지만 이제 사진으로 다른 반쪽을 기억하게 됐어요. 할머니가 제게 보여준 것들을 감사해요…”라는 취지의 어린 마음을 전한다. 양양의 순수한 고백은 가족과 관객의 가슴을 울리며 영화는 잔잔하게 막을 내린다. 결혼식의 시작부터 장례식의 끝에 이르는 이 가족의 여정은, 우리의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을 한 편의 드라마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 한 폭의 그림 같다.

에드워드 양은 미장센과 카메라 워크, 편집, 사운드 모든 면에서 절제와 세밀함이 돋보이는 연출을 선보인다. <하나 그리고 둘>은 전체 러닝타임이 3시간에 달하지만, 빠른 전개나 화려한 기교 대신 차분한 롱테이크와 정적인 카메라로 일상의 디테일을 포착한다. 카메라는 대부분 삼각대에 고정된 채 인물들을 중거리 또는 원거리에서 응시하며, 팬이나 줌 같은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이러한 고정 롱숏 들은 관객이 마치 연극 무대를 바라보듯 인물들의 관계와 주변 환경을 한 프레임 안에서 관찰하게 만든다. 관객의 시선은 고요한 화면 속에서 자연스레 이리저리 움직이며 작은 변화에도 주목하게 된다. 예컨대 영화 초반 결혼식 장면을 보자. 한 집안의 경사로 북적이는 예식장 풍경이 한번의 롱테이크로 펼쳐진다. 실내에 설치된 카메라는 하객들의 움직임과 대화를 한눈에 담는데, 창문 밖으로는 신랑의 옛 애인이 소란을 피우는 모습까지 동시에 비친다. 이때 화면 앞쪽에서는 주인공 가족의 일원이 당혹스러워하고, 화면 너머 창밖에서는 과거와 얽힌 갈등이 벌어지며, 배경에는 웨딩 음악이 흐른다. 이러한 다층적 연출 속에서 관객은 어느 한 지점만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삶의 단편들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양 감독은 이렇게 한 장면 안에 복합적인 이야기를 병치함으로써, 인생사의 희비가 동시에 진행됨을 보여준다. 촬영 기법 면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반사와 투과를 활용한 이미지들이다. 에드워드 양은 유리창, 거울, 화면 속 화면과 같은 소재를 활용하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한 화면에 겹쳐 놓는다. 몇 가지 인상적인 숏을 예로 들어보자. NJ의 아내 민민이 남편에게 자신의 공허함과 우울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그녀는 거실 창문 옆에 서 있고 카메라는 실내를 비추고 있다. 이때 창밖의 도시 불빛과 창유리에 비친 민민의 실루엣이 겹쳐 보인다. 그녀의 얼굴은 어둑한 실내 그림자 속에 있고, 그 위로 바깥 세상의 네온사인이 일렁인다. 이 시각적 구성은 민민이 느끼는 정서적 고립과 단절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그녀는 가족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한 채 외로운 그림자로 서 있고, 도시는 여전히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다. 관객은 창문 너머로 겨우 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통해, 가족조차 그녀의 내면을 뚜렷이 헤아리지 못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팅팅이 첫 데이트를 하러 나가는 장면에서는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뒷모습과 문이 닫히며 사라지는 모습을 잡아낸다. 거울 속 소녀의 모습은 앞으로 펼쳐질 설렘과 불안을 암시하듯 희미하게 겹쳐지고, 복도의 불빛은 순간 어두워진다. 이렇게 반사의 기법은 영화 전반에 걸쳐 사용되며, 캐릭터의 심리와 주변 세계를 한 화면에 중첩시켜 복합적인 의미를 만들어낸다. 편집 역시 에드워드 양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하나 그리고 둘>은 각 인물의 에피소드가 교차 편집되면서도 유기적 연결성을 잃지 않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세대와 시공간을 뛰어넘는 편집적 대구이다. 예를 들어, NJ와 셰리가 도쿄 거리에서 옛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NJ는 셰리에게 “내가 처음으로 너의 손을 잡았을 때, 우리 영화 보러 가면서 철길 건널목에 있었지…”라고 말한다. 바로 그 순간 영화는 카ット 없이 타이베이의 거리로 장면을 전환하여, 마침 신호를 기다리던 딸 팅팅과 소년 팡즈가 손을 잡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도쿄의 과거 회상 장면으로 이어져, 젊은 시절 NJ와 셰리가 철로 앞에서 손을 맞잡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평행 몽타주를 통해 영화는 아버지와 딸, 과거와 현재의 두 세대의 첫사랑 순간을 교묘하게 포개 놓는다. 이러한 편집 기법은 삶의 경험이 세대를 넘어 반복되고 연결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관객은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유사한 감정의 교감을 한 흐름 속에서 느끼게 된다. 또한 이러한 편집은 영화의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는데, NJ와 팅팅이 겪는 사랑과 상실의 감정이 다르지 않음을 암시하며 인생의 순환을 깨닫게 한다. 음향과 음악 측면에서는, 양 감독의 부인인 펑카이리(彭鎧立)가 작곡한 잔잔한 오케스트라 음악이 영화에 깔린다. 하지만 음악은 필요할 때에만 절제되어 등장하며, 상당 부분은 생활 소음과 침묵으로 채워진다. 예컨대 가족이 일상을 보내는 아파트 장면에서는 도시의 희미한 소음, 바람 소리, 시계 초침 소리 같은 배경음만 들릴 뿐 별도의 스코어가 깔리지 않는다. 이는 마치 현실의 한 단면을 그대로 도청하는 느낌을 주어, 영화의 사실감을 높여준다. 관객은 인물들의 대사와 표정, 정적인 순간에 더욱 집중하게 되며, 조용한 일상 속 긴장과 여운을 음미할 수 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마다 흐르는 음악은 탁월한 정서적 효과를 낸다. 예를 들어 NJ와 셰리가 재회하는 호텔 바 장면에서 피아노 선율이 잔잔히 흐르고, 오타와 NJ가 술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치며 옛 노래를 공유하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의 우정과 향수가 음악으로 표현된다. 또한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장례식 장면에서는 거의 무음에 가까운 정적이 이어지다가, 양양의 편지 낭독이 끝난 후 조용한 현악기가 배경에 흐르며 관객의 감정을 한층 고양시킨다. 이렇게 소리의 빈칸과 음악의 배열은 영화의 리듬을 형성하고, 마치 “하나, 그리고 둘…” 하고 삶의 박자를 세어주듯이 관객을 감정의 파동으로 안내한다. 에드워드 양의 연출 의도는 영화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숏 바이 숏으로 삶의 단면을 포착하여, 그 조각들을 모아 인생의 초상화를 그리는 듯한 접근을 취했다. 전체적으로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 인물의 감정을 과장되게 밀어붙이는 일은 드물다. 대신 거리를 둔 관찰자적 시선으로 인물들을 보여주며, 그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공기를 관객이 느끼도록 만든다. 이는 인물들의 내면을 오히려 더 진솔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낳는다. 배우들의 연기도 절제되어 있어, 폭발적인 눈물이나 격정적인 대사 대신 일상의 작은 제스처와 표정 변화로 감정을 표현한다. 이러한 현실감 있는 연출 속에서 관객은 마치 훔쳐보는 듯한 친밀함을 느끼게 되고, 자기 삶의 이웃을 들여다보는 듯한 공감을 얻게 된다. 또한 영화 전반에 깔린 명상적인 템포는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시간을 준다. 에드워드 양은 인터뷰에서 “영화는 관객이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거울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실제로 <하나 그리고 둘>의 시각적 구성은 군더더기를 덜어낸 거울처럼 맑고 투명하여, 거기 비친 가족의 모습에 관객 각자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해볼 수 있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양양의 얼굴을 담는 클로즈업 숏은 거의 세 시간 동안 한 발짝 떨어져 있던 카메라가 드물게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이다. 이때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망울과 목소리가 화면을 가득 채우며, 앞서 차곡차곡 쌓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관객에게 벅찬 울림을 준다. 이는 양 감독이 끝내 전달하고자 한 인생에 대한 애정과 연민의 정서가 절정에 달하는 장면으로, 기술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대단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하나 그리고 둘>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대만 사회와 문화, 더 나아가 인간 보편의 주제들을 심도 있게 형상화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우선 이 영화는 도시화된 대만 사회의 초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대도시 타이베이의 빌딩 숲 속에 살면서 각자 고립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급격한 현대화로 인한 도시인의 소외감과 정체성 혼란을 반영한다. NJ는 글로벌 자본과 기술 경쟁의 시대에 직업적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그의 딸은 현대적 연애 풍속과 전통적 가치관의 충돌 속에서 상처받는다. 아들 양양은 정보와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지만 정작 본질을 보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들은 2000년대 대만뿐 아니라 세계 모든 도시인들의 보편적 고민이기도 하다. 실제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특정 민족성보다 세계화된 도시 생활의 보편성을 담아내고자 했고, 그래서 대만인이 아닌 관객도 이 가족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영화는 현대성이라는 주제를 가족의 일상 속에 녹여내는데, 첨단기술과 경제 발전이 인간에게 풍요와 편의를 주었지만 역설적으로 영혼의 공허도 안겨주었다는 통찰을 제시한다. 민민이 겪는 공황과 우울, NJ의 허무함은 모두 잘 사는 도시인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다. 영화는 이를 과장 없이 담담히 보여주면서, 현대를 사는 우리가 직면한 실존적 문제를 성찰하게 만든다. 또한 작품은 가족과 개인의 관계를 다루며 전통적인 가족관과 새로운 개인주의 사이의 긴장을 포착한다. 젠 가족은 세대가 다른 구성원들이 한 지붕 아래 살지만, 정작 서로의 속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 할머니는 물리적으로는 가족의 중심에 존재했으나 끝내 말 한마디 없이 떠나고, 남은 이들은 각자 그녀에게 더 해주지 못한 말을 후회한다. 이는 가족 내 소통의 부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내 민민은 헌신적으로 가정을 꾸려왔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공허를 느끼게 되는데, 이는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서의 여성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녀가 한동안 집을 떠나 자기 마음을 추스르는 과정은, 희생을 요구받던 전통적 여성상이 현대사회에서 겪는 정신적 위기와 치유의 필요성을 암시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영화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읽을 수도 있다. 민민의 목소리가 가족에게 쉽게 닿지 않고, 그녀가 집을 비운 동안에도 큰 갈등 없이 일상이 돌아가는 듯 보이는 것은, 가족 내에서 그녀의 존재가 얼마나 당연시되고 투명하게 취급되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결국 가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다시 말없이 돌아와 제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현실 속 많은 어머니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을 떠올리게 해 뭉클한 여운을 준다. 한편, 포스트식민주의적 맥락에서도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에는 일본인 캐릭터 오타가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고, NJ와 깊은 우정을 나눈다. 일본은 과거 대만을 식민 지배했던 역사가 있지만, 영화 속에서 둘은 철저히 개인 대 개인으로서 만나 서로의 고독을 이해하는 친구가 된다. NJ와 오타가 함께 술을 마시며 음악을 공유하고 인생을 논하는 장면은, 과거의 식민-피식민 관계를 넘어 현대 아시아인들의 연대와 교류를 보여준다. 이는 탈식민 시대 대만의 정체성 변화와도 연결된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세계의 일원으로 나아가는 대만 사회에서, 외국인(일본인)과의 솔직한 소통은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NJ의 옛 연인 셰리가 미국으로 이민 가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설정이나, 딸 팅팅의 친구가 영어 선생과 관계를 맺는 에피소드 등은, 대만인의 삶이 더 이상 섬 내부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문화와 뒤얽혀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요소들은 대만 영화가 전통적 민족 서사에서 벗어나 초국적 정체성을 모색하는 움직임과 궤를 같이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빛나는 지점은 성장과 죽음이라는 삶의 보편적 주제를 깊이 있으면서도 담백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영화는 인생의 여러 단계를 한 가족 안에 배치하여 삶의 순환을 보여준다. 어린 양양의 천진함, 청소년 팅팅의 혼란과 첫사랑, 중년 NJ의 후회와 책임, 노년 할머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스펙트럼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여기에는 인생의 특별한 영웅담이나 극적인 계기가 없다. 그 대신 “사는 게 다 그런 것”이라는 담담한 진리가 흐른다. 영화는 인물들에게 친절한 구원이나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예컨대 할머니는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NJ의 사업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며, 팅팅의 첫사랑은 쓰라린 이별로 끝난다. <하나 그리고 둘>은 우리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억지로 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이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본모습을 솔직하게 마주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주는 감흥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비극과 행복, 상실과 성장이 동전의 양면처럼 얽혀있는 것이 인생임을 보여주고, 그런 삶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영화 제목 “<하나 그리고 둘>” 자체가 삶의 리듬을 은유한다. ‘하나, 그리고 둘…’은 음악을 시작하기 전에 박자를 세는 구호이기도 하다. 인생의 기쁜 일(결혼식)과 슬픈 일(장례식)이 차례로 찾아오는 모습은 인생이라는 긴 음악의 박자처럼 느껴진다. 각각의 사건이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드라마틱한 구성은 아니지만, 일상의 자잘한 희비가 모여 인생 교향곡을 이룬다는 사실을 영화는 조용히 들려준다. 이런 점에서 <하나 그리고 둘>은 거창한 담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삶과 죽음, 가족과 세대, 개인의 성장과 상실에 대한 깊은 철학적 울림을 전하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특별함은 세대를 아우르는 따뜻한 시선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에드워드 양은 당시 50대의 나이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중년의 통찰을 담아 부모 세대의 고뇌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고 동일한 무게로 다루었다. 영화 속 NJ의 회한 어린 눈빛과 팅팅의 눈물 어린 표정 모두에 감독은 깊은 공감을 보내는 듯하다. 이는 이 작품이 단순히 중년 남성의 회고담이나 청춘 드라마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대의 삶을 공평하게 조명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균형 잡힌 시선 덕분에 관객 또한 자기 연령과 관계없이 모든 인물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다.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장면에서 어린아이부터 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슬픔과 깨달음에 잠기는 모습은, 인생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군상극이다. 결국 <하나 그리고 둘>은 특별한 영웅 없는 평범한 가족사를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낸, 현대 영화의 한 소우주라고 평할 만하다.

이만희, 휴일

1960년대 후반 한국사회는 경제개발과 냉전 이데올로기가 교차하는 엄혹한 시기였다. 박정희 군사정권 하의 영화 검열은 극심하여, 사회 비판이나 어두운 주제를 다룬 영화는 개봉조차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만희 감독은 상업성과 예술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로 독자적 입지를 굳혔다. 그는 1961년 데뷔 이후 15년간 5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주요 감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는 “끊임없이 실험을 시도”하는 혁신적 감각으로, 당대의 여타 감독들과 차별화된 영화미학을 구축했다. <휴일>은 이만희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가장 실험적이고 대담한 작품으로 꼽힌다. 1968년 제작된 이 영화는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당시엔 상영이 보류되었고, 필름마저 창고에 묻혀 오랫동안 잊혀졌다. 실제로 검열 당국은 이 영화의 비관적 결말을 문제 삼아, 주인공 남성이 머리를 깎고 군대에 입대하는 내용으로 끝부분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감독과 작가, 제작자는 이에 타협하지 않았다. 결국 영화는 공개되지 못한 채 봉인되었고, 37년이 지난 2005년에야 영상자료원에서 필름이 기적처럼 발견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복원 공개를 계기로 이만희 감독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휴일>은 한국 영화사에 숨겨져 있던 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휴일>의 이야기는 일요일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담담히 따라간다. 실직 중이라 “매일이 휴일”이나 다름없는 남자 허욱(신성일 분)은 추운 겨울날 애인 지연(전지연 분)을 만나러 나선다. 두 사람은 가난 탓에 다방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거리에서 마주 서서 서로의 처지를 확인한다. 지연은 자신이 임신했음을 고백하고, 둘은 경제적 형편상 낙태를 결심한다.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허욱은 수술비를 마련하고자 여기저기 친구들을 찾아다니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궁지에 몰린 그는 마침내 형편이 그나마 나은 한 친구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달아나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허욱은 훔친 돈으로 지연을 데리고 병원을 찾지만, 휴일이라 병원마다 문이 닫혀 수술을 받지 못한다. 간신히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마침내 지연은 수술대에 눕게 되고, 허욱은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며 불안에 사로잡힌다. 기다림의 긴장 속에서 허욱은 병원을 뛰쳐나와 거리로 향한다. 그는 근처 술집에 들어가 양주를 들이키며 현실도피를 하고, 우연히 만난 낯선 여자와 함께 방탕한 시간을 보낸다. 둘은 연신 술을 마시고 거리를 방황하다, 공사장 한구석에서 충동적으로 육체적 관계를 맺으려 한다. 바로 그때 울려 퍼지는 교회의 종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허욱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각하고 황급히 병원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지연은 수술 중 과다출혈로 사망하고 만다. 허욱은 싸늘한 연인의 시신 앞에서 절망에 빠지고, 죄책감과 허무함을 안은 채 병원을 나온다. 어둑해진 일요일 밤, 허욱은 추운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다 끊겨버린 전차 철로 앞에 멈춰 선다. 그는 삶의 막다른 골목에 선 듯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서울, 남산, 전차, 술집 주인 아저씨, 하숙집 아줌마, 일요일… 내가 사랑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어… 이제 곧 날이 밝겠지. 거리로 나갈까. 사람들을 만날까. 커피를 마실까. 머리부터 깎아야지. 머리부터 깎아야지.” 이렇게 허욱의 독백과 함께 필름은 끝을 맺는다. 내일을 기약하지 못한 채 일요일 밤에 끝나버리는 이야기 – 이것이 <휴일>이 남긴 씁쓸한 여운이다.

영화 <휴일>의 핵심 정서는 철저한 고립감과 무력감이다. 등장인물들은 가족도 공동체도 없이 도시에 내던져진 고립된 개인들로 그려진다. 남녀 주인공은 가난과 절망으로 인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고, 영화는 일요일이라는 시간을 통해 이러한 정서를 극대화한다. 많은 인물들이 “일요일을 견딜 수 없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관객 역시 영화가 끝날 즈음 그 일요일로부터 아무도 벗어날 수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 일요일이라는 휴일은 더 이상 휴식이나 희망의 날이 아니라, 출구 없이 정지된 시간의 은유다. 허욱과 지연에게 주어진 하루는 곧 그들의 전 생애를 압축한 것이며, 그 속에는 어떠한 미래도 약속되지 않는다. 이처럼 <휴일>은 한 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넘어, 1960년대 후반 한국 청년세대의 허무와 좌절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는 당대 현실을 직접 언급하거나 정치적 구호를 외치지 않지만, “체제가 약속하는 미래의 허구성과 불가피한 인간적 허무함”을 정면으로 드러냄으로써 당시 검열에 저항했다. 가난한 연인이 겪는 절망은 당시 많은 젊은이들의 처지와도 맞물려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커녕 오늘을 버티기도 벅찬 세대의 고통이 이 영화에 응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멜랑콜리와 무기력의 묘사는 오히려 강력한 정치적 잠재력을 지닌다. 체제가 강요하는 장밋빛 미래 서사를 믿지 못하는 침묵의 항의이자, 현실 그 자체의 어둠을 응시하는 정직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휴일>은 형식 면에서 네오리얼리즘의 영향과 모더니즘 영화의 실험정신을 모두 품고 있다. 감독 이만희는 실제 서울 거리와 공원 등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도시 공간의 리얼리티를 획득했다. 북청계설의 겨울 거리, 한강 다리, 남산 공원의 삭막한 모습 등은 당대 서울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전문 배우인 신성일과 전지연이 주연을 맡았지만, 주변 인물들은 인상적인 초상화처럼 스쳐 지나가는 군상들로 묘사되어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을 준다. 이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이 비전문 배우와 실재 배경으로 현실감을 살린 것과 상통한다. 그러나 <휴일>은 단순한 사회고발이나 사실주의에 머물지 않고, 도시적 삶의 정서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주력한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한편으로 극사실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정조를 띤다. 예컨대 인물들은 서울 한복판을 떠돌지만, 거리에는 유난히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시간은 멈춘 듯 늘어져 있다. 대사나 사건의 밀도보다 침묵과 여백이 크게 자리하여, 관객은 마치 텅 빈 도시를 배회하는 두 사람의 내면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정지된 공간과 시간은 주인공들의 내면적 불안과 공명하며, 영화에 특유의 서정성을 부여한다. 흑백 화면에 담긴 한겨울의 서울 풍경은 처연할 만큼 아름답지만, 동시에 뼛속까지 스며드는 쓸쓸함을 자아낸다. 이만희 감독은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일말의 미적 감흥을 포착해내며, 어두운 현실을 냉정한 서정성으로 승화시키는 연출을 선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절망이 멜로드라마적 신파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만희는 감정의 과잉을 절제하고 차가운 거리감을 유지함으로써, 오히려 더욱 깊은 슬픔을 자아낸다. 인물들은 울부짖거나 극적으로 항거하지 않고, 체념에 가까운 담담함으로 일관한다. 이러한 정조는 일본 오시마 나기사의 <청춘잔혹 이야기>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오시마 영화가 부분적으로 정치적 배경을 개입시키는 데 반해 <휴일>은 배경 서사 없이도 순수하게 청춘의 절망만을 시각화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허무와 불안 자체를 응시하는 강도 면에서 <휴일>의 숏들은 더욱 강렬하다는 평이며, 이로써 이만희는 1960년대 후반 청년 멜로드라마의 통속적 문법을 완전히 뒤흔들어 버렸다.

이만희 감독은 “다른 감독들의 영화에서 본 적 없는 각도”를 찾아낼 정도로 창의적인 카메라 앵글을 추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휴일>에서도 그는 당시 한국영화 문법으로는 파격적인 숏 구성과 카메라 움직임을 선보인다. 먼저, 프레이밍을 통해 인물의 고립감을 시각화하는 기법이 두드러진다. 좁은 골목길이나 다리 위, 공원의 벤치 등에서 인물을 화면 한구석에 작게 배치하거나, 창문이나 문틀 너머로 인물을 보여주는 구도를 자주 사용함으로써 환경에 압도된 개인의 모습을 부각한다. 예를 들어 허욱과 지연이 함께 서 있는 숏에서도 두 사람은 화면 가득 펼쳐진 삭막한 도시 풍경 속에 작게 자리하며, 주변의 빈 공간이 그들의 소외감을 대변한다. 이러한 구도는 인물의 내면에 깔린 고독과 단절을 미장센 차원에서 표현하는 효과를 거둔다. 카메라의 움직임 또한 섬세하게 계산되어 있다. 이만희는 흔들리는 핸드헬드보다는 삼각대와 트래킹 쇼트를 즐겨 사용하여, 부드럽지만 냉정한 시선으로 인물을 따라간다. 영화 초반부에 허욱과 지연이 서울 거리를 함께 걸을 때, 카메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들의 뒷모습을 트래킹한다. 멀리서 따라가는 이 시선은 마치 관찰자처럼 두 사람을 응시하며, 그들 곁에 있지만 결코 개입하지 않는 냉철함을 유지한다. 또한 일부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인물을 등지고 풍경만 응시하기도 한다. 예컨대 허욱이 친구의 돈을 훔쳐 달아난 뒤 한강변에 서성이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허욱의 표정보다는 그의 등 뒤로 펼쳐진 흐린 강과 하늘을 오래 보여준다. 이는 인물의 심리를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환경의 표정으로 우회하여 그의 심경을 암시하는 시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카메라 워크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과 거리를 유지한 채, 더 깊은 공감과 해석의 여지를 갖도록 만드는 이만희만의 미학적 전략이다.

<휴일>의 서사 구조는 겉보기에는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일자 구조를 취한다. 영화는 일요일 아침부터 밤까지 사건을 순차적으로 전개하며, 관객은 허욱과 지연의 동선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쫓아가게 된다. 그러나 내러티브의 인과관계나 정보 제공 면에서는 상당한 여백과 비약이 존재한다. 인물들의 과거나 배경은 철저히 생략되어 있으며, 두 사람이 왜 이 지경까지 가난에 몰렸는지, 혹은 이들이 이전에 어떤 행복한 순간을 가졌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대신 영화는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두 사람의 행복했던 한때를 암시하는 짧은 몽타주를 삽입한다. 수술 후 지연이 죽고 난 직후, 허욱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듯한 회상 몽타주가 등장하는데, 여기에 두 사람이 환하게 웃던 과거의 순간들이 몇 초간 번쩍인다. 이 희미한 행복의 잔상은 영화 내내 이어진 냉혹한 현실과 대비되며, 관객으로 하여금 더욱 깊은 비애를 느끼게 한다. 이처럼 거의 대사 없이 이미지의 연결만으로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편집 기법은 당시 한국 영화 문법으로는 상당히 전위적인 시도였다. 또한 편집 리듬 면에서 <휴일>은 극적인 가속이나 긴장 고조를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시간적 공백이나 지연이 두드러지는데, 예를 들어 허욱이 돈을 구하러 간 사이 지연이 홀로 공원에서 그를 기다리는 장면은 느린 호흡으로 길게 이어진다. 관객은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채로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지연의 모습을 오래 지켜보게 된다. 쓸쓸한 바람 소리만이 화면을 채운 이 정지된 시간 동안, 우리는 인물의 초조와 불안을 체험적으로 공유하게 된다. 이러한 시간 늘이기 편집은 현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법이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웠다. 이만희는 이를 통해 실시간성의 환상을 깨뜨리고, 관객이 영화적 시간의 두께를 인식하도록 만든다. 그 결과 <휴일>의 72분은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으며, 오히려 그 하루가 견딜 수 없이 길고 지루하게 체험되도록 연출된다. 이는 주인공 허욱의 주관적 체험 –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의 하루” – 를 관객도 함께 겪게 만드는 장치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결말부 구성은 특기할 만한 형식 실험이다. 앞서 서술했듯, 원래 각본 단계에서는 주인공의 죽음을 프롤로그에 배치하고 회상 형식으로 이야기를 꾸리는 구상이 있었다. 그러나 최종 영화에서 이만희는 인과적 결말(자살)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암시적 독백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여운을 남겼다. 허욱이 “머리부터 깎아야지”라고 되뇌는 라스트 신은 표면적으로는 별 의미 없는 말처럼 들리지만, 검열 맥락상 이는 군 입대를 암시하는 말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허욱이 머리를 깎는 장면도, 다음 날을 맞이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열린 결말 속에서 관객은 그의 운명을 스스로 상상해야 하며, 그 상상은 결코 밝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이렇듯 <휴일>은 결말마저도 명확한 폐쇄 대신 영화 밖으로 질문을 연장시키며 끝을 맺는다. 이러한 결말 처리 방식은 훗날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2005)에서 주인공이 극중 영화를 끝맺고 관객에게 말을 거는 메타적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된 바 있는데, <휴일>의 당시로서는 이례적이었던 독특한 결말 연출이 이후 한국 영화감독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한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언어는 특정 장면들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몇가지 쇼트를 통해 영화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한강 다리 위에 멈춰 서 있는 두 남녀의 롱숏으로 시작한다. 희뿌연 겨울 하늘 아래, 끝없이 이어진 다리 위에 작은 실루엣으로 서 있는 허욱과 지연의 모습은 첫 프레임부터 고립과 불안을 암시한다. 다리는 공간적으로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통로이지만, 이 장면에서는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의 경계에 선 공간처럼 보인다. 롱숏 구도에서 인물들은 얼굴 표정조차 식별하기 어려울 만큼 멀리 잡혀 있는데, 화면을 가득 채운 주변의 적막한 풍경이 오히려 그들의 내면 풍경을 대변한다. 강물은 느릿하게 흐르고,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희미하게 펼쳐져 있으며, 인물의 등 뒤로는 텅 빈 하늘이 광막하다. 이 정지된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숏은 휴일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정서를 응축해서 전달한다. 두 사람이 서 있는 다리는 마치 앞으로 맞닥뜨릴 비극으로 가는 문지방처럼 보이고, 다리 아래 흐르는 차가운 강물은 그들의 운명이 향할 파국을 암시하듯 음산한 인상을 준다. 이 오프닝 숏에서 카메라는 하이앵글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듯 잡고 있어, 인물들이 세상으로부터 압도당한 미물처럼 느껴진다. 또한 롱숏에서 시작한 프레임은 천천히 줌인하여 둘의 뒷모습에 조금 가까워지는데, 이 움직임은 마치 관객을 그들 곁으로 서서히 인도하는 듯하다. 그러나 끝내 인물들의 얼굴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다리 위 그들의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는다. 이만희는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관객이 이 인물들을 외부 관찰자의 위치에서 지켜보게 할 것인지, 아니면 감정이입하여 따라가게 할 것인지 미묘한 균형을 설정한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다리 위 인물들에게 아직 완전히 감정이입하지 않은 채, 일정한 거리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갖게 된다. 이는 영화 전체에 깔린 냉정한 정조를 미리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이며, 동시에 “이들의 운명을 지켜보라”는 암묵적 초대처럼 기능한다. 폐허 같은 도시 속 두 연인의 실루엣 – 이 인상적인 오프닝은 <휴일>의 비극적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다.

허욱과 지연이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해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는 일련의 장면들은, 이들의 사회적 소외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첫 번째 병원 문 앞, 카메라는 간판이 걸린 병원 입구를 비추고 그 앞에 선 허욱의 풀샷을 보여준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허욱은 망설이다 노크도 해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이때 카메라는 약간 흔들리는 듯한 핸드헬드로 허욱의 불안정한 심리를 반영한다. 허욱의 모습은 프레임 한쪽 구석에 치우쳐 있으며, 화면의 나머지는 높이 치솟은 병원 건물 벽과 냉랭한 하늘이 차지한다. 이 비대칭 구도는 개인 대 사회 체제의 힘 관계를 암시한다. 거대한 제도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왜소하고,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바깥에 머물러야 하는 존재임이 시각화된다. 이어지는 편집에서는 병원 안쪽을 슬쩍 훔쳐보는 시점 숏이 삽입된다. 살짝 열린 문틈이나 창유리 너머로 보이는 희미한 실루엣들, 혹은 병원 내부의 불빛 같은 것이 허욱의 시선을 통해 비춰지지만, 정확히 보이지는 않는다. 이 단절 편집은 관객으로 하여금 허욱과 동일한 결핍을 느끼게 한다 – 내부에 들어갈 수 없고,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 말이다. 이후 빠른 컷으로 “진료 휴무” 팻말, 의자만 놓인 대기실 등 몇 가지 디테일한 이미지를 제시하고 곧장 장면이 전환된다. 이러한 몽타주 기법은 논리적 시간 흐름보다는 인상의 나열을 택한 것으로, 주인공이 느끼는 충격과 좌절의 단편들을 전달한다. 특히 마지막에 병원 간판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그 앞에 망연자실 서 있는 허욱의 숏은 압권인데, 이는 “사회가 주는 침묵”을 형상화한 상징적 이미지다. 누구도 그들에게 설명하거나 위로하지 않고, 차가운 간판 글자만이 화면을 지배하는 이 장면에서, 관객은 이들이 제도적으로 거부당한 순간의 쓰라림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허욱과 지연은 이렇게 몇 차례 병원을 전전하며 계속 쫓겨난다. 이때 유사한 숏 구성이 반복되는데, 폐쇄된 문, 바깥에서 웅크린 두 사람, 냉랭한 응시의 카메라가 변주를 이룬다. 반복되는 미장센 속에서 지연의 표정은 점점 죽어가고, 허욱의 자세는 한없이 작아진다. 마지막에 겨우 받아준 개인병원에서 지연이 수술대에 오르는 장면에 이르면, 이 반복의 종지부를 찍듯 카메라는 지연의 얼굴 클로즈업을 꽉 채운다. 식은땀 맺힌 창백한 얼굴에 쏟아지는 수술실 조명 아래, 지연의 두 눈은 허공을 향해 뜬 채 미세하게 떨린다. 이 극단적인 클로즈업은 앞서 수차례 바깥 풍경에 머물렀던 카메라와 대조를 이루며, 마침내 드러나는 인간적 고통의 얼굴을 관객에게 들이민다. 한동안 삽입음 없이 지연의 숨소리만 들리다, 곧이어 커팅 – 그리고 허욱이 병원을 뛰쳐나가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이 일련의 편집은 관객에게 충격을 안긴다. 사회의 냉담한 벽 앞에서 좌절하던 인물이, 마침내 가장 내밀한 고통의 순간을 맞이하자 카메라는 정면으로 인간의 상처를 응시한 것이다. 이만희의 편집과 숏 구성은 이렇게 거리 두기와 밀착을 교차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사회의 풍경과 개인의 얼굴을 번갈아 목도하게 함으로써 <휴일>이 말하고자 하는 바 – “이 절망은 구조적이면서도 철저히 인간적인 것” – 를 실감하게 한다.

허욱이 돈을 구하러 다니는 동안 지연이 홀로 기다리는 남산 공원 장면은 <휴일>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 중 하나다. 이 장면은 강한 초겨울의 바람을 통해 보이지 않는 정서를 시각화한 교과서적인 예이다. 지연이 벤치 옆에 서서 허욱을 기다리는 숏은 눈에 띄게 긴 원테이크로 촬영되어 있다. 카메라는 멀리서부터 그녀를 잡은 후, 한동안 컷을 나누지 않고 지연의 주변을 둘러싼 공원의 풍경을 천천히 이동한다. 앙상한 겨울 나무들, 잎 하나 없이 드러난 가지들이 화면을 가로지르고, 지연의 뒤로는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풍경이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화면 전체에 모래먼지를 날리는 거센 바람의 움직임이 가득하다. 지연의 코트 자락과 머리카락이 바람에 거칠게 날리고, 벤치 주변의 낙엽과 먼지가 회오리치듯 흩날린다. 이때 지연은 그저 묵묵히 서 있기만 할 뿐인데, 주변 자연이 마치 그녀의 내면 풍경처럼 요동치는 것이다. 큐브릭 영화의 한 장면처럼 회화적인 흑백 구도를 자랑하는 이 숏은 몹시 아름답지만 동시에 슬프고 불안하다. 인물의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자연환경의 변화로 암시하는 이만희의 연출은, 서정성과 초현실성이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연 곁에서 쉬지 않고 휘몰아치는 바람은 마치 지옥의 입구 앞에 선 자의 심경처럼 혼란스럽고 위태롭다 – 이 공원은 더 이상 평온한 쉼터가 아니라, 두 연인의 운명이 갈라지는 분기점처럼 느껴진다. 허욱이 돈을 구하지 못한 채 공원으로 돌아와 지연과 재회하는 순간, 이만희는 탁월한 부감숏으로 두 사람을 내려다본다. 화면 위쪽에서 본 지연의 가녀린 몸은 커다란 나무 옆에 조그맣게 서 있고, 허욱이 멀리서 그녀에게 다가온다. 이때 허욱은 자신의 외투를 벗어 들고 오는데, 바로 지연에게 그것을 건네기 위해서다. 흥미로운 것은 허욱의 동작이다. 그는 지연 가까이 다가가서 옷을 입혀주는 대신, 몇 미터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 코트를 땅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말 한마디 없이 다시 뒤돌아 떠날 채비를 한다. 지연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야 다가가 외투를 집어들지만, 끝끝내 그것을 걸치지 못한다. 이 일련의 행동은 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만, 영화의 맥락에서 보면 대단히 상징적이다. 허욱은 애인을 추위에 떨게 했다는 미안함에 외투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죄책감과 무력감 탓에 직접 전해줄 용기조차 내지 못한 채 거리를 둔 것이다. 지연은 그런 그의 마음을 알기에 외투를 집어들지만, 이미 마음이 식어버린 것인지 끝내 입지 않는다. 이 좁혀지지 않는 거리와 옷을 입지 않음의 선택에는 두 사람 사이 벌어진 균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이 장면은 대사 한 마디 없이 행동과 숏의 이미지만으로 깊은 정서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모래바람, 머뭇거림, 땅에 내려진 외투, 입혀지지 못한 옷… 이 연쇄되는 이미지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무력감을 뼛속까지 전달한다. 관객은 그저 “왜 저렇게까지…” 하는 탄식을 삼키며 이들의 상황을 체감할 뿐이다. 이 숏 하나로 이만희는 두 연인의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금이 갔음을, 그리고 허욱이라는 인물이 결국 구원자가 되지 못할 것임을 예고한다. 이후 허욱은 다시 돈을 구하러 지연을 남겨두고 떠나고, 지연은 황량한 공원에 혼자 남아 추위와 슬픔을 견딘다. 카메라는 멀리서 그녀의 뒷모습을 잡으며 이 씬을 마무리하는데, 이때 들리는 것은 오직 몰아치는 바람 소리뿐이다. 대화도 음악도 없이, 자연의 소음만 가득한 이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고요하고도 폭력적인 순간으로 기억된다.

허욱이 지연을 만나러 가기 전, 길거리에서 겪는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바로 담배와 성냥에 얽힌 장면이다. 이 장면은 짧지만 <휴일>에서 유일하게 따스한 온기가 스며드는 순간으로, 영화의 어둡고 냉혹한 흐름 속 한 줄기 빛 같은 역할을 한다. 돈 한 푼 없는 허욱은 처음 지연을 만나러 가는 길에 우연히 한 남자를 속여 담배 한 갑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막상 담배는 얻었는데 불을 붙일 성냥이 없다. 추운 길가에 인부들이 모여 불을 쬐고 있는 모닥불이 눈에 띄자, 허욱은 머뭇거리며 다가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이때 카메라는 허리를 약간 굽혀 모닥불에 입을 갖다대는 허욱의 옆모습을 미디엄 숏으로 담는다. 인부들의 거친 손과 불길이 함께 화면에 잡혀, 일종의 연대의 순간을 암시한다. 불을 붙인 허욱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한숨 돌리는데, 그때 옆의 인부들이 “담배 하나 주시겠소” 하고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허욱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미소를 띠며 자기 담배 갑을 내밀어 담배를 나눠준다. 인부들은 고맙다며 담배를 받아들고, 잠깐의 침묵 끝에 서로 한두 마디 따뜻한 농담을 나눈다. 이 순간 카메라는 허욱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모닥불의 불빛이 그의 옆을 붉게 물들이고, 허욱의 표정은 영화 내내 보지 못했던 평온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바뀐다. 살짝 웃음기까지 도는 그 얼굴은, 마치 이 어두운 영화 속 다른 사람인 듯 낯설 만큼 아름답다. 사실 허욱은 영화 내내 담배에 불을 붙일 때마다 번번이 성냥이 없어 애를 먹는다. 부도덕하게 손에 넣은 담배와 언제나 부족한 불 – 이 지속되는 결여와 불안이, 바로 이 모닥불 장면에서 완벽하게 해소되는 것이다. 허욱은 성냥 없이도 불을 얻었고, 또 자신이 얻은 것을 남들과 함께 나누는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잠시나마 인간다운 연대의 따뜻함을 맛본다. 노동자들과 함께 연기를 내뿜는 이 순간만큼은 그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허욱이라는 인물에게도 인간적인 면모와 구원의 가능성이 잠시나마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행복한 순간은 곧 지나갈 일장춘몽임을 알고 있다. 다시 길을 떠나는 허욱의 뒷모습을 먼 거리 숏으로 비추며, 카메라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남은 인부들의 무리를 잠깐 잡아준다. 그리고 불꽃이 바람에 일렁이며 화면이 페이드 아웃된다. 이 찰나의 에피소드는 영화의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결핍과 충돌로 가득 찬 세계에서도 한 줌의 인간적 온기는 분명 존재한다는 것, 그러나 그마저 붙잡지 못하면 다시 끝없는 고독 속에 던져진다는 것 말이다. 모닥불 옆 허욱의 환한 얼굴은 <휴일>의 음울한 여정 속 유일한 휴식처였고, 동시에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었다.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장면은 허욱이 낯선 여자와 방황하다 파국을 맞는 대목과, 이어지는 결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이만희는 영상과 음향을 통해 사랑의 파멸과 죽음의 그림자를 강렬하게 묘사한다. 허욱과 뜻밖의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술집 여인의 에피소드는, 주인공의 도덕적 추락이자 감정적 절정이다. 비 내린 밤거리의 일련의 쇼트들 끝에, 두 사람은 한적한 공사장 빈 건물로 숨어든다. 여기서 두 인물이 어둠 속에서 애욕에 탐닉하려 할 때, 카메라는 멀찍이서 그들을 잡아 실루엣으로만 표현한다. 콘크리트 기둥들 사이로 포개진 두 형체가 희미하게 보이는 이 숏은, 에로틱함이라기보다는 황량하고 공허한 인상을 준다. 그 순간 울려 퍼지는 교회의 종소리가 정적을 깨우며 허욱을 멈춰 세운다. 이 장면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한 컷에 잡힌 배경의 이미지다. 두 사람이 몸을 움켜안고 있는 바로 뒤편에 세워진 전신주가 화면에 비치는데, 그 모양이 마치 거대한 십자가처럼 보인다. 그리고 허욱이 고개를 들자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 – 이 이미지와 음향의 결합은 마치 죄와 죽음의 전조처럼 느껴진다. 종소리는 흔히 위안을 상징하지만, 여기서는 사랑의 몰락을 알리는 장송곡처럼 울려 퍼진다. 허욱은 흠칫 놀라며 제정신을 차리고, 급히 공사장을 빠져나가 병원으로 달려간다. 이 순간 카메라는 허둥대며 도망치듯 달려가는 그의 모습을 불안정한 핸드헬드로 따라가며, 화면 곳곳에 삐뚤어진 빛과 그림자를 교차시킨다. 이는 주인공 내면에 찾아온 죄책감과 공포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사장에 홀로 남겨진 여자의 모습은 거의 비치지 않는데, 이는 허욱의 인생에서 마지막 한 가닥 연정마저 실패로 끝났음을 암시한다. 이 장면은 단지 불륜의 현장이 아니라, 허욱이라는 인물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시각화한 것이다. 마침내 결말부, 허욱은 병원에서 연인의 죽음을 확인하고 완전히 무너진다. 영화는 직접적인 통곡이나 눈물을 배제한 채, 허욱이 병원을 나와 밤거리로 터벅터벅 걸어나오는 모습을 담담히 묘사한다. 그는 다시 한강 다리 근처로 향하거나, 혹은 전차가 다니지 않는 끊긴 선로 위에 올라선다(해석에 따라 장소가 달리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독백 장면이 찾아온다. 이때 카메라는 허욱의 전신을 롱숏으로 잡고, 서울의 야경과 함께 프레임에 담는다.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은 차갑고, 허욱의 그림자는 가로등 아래 길게 드리워져 있다. 그는 관객을 등진 채 혼잣말을 시작한다: 앞서 요약했듯이 “서울, 남산, 전차… 내가 사랑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어… 이제 곧 날이 밝겠지… 머리부터 깎아야지” 등의 말들이다. 이 내레이션은 다소 뜬금없고 초현실적으로 들린다. 허욱이 이때 실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면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깔리는 것인지는 화면만으로 분명치 않다. 어쩌면 우리는 죽은 이의 독백을 듣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가 이 순간 실존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만드는 연출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곧 새벽이 올 것”이라 말하지만, 영화는 새벽을 보여주지 않은 채 끝나버린다. 그의 말대로라면 머리를 깎고 새로운 삶(혹은 군대)을 시작해야 할 터이지만, 우리는 그 결심이 실행될 거라 믿기 어렵다. 그가 선로 위에서 황망히 중얼거리는 모습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인간처럼 공허하다. 조용히 잦아드는 배경음 속에서 허욱의 음성만이 떠돌다가, 화면은 서서히 암전된다. 이 엔딩 숏은 영화의 첫 장면과 은밀한 대구를 이룬다. 처음에 다리 위에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었다면, 이제는 허욱 혼자 남아 폐허 같은 도시를 등지고 선 것이다. 처음에도 끝에도 인물은 작게 잡힌 롱숏의 실루엣일 뿐이며, 세상은 넓고 차갑게 그를 내려다볼 뿐이다. 이로써 영화는 순환 구조를 완성한다. 휴일이라는 시간은 돌고 돌아 원점으로 회귀했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허욱은 영원히 그 일요일에 갇혀버린 듯하며, 관객도 마찬가지로 답답함 속에 영화관을 떠나야 한다. 끝내 새벽은 밝지 않고, 주인공의 결단은 공허한 메아리로 남는다. 이 폐쇄된 결말에서 우리는 삶의 부조리와 운명의 아이러니를 목도하게 된다. 한 남자의 일그러진 사랑과 그로 인한 자기파괴는 이렇게 조용히 막을 내리지만, 그 여운은 화면 밖 관객의 현실에서까지 오래도록 맴돈다.

<휴일>은 한국 사회의 맥락 속에 뿌리내린 영화이지만, 형식과 주제 면에서 동시대 유럽 모더니즘 영화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 특히 자주 거론되는 비교 대상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로베르 브레송이다. 이만희 감독이 직접 이들의 영향을 언급한 바는 없지만, 작품을 분석해보면 흥미로운 공통점들이 드러난다. 먼저 안토니오니와의 비교이다. 안토니오니는 <정사>, <밤>, <일식> 등 이른바 ‘소외 삼부작’을 통해 현대 도시인의 고독과 소통 단절을 탁월하게 그려낸 이탈리아 거장이다. 그의 영화에서 줄거리의 빈약함, 인물 내면의 소외, 도시 풍경의 강조, 느린 호흡의 롱테이크 등은 <휴일>과 놀랍도록 유사한 미학을 공유한다. 실제로 해외 평론가들은 <휴일>의 공간적/심리적 탐구가 안토니오니의 <일식>를 연상시킨다고 평가한다. 두 감독 모두 이야기 전개보다는 인물과 주변 환경의 관계에 천착한다. <휴일>에서 허욱과 지연이 도시라는 거대한 배경 속에 길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은, <일식>에서 비토리아(모니카 비티 분)가 로마의 새벽 거리를 헤매는 이미지와 겹쳐 보인다. 안토니오니는 특히 건축물이나 자연물과 인물을 함께 프레임에 담아 인간의 소외감을 시각화하는데, 이만희 역시 남산 공원, 병원, 다리 등 도시 공간 속에 인물을 작게 위치시킴으로써 비슷한 효과를 낸다. 또한 <휴일>은 대사나 설명을 절제하고 정황을 직접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화면에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도록 유도하는데, 이 또한 안토니오니 영화가 즐겨 사용하는 기법이다. 가령 <휴일>에서 두 주인공의 과거사는 거의 나오지 않지만, 마지막에 잠깐 비치는 행복했던 기억의 몽타주를 통해 그 공백을 관객이 메우게 한다. 이처럼 불친절한 서사와 이미지 중심의 심리 묘사는 안토니오니 영화의 전형적 특징이며, <휴일> 역시 그런 모더니즘적 영화의 계보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한 해외 리뷰에서는 “<휴일>은 인물과 주변 풍경의 공간관계를 현대적으로 응시함으로써 안토니오니를 떠올리게 한다”고 평했을 정도다. 다음으로 브레송과의 비교를 들 수 있다. 로베르 브레송은 프랑스 영화감독으로, <당나귀 발타자르>, <무쉐뜨> 등의 작품에서 극한의 미니멀리즘과 영혼의 구원 문제를 다룬 바 있다. 브레송 영화의 미학은 비전문 배우 기용, 건조한 연기, 사건의 생략과 반복, 사소한 행위의 부각 등을 특징으로 한다. <휴일>은 겉보기엔 멜로드라마 같지만, 감정의 억제와 행위의 묘사 측면에서 브레송과 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이만희는 배우들에게 절제된 연기를 끌어냈고, 관객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음악이나 극적인 대사 대신 동작과 사물의 이미지에 주목한다. 예컨대 허욱이 담배를 얻고 불을 붙이는 일련의 행위, 지연이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신발을 보고 손을 모으는 사소한 몸짓 등이 클로즈업이나 삽화적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일상 행위의 세부 묘사는 브레송 영화가 사물과 몸짓을 통해 은밀한 정신성을 드러내는 방식과 닮아 있다. 실제로 한 해외 평자는 <휴일>을 두고 “대사나 내러티브보다 구도와 미장센으로 절망과 무기력을 표현한 작품”이라 평했는데, 이는 마치 브레송의 영화철학을 언급한 듯한 말이기도 하다. 다만 결정적으로 <휴일>과 브레송 영화가 갈라지는 지점은 구원의 유무다. 브레송의 주인공들이 비극 속에서도 어떤 영적 구원이나 초월의 순간을 맞이하는 데 비해, 허욱과 지연에게 그런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휴일>은 끝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는 비극의 완결을 보여주며, 어쩌면 브레송이 추구한 은총의 가능성마저 부정하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휴일>은 브레송적 미학을 닮았으되 훨씬 냉혹한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또 다른 흥미로운 비교로, <휴일>은 때때로 프랑스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엔바드에서>나 아녜스 바르다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페데리코 펠리니의 몇몇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도 있다. 이는 <휴일>이 당대 유럽 예술영화들의 몽환적 분위기, 시간 실험, 주관적 심리표현 등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만희 감독은 이런 요소들을 한국적 현실 토양 위에서 재창조했다. 그는 검열과 상업적 압력 속에서도 외국 영화 흉내 내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로 모더니즘 영화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이러한 국제적 감수성의 접목은 훗날 <휴일>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 평단에서 재조명받는 계기가 되었다. 요컨대 <휴일>은 1960년대 한국영화임에도 시대에 앞선 현대성을 보여주며, 세계 영화사의 흐름 속에서도 충분히 대화 가능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만희의 <휴일>은 한 남녀의 암울한 하루를 통해 삶의 부조리와 인간 실존의 어두운 측면을 깊이 파고든 걸작이다. 영화는 당시 한국사회의 가난과 억압이라는 구체적 현실을 배경에 두면서도, 그것을 보편적인 인간 조건의 문제로 승화시킨다. 허욱과 지연의 고통은 60년대 한국 청년들의 좌절인 동시에,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청춘의 비가로 읽힌다. 무엇보다 <휴일>의 위대함은 그 영화언어적 성취에 있다. 검열의 눈을 피해 노골적 사회비판을 삼가야 했던 상황에서, 이만희는 기지 넘치는 우회와 상징, 그리고 과감한 미학적 실험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해냈다. 직접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이미지와 소리, 편집의 리듬 속에 녹여내었고, 그 결과 관객은 말로 설명되지 않은 진실을 심층적 차원에서 느끼게 된다. 이처럼 영화언어가 곧 내용이 되는 지점에서 <휴일>의 진가가 발휘된다. 한편 <휴일>은 한국영화사적으로도 의미심장한 위치를 차지한다. 1960년대 후반, 산업적 영화 시스템과 검열 제도에 맞선 작가주의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선구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만희는 이 영화로 인해 당대 권력과 마찰을 빚었고, 결국 상영 금지라는 처분을 받았으나, 그의 창의적 열망은 후대에 가서 빛을 발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재발견된 <휴일>은 오늘날 많은 영화인과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한국 고전영화의 수준을 재인식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2016년의 한 연구에서는 이만희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과 <휴일>을 분석하며, 그가 당대에 사회적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기법을 결합하여 인간 조건을 탐구함으로써, 당대의 프로파간다 영화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이는 곧 <휴일>이 품은 미학적 가치가 시대를 앞선 것임을 뒷받침해준다. 마지막으로, <휴일>이 관객에게 남기는 여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한 편의 스캔들 드라마로 소비되기보다, 보고 난 뒤 오래도록 씁쓸한 질문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우리는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자꾸만 자문하게 된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희망은 정말 없는 것인가? 사랑은 구원이 될 수 없는가? 영화는 이에 대해 어떤 단정도 내리지 않는다. 대신 관객이 스스로 현실의 부조리와 마주하게 방치한다. 이는 어찌 보면 잔인하지만, 동시에 진실되다. <휴일>은 완결되지 않은 휴일로 끝나지만, 그 미완의 끝맺음이야말로 우리의 삶 또한 늘 그렇듯 명확한 결말이 없음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면에서 <휴일>은 철학적 성찰의 여지를 남긴 영화적 시라 할 만하다. 결론적으로, 이만희의 <휴일>은 시대의 한계를 정면 돌파한 작품이자, 영화 예술의 가능성을 과감히 확장한 실험이다. 카메라, 편집, 소리, 배우의 몸짓 등 영화의 모든 요소를 동원해 절망이라는 난제를 미적으로 형상화한 이 작품은, 지금 다시 보아도 충분히 현대적이고 세계적이다. 비록 만들어진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그 속에 담긴 인간에 대한 통찰과 영화적 아름다움은 조금도 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날의 관객에게 더 깊은 울림을 주는 면도 있다. 왜냐하면 영화가 던지는 물음 – “인간은 왜 이렇게 고독한가? 무엇이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 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휴일>은 우리에게 답을 주지 않지만, 정직하게 응시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영화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역할일 것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솔라리스

1960~70년대 소비에트 영화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현실과 영혼을 아우르는 시적 영상미로 세계 영화사에 독보적 흔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의 세 번째 장편 <솔라리스>는 SF라는 외양을 두르고 있지만, 전통적 장르 공식을 넘어 인간 내면의 영적 성찰을 추구한 작품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반의 어린 시절>과 <안드레이 루블료프>으로 이미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나, 검열 당국과의 갈등으로 차기작 구상이 어려웠다. 이때 현실적으로 승인받기 쉬운 소재로 스타니스와프 렘의 과학소설 솔라리스를 택한 것이 본 작품의 출발점이었다. 당국의 예상을 저버린 이 영화는 1972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대상과 국제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하며, 타르코프스키를 세계 영화계의 중심에 우뚝 세웠다. <솔라리스>는 제작 과정에서부터 타르코프스키의 예술적 고집과 전략이 드러난다. 그는 기존의 우주 SF 영화와 차별화하기 위해 할리우드식 특수효과와 미래지향적 디자인을 최소화했다. 대신 촬영감독 바딤 유소프와 함께 삶의 질감이 느껴지는 리얼한 영상과 긴 호흡의 미장센을 구현했다. 특히 우주정거장 세트를 할리우드 SF의 전형처럼 반짝이는 첨단 공간이 아닌, 어딘가 낡고 어수선한 장소로 묘사했는데, 이는 쿠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대비되는 미학적 선택이었다. 실제로 미술감독 미하일 로마진은 “우리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처럼 번쩍거리고 정갈한 미래를 그리지 않았다”고 밝히며, 1960년대 구형 컴퓨터와 허름한 장비들을 소품으로 배치해 생활감 있는 우주공간을 연출했다. 이러한 세팅에 감탄한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가 촬영장을 방문해 찬사를 보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배우 캐스팅 면에서도 흥미로운 배경이 있다. 주인공 크리스 켈빈 역에는 리투아니아 배우 도나타스 바니오니스가 발탁되어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었고, 켈빈의 아내 하리 역에는 신예 나탈리아 본다르추크가 기용되었다. 특히 본다르추크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학교 동창으로, 그에게 렘의 원작 소설 솔라리스를 처음 소개해준 인물이기도 했다. 타르코프스키는 1970년 그녀를 오디션 보았을 때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느껴 탈락시켰지만, 이후 그녀가 출연한 다른 영화 <너와 나>를 보고 마음을 바꾸어 하리 역에 최종 낙점했다. 촬영이 끝난 뒤 타르코프스키는 배우들의 연기를 평가하며 “나탈리아 B.가 모두를 압도했다”고 일기에 남겼을 만큼 본다르추크의 섬세한 연기는 영화의 정서적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한편, 촬영은 1971년 모스필름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어 도중에 감독과 촬영감독 유소프 사이에 잦은 충돌이 벌어졌는데, 결국 이 작품을 끝으로 두 사람의 오랜 협업 관계도 마무리되었다고 전해진다. 제작 과정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솔라리스>는 2시간 40분 분량의 최종 편집본으로 완성되었고, 소비에트 검열 기관은 영화의 종교적 함축을 문제 삼아 40여 군데 수정을 요구했으나(일례로 성경적 이미지나 ‘신’에 대한 직접 언급들을 삭제토록 압력을 가함), 타르코프스키는 오히려 지루함과 암시로 검열을 교묘히 통과시켜 자신의 주제를 스크린에 실어냈다.

<솔라리스>가 만들어진 1970년대 초반은 미중 냉전과 우주 경쟁이 한창인 시기로, 과학기술에 대한 낙관과 회의가 교차하던 시대였다. 서구권에서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첨단 기술과 인류 진화를 경탄 어린 시선으로 그려내며 SF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지만, 타르코프스키는 그 영화에 대해 “감정적 울림이 부족하고 너무 기술 숭배적”이라며 혹평했다. 그는 쿠브릭의 미래관이 “차갑고 불모적”이라고까지 언급하며, <솔라리스>를 일종의 “반 2001”로 의도했음을 드러냈다. 실제로 평단은 <솔라리스>를 “쿠브릭의 영화에 대한 소비에트의 응답”으로 받아들였고, 타르코프스키는 인간적 드라마와 정서를 전면에 내세워 서구 SF의 과학만능주의에 맞서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은 주변의 힘을 먼저 길들여야 한다”는 신념 아래, 냉철한 진보 이념을 의심하고 인간 내면의 신념과 도덕을 중시하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다시 말해, <솔라리스>는 우주 탐사의 외피 속에 인간 정신에 대한 탐구, 나아가 냉전 시대 소비에트 체제가 내세우던 과학적 합리주의에 대한 은근한 반론을 담고 있다. 한 프랑스 평론가는 이 영화를 두고 “인간을 창조주 앞에 세우는 신비적 작품으로, 신념이 과학에 우선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당시 소련 체제의 노선과 정반대에 서 있다”고 평했다. 이는 곧 타르코프스키가 예술을 통해 체제의 엄격한 합리주의에 도전하고, 사랑과 믿음의 가치를 역설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맥락에서 <솔라리스>는 원작 소설 솔라리스와의 대화이기도 하다. 렘과 타르코프스키는 각본 작업 단계부터 견해차를 보였는데, 렘은 영화가 소설의 핵심인 “인간과 타자의 소통 불가능성”을 충실히 담아주길 원한 반면, 타르코프스키는 원작으로부터 독자적인 영화적 세계를 창조하려 했다. 렘은 결국 “타르코프스키는 솔라리스가 아니라 <죄와 벌>을 우주에서 찍었다”고 불만을 터뜨렸고, 소설의 인식론적·과학적 질문들이 영화에서 축소되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영화 <솔라리스>는 외계 지능과의 소통 가능성처럼 하드 SF적인 주제보다, 기억과 양심 그리고 사랑의 죄책감이라는 인간적 고민에 초점을 맞춘다. 타르코프스키는 렘이 끝내 영화에 불만을 표하자 “그는 영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원작의 삽화 정도로 여기려 했다”면서, 영화적 미학을 통한 독창적 해석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이러한 갈등은 작품 자체에 흥미로운 긴장을 부여한다. 즉 원작이 인간이 풀 수 없는 우주의 수수께끼를 다뤘다면, 영화는 우주가 반사해주는 인간 자신의 수수께끼를 응시한다. 영화 속 한 대사는 이를 상징적으로 압축한다. “중요한 것은 다른 세계를 정복하는 데 있지 않고, 거울을 찾는 데 있어”라는 말은, 결국 인류가 우주에서 마주치는 것은 알 수 없는 타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이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이처럼 <솔라리스>는 시대 상황과 원작 담론을 토양으로 삼아, 과학 진보와 인간 정신의 관계, 그리고 예술의 역할에 대한 타르코프스키의 사유를 반영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솔라리스>의 이야기는 지구에서 시작하여 우주로 이동하며 전개된다. 도입부에서 영화는 놀랍도록 “지상적”인 이미지들로 관객을 맞이한다. 푸른 연못 속을 나부끼는 수초와 잔물결, 나무숲과 안개 등의 자연 숏들이 잔잔한 클래식 바흐의 코랄과 함께 이어진다. 심리학자 크리스 켈빈은 시골의 오래된 부모님 댁 정원에서 물속에 손을 담근 채 사색에 잠겨 있다. 한 비평가는 이 장면에서 켈빈이 “마치 물에 가라앉은 여인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는 듯하다”고 묘사했는데, 실제로 화면에 흐르는 수초는 켈빈의 잃어버린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무의식중에 투영된 이미지로 보인다. 이렇게 <솔라리스>는 시작부터 우주과학이 아닌 상실의 정조를 화면에 깔아 놓는다. 켈빈의 표정에는 어떤 깊은 슬픔과 번민이 서려 있고, 아버지와 친지가 그를 걱정스레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곧 인류가 20년째 연구 중인 행성 “솔라리스”로 떠날 준비를 한다. 출발 전날, 켈빈의 가족들은 그의 냉담하고 침울한 태도를 염려하며 “네 감정은 마치 회계원 같다”고 타이른다. 관객은 켈빈이 과거에 겪은 정신적 충격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출발에 앞서, 옛 우주비행사 버튼이 방문하여 과거 솔라리스 탐사 중에 겪은 기묘한 경험을 증언하는 비디오 영상을 함께 시청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때 영화는 갑작스레 흑백 화면으로 전환되어 일종의 다큐멘터리풍 회상 장면을 보여주는데, 버튼이 위원회 앞에서 “솔라리스 해양에서 본 환영”에 대해 진술하는 내용이다. 그는 영상 속에서 당황하고 격앙된 모습으로, 거대한 유아나 변형된 인간 형상이 나타났다고 보고하지만, 회의석상의 과학자들은 그의 증언을 냉소적으로 받아넘긴다. 이 장면은 느닷없는 흑백 텔레비전 화면 연출을 통해 극적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동시에, 관료주의적 학술 문화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카메라를 방청객이 지루해하는 표정, 과학자들의 무표정한 얼굴에 오래 머물게 함으로써, 신비한 현상을 인간이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규격화된 지식으로 무시해버리는 태도를 비판한다. 이는 훗날 솔라리스에서 켈빈이 겪을 일을 암시하면서, 영화의 주제적 대립선을 미리 부각시키는 장치다. 지구를 떠나기 전, 영화는 또 하나의 파격적인 시퀀스로 관객을 의아하게 만든다. 바로 ‘미래 도시’ 차량 질주 장면이다. 켈빈이 우주정거장으로 향하기 위해 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이 장면에서, 타르코프스키는 5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도쿄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 안 풍경을 담는다. 미래 도시의 환상을 구현하기 위해 의외로 선택된 배경은 당시 가장 현대적인 도시 중 하나였던 1970년대의 도쿄였다. 밤의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 통과하는 차량들, 겹겹이 꼬인 고가도로와 터널 내부의 불빛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장면은 대사도 음악도 거의 없이 현대 도시의 소음을 깔고 흑백에서 다시 컬러로 서서히 전환되는데, 현실의 도쿄를 촬영하면서도 그것을 “가까운 미래”의 이미지처럼 낯설게 보여주는 효과를 낸다. 감독은 굳이 SF적인 특수효과 없이도 현재의 도시 풍경만으로도 미래적 이질감을 줄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왜 현재 세계를 SF 의상으로 치장해야 하는가, 낯선 미래는 이미 도래했다”는 견해를 고다르의 <알파빌>처럼 공유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도로 시퀀스는 그런 철학을 체험하게 하는 예다. 한편으론, 지구를 떠나 우주로 향하는 과정을 자동차 여행의 형태로 지루하리만치 길게 묘사함으로써 관객을 현실로부터 서서히 이탈시키고, 솔라리스라는 미지의 공간으로 함께 이행시키는 역할도 한다. 마침내 켈빈이 도착한 솔라리스 우주정거장은 예상과 달리 황폐하고 음울한 분위기다. 활기차야 할 연구 기지는 텅 빈 복도와 어수선한 짐들로 가득하고, 마주친 연구원 스나우트는 몹시 지친 얼굴로 불안해 보인다. 동료 과학자 기바리안은 켈빈 도착 직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유일하게 남은 다른 과학자 사토리우스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켈빈을 경계할 뿐이다. 정거장의 내부 연출은 기괴할 정도로 일상의 파편들로 채워져 있다. 곳곳에 지구에서 가져온 가족 사진, 책더미와 낡은 가구, 고전 명화가 붙은 벽 등이 눈에 띄는데, 이는 외딴 우주에서 인간이 간신히 붙잡고 있는 현실 감각의 흔적들처럼 보인다. 특히 도서관 겸 응접실에는 브뤼겔의 명화〈눈 속의 사냥꾼>이 크게 걸려 있고, 고전 양식의 흉상과 샹들리에 등이 있어 마치 구식 살롱을 옮겨놓은 듯하다. 이러한 세팅은 우주 공간에 생뚱맞지만, 곧 펼쳐질 기이한 사건들과 대비를 이루며 영화의 메타포적 무대 장치로 기능한다. 켈빈은 곧 기바리안이 남긴 비디오 편지를 통해 이 정거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전해 듣는다. “우리가 보는 환영들은 양심과 관련되어 있다”는 불길한 힌트를 남긴 채, 기바리안은 영상 속에서 절망에 찬 눈빛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머지않아 켈빈 자신도 그 말을 실감하게 된다. 정거장에 온 첫날 밤, 켈빈은 자신의 숙소에서 죽은 아내 하리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목격한다. 몇 년 전 자살로 세상을 떠난 아내가 눈앞에 살아있는 모습으로 다가오자, 켈빈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다. 처음 등장한 ‘하리’는 아무 기억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켈빈에게 애정을 보이지만, 켈빈은 이것이 진짜 아내일 리 없다는 이성적 판단과 동시에 밀려드는 감정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 결국 그는 급히 우주복을 입혀 하리를 소형 우주 캡슐에 강제로 태운 후, 정거장 밖으로 내보내버린다. 이 장면은 매우 고통스럽게 묘사되는데, 켈빈의 얼굴엔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이 교차하고, 문 밖에서 갇힌 채 두려움에 떠는 하리의 모습이 교차 편집된다. 사랑하는 이의 재현이라는 기적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이란 결국 두려움에 의한 배척이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관객에게도 깊은 상흔을 남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곧이어 두 번째 하리가 나타난다. 켈빈이 잠든 사이, 솔라리스 행성의 바다가 발산하는 미지의 힘은 다시 한 번 그의 내밀한 기억을 실체화시킨다. 이번에 나타난 하리는 이전보다 자기 의식을 조금씩 갖추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 채 켈빈에게 강한 애착을 보이고, 켈빈 또한 이번엔 그녀를 함부로 내치지 못한다. 죄책감과 애정이 섞인 심경으로 켈빈은 하리를 곁에 머물도록 허용한다. 시간이 흐르며 하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그녀는 본인이 원본 하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극심한 불안을 겪고, 켈빈의 사랑이 진실인지 두려워한다.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 하리의 불안은 마침내 자해로 이어진다. 하리는 켈빈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액체 산소를 마셔 자살을 시도하고, 몸이 뼛속까지 얼어붙는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솔라리스 바다가 만들어낸 그녀의 몸은 죽음마저 이겨내듯 다시 재생하고,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토리우스와 스나우트는 경악한다. 이 장면에서 타르코프스키는 SF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섬뜩한 재생의 순간을 담담한 카메라 워크로 포착한다. 켈빈이 돌아와 회복된 하리를 끌어안으며 흐느낄 때, 관객은 기쁨과 공포가 뒤얽힌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는 사랑하는 이를 살려냈지만 동시에 그 존재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다는 모순적 현실을 확인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반부는 켈빈과 하리가 우주정거장에서 보내는 나날들을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무중력 공간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꼽힌다. 어느 한때, 정거장의 인공 중력이 잠시 꺼지면서 켈빈과 하리, 그리고 방 안의 물체들이 부유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때 두 사람이 머물던 도서관 세트가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벽에 걸린 브뤼겔의 겨울 풍경화,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 방 한가운데 펴져 있던 책 등이 모두 공중에 뜬 채 천천히 회전한다. 켈빈과 하리는 부유하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마치 꿈결 같은 포옹을 나눈다. 타르코프스키는 여기에 바흐의 장중한 합창곡을 다시 흘려보내어, 일종의 성스러운 순간을 연출한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흔들림 없이 두 연인의 모습을 클로즈업과 원거리 숏으로 교대로 잡아내며, 시간이 멈춘 듯한 환상을 실감나게 전달한다. 부유하는 물방울과 유리잔 파편, 천천히 뒤집히는 책장의 이미지들은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관객은 잠시나마 과학과 이성이 설 자리를 잃은 순수한 몽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이때 브뤼겔의 그림과 음악, 그리고 두 인물의 공중정지는 모두 과거와 현재, 예술과 삶이 뒤섞이는 한편의 시적 몽타주로 기능한다. 평단은 이러한 시퀀스를 두고 “타르코프스키가 순간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붙잡아 화면에 영원의 일별을 담아냈다”고 평하며, 그의 영화미학이 응축된 결정적 장면으로 손꼽는다. 실제로 타르코프스키 자신도 이같은 느리고 명상적인 연출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또 다른 시간의 층위를 찾는” 실험을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몽환적 평화는 오래 가지 못한다. 솔라리스 행성의 신비를 두고 과학자들은 논쟁을 이어가며, 켈빈은 현실과 환영 사이에서 심신이 지쳐간다. 스나우트와 사토리우스는 솔라리스 바다가 인간의 뇌파를 흡수하여 ‘손님’을 만들어낸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종결짓기 위해 강력한 방사선으로 바다를 조사하기로 결정한다. 그 전에 켈빈의 뇌에 담긴 정보를 바다에 역으로 쏘아보내면 혹시 바다가 인간을 이해하여 실험을 멈추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의 선택은 폭력적인 해결책으로 기운다. 이 과정에서 하리는 자신이 결국 켈빈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켈빈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사라지길 결심한다. 그녀는 사토리우스에게 부탁하여 반중력 입자 해체 장치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소거해버린다. 켈빈이 이를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고, 그는 절망 속에 심한 열병을 앓으며 정신을 잃는다. 이때 영화는 또 하나의 몽환적 이미지를 펼쳐 보인다. 켈빈의 꿈 장면인데, 여기서는 지구의 자연 풍경, 어린 시절 기억, 어머니의 모습 등이 뒤섞여 나타난다. 카메라는 물 속에 잠긴 방 안에 켈빈의 어머니가 들어오는 초현실적 장면을 보여주거나, 녹슨 금속 구조물 사이로 아이였던 켈빈이 달리는 플래시백 등을 비춰주며 인과관계가 끊긴 순수한 영상 흐름을 구성한다. 이 일련의 장면들은 훗날 타르코프스키가 <거울>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일 시적 이미지 몽타주의 전조라 할 만하다. 꿈을 통해 켈빈의 무의식을 탐색한 후, 영화는 그를 지구로 “귀환”시키는 것으로 보이는 결말로 향한다. <솔라리스>의 결말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 채 강렬한 잔상을 준다. 켈빈은 병상에서 회복된 뒤 지구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어느새 아버지의 집 앞 연못가에 서 있다. 집 주변 풍경은 영화의 도입부와 똑같이 보이지만 어딘가 정적이고 기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켈빈은 현관으로 걸어가서 마중 나온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그는 마치 렘브란트의 회화 〈탕자의 귀환〉을 연상시키듯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다리를 끌어안는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아들을 감싸 안는다. 카메라는 서서히 이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줌 아웃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충격적 사실: 이들이 있는 곳은 지구의 농장이 아니라 솔라리스 행성의 한 조그만 섬 위라는 것이다. 집 주변으로 카메라가 더 멀어지자, 끝없이 펼쳐진 솔라리스의 물결치는 대양(大洋)이 화면을 채운다. 결국 켈빈은 지구로 귀환한 것이 아니라, 솔라리스의 바다가 보여주는 환영 속 현실 안에 머물게 된 것이다. 바흐의 엄숙한 음악이 다시 흐르며 화면이 암전된다. 이 엔딩은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다. 표면적으로는 솔라리스의 미지 지성(知性)이 켈빈의 가장 간절한 바람 – 속죄와 화해 – 을 이루어주는 듯 보인다. 죽은 아내도 잃고 모든 실험이 실패로 끝난 뒤, 켈빈은 차마 이루지 못한 소원, 즉 아버지와의 화해를 그 ‘거짓 현실’ 속에서나마 성취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현실 도피를 뜻하기도 한다. 켈빈은 더 이상 차가운 현실 세계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기억으로 구성된 환영의 낙원에 머무르기로 암묵적으로 선택한 셈이다. 이는 쿠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인간의 새로운 진화를 암시하며 끝나는 것과 정반대 방향의 결말이다. <솔라리스>의 마지막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어떤 해답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우주에서 발견한 것은 신비한 거울 속 자기 위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쓸쓸한 통찰을 던진다. 한 비평가는 이 마지막 숏에 대해 “지구(인간의 현실)와 솔라리스의 바다(인간이 풀지 못한 무한)가 하나로 이어진 모습”이라 평하며, “타르코프스키에게 인간과 거대한 무한 사이에는 불가분의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 비록 그것이 끝내 해독 불가능한 상태로 남을지라도”라고 해설했다. 관객은 켈빈의 선택이 구원인지 타락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으며, 그저 여운 어린 질문만을 안은 채 영화의 크레딧을 맞이하게 된다.

타르코프스키는 <솔라리스>를 통해 자신의 독자적인 영화 미학을 유감없이 펼쳐 보인다. 그는 동시대 소비에트 영화인들이 주로 활용하던 몽타주보다는 씬 하나하나의 지속시간과 유려한 롱테이크를 중시했다. 덕분에 이 영화는 SF 장르로서는 이례적으로 완만한 템포와 긴 숏들로 이루어져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영상은 피상적 순간 뒤에 숨은 더 깊은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는 신념 하에, 급박한 편집 대신 관조적 카메라 움직임을 택했다. 예컨대, 켈빈이 솔라리스 정거장에 도착하는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정거장의 복도를 배회하며 공간을 탐색한다. 이때 관객은 주인공과 함께 낯선 공간을 체험하고 그 분위기에 잠식된다. 이러한 롱테이크 기법은 관객의 능동적 주시를 요구하는데, 빠른 전개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지루한 영화”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의 비평가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를 처음 접하고 “<솔라리스>는 빠른 액션 영화가 아니라, SF의 자유를 이용해 인간 본성을 성찰하는 깊고 사려 깊은 작품”이라고 평했다. 그는 처음에는 영화의 느린 길이와 템포에 주저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철학적 야심을 존중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나아가 2003년에는 이 영화를 자신의 “위대한 영화” 리스트에 올리며 “어떤 감독도 타르코프스키만큼 관객의 인내심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숭배자들은 열정적이며 그들도 타당하다. 타르코프스키는 의식적으로 크고 심오한 예술을 창조하고자 했고, 정신적 힘으로 현실을 변모시킬 수 있다는 낭만적 비전을 고수했다”고 극찬했다. 이러한 언급에서 드러나듯, 타르코프스키의 연출은 관객에게 일종의 명상적 몰입을 요구하며, 인위적 감정 유도 대신 스스로 사유할 시간을 부여한다. 영상미적인 측면에서, <솔라리스>는 자연과 산업,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인물 심리를 표현한다. 지구 장면들은 싱그러운 녹색과 부드러운 자연광으로 촬영되어 켈빈의 잃어버린 평화와 향수를 상징한다. 반면 우주정거장 장면들은 차가운 형광빛과 금속성 색조로 채워져 인공적이고 불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타르코프스키와 유소프는 동양적 미감을 일부 차용하여 색채를 운용했는데, 예를 들어 도쿄 고속도로 시퀀스에서는 도시의 네온빛과 자동차 불빛이 자극적인 팔레트를 이루는 반면, 그 장면 직후 켈빈이 바라보는 우주정거장 창밖의 솔라리스 행성은 잿빛 구름으로 덮여 있다. 이러한 색 대비는 현실 세계의 과잉 자극과 우주에서의 무채색 고독을 대조시킨다. 또한 물과 거울의 이미지가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반사의 모티프로서 캐릭터의 내면 성찰을 시각화한다. 켈빈은 지구의 연못에 비친 자기 모습, 정거장 창문에 어른거리는 자기 얼굴 등을 바라보는 장면이 몇 차례 나오며, 이를 통해 관객은 그가 자기 자신의 기억과 정면으로 대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삭제된 장면 중에는 정거장 내 ‘거울의 방’에서 켈빈이 자신과 수없이 마주보는 장면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정거장 공간 자체가 거울처럼 그의 과거를 비춰주는 장치인 셈이다. 사운드 디자인 면에서, <솔라리스>는 특유의 실험적 접근을 보인다. 음악은 전자음악 작곡가 에두아르트 아르테미예프가 맡았는데, 그는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전자 음향과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고전음악을 교차시켰다. 도입부와 무중력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바흐의 “Ich ruf zu Dir, Herr Jesu Christ” 코랄 전주곡은 영화 전체에 영혼의 울림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솔라리스 행성을 비출 때 흐르는 전자음향은 심해(深海)처럼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와 신비로운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관객에게 막연한 불안과 경외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타르코프스키는 인위적인 영화음악을 쓰지 않으려 했고, 필요 이상의 설명적 사운드를 배제했다는 점에서 음악도 미니멀리즘에 가깝다. 또한 그는 환경음을 중요하게 활용했다. 지구 장면에서는 바람 소리, 새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 등이 자연스럽게 들려오고, 정거장 내부에서는 기계의 저음 진동, 발자국의 울림 등이 정적 속에서 강조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침묵의 활용이다. 클라이맥스에서 하리가 사라진 후 켈빈이 좌절하는 일련의 시퀀스는 긴 침묵과 느릿한 효과음으로만 채워져 있다. 관객은 켈빈의 절망을 과장된 음악 없이 정적 속에서 체험하게 되는데, 이로써 그의 감정이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한편, 극 중 인물들의 대화 역시 과묵하고 간결하다. 불필요한 말은 거의 없이, 때로는 철학적 문장이나 시적 대사가 툭 던져진다. 예컨대 사토리우스 박사는 켈빈에게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인간은 지식에 사로잡힌 신세”라고 단언하고, 하리는 “사랑은 우리가 느낄 수 있지만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말을 남긴다. 이런 대사는 SF 영화에서 흔한 과학용어 대신, 작품을 철학적 에세이처럼 만드는 요소다. 물론 이로 인해 <솔라리스>는 서사적 친절함을 포기했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반대로 영화가 지닌 시적 깊이를 더해주는 중요한 축이기도 하다.

<솔라리스>가 궁극적으로 묻는 질문은 영화의 형식, 이야기, 이미지 모든 요소와 맞물려 심오한 주제 의식을 형성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테마는 인간의 자기 성찰과 구원에 대한 갈망이다. 솔라리스 행성은 말하자면 인간의 양심과 기억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이 거울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작동하여, 인물들이 숨기고픈 내면의 죄의식을 외부 현실로 끄집어낸다. 켈빈에게 나타난 하리는 그가 과거 아내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상처 준 죄책감의 화신이다. 과학자 기바리안에게는 어린 소녀 모습의 환영이 뒤따랐던 것으로 보이고, 사토리우스 역시 실험실에서 누군가를 숨기는 모습이 포착된다. 이것은 일종의 응보처럼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치유의 기회처럼 보이기도 한다. 켈빈은 환영으로 되돌아온 아내를 통해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고 용서를 구할 기회를 얻지만, 그 과정은 또한 잔인한 상처를 동반한다. 영화는 우리가 맞닥뜨린 낯선 존재가 결국 우리 자신의 양심이라는 역설을 제시함으로써, SF 장르의 전형적인 주제를 내면의 드라마로 치환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를 통해 인간이 진정 정복해야 할 것은 우주가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암시한다. “다른 세계를 찾지 말고, 우리 자신을 비춰볼 거울을 찾자”는 영화 속 주제 의식은 결국 과학기술의 시대에 잃어버린 인간 정신의 자리를 회복하자는 메시지로 읽힌다. 영화의 또 다른 핵심 주제는 사랑과 희생, 그리고 그것의 영원성 혹은 무력함이다. <솔라리스>의 중심 서사는 일종의 SF 멜로 드라마로 볼 수도 있다. 죽은 연인이 기적으로 되살아와 다시 사랑을 나눈다는 설정 자체는 고전적 로맨스의 판타지이지만, 타르코프스키는 이를 몽환적이면서도 잔혹한 방식으로 변주한다. 켈빈과 하리의 관계에는 뜨거운 사랑의 재회와 동시에, 두 번에 걸쳐 반복되는 비극이 내재한다. 하리는 두 번이나 자살을 감행하고, 켈빈은 두 번 모두 그녀를 지켜주지 못한다. 이러한 반복 구조는 히치콕의 <현기증>를 연상시킨다는 평도 있다. 실제로 두 작품 모두 남성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지 못하는 무력감과 동일 인물의 반복적 상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정서적 친연성이 있다. 다만 <솔라리스>에서는 그 원인이 초자연적 존재에 기인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요컨대 이 영화는 SF적 장치를 통해 인간 사랑의 근원적 비극성을 들여다보는 셈이다. 켈빈이 끝내 환영 속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선택은 어쩌면 하리를 잃은 후 현실에 대한 체념과 도피로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차가운 진실이 아니라 자비로운 환상이라는 주장일 수도 있다. 이 모호한 결말은 관객 각자에게 사랑과 구원에 대해 사색할 여지를 남긴다.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사는 종교적·철학적 함의도 풍부하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전지전능한 신 혹은 창조주의 은유처럼 읽히기도 한다. 어떤 평론가는 “솔라리스는 인간을 그의 창조주 앞에 세우는 신화적 영화”라며, “인간 관계에서 사랑을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외친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영화 속 솔라리스 해양은 인간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고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로 그려지지만, 끝내 자기 의지를 인간 언어로 전달하진 않는다. 이것은 침묵하는 신 혹은 우주의 신비를 상징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타르코프스키 본인은 이 영화의 핵심을 “인간의 도덕적 순수성”에 관한 이야기로 보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연의 심원을 파고드는 탐구는 반드시 도덕적 진보와 연결되어야 한다. 지식이 한 계단 올라서면, 도덕도 한 계단 올라서야 한다”고 말하며, <솔라리스>를 통해 도덕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과학자들의 윤리 문제가 비중 있게 다뤄진다. 사토리우스는 해양에 방사선을 쏘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하나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이다. 영화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과학적 진보 뒤에 따라야 할 윤리의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보인다. 냉전 시기 핵개발 경쟁이나, 우주개발 이면의 정치적 욕망 등을 떠올려 보면 이 주제는 더욱 시대를 초월한 울림을 준다. <솔라리스>는 개봉 당시 소련 당국의 이념과 어긋나는 정신성을 담고 있어서인지 국내에서는 미온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서구 평단에서는 “서구 문명이 가진 가치들을 진지하면서도 기묘한 방식으로 재검토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예컨대 뉴욕 타임스의 빈센트 캔비는 이 영화를 두고 “서구 과학과 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사랑의 신비를 탐구함으로써, 현대 문명이 잃은 영적 차원을 일깨운다”는 취지의 평을 남겼다. 인도계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 역시 <솔라리스>를 “최고의 SF 걸작”이라 부르며, “현실의 불확실성과 인간 무의식의 힘, 그리고 불행조차 아름다운 사랑의 힘을 탐구한 위대한 작품”이라고 격찬했다. 그는 나아가 “이 영화는 최대한 많은 이들이 반드시 보아야 한다”고 권하며, 타르코프스키가 보여준 시적 영상미와 철학적 통찰이 미래에도 길이 남을 것이라 예견했다. 이러한 국제적 호평에도 불구하고 정작 타르코프스키 본인은 <솔라리스>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1980년대 초 자서전적 다큐멘터리 <여정의 시간>에서 “<솔라리스>는 예술적으로 실패한 작품”이라고 언급하며, 그 이유로 “SF 장르를 초월하지 못하고 기술적 대사와 특수효과에 발목 잡혔다”는 점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후년에 만든 <스토커>를 두고는 장르의 한계를 극복한 성공작으로 친 것과 비교하면, 본인에게 <솔라리스>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실험이었던 셈이다. 일부 평론가들도 그의 견해에 동조하여, <솔라리스>가 타르코프스키 필모그래피 중 가장 난해하고 완성도 면에서 <희생>, <거울> 등보다 떨어진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 평자들은 이 작품이 지닌 선구적 의미와 미학적 성취를 높이 평가한다.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는 평생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솔라리스>를 꼽았고, 수많은 감독들이 타르코프스키의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공언했다. 오늘날 <솔라리스>는 유럽 예술영화와 SF 장르의 가교 역할을 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여러 매체에서 역대 최고의 SF 영화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솔라리스>는 표면적으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이지만, 그 내면에는 철학적 사유와 영상 시의 정수가 흐르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타르코프스키는 장르의 공식을 빌려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관객을 낯설고도 친숙한 자기 성찰의 거울 앞에 세운다. 영화 언어의 혁신과 주제의식이 긴밀히 엮여 있는 본작은, 형식주의 비평과 인문학적 해석 모두를 풍부하게 자극한다. 롱테이크, 자연 이미지, 서정적 사운드스케이프 같은 형식 요소들은 단순한 미학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사유하기 위한 도구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물에 비친 영상과 거울 모티프는 인물의 정체성 혼란을 가시화함과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나는 누구인가”를 묻게 만든다. 또한 솔라리스의 미지의 지성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며, 이는 20세기 후반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읽힌다. 한 프랑스 비평지에서는 <솔라리스>를 “진보에 대한 믿음을 한 우화로 의문에 부치는 영화”라고 평했다. 즉 겉으로는 미래 우주 개척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인간이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내면의 진보’를 묻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생전에 “예술은 현대의 세속화된 단편화를 치유하고, 보다 큰 영적 의미를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언급한 바 있다. <솔라리스>는 바로 그 시도를 스크린에 구현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과학 vs.신앙, 현실 vs.환상, 죄 vs.구원 등 거대한 이분법들을 한 공간에 불러모아 충돌시키고, 뚜렷한 해답 대신 한 편의 성찰의 장을 제공한다. 작품 말미에 켈빈이 환영 속 아버지에게 귀환하는 모습은, 1960년대의 모더니즘적 신념이 1970년대의 현실 앞에서 향수 어린 회귀로 바뀌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거대 담론의 좌절과 개인적 영성의 재부상을 보여주는 시대적 알레고리로 읽을 수도 있다. 반면 다른 시각으로는, 그 장면이 인간과 우주가 결국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임을 암시하는 화해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렇듯 <솔라리스>의 엔딩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바로 그 수수께끼야말로 이 영화를 전설적 지위에 올린 요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형식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솔라리스>는 영화 매체가 어디까지 깊이 있고 독창적인 표현을 창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타르코프스키는 관습적 서사 전달을 넘어 이미지와 소리 자체로 사고하고 느끼게 하는 순수 영화의 경지를 추구했다. 그는 훗날 영화 이론서 <봉인된 시간>에서 “영화는 흐르는 시간을 조각하는 예술”이라 정의하며, 관객이 자신의 영화 속에서 심리적 시간을 체험하길 바랐다. <솔라리스>는 바로 그러한 심리적 시간이 흐르는 공간이다. 관객이 이 영화를 볼 때 느끼는 지루함, 경이, 혼란, 황홀감 등은 모두 타르코프스키가 설계한 정서적 리듬 안에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단순히 줄거리나 메시지로 환원되지 않고, 체험되는 예술로 남는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솔라리스>는 여전히 새로운 해석과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살아있는 작품이다. 어떤 이는 이 영화를 통해 우주에서 인간을 본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인간 속에서 우주를 본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가 던지는 “우리는 무엇을 찾아 우주로 나아가는가”라는 질문은 시대를 넘어 유효하다는 점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이에 대한 답을 강요하지 않고 관객 스스로 답하도록 남겨둔다. 그리하여 <솔라리스>는 보는 이마다 다른 사유의 거울이 되어 준다. 1972년 칸 영화제 수상 당시에도 작품을 둘러싼 논란과 경이로움이 공존했듯이, 지금도 이 영화는 SF의 틀 안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심오한 시네마적 경험으로 평가받는다. 끝없는 해석을 품은 채, <솔라리스>는 우리 곁에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아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붉은 사막

1960년대 이탈리아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을 실험적 영화언어로 탐구한 감독이다. <붉은 사막>은 안토니오니가 이전에 발표한 이른바 “소외 3부작” – <정사>, <밤>, <일식> – 이후 내놓은 첫 컬러 영화로서, 그의 경력에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다. 이 영화는 안토니오니가 컬러를 통한 영상 미학의 혁신을 본격 시도한 작품으로, 제21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다. 안토니오니는 이탈리아 경제 성장기였던 1950년대 말~60년대 초의 사회 변화를 예민하게 포착했고, <붉은 사막>에서는 산업화로 변모한 풍경과 정신적 혼란을 결합시켜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실제로 안토니오니는 기술 발전과 인간 심리의 불균형에 주목하여, “과학은 겸허해졌지만 도덕은 정체됐다”는 취지로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를 진단한 바 있다. 1960년대 초 이탈리아는 “경제 기적”으로 불릴 만큼 고도 성장을 이루었지만, 급격한 산업화의 그늘 속에 중산층의 정서적 혼란과 소외감이 짙게 드리웠다. 안토니오니의 이전 흑백 3부작은 부유한 중산층 인물들의 내적 고독과 인간관계의 균열을 세밀하게 그려냈는데, <붉은 사막>은 그 연장선에서 컬러 필름이라는 새로운 도구로 이러한 주제를 심화한다. 감독 본인은 컬러 도입에 대해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고, “몇 년 후면 관객들이 흑백 영화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을 만큼 색채의 표현력을 중시했다. <붉은 사막>은 이러한 안토니오니의 오랜 구상이 결실을 본 작품으로, 당시 평단에서는 “영화에서 이토록 강렬한 색채는 처음 본다”는 경탄이 나오기도 했다. 동시에 이 영화는 안토니오니 영화 세계의 전환점으로 평가되는데, 이는 그의 이탈리아 3부작을 집대성함과 동시에 향후 국제적 작품 활동의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붉은 사막> 이후 안토니오니는 영국에서 <욕망>, 미국에서 <자브리스키 포인트> 등 해외를 무대로 영화를 만들며 보다 광범위한 현대 문명 비판을 이어나갔다. 한편, <붉은 사막>이 제작된 1964년의 시대적 분위기를 살펴보면, 고도 산업화와 기술 낙관주의 이면에 새로운 불안과 위기의식이 감돌고 있었다. 2차대전 후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이 전후 폐허 속 민중의 삶을 그렸다면, 60년대의 안토니오니는 풍요 속에 방향을 잃은 중산층의 정신세계를 탐구했다. 이는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문화적 흐름으로, 물질적 풍요가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실존주의적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안토니오니는 좌파 성향을 지녔으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었고, 정치 혁명보다는 인간의 내면 변화에 관심이 있었다. 그에게 기술 진보는 아름답고 경이로운 동시에 인간성을 잠식하는 양가적 대상이었다. 실제로 그는 영화 개봉 전 인터뷰에서 “도덕과 과학의 분열은 남성과 여성의 분열이기도 하다”라고 언급하며, 산업사회에서 여성이 영혼의 불균형을 감지하는 가장 섬세한 지표이자 궁극적으로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았다. 이렇듯 도시 산업화, 기술과 도덕의 괴리, 성별에 따른 감수성의 차이 등 1960년대의 복합적 담론들이 <붉은 사막>의 저변에 흐르고 있다.

<붉은 사막>은 첨단 산업사회 한복판에서 불안을 겪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의 배경은 이탈리아 북부의 공업도시 라벤나 근교로, 안개 자욱한 공장 지대와 회색빛 항구 풍경이 영화 전반에 걸쳐 펼쳐진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관객은 낯설고 불길한 분위기에 직면한다. 비 내린 뒤 축축한 도로 옆으로 거대한 공장 시설들이 늘어서 있고, 굴뚝들은 누런 연기를 뿜어낸다.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드럼통 불 옆에 우울하게 모여 있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이때 화면 가득 펼쳐지는 강철과 콘크리트의 생생한 색감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적이면서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데, 한 평론가는 “젖은 도로, 굴뚝 연기, 녹슨 콘크리트의 색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싶을 만큼 현실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고 묘사했다. 카메라는 공장 지대를 천천히 훑으며 금속성 소음과 기계음이 깔린 압도적인 소리 풍경을 들려준다. 이 겁먹은 듯한 전자음과 기계소음의 사운드트랙은 영화 시작부터 관객의 신경을 자극하며, “이 새로운 세계가 얼마나 지옥에 가까운가”를 무언으로 주지시킨다. 이 음울한 산업 풍경 속을 걸어오는 주인공 줄리아나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초록색 코트를 입은 그녀가 어린 아들 발레리오의 손을 잡고 회색 공장 담벼락을 따라 걷는 모습은, 탁한 모노크롬 풍경 속에서 생기있는 색의 대비를 이룬다. 안토니오니는 이 장면을 위해 실제 잔디까지 회색으로 칠해가며 화면의 색조를 통제했고, 덕분에 인물의 코트 색만이 튀어 오르는 몽환적 효과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줄리아나는 길가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샌드위치 노점상에게 다가가는데, 이상하게도 남이 먹다 만 빵 조각을 돈 주고 사서는 아무 말 없이 풀숲 뒤에 숨어 허겁지겁 베어 문다. 남편 몰래 허기를 채우듯 보이는 이 기이한 행동은 주인공의 불안한 내면 상태를 암시하며, 관객에게 많은 의문을 남긴다. 실제로 영화 초반에는 이렇듯 맥락 없이 등장하는 수수께끼 같은 디테일들이 있다. 예컨대, 회색 벽 앞에서 잔뜩 풀이 죽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한 떠돌이 행상인이 잠시 비춰지는데, 그의 수레에 실린 상품들조차 벽과 똑같이 회색빛이라 화면에 동화되어 버린다. 이 남자는 아무 설명도 없이 곧 사라지지만, 그 침묵하는 절망의 이미지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인간 소외의 한 단면을 예고한다. 이러한 미스터리한 삽화들은 “맥락 없이 스쳐 지나가지만 관객의 뇌리엔 강렬하게 남아 영화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성격을 한층 깊게 만든다”는 평을 받았다. 줄리아나는 공장 엔지니어인 남편 우고를 찾아 파업 현장에 왔다가, 그곳에서 남편의 사업 파트너로 공장을 방문한 코라도를 처음 만난다. 코라도는 해외 사업을 위해 노동자들을 모집하러 온 인물로, 파업으로 어수선한 공장 한쪽에서 노동자들을 상대로 아르헨티나 이주 취업 설명회를 연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에서 코라도 역시 순간적으로 멍해져 연설을 잇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설명회 도중 벽면 장식으로 그려진 푸른 색띠를 멍하니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멈춘다. 카메라는 그의 시선을 따라 그 파란 페인트 줄무늬를 클로즈업하는데, 마치 주인공 못지않게 코라도 또한 어딘가 공허함과 혼란을 느끼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윽고 줄리아나가 방으로 들어와 코라도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가 시작된다. 코라도는 줄리아나의 불안한 눈빛과 조심스러운 태도에 묘한 이끌림을 느끼고, 줄리아나도 이 외지에서 온 친절한 남성에게 서서히 마음을 연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어딘가 엇갈리고 겉돈다. 줄리아나는 뜬금없이 “현실엔 뭔가 끔찍한 것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네요”라고 토로하며 자신의 막연한 두려움을 내비친다. 이에 코라도는 조심스럽게 공감하듯 “나도 가끔 내가 여기 있을 자격이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라고 답한다. 이렇듯 두 인물 모두 말로 규정하기 힘든 공허함과 부적응감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 막막한 거리를 좁히지는 못한 채 장면은 끝맺는다. 영화는 이후 줄리아나의 가정과 일상을 파편적으로 따라간다. 줄리아나는 엔지니어 남편과 부유하게 살고 있지만, 정신적 불안증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과거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후유증으로 추측되는 그녀의 신경증은, 남편의 말대로 “아직 세상에 제대로 맞물리지 못한” 상태다. 그녀는 동네에 작은 도자기 공방 겸 가게를 열 계획이지만, 무엇을 팔지조차 결정을 못할 만큼 의욕이 없다. 남편과 함께 있을 때조차 눈빛은 허공에 머물고, 어린 아들마저 엄마의 예민한 불안을 눈치챌 정도다. 코라도는 출장 차 들른 이 낯선 산업도시에서 줄리아나에게 연정을 품고 가까워지려 하지만, 줄리아나의 혼란스런 내면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코라도는 그녀에게 연민과 동질감을 느끼며, 남편이 채워주지 못한 정신적 교류를 시도한다. 영화의 중반부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시퀀스는 줄리아나, 코라도와 몇몇 친구들이 함께 외딴 항구가에 있는 낡은 오두막집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짙은 안개가 낀 황량한 해변에 위치한 이 나무 오두막은, 내부가 기묘한 진홍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줄리아나의 남편과 코라도, 그리고 친구 부부 등 여섯 명은 날씨도 궂고 할 일도 없자 이곳에 모여 술과 담소를 나눈다. 벽난로 불빛과 램프 조명으로 붉게 물든 실내에서 인물들은 처음엔 농담을 주고받으며 무료함을 달랜다. 이때 안토니오니는 카메라를 천천히 팬하며, 붉은 벽과 인물들의 얼굴 표정을 번갈아 비춘다. 한참 수다를 떨던 이들은 점차 성적 긴장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한 여자 친구(마빌리 역)는 즉석에서 관능적인 춤사위를 보이며 남자들을 유혹하고, 다른 이들은 짓궂게 부추기며 은밀한 쾌락을 즐기려 든다. 카메라는 마치 감정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시각화하듯, 방안을 물들이는 붉은 조명을 한층 강렬하게 담아낸다. 붉은 벽, 붉은 조명, 그리고 인물들의 들뜬 표정이 어우러져 이 장면은 순간적으로 일탈적 에너지로 가득 찬다. 그러나 이내 하나의 해프닝이 벌어진다. 잠시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던 줄리아나가 안으로 돌아오자, 방 안의 전구가 갑자기 나가 버려 모두가 암흑 속에 갇힌 것이다. 몇 초 뒤 비상 램프가 켜지며 실내는 다시 보통의 회색빛으로 돌아오는데, 붉게 타오르던 색채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공간에는 어색한 정적만 흐른다. 흥분했던 인물들은 썰물이 빠지듯 흩어지고, 석연찮은 기류 속에 각자 자리를 정리한다. 안토니오니는 이 인상적인 색채의 전환을 통해, 앞서 붉은 색이象征했던 욕망과 흥분의 에너지가 한순간에 억압과 공허로 바뀌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평론가들 역시 이 오두막 장면을 영화의 백미로 꼽으면서, “처음엔 정열의 붉은색이었던 공간이 색이 벗겨지고 난 뒤엔 억눌림과 위험의 색이었음이 드러난다”고 해석했다. 이렇듯 폭발할 듯 고조되던 관능적 긴장감이 이내 허무로 꺼져버리는 아이러니는, 관객에게 섬뜩한 여운을 남긴다. 오두막에서 돌아온 후, 줄리아나와 코라도는 마음을 더욱 터놓게 되지만 둘 사이의 거리는 끝내 완전히 좁혀지지 않는다. 코라도는 줄리아나와 동침을 시도하며 그녀를 위로하려 하지만, 줄리아나는 격렬히 동요하며 “나를 정말 원하냐” “나를 단지 다른 여성들처럼 대하는 것 아니냐” 등의 말로 불안을 드러낸다. 결국 그들의 육체적 접촉마저 위안이 되지 못한 채 코라도는 떠나고 만다. 한편 줄리아나의 아들 발레리오는 갑자기 다리가 마비됐다고 말해 부모를 경악시킨다. 의사를 불러 호들갑을 떨지만 이내 아이가 거짓말을 했음이 드러난다. 아이조차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줄리아나를 더욱 절망에 빠뜨린다. 클라이맥스로서의 종결 시퀀스는 줄리아나와 아들이 어느 음산한 공장 인근 길가에 서 있는 장면이다. 하늘은 잿빛으로 흐리고, 커다란 굴뚝에서는 독성이 섞인 노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아이가 “엄마, 저 연기는 왜 노래요?”라고 묻는다. 줄리아나가 “독이 있어서 그래”라고 답하자, 아이는 겁에 질려 “저 연기 속을 새들이 날아가면 어떻게 돼요? 죽나요?”라고 되묻는다. 잠시 침묵하던 줄리아나는 연기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한다. “괜찮단다… 새들은 연기 속을 날지 않는 법을 배웠거든.” 노란 독가스가 피어오르는 하늘 아래, 줄리아나의 얼굴에는 쓸쓸한 미소와 함께 눈물이 맺힌다. 그리고 영화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이 여운 어린 엔딩에서 줄리아나의 마지막 대사는 여러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아이에게 건넨 “새들은 그 속을 날지 않는 법을 배웠다”는 말은, 인간 역시 독으로 가득한 현대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게 되리라는 체념으로 읽힐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절망 속에서도 살아가야 한다는 조용한 위안처럼 들리기도 한다. 베르디의 현악 사중주가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줄리아나 모자의 뒷모습과 공장의 굴뚝 연기가 화면을 채우며 영화는 끝난다. 관객은 이 엔딩에서 구원과 체념이 교차하는 모호한 정서를 느끼며, 영화가 던진 질문들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안토니오니의 <붉은 사막>은 형식과 내용이 긴밀히 결합된 영화언어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그는 카메라, 색채, 편집, 사운드, 미장센 등 영화 매체의 모든 요소를 동원하여 현대인의 불안을 형상화한다. 특히 이 작품은 컬러 사용의 혁신으로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앞서 언급했듯 안토니오니는 이탈리아 감독 최초로 본격적인 작가주의 컬러 영화를 선보였는데, 당시 한 평자는 “컬러 영화가 주는 기쁨을 이토록 강렬하게 체험한 적이 없다”고 평했을 정도로 색채 구현이 독보적이었다. 안토니오니는 실제 촬영 현장에서 나무와 풀까지 페인트로 칠하고, 노점의 과일을 잿빛으로 물들이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화면의 색을 세밀하게 조율했다. 그러나 완성된 화면은 그런 인공적인 노력이 쉽게 드러나지 않을 만큼 절제되고 자연스럽다. 그는 영화 제목에까지 등장하는 ‘붉은’ 색조차 남용하지 않고 절정까지 아껴두었으며, 대신 회색·갈색 등 탁한 중간색조의 팔레트로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드문드문 등장하는 선명한 색채의 순간들 – 가령 노란색 장난감이나 파란 페인트 줄무늬, 줄리아나의 녹색 코트 – 은 오히려 현실 세계에서 이질적인 요소로 느껴진다. 실제로 화면 곳곳에 배치된 강렬한 색의 오브제들은 추상화파 회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미국의 현대 미술에 비유하자면, 플라스틱 용기의 원색이나 공장 기계의 원색들은 프랭크 스텔라, 바넷 뉴먼 같은 컬러 필드 작가들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며, 줄리아나가 한때 꾸미려 했던 가겟집 벽의 직사각형 색칠은 마크 로스코의 색면을 연상시킨다. 안토니오니는 이처럼 영화 화면을 한 폭의 캔버스처럼 활용하여, 색채를 통해 서사의 정조를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카메라 워크 면에서도 <붉은 사막>은 독특한 미학을 보여준다. 안토니오니는 롱테이크와 패닝, 줌아웃 등의 느리고 유유한 카메라 움직임으로 인물과 풍경을 동시에 응시한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이나 급격한 컷보다는, 등장인물이 광활한 배경 속에 작게 자리한 롱샷을 즐겨 활용하는데, 이로써 인물이 거대한 환경에 압도당한 모습을 인상적으로 포착한다. 실제로 <붉은 사막>에서 반복되는 이미지는 거인처럼 솟은 공장 구조물과 그 발치의 초라한 인간이다. 굴뚝, 철탑, 파이프라인 같은 산업 설비가 화면을 지배하고, 줄리아나나 코라도는 그 아래에 왜소한 실루엣으로 서 있다. 이러한 구도는 현대 기술 문명이 인간을 압도하고 있음을 시각화하는 동시에, 광대한 공간 속에 고립된 개인의 내면 상태를 암시한다. 안토니오니 자신도 “<붉은 사막>에서 나는 기술과 기계를 인간과 대결시켰다. 내 영화들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 쪽이지 기계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통찰은 고스란히 영화의 화면 구성에 반영되어 있다. 한편으로 감독은 프레임 속 시각적 층위의 배치에도 공을 들였는데, 종종 화면 전경에 구조물이나 사물을 배치하여 인물을 부분적으로 가리거나 압도하도록 연출한다. 예컨대 코라도가 노동자들에게 연설하던 방에 걸린 푸른 줄무늬, 우거진 안개와 연기, 창문 유리에 비친 반사광 등이 층층이 겹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인물이 주변 환경에 압도되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를 표현한다. 이러한 의도적인 평면화와 원근감 억제 기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을 둘러싼 물리적·심리적 압박을 간접 체험하게 한다. 편집과 서사 구조는 통상의 드라마보다 느슨하고 단편적이다. 안토니오니는 의도적으로 명확한 사건 전개를 피해, 단절과 여백으로 가득한 서사를 빚어냈다. <붉은 사막>에서 뚜렷한 기승전결은 희미하며, 대신 에피소드의 나열과 심리적 분위기의 흐름이 중심을 이룬다. 이는 1960년 <정사>로 대표되는 안토니오니 특유의 반(反)서사적 기법이 컬러 시대에도 계승된 것이다. 관객은 줄리아나의 행동과 감정이 분명한 동기나 설명 없이 이어지는 것을 목도하며, 일종의 해석적 몽타주를 수행해야 한다. 이야기의 공백을 스스로 메우고 인과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줄리아나의 분열된 정신 세계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또한 영화 중간에 삽입된 동화 같은 짧은 에피소드 – 줄리아나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바닷가 소녀 이야기 – 는 이질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상 영화 구조의 중요한 한 축이다. 이 장면은 기존의 흐름에서 뚝 떨어져 나온 독립된 작은 영화처럼 연출된다. 눈부신 햇살 아래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금발의 소녀가 홀로 해변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는 이 삽화는, 앞뒤 맥락과 인물 구성을 전혀 공유하지 않는다.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다소 당황할 수 있는 이 장면에서, 안토니오니는 이례적으로 밝고 포화도 높은 색감을 한껏 활용한다. 파란 하늘과 바다, 노란 모래와 바위, 흰 새들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은 천국 같은 평화를 자아낸다. 이는 안개 자욱한 산업 지옥도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영화의 긴장을 순간 풀어주는 환상곡처럼 기능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곱씹어 보면 이 동화에는 명확한 교훈도, 결말도 없다. 소녀는 유령선과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찾아 헤매지만 정체를 알지 못한 채 끝나며, 마지막에 아이가 “누가 노래한 거야?” 묻자 줄리아나는 “모든 것이 노래하고 있었던 거란다. 모든 것이…”라고 대답할 뿐이다. 이 시적이고 개방적인 결말은 동화의 의미를 관객 각자가 느끼도록 남겨둔다. 평론가들은 이 삽화를 두고 “단순한 동심의 판타지로 보이지만, 실은 줄리아나의 내면 심리를 상징적으로 그린 복합적 우화”라고 해석한다. 실제로 줄리아나 역을 맡은 모니카 비티의 목소리로 서술되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줄리아나의 마음 속 잃어버린 순수와 공포를 엿보게 된다. 아이를 위한 이야기라는 표면 아래,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교차했던 그녀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암시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안토니오니는 영화 중간중간 비현실적 에피소드나 설명되지 않는 사건을 삽입함으로써, 현실 서사를 해체하고 관념과 정서의 진실을 포착하려 했다. 이러한 형식 실험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단순한 이야기 소비가 아닌 능동적 사유의 공간으로 받아들이게 만들며, <붉은 사막>을 당대 여느 영화들과 구별짓는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사운드 디자인 역시 주목할 만하다. 안토니오니는 <붉은 사막>에서 전자음악과 현장음을 결합한 독특한 소리 풍경을 구축했다. 산업 현장의 거친 소음이 음악적 리듬으로 편집되어, 사운드트랙 자체가 인물의 혼란을 표현하는 장치가 된다. 오프닝부터 울려퍼지는 금속성 음향의 반복은 불안감을 조성하고, 일부 장면에서는 불협화음에 가까운 전자음이 등장해 마치 SF영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실제로 당시 한 비평은 “길게 이어지는 숏들과 이상한 전자음악 덕에 마치 외계 행성을 배경으로 한 SF영화를 보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음향은 인간 소리가 묻히고 기계음만 가득한 비인간적 세계를 그리면서, 동시에 줄리아나의 주관적 청각 경험을 전달한다. 극 중 줄리아나는 종종 귀를 막거나 주변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관객 역시 영화의 과장된 소음과 침묵의 교차를 통해 그녀의 심리 상태에 동참하게 된다. 한편, 영화 음악은 전면에 나서기보다 환경음과 섞여 은은하게 깔리는 경우가 많다. 기존 멜로드라마처럼 주제 선율이 감정을 이끌기보다는, 불안한 침묵과 미묘한 음향 효과들이 공기를 채운다. 그러나 이런 제한된 사운드 환경 속에서 아름다운 선율의 돌발적 등장은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 예가 바로 동화 삽입 장면에서 흐르는 몽환적인 여성 허밍과 부드러운 음악이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공장 소음 대신 잔잔한 파도소리와 음악이 배경을 채우며, 관객에게 잠시나마 안식을 준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줄리아나의 대사가 끝난 후 부드러운 현악 음악이 흐르며 영화의 쓸쓸한 정조를 극대화한다. 전체적으로 안토니오니는 시각적 이미지 못지않게 소리를 치밀하게 조율하여, 관객의 청각적 경험을 통해 심리적 공감을 끌어낸다. 이러한 사운드 디자인은 이후 많은 감독들이 산업 사회의 소리를 다루는 데 영감을 주었고, <붉은 사막>을 시각과 청각 양면에서 혁신적인 걸작으로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미장센과 공간 연출 측면에서, 이 영화는 두 개의 대비되는 세계를 보여준다. 하나는 차가운 산업 현실의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이상화된 자연의 공간이다. 산업 현실 공간에서는, 공장 지대의 직선적 건축물과 금속 질감이 우세하며 색조도 회색빛으로 통일되어 있다. 카메라는 이 공간을 묘사할 때 흔들리는 핸드헬드나 날것의 현장감을 살린 온셋 녹음 등으로 거칠고 사실적인 질감을 강조한다. 반면, 자연의 공간 – 특히 동화 장면의 해변 – 은 유려한 트래킹샷과 정적인 구도 속에 포착되며, 생생한 자연의 소리가 가득하다. 이 대비를 통해, 현실에서 병든 영혼이 꿈꾸는 해방구로서의 자연이 부각된다. 하지만 영화는 이 두 공간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고 끝내 교차시킨다. 줄리아나의 현실은 자연의 구원으로부터 멀어 보이지만, 그녀가 잠시 들려준 동화의 이미지는 관객의 마음 속에 강렬히 남아 현실을 다시 보게 한다. 또한 영화 속 공간에는 거울, 창문, 안개 같은 시각적 장치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암시한다. 특히 안개 낀 공장 지대는 실제 물리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주인공의 심리적 혼미를 상징하는 추상 공간이 된다. 인물이 짙은 안개 속에 싸여 방향을 잃은 모습은 현실 속에서 길을 잃은 인간의 자화상과 같다. 이러한 공간 연출의 양면성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 과연 예술과 자연은 현실의 독을 치유할 수 있는가, 혹은 그조차 현실의 일부인가 – 를 시각적으로 체현한다. 마지막으로 대사와 연기를 살펴보면, <붉은 사막>의 언어는 최소화되었으나 상징적으로 응축되어 있다. 모니카 비티가 연기한 줄리아나는 극도의 불안을 겪는 캐릭터인 만큼, 구체적인 설명이나 감정 토로 대신 단편적인 문장과 표정으로 내면을 표현한다. 그녀의 유명한 대사 “현실에는 뭔가 끔찍한 것이 있지만 아무도 그게 뭔지 말해주지 않는다”는 현대인의 막막한 불안감을 그대로 대변한다. 이처럼 영화의 대사는 서사를 진전시키기보다 인물의 심리와 철학적 주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코라도의 “가끔은 내가 있는 곳에 있을 권리가 없다고 느낀다”는 고백이나, 남편이 “그녀는 아직도 맞물리지 못하고 있어…”라고 한숨 쉬는 장면 등은 각기 소외된 개인의 자각을 보여준다. 또한 안토니오니와 각본가 토니노 게라가 창조한 몇몇 시적 독백들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듯한 효과를 낸다. 예컨대, 줄리아나가 코라도에게 문득 “당신 외로워요?”라고 묻거나, 동화 장면에서 아이의 목소리로 “누가 노래한 거야?”라고 질문하는 순간, 답변은 명확히 주어지지 않지만 관객은 영화 전체의 의미를 숙고하게 된다. 이러한 여백 있는 대사들은 누벨바그 영화처럼 즉흥적이거나 수다스럽지는 않지만, 오히려 절제된 만큼 강한 여운을 남긴다. 배우들의 연기도 무언의 표현에 중점을 둔다. 모니카 비티는 한 평론가의 말처럼 “대사가 많지 않음에도 눈빛 하나로 고립된 영혼의 동요를 생생히 그려냈다”고 평가받았다. 그녀의 넓게 뜬 눈, 때로 공허하게 멍한 시선, 불안에 떨며 입술을 깨무는 작은 제스처 등은 언어로 풀 수 없는 불안의 초상을 완성한다. 이는 안토니오니 영화의 정수라 할 언어 이전의 커뮤니케이션, 즉 순수한 이미지와 몸짓의 시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붉은 사막>은 형식미와 주제의식이 긴밀히 결합된 작품이다. 앞서 살핀 영화언어적 특성들은 단순한 미학적 실험이 아니라, 1960년대 중반 산업화 사회의 영혼에 대한 감독의 통찰을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우선, 예술과 현실의 교차라는 구조는 안토니오니가 당대 문명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60년대 중반은 기술 낙관론이 팽배했지만, 동시에 인간 소외와 가치 혼란이 심화된 시기였다. 영화 속에서 자연과 동화의 세계는 한때 순수와 조화의 이상향으로 제시되나, 결국 그것마저 현실과 무관하게 존재하지는 못한다. 동화 장면이 끝나면 다시 냉혹한 공장 풍경으로 돌아오듯, 예술적·자연적 이상은 산업 현실에 의해 침식되거나 도피처에 불과함이 드러난다. 이는 예술이 현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순수 영역에 머물 수 없으며, 또한 현실이 예술을 통해 쉽게 구원되지 않는다는 냉엄한 깨달음을 담고 있다. 안토니오니는 아름다운 바닷가 환상과 독기 어린 공장 지옥도를 교차시킴으로써,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새로운 아름다움과 그 이면의 독을 동시에 포착해낸다. 실제로 그는 “기술이 만들어낸 세계는 의심할 여지 없이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독이 스며 있다”고 말하며 양가적 태도를 보였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줄리아나가 독가스를 바라보며 새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예술(이야기)의 숭고함과 현실의 비정함이 교차하는 아이러니를 상징한다. 자연의 새들조차 독을 피해 길을 바꾸듯, 인간의 영혼도 독에 적응하거나 물들여진 채 살아갈 뿐이라는 암시는, 60년대 산업화 현실에 대한 씁쓸한 주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젠더와 권력의 테마도 형식과 맞물려 있다. 안토니오니는 왜 주인공을 여성으로 설정했는가? 그는 여성 캐릭터를 통해 현대의 영적 불균형을 섬세히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다. “도덕과 과학의 분열은 남성과 여성의 분열”이라는 감독의 언급처럼, 영화에서 줄리아나는 기술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성을 체현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남성들은 공장의 일부가 된 듯 제 역할을 수행하지만 정작 내면은 공허하다. 반면 여성인 줄리아나는 겉보기에는 나약하고 병들었지만, 바로 그 민감함 덕에 시대의 독을 가장 먼저 감지한다. 이는 전통적 성역할을 뒤집는 동시에, 여성 해방의 목소리가 높아지던 당대 담론과도 상통한다. 줄리아나의 남편은 그녀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부장적 태도로 일관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남성 중심 논리가 얼마나 인간적 감수성에 무지한지를 폭로한다. 코라도조차 줄리아나를 돕고자 하지만 끝내 구조하지는 못하며, 남성 구원자의 부재 속에 여성 스스로 고립되고 마는 현실이 드러난다. 안토니오니는 이 비대칭적 관계를 형식적으로도 표현하는데, 코라도와 줄리아나가 대화할 때마다 프레임 구석에 고립된 줄리아나의 모습이나, 코라도와의 클로즈업 투샷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연출 등으로 둘 사이의 간극을 시각화한다. 멜로드라마적 관습대로라면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에 관객이 감정 이입하도록 장려하겠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관객이 거리감을 유지하게 만든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사랑 이야기 이면의 권력 관계를 자각하도록 유도한다. 결국 줄리아나는 남성 중심 세계에서 주체적으로 살고자 몸부림치나 끝내 좌절하는 인물로, 그녀의 비극은 기존 젠더 질서에 대한 도전이 좌초되는 모습으로도 해석된다. 이러한 젠더 시각은 형식적으로는 단절적 편집과 불친절한 서사로 구현되어, 기존의 전형적 여성 캐릭터와 관습적 줄거리에 균열을 냈다. 안토니오니가 의도한 메시지는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로도 요약된다. <붉은 사막>은 당시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현대 문명의 가치를 진지하면서도 기묘한 방식으로 재검토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감독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인류 보편의 신화를 가져와 해체하고, 파편화된 이미지와 소리로 재구성함으로써 기존의 가치관에 질문을 던진다. 가령, 산업 발전 신화에 가려진 환경 파괴와 인간 소외를 폭로하고, 기술에 취한 인간의 공허를 적나라한 이미지로 드러낸다. 이는 기존에 진보로만 찬양받던 산업화에 대한 도전이며, 한편으로 전통 예술 형식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안토니오니는 고전적 서사극의 문법을 버리고, 회화·조각·음악 등 타 예술의 영역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였다. 색면 추상을 닮은 장면, 조각 같은 인물 배치, 전위적인 전자 음악 등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단순한 극영화 차원을 넘어 총체 예술에 가까워진다. 다시 말해, 과거의 거장들이 회화나 오페라에서 다뤄온 주제를 영화 매체로 옮겨와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예술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전유와 해체 작업은 60년대 모더니즘 예술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붉은 사막>은 영화 분야에서 그 극한을 밀어붙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안토니오니는 이러한 진지한 작업 속에 자기반영적 유머도 잊지 않았다. 물론 고다르 영화처럼 노골적으로 감독 자신을 등장시키는 메타 영화는 아니지만, 곳곳에 그의 예술관을 암시하는 장치들이 보인다. 예컨대 코라도가 연설 도중 파란 줄무늬에 한눈을 팔거나, 줄리아나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고 탄식하는 대목은, 영화 속 인물이 영화의 표현 기법 자체를 의식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파란 줄무늬는 말하자면 화면에 칠해진 추상화의 일부로, 인물이 현실에서 도피해 이미지에 빠져드는 순간이다. 또한 안토니오니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영화는 진정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처럼 <붉은 사막>은 언어나 줄거리로 완벽히 환원될 수 없는 미묘한 정조를 지닌다. 마지막 장면에서 새에 대한 대화 역시 겉으론 설명이지만 그 의미는 여전히 시적인 여운으로 남는다. 이렇게 감독 자신의 철학과 태도가 영화 곳곳에 녹아 있어, 영화를 보고 곱씹을수록 안토니오니라는 예술가의 자기 성찰의 웃음과 진지한 물음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는 관객에게 일정한 거리두기 효과를 주어, 영화를 단순 소비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붉은 사막>은 겉보기에는 산업 풍경을 배경으로 한 한 여성의 심리 드라마이지만, 그 내면에는 영화 예술과 현대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이 흐르는 아방가르드 걸작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컬러, 소리, 공간, 편집 등 영화 언어의 모든 측면을 혁신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이라는 주제를 우리에게 체험하게 만든다. 그 결과물은 “아름답고도 음울하며, 현대성이 지닌 영혼의 대가를 성찰한 시각적 시”라는 극찬을 받았다. 1964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당시에도 파격적인 표현 때문에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이 영화는 영화사적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붉은 사막>은 여전히 관객을 불편하게 하고 매혹하며, 현대 문명을 바라보는 독보적 시각을 제공한다. “인간이 현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그려냈다는 당대 평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시대를 앞서가며 현대인의 위기를 예언적으로 담아냈다. 또한 색채와 이미지, 소리를 통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 안토니오니의 야심은 오늘날에도 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참고점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줄리아나의 눈에 비친 세계 – 아름답지만 독에 찬 세계 – 는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는 이 세계를 어떻게 느끼고 적응하며 살아갈 것인가? 안토니오니는 그 답을 명확히 주기보다는, 관객들이 영화의 파편들을 스스로 연결하여 자신의 삶을 비춰보길 바랐다. 그래서일까, <붉은 사막>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새로운 의미망을 발산하며, 보는 이마다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고 있다. 바로 그런 해석의 여지와 미학적 충격이야말로 이 영화가 시대를 넘어 영원히 빛나는 이유일 것이다. 작품을 완성하고도 “말로 다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영화가 아니다”라고 했던 안토니오니의 말처럼, <붉은 사막>은 언어를 넘어선 순수 영화예술의 신비를 간직한 채 관객들에게 끝없는 사유의 공간을 열어준다.

오즈 야스지로, 만춘

오즈 야스지로는 일본 영화사의 거장으로, 일상의 가족사를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그려낸 독자적인 영화 세계로 유명하다. 그는 1920년대에 영화 경력을 시작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특히 전후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특유의 정제된 스타일과 가족 드라마에 집중한 작품들로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다. 1949년 작품인 <만춘>은 이러한 오즈의 예술 세계에서 전환점을 이룬 걸작으로 평가된다. 일본 패전 직후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오즈가 전쟁 후 처음으로 선보인 본격적인 현대 가족극의 정수이자, 이후 그의 1950년대 작품들에 지속될 미학과 주제 의식을 확립한 작품이다. 실제로 <만춘>은 일본에서 개봉 당시 키네마 준보 등 평단의 극찬을 받았고 1949년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었으며, 훗날 서구에 소개된 이후로도 오즈 영화 가운데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만춘>이 제작된 1949년의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연합군 군정 하에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고 있었다.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가치관은 서구적 민주주의와 개인주의의 물결 속에서 도전을 받았고, 가족 제도와 결혼에 대한 관념 역시 빠르게 변화했다. 미군 점령군의 검열 당국은 구시대적이라고 간주된 요소들을 일본 영화에서 억제하려 했는데, 특히 ‘중매 결혼’을 봉건적 제도라 하여 부정적으로 보았다. <만춘>은 아버지와 친척들이 주선한 약혼을 통해 딸 노리코가 결혼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검열의 제약을 받을 소지가 있었다. 실제로 각본 단계에서는 노리코의 결혼이 가족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묘사되었으나, 검열의 지적을 받아 최종 영화에서는 그녀 스스로 결혼을 수락하는 형식으로 수정되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극중에서 전통을 미화하거나 미군 점령을 부정적으로 암시하는 장면들 역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럼에도 오즈는 이 작품에 당대 일본 사회의 전통과 근대화 사이의 긴장, 세대 간의 갈등을 우아하게 담아내어, 검열을 피해가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만춘>이 겉보기에는 평범한 부녀 이야기이지만, 그 이면에는 전후 일본인의 정서와 가치관 변화가 깃들어 있다.

<만춘>은 도쿄 인근 가마쿠라에 사는 아버지 소미야 슈키치와 혼기를 놓친 그의 딸 노리코의 일상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두 부녀는 소박하고도 단란한 생활을 꾸려가며 서로에게 깊은 유대를 느끼고 있다. 영화는 일본의 전통 문화 향기가 물씬 풍기는 다도 모임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다미 방에 정좌한 노리코와 이모 마사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차를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는데, 대화의 내용은 다소 엉뚱하게도 해진 바지를 기우는 이야기다. 이처럼 영화는 첫 장면부터 전통적인 의식의 공간에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교차시켜, 옛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당시의 생활 단면을 보여준다. 다도 모임이 끝난 뒤 등장하는 슈키치와 노리코 부녀의 집안 풍경은 정갈하면서도 평범하다. 다다미 거실에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는 부녀의 모습은 안정적인 구도로 담기는데, 낮은 카메라는 마치 같은 방 안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관객을 연상시킨다. 화면에는 여유롭고 단촐한 생활 소품들이 배치되고, 창 너머로는 조용한 마을 풍경이 비친다. 이 모든 미쟝센이 전하는 느낌은 평온함과 따뜻함이며, 관객은 이 가정의 편안한 공기를 함께 호흡하게 된다. 노리코는 가사와 부친 돌보기를 자기 삶의 행복으로 여기며 지내고 있지만, 주변인은 그녀의 혼기를 걱정한다. 노리코는 도쿄에 나갔다가 아버지의 친구 오노데라를 우연히 만나 그의 재혼 소식을 듣게 된다. 그가 새 아내를 맞았다는 말에 노리코는 웃으며 농담조로 대꾸하지만, “더러운 느낌이 든다”며 재혼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낸다. 아버지 슈키치는 노리코의 그런 반응을 놀리듯 가볍게 타이르며 웃어넘긴다. 이 장면은 노리코의 속마음을 드러내는데, 즉 그녀는 부모 세대의 재혼이나 자신의 결혼 같은 변화에 본능적 거부감을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 사회 통념상 스물일곱 살은 결혼을 해야 할 시기이지만, 노리코는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으며 결혼으로 인한 변화가 오히려 두렵거나 불쾌한 것이다. 이모인 마사는 노리코의 혼사를 적극 주선하려 한다. 마사는 오랜 독신으로 남아있는 조카가 안쓰러운 나머지, 오지랖 넓게도 여기저기 후보자를 물색한다. 그녀는 처음엔 노리코와 친분이 있는 젊은 의학도 핫토리를 떠올리지만, 이미 그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헛물켜는 소동을 벌인다. 곧이어 마사는 유망한 신랑감으로 도쿄 대학을 나온 엘리트 청년 사타케를 소개하려 한다. 사타케에 대해 마사는 “생김새가 미국 영화배우 게리 쿠퍼를 빼닮았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노리코의 흥미를 끌려 한다. 그러나 노리코는 아버지를 혼자 두고 결혼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며 맞선을 완강히 거절한다. 그녀에겐 자신이 시집가 버리면 홀로 남을 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과, 현재의 안정된 생활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뒤섞여 있다. 노리코의 이러한 태도에 아버지와 이모는 은근한 위기감을 느낀다. 마사는 심지어 “사실 너희 아버지에게도 중매 이야기가 있다”고 노리코에게 귀띔하는데, 과부인 미와라는 젊은 여자와 슈키치의 재혼을 추진 중이라고 말한다. 이는 반은 농담이자 반은 노리코를 자극하기 위한 심리전이다. 실제로 슈키치 본인은 재혼 생각이 없지만, 딸을 독립시키기 위해서라면 그런 거짓말이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러한 상황 설정은 영화 내에서 일종의 희극적 장치로도 작용한다. 다가올 갈등의 씨앗을 심어두되, 심각한 대립이 아니라 가족 간의 속임수와 오해로 풀어가며 부드러운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영화의 중반부에는 인상적인 야외 장면들이 등장한다. 하나는 노리코가 아버지의 제자였던 핫토리와 자전거를 타고 해변 근처를 달리는 시퀀스이다. 둘은 바닷가 도로를 따라 나란히 자전거를 몰고 가는데, 카메라는 이례적으로 움직이는 트래킹 숏으로 그들을 따라간다. 오즈 작품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카메라 이동이기에 이 장면은 특히 눈길을 끈다.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달리는 청춘 남녀의 모습은 잠시 영화 전체의 느긋한 리듬에 산뜻함을 더한다. 이때 화면 한쪽에는 커다란 코카콜라 간판이 영어로 선명하게 보이는데, 전통적인 해안 도로 풍경 속에 불쑥 등장한 이 서양 광고는 당시 일본 사회에 스며든 미국 문화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오즈는 이 코카콜라 로고를 통해 점령기 미국 자본주의의 침투를 암시했다고 해석되며, 이후 세대의 영화인들이 그의 선구적 표현을 언급하곤 했다. 자전거 장면에서 노리코와 핫토리는 한때 결혼 상대로 거론되었던 사이이지만 서로 친구로서 편하게 어울릴 뿐이고, 노리코도 밝은 미소를 띠며 오랜만에 또래 청년과 자유로운 한때를 즐긴다. 이 장면은 노리코의 젊음과 즐거움이 드러나는 순간인 동시에, 현대 일본의 새로운 풍속이 전통적 풍경과 조우하는 순간으로 영화의 테마를 시각화한다. 또 다른 중요한 장면은 전통 예술 공연인 노 관람 시퀀스다. 아버지와 함께 노 가부키 공연을 보러 간 노리코는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지만, 그녀의 시선은 곧 근처에 앉은 미와 부인에게 향한다. 공연 중 휴식 시간에 슈키치가 미와 부인과 다정히 인사를 나누자, 노리코는 순간 표정이 굳고 질투 섞인 불편함을 드러낸다. 아무 말 없이 살짝 굳어지는 노리코의 얼굴과 시선의 변화로만 그녀의 감정을 전달하는 이 미묘한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노리코 내면의 동요를 직감하게 한다. 전통 예능의 장엄한 소리와 동작이 흐르는 공간에서, 딸은 처음으로 아버지를 다른 여성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을 체험하는 것이다. 노 공연의 북소리와 창이 배경음으로 깔린 채, 오즈는 노리코의 옆모습과 아버지-미와의 뒷모습 등을 절제된 숏으로 교차시킨다. 이 장면 이후 슈키치는 딸에게 본격적으로 맞선 볼 것을 권유하며, 자신도 곧 미와 부인과 재혼할 생각임을 넌지시 알린다. 결국 노리코는 충격을 받지만 겉으로는 묵묵히 받아들이고, 마침내 사타케와의 만남을 승낙할 결심을 한다. 노 가극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노리코의 운명이 큰 전환점을 맞는 순간이다. 노리코가 결혼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정한 후, 슈키치는 딸과 함께 결혼 전에 마지막 부녀 여행을 떠난다. 두 사람은 교토로 1박 여행을 가서 절과 정원을 관광하고 옛 친구 온도라 부부를 만난다. 교토의 고즈넉한 사찰 풍경과 선 정원의 이미지들은 영화 후반에 이르러 더욱 빈도 높게 삽입되는데, 이는 일본의 전통문화 유산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교토 료안지 석정의 장중한 정경, 고즈넉한 고찰의 지붕과 고탑들은 부녀의 정서를 둘러싼 배경으로 비춰지며, 현대적 변화 속에서도 변함없이 지속되는 무언가를 상징한다. 한편으로 검열을 연구한 학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장소의 이미지들이 “현대의 혼탁함에 대비되는 고풍 일본의 아름다움”을 부각하려는 의도였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노리코의 심경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교토에서 만난 온도라의 새 아내가 다정하고 상냥한 인물임을 알게 된 노리코는, 얼마 전까지 자신의 속마음에 있던 재혼에 대한 혐오감이 잘못된 편견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온도라 부인에게 진심으로 호의를 느끼며, 아버지의 재혼도 그렇게 더러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 중 여관에서 묵는 밤에 부녀는 나란히 이부자리에 누워 조용히 대화를 나눈다. 어둑한 등불 아래, 노리코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예전에 온도라 씨의 재혼을 “더럽다”고 말했던 것을 후회하며 “온도라 부인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라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슈키치는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고 딸을 안심시키지만, 노리코는 곧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낸다. “아버지… 아버지까지 그렇게 되시면(재혼하시면) 저 정말 싫을 것 같아요. 생각만 해도…”라며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말을 듣는 상대편 슈키치는 이미 잠든 듯 코골이 소리만 돌려줄 뿐이다. 아버지가 자는 줄 알게 된 노리코는 말끝을 흐리며 천장을 바라본다. 바로 이때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가 떠오른다. 그 동안 감정 표현을 절제해 온 노리코가 드물게 보여주는 편안한 미소다. 마치 “아버지는 결국 재혼 따위 하지 않을 거야, 우린 이대로 행복할 거야”라고 안도하는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숏 가운데 하나가 그녀의 웃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바로 여관방 한 구석에 놓인 꽃무늬 도자기 화병의 정물 숏이 불쑥 삽입되는 것이다. 방 안 한켠에 세워진 평범한 도자기 꽃병을 어둑한 조명 속에서 6초간 비추는 정지 화면 — 이는 이전까지 진행되던 부녀의 감정 교류를 갑자기 중단시키는 듯한 시각적 쉼표다. 다시 노리코의 얼굴로 컷이 돌아오면,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웃음에서 근심으로 바뀌어 있다. 방금 전까지 미소짓던 얼굴이 금세 울먹임을 머금은 슬픈 얼굴로 변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같은 각도에서 그 화병이 10초가량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 순간 배경에 흐르던 음악이 조용히 고조되며 다음 날 아침의 장면으로 넘어간다. 이 이질적인 화병 숏은 관객에게 강렬한 여운과 함께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분명 화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바로 직전에 노리코의 내면에서는 커다란 감정의 파동이 지나갔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노리코가 웃음에서 눈물로 바뀌는 찰나에 존재한 그 “고요한 화병”은, 마치 그녀의 운명이 정해졌음을 깨닫는 순간 혹은 행복했던 현재가 영원하지 않음을 자각한 순간과 함께 한다. 이후의 전개를 보면 이 밤 이후 노리코는 완전히 체념한 듯 결혼을 받아들이게 되므로, 이 화병 장면은 그녀의 내면 변화를 표현한 시적이고도 미스터리한 시퀀스로 남는다. 영화 역사에서 이른바 ‘화병의 수수께끼’라 불리며 수많은 비평가와 연구자들이 분석을 시도한 장면이기도 하다. 다음 날 아침, 교토에서 돌아가기 전 짐을 꾸리며 노리코는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우리 그냥 이대로 살면 안돼요? 아버지가 정말 재혼하셔도… 저, 지금이 제일 행복한데요” 하고 간절히 말하는 노리코에게, 슈키치는 단호하지만 따뜻한 어조로 인생의 이치를 일러준다. “안 된다. 너에게도 네 인생이 있어. 사타케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지. …그게 인간 삶의 순리고 역사의 흐름이다.” 아버지의 이 한마디는 딸을 향한 사랑과 동시에 사회의 질서를 받아들이라는 권고이다. 노리코는 눈물을 글썽이지만 이내 자신의 “어리석음과 고집”을 사과하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부녀는 담담히 가방을 싸 마무리한다. 교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노리코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없이 미소 짓는다. 여기서의 노리코 미소는 초반부의 해맑은 웃음과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체념이 깃든 표정이다. 이는 그녀가 마음 깊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결혼을 결심했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결말부는 노리코의 혼례와 그 이후의 여운을 잔잔히 그린다. 전통 혼례 의상 차림의 노리코가 집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장면에서, 그녀는 정갈한 신부 복장을 한 채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감사 인사를 올린다. “그동안 키워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하고 조용히 말하는 딸과 그런 딸을 마주보며 애써 웃어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은 절제된 감정 속에서 깊은 애틋함을 전한다. 노리코가 친정집 문을 나서 자동차로 떠날 때, 슈키치와 마사는 마당까지 배웅을 나온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노리코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지만, 눈빛은 이미 울고 있는 듯하다. 딸을 태운 차가 멀어지고, 뒤에 남은 아버지 슈키치는 문 앞에 한참을 서 있다. 이때 함께 있던 친구 아야가 조용히 다가와 그를 위로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슈키치와 아야는 동네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한 잔 술을 나눈다. 취기가 오른 슈키치는 아야에게 그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사실 자신은 재혼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딸 노리코를 결혼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던 것임을 말이다. 그는 딸의 장래를 위해 자기 스스로 고독을 선택했노라고 담담히 고백한다. 이를 들은 아야는 “참 희생이 크시네요…” 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앞으로 자주 찾아뵙겠다고 약속한다. 이 대화를 통해 관객은 아버지의 깊은 부성애와 희생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슈키치는 홀로 집으로 돌아온다. 조용한 저녁, 아무도 없는 빈 거실에 슈키치 혼자 들어와 앉는다. 그는 옆자리에 아무도 없는 다다미 방에서 천천히 과일 하나를 꺼내어 깎기 시작한다. 한층 깊어진 적막 속에서 그는 천천히 사과 껍질을 벗기다 말고, 홀연히 손을 멈춘다.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 않고 방 한 구석에서 지켜보듯 담는다. 멈춰 선 슈키치의 어깨 너머로, 그의 고개가 스르륵 숙여진다. 딸을 떠나보낸 아버지의 쓸쓸함과 허망함이 그 작은 몸짓에 오롯이 드러난다. 잠시 후 화면이 암전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대미를 장식하는 이 여운 어린 결말은 관객의 가슴 속에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된 영화가 삶의 보편적 진실 — 즉, 사랑하는 이들과 결국에는 이별하게 되는 인간사의 무상 — 에 대한 깊은 성찰로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만춘>은 줄거리의 겉모습만 보면 소소한 가정사에 불과하지만, 오즈의 영화언어적 기법을 통해 매우 독특한 미학적 체험을 제공한다. 서사, 편집, 카메라, 미장센, 사운드, 연기 등 영화 언어의 여러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관객을 오즈만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오즈 영화의 내러티브는 종종 극적인 사건을 최소화한 채 일상의 단편들을 누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만춘> 역시 특별한 극적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관계의 흐름에 중점을 둔다. 관객은 노리코가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겪는 작은 해프닝들과 대화들을 따라가며, 표면 아래 흐르는 “숨은 물결”을 느끼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오즈가 일부러 관객이 기대할 만한 결정적 장면들을 생략하거나 간접 처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노리코가 맞선 상대 사타케를 처음 만나러 가는 장면이나, 실제 결혼식 장면은 화면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사타케 본인은 영화 내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맥거핀처럼 언급될 뿐이며, 관객은 그의 외모조차 볼 수 없다. 이러한 전략은 관객의 관심을 로맨스나 신랑 인물에 빼앗기지 않게 하고, 대신 부녀간 정서와 이별의 테마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오즈 본인도 “남녀 간의 연애 감정보다는 가족 간의 사랑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만춘>의 내러티브는 바로 그런 감독의 철학을 그대로 구현한다. 결과적으로 <만춘>의 이야기는 겉으론 단순해 보이지만 (아주 평범한 일상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그 단순함 속에 생략과 여백, 함축이 가득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여백의 미학은 일본의 전통 미의식과도 통하며, 작품 전체에 은은한 여운을 준다. 또한, 오즈의 편집 기법은 전세계 영화 문법과 비교해도 독창적이다. 보통 영화에서는 장면 전환 시 페이드아웃이나 디졸브, 또는 새로운 장소의 전경을 보여주는 방식을 사용하지만, 오즈는 독특하게도 ‘삽입 정경숏(일명 필로우숏)’을 즐겨 활용한다. 한 장면이 끝나고 다음 장면이 시작되기 전에, 얼핏 보면 이야기와 무관해 보이는 풍경이나 사물의 정지화면을 몇 초간 보여주는 것이다. <만춘>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가지, 한적한 골목길, 기차가 지나가는 철교, 텅 빈 방 안의 풍경 등이 그러한 베개숏으로 등장한다. 이 숏들은 서사의 진행을 잠깐 멈추는 역할을 한다. 관객은 이야기에서 잠시 벗어나 그 공간의 공기와 시간의 흐름 자체를 느끼게 된다. 예컨대 극 중간에 노리코와 아버지가 산책하는 장면이 끝난 후 삽입되는 조용한 바닷가 풍경은 다음 상황으로 급히 넘어가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는 느낌을 주며, 한편으로 영화의 배경인 가마쿠라 지역의 정취를 체득하게 한다. 이러한 편집 리듬은 관객에게 사색의 여지를 제공하고, 작품의 감정적 울림을 배가시킨다. 앞서 언급한 화병 장면은 이러한 베개숏 기법이 한층 실험적으로 쓰인 예이다. 오즈는 그 화병 정물을 장면 전환이 아닌 장면 중간에 배치함으로써, 관객에게 극적인 심리 변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했다. 이는 일종의 시간 정지 화면이라 할 수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응시하는 동안 관객은 인물의 내면에 일어난 변화(노리코의 미소 뒤에 찾아온 슬픔)를 스스로 완성하게 된다. 이처럼 오즈의 편집은 이야기 전달 효율성보다는 정서적・형식적 패턴을 중시하며, 관객의 감정이입을 독특한 방식으로 유도한다. 이러한 스타일을 영화이론가 데이비드 보드웰은 ‘파라메트릭 내러티브’라고 규정하기도 했는데, 내용보다는 형식의 반복과 변주가 영화의 리듬을 이끈다는 것이다. 오즈의 편집 미학은 현대 관객에게는 오히려 신선하고 실험적으로 다가오며, 그 자신은 디졸브나 페이드를 “장면을 어설프게 속이는 속임수”라고까지 말하며 철저히 배제했다는 일화도 있다. 오즈 영화의 시각적 특징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다다미 숏이라 불리는 저평평한 카메라 앵글이다. <만춘>에서도 카메라는 거의 대부분 바닥 가까이 낮게 자리잡고 인물을 담는다. 이는 방 안에서 인물들이 다다미나 방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일본 전통 생활양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내부 장면에서뿐만 아니라, 실외 장면에서도 오즈는 카메라를 비슷한 높이로 유지하는데, 이 때문에 인물들이 서 있을 때는 카메라가 무릎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구도가 된다. 이러한 비정상적으로 낮은 시점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일부는 “아이의 시선”이라고도 하고, 일부는 “앉아 있는 사람과 동일한 눈높이”라고도 한다. 무엇보다 영화학자들은 이 카메라 위치가 만들어내는 안정감과 균형에 주목한다. 낮은 앵글에서 넓게 방을 비추면, 인물 위로 여유 공간이 많아져 천장이나 벽, 가구의 배열이 뚜렷이 보인다. 오즈는 이를 통해 화면 속 기하학적 구도를 부각하고 질서를 느끼게 한다. 실제로 <만춘>의 실내 숏들을 보면 창틀, 미닫이문, 다다미 매트 줄눈 등이 수평과 수직의 선을 이루며 마치 한 폭의 구조화된 그림처럼 보인다. 인물 배치는 주로 화면의 중앙이나 좌우 대칭에 가깝게 이뤄져, 큰 움직임 없이도 시각적 안정을 준다. 카메라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관객은 마치 그 방의 한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정적인 카메라와 대칭적 구도는 오즈 영화만의 침착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미국의 폴 슈레이더는 자신의 저서에서 오즈를 브레송, 드레이어와 함께 소개하며, 그의 영화에서 이러한 정적인 화면이 만들어내는 성찰적이고 초월적인 감흥을 논했다. 실제로 <만춘>의 한 장면을 멈춰 보면, 인물의 위치와 시선, 배경 사물의 배치가 치밀하게 계산된 하나의 정물화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 노리코와 슈키치 부녀가 거실에서 나누는 담화 장면들을 보면, 두 사람은 늘 바닥에 정좌한 채 거의 같은 프레임 안에 잡히곤 한다. 대화를 할 때 할리우드 영화처럼 어깨너머 반쇼트로 교차편집하지 않고, 오즈는 두 사람이 나란히 혹은 마주보고 앉은 정면 혹은 측면 숏으로 담는다. 때로는 인물이 관객 쪽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180도 시선선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오즈만의 대화 연출 방식이다. 그 결과 관객은 대화 속에 제3의 참가자처럼 포함되어 인물의 눈을 직접 마주치는 느낌을 받는다. 정적인 카메라, 낮은 시점, 대담한 시선 처리 등 오즈의 촬영 미학은 <만춘>에서 절정에 달했으며, 이후 그의 작품들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오즈의 연출 스타일 하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극도로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미묘한 뉘앙스를 전한다. <만춘>의 중심에 선 하라 세츠코와 류 치슈의 연기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라 세츠코가 연기한 노리코는 밝고 다정한 딸이지만 내면에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하라는 이 역을 겉으로는 환하고 천진한 웃음과 가벼운 목소리 톤으로 표현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말없이 표정만으로 감정 변화를 전달한다. 앞서 언급한 노 공연 장면에서 질투 어린 얼굴, 교토 여관에서의 미소와 울먹임의 대조 등은 하라의 섬세한 표정 연기가 없었다면 그 감동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류 치슈가 연기한 슈키치 역시 과묵하고 소박한 아버지 상을 완벽히 체현한다. 그는 딸과 대화할 때 늘 자상하고 너그러운 미소를 띠고 있지만, 혼자 있을 때나 딸이 등을 돌렸을 때 문득 노쇠와 고독의 그림자를 드러낸다. 배우들은 과장된 몸짓이나 격앙된 감정을 배제하고, 마치 실제 그 인물이 된 듯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이러한 연기 철학은 오즈가 배우들에게 반복해서 절으로 리허설하고 불필요한 동작을 제거하게 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제스처는 작지만 정확하며, 움직임의 안무처럼 화면 구성에 녹아든다. 인물 배치 또한 특징적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방에 함께 있는 장면에서 오즈는 그들을 한 숏에 가급적 모두 담으려 하고, 인물이 자리를 이동하는 동선도 제한적이다. <만춘>에서 노리코가 방에서 나가거나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 하나하나가 신중하게 포착되는데, 이는 인물 사이의 거리를 변화시키며 감정을 암시하는 연출이다. 예컨대 아버지가 재혼 의사를 거짓으로 밝힐 때 노리코가 서서 아버지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자리에 앉는 장면은, 충격을 받은 딸의 심경 변화를 동작 하나로 드러낸다. 한편 조연들의 활용도 흥미롭다. 이모 마사나 친구 아야 등은 때로 코믹 릴리프 역할을 하며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한다. 마사가 길에서 주운 동전을 슬쩍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가 오빠인 슈키치에게 “경찰에 가져다줘라” 잔소리를 반복해서 듣는 에피소드는 작은 웃음을 주는 동시에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이는 검열의 지적으로 생긴 장면이지만 결과적으로 영화의 일상성과 유머를 더해주는 요소가 되었다. 이렇듯 배우들의 연기 톤과 인물간 거리, 위치까지도 오즈는 철저히 계산하여 과장 없지만 흡인력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오즈 영화에서 사운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주인공과 같다. 그는 소리 또한 절제와 선택의 미학을 적용한다. 배경 음악은 필요한 순간에만 절도로 사용되고 침묵과 생활음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만춘>에서는 이토 센지가 작곡한 음악이 사용되었는데,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단아한 현악 위주의 테마가 극을 받쳐준다. 그러나 음악은 감정을 직접 밀어붙이기보다, 때론 중요한 장면에서 아예 흐르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정적의 힘을 느끼게 한다. 예를 들어 부녀의 갈등이 잠복해 있는 노 공연 신이나 교토 여관 신의 대화에서는 별다른 음악이 없이 전통 가면극의 타악 장단이나 실내의 정적만 들린다. 그러다 노리코의 감정이 폭발 직전인 화병 장면에서에야 비로소 배경음악이 부드럽게 커지며 다음 날로 넘어간다. 이러한 음악 처리 방식은 관객의 감정을 섬세하게 조율한다. 또한 생활음, 환경음의 쓰임도 현실감을 더한다. 극중에서 자주 언급되는 야구는 소리로도 표현되는데, 뒷마당에서 아이들이 야구공을 치며 뛰노는 소리가 집안에 은은히 들려온다든지, 노리코와 아야가 야구 시합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딘가에서 응원 소리가 흘러오는 등 현실적인 배경음을 활용한다. 이는 전후 일본에서 인기 스포츠였던 야구를 통해 현대적 분위기를 자아냄과 동시에, 영화 공간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대사 면에서 오즈는 일상어를 고집했고, 연기자들로 하여금 낮은 목소리와 완만한 말투로 대화하게 했다. 노리코의 대사들은 한결같이 공손하고 부드러우며, 그녀가 감정을 토로할 때조차 목소리는 거의 떨리지 않는다. 이러한 언어 스타일은 영화 전체의 톤을 차분하게 유지시킨다. 대신 관객은 말간 목소리 뒤편의 슬픔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이상과 같이 <만춘>의 영화언어적 특징들은 하나하나 보면 소박하거나 파격적이지만, 모두 합쳐져 독특한 조화를 이룬다. 움직임을 자제한 카메라와 과장 없는 연기, 여백을 살린 편집과 절제된 사운드는 결합되어 오즈만의 시네마틱 문법을 완성한다. 그 결과 관객은 마치 맑은 거울을 보듯, 인물들의 내면과 자신의 정서를 동시에 비추어 보게 된다.

<만춘>은 오즈 야스지로의 필모그래피 가운데서도 중요한 변곡점에 위치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흔히 “노리코 3부작”으로 불리는 연작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노리코 3부작이란 모두 하라 세츠코가 주연하고 이름이 노리코인 젊은 여성을 연기하는 세 영화 — <만춘>(1949), <초여름>(1951), <동경 이야기>(1953) — 를 가리킨다. 이 세 작품은 내용상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공통적으로 전후 일본의 한 가족 안에서 딸 세대의 결혼 문제가 주요 갈등으로 등장하며, 가족의 형태 변화와 세대 간의 관계를 다룬다는 유사성을 지닌다. 그 가운데 <만춘>은 전쟁 직후의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된 뒤의 안정기 가정에서 딸의 혼인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영화였다. 이전까지 오즈는 1930년대에는 주로 청년 남녀의 연애나 하층 계급의 삶, 1940년대 초에는 전시 체제 속 가족을 그렸는데, 패전 후에는 곧바로 가족과 결혼 문제를 현대적 시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만춘>에서 마련된 이러한 테마와 서정적 스타일은 이후 약 15년 동안 오즈 작품의 근간이 되었다. 이를 두고 평론가들은 <만춘>을 가리켜 “오즈가 마침내 오즈다움을 완성한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실제로 오즈 자신의 언급에 따르면, 그는 <만춘>부터 시작된 계절 제목 시리즈(예: <만춘>, <맥추: 초여름>, <동경 이야기>는 아니지만, <초가을>, <늦가을>, <가을 오후> 등)에서 인생의 순환을 담아내려 했다고 한다. 우선 <초여름>과 비교하면, 이 작품은 같은 노리코라는 이름의 딸(역시 하라 세츠코 분)이 등장하고 결혼을 소재로 하지만, 전개 양상과 메시지는 사뭇 다르다. <초여름>에서 노리코는 부모와 조부모, 오빠 가족과 대가족을 이루며 살다가 친척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을 고려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중매로 나온 명망있는 상대 대신, 자신이 원했던 소꿉친구와 갑작스레 결혼하겠다고 결정한다. 즉, <초여름>의 노리코는 보다 능동적인 선택을 하며, 가족들도 결국 이를 받아들인다. 이것은 <만춘>의 노리코가 가족과 전통의 뜻에 순응하여 수동적으로 결혼한 것과 대조적이다. 따라서 두 영화 모두 겉보기에는 “시집가는 딸 이야기”이지만, 해석의 뉘앙스는 다르다. <만춘>은 딸이 자신의 행복보다 아버지의 안위를 생각해 헌신하고, 아버지도 딸을 위해 외로움을 감수하는 희생과 순응의 이야기에 가깝다면, <초여름>은 딸 세대의 자아 실현과 개인 선택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그렸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에서 모두 하라 세츠코가 노리코를 연기하지만, <만춘>의 노리코가 다소 유약하고 부끄러움 많은 인물인데 비해, <초여름>의 노리코는 밝고 활달하며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는 성격이다. 이는 오즈가 불과 2년 사이에 변화한 일본 사회의 분위기(개인주의의 확산과 연애결혼의 증가)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동경 이야기>는 전후 가족을 다룬 오즈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데, <만춘>과는 역으로 부모 세대의 시각에서 가족 문제를 바라본 작품이다. <동경 이야기>에서는 시골의 늙은 부모가 도쿄의 자식들을 방문하지만, 바쁜 자식들은 부모를 냉대하고 유일하게 며느리 노리코(역시 하라 세츠코 분)만이 정성껏 시부모를 챙긴다. 이 영화에서 하라 세츠코가 연기한 노리코는 <만춘>과 <초여름>의 노리코들과 이름만 같을 뿐, 설정과 캐릭터는 전혀 다르다. 그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과부로, 시부모에게 헌신적인 ‘이상적 며느리’로 그려진다. 그러나 공통점이라면, 이 노리코 역시 자신의 재혼이나 개인 행복보다 가족(시부모)에 대한 의리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만춘>의 노리코가 아버지와의 가정을 지키려 했듯이, <동경 이야기>의 노리코는 이미 사별한 남편의 부모를 친부모처럼 모시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결국 <동경 이야기>는 <만춘>의 이야기와 세대구도가 바뀐 형태로 볼 수 있다. <만춘>이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고독”을 그렸다면, <동경 이야기>는 “부모를 떠나보내는 자식들의 후회”를 다뤘다고 할 수 있다. 한쪽은 결혼을 통해 딸이 독립하는 이야기이고, 다른 한쪽은 노년의 부모가 세상을 떠나며 가족이 해체되는 이야기이다. 두 작품 모두 가족 내 필연적인 이별과 세대 간 간극을 담담히 포착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실제로 <만춘>과 <동경 이야기>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명작 반열에 함께 올라 있으며, 영국 사이트 앤 사운드의 역대 영화 순위에서도 <동경 이야기>가 3위, <만춘>이 15위에 꼽힐 정도로 높이 평가받았다. 오즈는 <만춘> 이후로도 꾸준히 가족과 결혼을 소재로 변주를 거듭했다. 1960년작 <늦가을>은 <만춘>의 설정을 성별만 바꾸어 재활용한 작품이다. 즉 홀어머니(역할을 하라 세츠코가 맡아 이번엔 엄마 역으로 출연)가 딸을 시집보내려는 이야기로, 모녀 관계를 그린 점만 다르다. <늦가을>에서는 코믹한 중매쟁이 남성들이 등장해 어머니와 딸을 곤란하게 만드는 등, <만춘>보다 좀 더 희극적 터치가 가미되었다. 하지만 결국 딸은 결혼하고, 어머니는 혼자 남겨진다는 귀결은 동일하다. 말하자면 오즈는 자신이 창조한 서사를 여러 각도로 다시 쓰면서, 매번 조금씩 다른 분위기와 의미를 빚어냈다. 그의 유작인 <가을 오후>는 <만춘>의 테마를 가장 어둡고 쓸쓸하게 마무리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영화에서도 중년의 홀아비(류 치슈 분이 다시금 아버지역)를 주인공으로 삼아 딸의 결혼을 다루는데, 엔딩에서 딸을 보낸 아버지가 텅 빈 집에서 홀로 술취해 흐느끼는 모습은 <만춘>의 결말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가을 오후>에서는 딸 세대가 아버지의 고독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는 뉘앙스를 풍기고, 세대 단절의 느낌이 한층 쓸쓸하게 다가온다. 이렇듯 오즈의 후기 작품들은 <만춘>으로 확립된 ‘결혼 = 가족 해체 = 새로운 시작’이라는 모티프를 변주하며, 변화하는 시대와 함께 가족관계의 여러 단면을 탐구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만춘>은 오즈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준 이후 그가 일관되게 고수한 미학의 출발점이었다. 사실 오즈는 1930년대 후반부터 이미 낮은 카메라 앵글과 정태적인 연출을 실험해 왔지만, <만춘>에서 그것이 완전히 자기 것으로 정착했다. 이후 <동경 이야기>나 <안녕하세요>, <부초>등에서 오즈는 동일한 촬영, 편집 기법을 반복 활용하며 자기만의 영화 문법을 더욱 세련되게 가꾸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그의 작품들이 비슷비슷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오즈는 미세한 변주의 차이를 통해 매 작품마다 새로운 울림을 주었다. 어떤 평론가는 “오즈는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형식 안에서 삶의 여러 결을 채집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만춘>이 그러한 형식 실험과 주제의식 탐구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에, 오즈의 말년작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작품으로 인식된다. 전후 일본 가족사의 한 단면을 조용한 연민으로 포착한 <만춘>은, 오즈 영화 세계의 출발점이자 정수로서 지금까지도 영화 연구자와 애호가들에게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만춘>이 담고 있는 중심 주제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동시에, 일본 사회의 특정 맥락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영화는 한 딸의 결혼 성사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가족과 개인의 관계, 전통과 현대의 충돌, 여성의 역할과 행복 등에 대한 성찰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 의식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오즈 감독이 보여준 태도는 복합적이며,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켜 왔다. 우선 가족과 결혼에 대한 오즈의 시선을 살펴보자. <만춘>에서 노리코와 슈키치 부녀의 관계는 지극히 화목하고 친밀하다. 두 사람은 마치 친구처럼 농담을 주고받고 함께 자전거 여행을 다닐 만큼 정서적으로 유대되어 있다. 사실 노리코가 결혼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도 현재 아버지와 누리는 이 단란한 생활이 깨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부녀 관계를 매우 따뜻하고 아름답게 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서서히 드러낸다. 아버지 슈키치는 “그게 인간 삶의 순리”라는 말로 딸에게 언젠가 독립해야 함을 설득하고, 딸 노리코도 그것을 받아들인다. 여기에는 일본의 전통적인 가족관, 즉 부모 세대는 자녀를 길러내어 사회로 보내고, 자녀 세대는 장성하면 가정을 꾸려 부모 품을 떠난다는 가족 순환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 오즈는 이러한 세대 교체를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질서로 묘사한다. 슈키치의 말은 작중 논리에서는 딸을 달래는 대사이지만, 동시에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에 슈키치가 쓸쓸히 남겨지기는 하지만, 그것을 억지 비극으로 그리지 않고 인생의 한 모습으로 담담히 보여준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깊은 슬픔과 함께 묘한 수긍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오즈는 우리에게 “이것이 가족의 모습이며, 세월의 법칙”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많은 비평가들은 오즈의 가족 영화들을 “인생의 한 사이클”로 해석해왔다. 태어나서 자라고 분가하고 늙고 죽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 순환을 오즈는 가족을 통해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만춘>의 결말에서 느껴지는 먹먹한 감정은, 바로 그러한 보편 인식에서 우러나오는 공감의 정서일 것이다. 일본적인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 — 모든 것은 변하고 결국 사라진다는 무상에 대한 애수 — 가 부녀의 미소와 눈물 속에 깃들어 있다고도 평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만춘>은 단순히 보편적 생애주기를 담은 것이 아니라 특정 사회적 제도에 대한 은근한 비판을 내포한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노리코의 결혼은 엄밀히 보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들에 의해 떠밀린 결정이다. 그녀는 애초에 결혼을 원치 않았고, 끝까지 아버지와 함께 살기를 바랐다. 그런 그녀를 주변 가족들은 “너를 위해서”라며 결혼시키고야 만다. 결과적으로 노리코는 사회의 기대에 순응하여 개인적 행복(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삶)을 포기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노리코 본인이 얼마나 행복해질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결혼식 날까지도 노리코의 속마음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관객은 그녀가 아버지 앞에서 애써 웃으며 “저 괜찮아요”라고 말할 때 그 안타까움을 느낄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부 평론가들은 <만춘>을 가부장적 사회와 결혼 제도에 대한 조용한 비판으로 읽기도 한다. 즉, 개인의 행복보다 “적당한 시기에 시집보내야 한다”는 사회 규범을 따르느라 부녀가 희생되는 모습을 통해, 오즈가 가족제도의 부조리를 드러냈다는 견해다. 실제로 영화 초반 노리코와 친구 아야의 대화에는 이런 사회 분위기에 대한 논평이 담겨 있다. 노리코는 이혼녀인 아야에게 “이혼한 게 차라리 나아. 나 같은 노처녀보단”이라고 말한다. 이는 당시 가치관으로 미혼 여성으로 늙는 것은 이혼보다도 낫지 않다고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노리코 본인은 그 말을 웃으며 했지만, 사회의 시선에 대한 일말의 불안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아야는 야구 경기 비유까지 써가며 “인생은 여러 번의 이닝이 있다”며 재혼에 긍정적이지만, 노리코는 그런 친구를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다. 이런 장면들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노리코가 꼭 결혼해야만 했을까? 그녀가 원하지 않는데도 사회가 등을 떠민 것은 아닌가? 오즈는 작품 속에서 직접 답을 내리지는 않는다. 다만 노리코가 웅크리고 울던 그 밤의 화병 숏은, 그녀 내면의 슬픔과 상실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결혼의 이면에 자리한 고통을 암시한다. 특히 일부 서양 평론가들은 이 화병을 노리코의 억눌린 자아나 여성성의 상징으로 해석하며, 전통에 순응하느라 ‘멈춰버린’ 그녀의 욕망을 읽어내기도 했다. 반면 어떤 이들은 그저 “이 영화는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고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결국 <만춘>은 가족과 결혼 문제를 두고 운명에 대한 순응과 사회 규범에 대한 비판이라는 양면을 동시에 담고 있으며,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통과 근대화의 충돌은 <만춘>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맥락이다. 영화 곳곳에는 옛 일본과 새로운 일본이 대비되는 상징들이 배치되어 있다. 앞서 논의했듯, 다도나 노 공연, 교토의 옛 절들과 같은 요소들은 일본의 전통을 표상한다. 반면 코카콜라 간판, 야구 경기, 서양식 결혼 문화는 서구 현대 문명의 침투를 나타낸다. 재미있게도 노리코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이 두 세계를 혼재한 삶을 살고 있다. 노리코는 집에서는 기모노 차림으로 다과회에 참석하지만, 친구들과 카페에서는 양장을 입고 커피를 마신다. 전통적인중매 결혼에 주저하면서도, 친구 아야의 서구적 생활 방식을 부러워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정체성은 과도기적이다. 슈키치 역시 집에서는 고서적과 다도를 즐기는 구세대로 보이지만, 극 중 딸과 함께 서양식 클래식 음악 연주회(바이올린 콘서트)에 가기도 한다. 이모 마사는 낡은 도덕 관념을 가졌으면서, 한편으론 돈지갑을 슬쩍하는 잔재미를 부리는 현실적인 모습도 있다. 이렇듯 인물들이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갈등하고 조율하는 모습 자체가 영화의 한 주제이다. 노리코 부녀가 함께 떠난 교토 여행은 상징적이다. 교토는 일본의 옛 수도로서 전통의 정수가 남아있는 곳인데, 거기서 노리코는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치 전통의 땅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의무(결혼이라는 전통적 역할)를 깨닫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전통의 편을 들거나 현대를 찬양하지 않고, 그 충돌 자체를 담담히 응시한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 간판 장면에서 오즈는 그걸 비판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지 않고 그저 화면 한 구석에 놓아둘 뿐이다. 관객은 거기서 시대 변화의 냄새를 맡지만, 인물들은 그저 스쳐지나간다. 다만 어떤 연구자(예: 라스 마틴 쇠렌센)는 오즈가 의도적으로 사찰의 미닫이문, 교토의 탑, 다도구 같은 전통 이미지를 <만춘>에 많이 삽입한 것을 지적하며, 이것이 서구화에 대한 은근한 저항의 표현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오즈 본인은 전쟁 후 바뀌어가는 일본 사회를 복잡한 심경으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표현방식은 결코 선동적이지 않고 잔잔한 관조에 가깝다. <만춘>의 결말에서 아버지 슈키치가 남겨진 모습은,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아버지 세대가 근대화의 흐름 속에서 고독하게 잊혀가는 모습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오즈는 그를 비극의 희생자로 그리기보다는, 세월을 받아들이는 한 인간으로 그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역할과 관련해, <만춘>은 당시 일본 영화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여성상을 보여준다. 노리코라는 캐릭터는 순종적 딸이면서도 주체적인 면모를 함께 지닌 복합적 인물이다. 그녀는 겉으로는 얌전하고 아버지 말에 잘 따르는 “착한 딸”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초반부를 보면, 재혼한 온도라 씨를 “더럽다” 표현하고, 이혼 경험이 있는 친구와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중매 결혼을 거부하는 등 기존 여성상과 다른 솔직함과 개방적 태도를 보인다. 당시는 아직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했음을 감안하면, 노리코의 이러한 면모는 상당히 현대적인 여성 캐릭터라 할 수 있다. 특히 하라 세츠코의 트레이드마크인 환한 미소는 노리코를 매력적이면서도 의지적인 인물로 만든다. 그녀는 분명 아버지와 가족의 기대를 거역하지 않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행복에 미련을 두고 “이대로 살고 싶다”고 말할 만큼 자기 욕구를 표현할 줄 안다. 이는 전쟁 전의 일본 영화들에서 흔히 그려지던 순종적인 딸이나 아내의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다. 또한 친구 아야 캐릭터를 통해 오즈는 전통 사회에서 금기시되던 이혼 여성을 긍정적으로 그렸다. 아야는 독립적이고 쾌활하며 경제적으로도 자립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노리코는 아야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을 어느 정도 동경하는 모습까지 있다. 두 사람이 맥주를 마시며 자유롭게 수다떠는 장면은, 전통적인 부녀 집안 풍경과 대조되는 해방감을 보여준다. 물론 영화는 결국 노리코를 전통적 궤도로 다시 돌려놓지만, 이러한 묘사를 통해 전후 일본 여성의 삶의 변화를 포착하고 있다. 일본의 평론가 사토 타다오는 오즈 영화의 여성상에 대해 “오즈는 가부장적 세계에서 스스로 길을 찾는 새로운 여성들을 보여주었다”고 평한 바 있다. 노리코는 그 대표적인 예로, 그녀의 웃음과 눈물이 함의하는 바는 곧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고민하는 일본 여성의 자화상인 것이다. 오즈 감독은 여성 캐릭터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리면서도, 그들이 처한 사회적 제약을 은근히 드러낸다. <만춘>에서 노리코는 결국 아버지와 사회의 뜻에 순응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선택이 완전히 부정되거나 비극으로만 그려지지는 않는다. 이는 당대 현실에서 여성으로서 최선이라 여겨진 선택이었음을 영화도 인정하는 듯하다. 오즈의 태도는 여성의 희생을 미화하거나 옹호한다기보다, 그 희생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응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카메라는 노리코의 환한 웃음과 눈물 어린 얼굴을 똑같이 아름답게 담아내며, 그 내면의 목소리를 관객이 읽도록 여백을 남긴다. 철학적 함의 측면에서, <만춘>은 오즈 영화 특유의 인생관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즈는 인생의 변화와 무상함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얕은 이야기를 말하기보다는, 삶의 흐르는 물밑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드라마틱한 행동을 밀어붙이기보다, 빈 공간을 남겨 두어 관객이 그 뒤의 여운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만춘>은 바로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영화다. 변화는 반드시 찾아오며, 아름다운 순간도 결국 지나간다. 이것이 영화 전반에 깔린 정조다. 그러나 오즈는 변화에 저항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그는 마치 선승처럼 그 흐름을 받아들이고 관조한다. 영화 마지막에 슈키치가 혼자 남아 과일을 깎다 멈추는 장면은, 한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앞에 잠시 명상에 잠긴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관객은 그 고요한 뒷모습을 통해 삶의 진리를 직감적으로 느낀다. 가족이란 언젠가 흩어지고, 자녀는 성장해 떠나며, 부모는 홀로 남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노리코가 떠나기 전 아버지에게 “감사합니다”라고 한 말과, 아버지가 딸의 행복을 빌며 거짓말까지 감행한 행동은, 이 가족에게 깊은 사랑이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그래서 비록 이별이 찾아와도 그것이 헛된 것은 아니다. 오즈 영화의 철학은 이처럼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인생의 양면을 고요히 응시하는 데 있다. <만춘>에서 오즈 야스지로는 전후 일본의 한 단란한 부녀를 통해, 개인과 사회, 전통과 변화의 상호작용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감정들은 보편적이어서, 문화와 시대를 넘어 많은 관객들의 가슴에 와 닿는다. 영화학자 도널드 리치는 오즈의 작품들을 두고 “겉으로는 일본의 서민 가정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누구나 겪는 인생 문제가 담겨 있기에 전세계인이 공감한다”고 했다. 실제로 <만춘>이 주는 감동은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의 진실한 감정이 잔잔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사랑과 희생, 떠나보내는 이의 쓸쓸함, 떠나가는 이의 눈물,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인간사의 희로애락 – 이 모든 것이 오즈의 간결한 화면에 응축되어 있다. <만춘>은 영화 예술이 어떻게 소소한 일상 속에 숨은 삶의 진실을 포착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예이며, 오즈 야스지로의 미학과 철학이 아름답게 만개한 “늦봄”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로베르 브레송, 호수의 랑슬롯

<호수의 랑슬롯>은 프랑스 거장 로베르 브레송의 만년기에 속하는 작품으로, 중세 아서왕 전설을 브레송 특유의 미니멀리즘 영화 언어로 재해석한 영화이다. 브레송은 1950~60년대에 이미 <시골 사제의 일기>, <소매치기>, <무셰트> 등으로 독자적인 영화 미학을 확립한 인물이며, 절제된 형식주의와 영적 주제를 결합한 작가로 유명하다. 1970년대 중반 브레송은 70대의 나이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사실 그는 1950년대 후반부터 아서왕의 성배 전설을 영화화하고자 오랫동안 구상해왔다고 한다. 자금 문제로 미뤄오던 이 프로젝트는 마침내 실현되었고, 브레송은 촬영 당시 제목을 ‘성배’로 정했으나, 제작사의 권유로 최종 제목이 <호수의 랑슬롯>으로 변경되었다고 전해진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영화는 원탁의 기사 랑슬롯과 여왕 귀느비르의 관계를 중심으로, 성배 원정 실패 후 몰락해가는 카멜롯의 마지막 모습을 그린다. 브레송은 아마추어 배우들로 캐스팅하고 마법사 멀린이나 호수의 요정 같은 판타지 요소를 모두 배제함으로써, 중세 로맨스를 철저히 탈신화화하였다. 실제로 영화적 글쓰기를 추구한 브레송의 완숙한 기법은 이 작품에서 정점에 달하는데, 이는 30여 년간 연마해온 영화 언어의 완성으로 평가되며, 화면의 모든 요소—인물의 얼굴부터 말 울음소리나 갑옷의 쇠소리까지—가 치밀하게 기능하는 일종의 언어로서 활용된다. 그만큼 형식에 있어 타협이 없는 이 영화는 “미학적 순수성”이 두드러져 시간을 초월한 작품성을 지녔지만, 한편으로는 일반 관객의 취향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는 비타협적 비전으로 묘사되곤 했다. 실제로 1974년 칸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후 평단 반응은 엇갈렸는데, 뉴욕타임스의 빈센트 캔비는 겉으로 보이는 디테일에 정신이 팔려 정작 내적 의미가 부재하다고 혹평하며 브레송 자신의 스타일을 자기 패러디한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타임아웃 런던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소진될 만큼 고양되고 놀라운, 걸작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 극찬했고, 영국 사이트앤사운드의 평론가 크리스 다크는 이 영화가 “브레송은 결코 나빠질 수 없음을 증명하는 독보적 비전”이라며, 고다르의 말을 빌려 ‘세계에 대한 하나의 관념을 영화에 적용한 것, 혹은 영화에 대한 하나의 관념을 세계에 적용한 것의 전형적 구현’이라고 평했다. 이렇게 상반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호수의 랑슬롯>은 시간이 흐를수록 재조명되어 오늘날에는 브레송 영화 세계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영화의 이야기는 성배 탐색이 좌절된 직후부터 시작된다. 카멜롯의 기사들은 성배를 찾아 떠났다가 대부분 전멸하고, 아서 왕과 얼마 남지 않은 기사들만 돌아온다. 브레송은 이 신화의 끝자락을 배경으로 삼아, 고귀한 기사도 로망스의 환상이 무너진 뒤의 황폐한 풍경을 그린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관객은 충격적인 전쟁의 참상과 맞닥뜨린다. 어두운 숲 속에서 철갑에 가려 신원을 알 수 없는 기사 둘이 칼을 맞대고 처절하게 싸우고, 곧 한 기사의 목이 검에 잘려나가면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온다. 이 장면은 브레송 영화치고는 이례적일 만큼 노골적인 유혈 묘사로 악명높은데, 피투성이 시체들과 잘려나간 사지를 여과 없이 포착함으로써 기사도 세계의 폭력성과 무명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카메라는 곧 이어 시체가 된 기사들의 더미 위로 쓰러지는 랑슬롯을 비추는데, 쇠사슬 갑옷에 가려 얼굴조차 뚜렷이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이라기보다 부품처럼 흩어진 철붙이의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그 순간 랑슬롯의 입에서 가까스로 흘러나온 “귀느비르…”라는 마지막 한 마디와 잘려나간 목에서 흐르는 피만이, 이들이 기계가 아닌 살아있는 인간이었음을 상기시켜준다. 브레송은 이렇게 영화의 처음과 끝을 피비린내 나는 전투 장면으로 감싸면서, “전쟁이란 익명으로 벌어지는 무의미한 학살”임을 강조한다. 사실상 호수의 랑슬롯에서 기사들의 싸움은 명예도 영광도 없는 철갑 유령들의 싸움이며, 갑옷을 두른 순간 그들은 이미 얼굴 없는 죽음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이야기의 중심은 랑슬롯과 귀느비르의 은밀한 사랑과 그로 인한 왕국의 파국이다. 성배 원정을 떠났던 랑슬롯 경은 원정 실패 후 부상 입은 채 카멜롯으로 돌아오지만,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연인 귀느비르에 대한 죄책감과 왕에 대한 충성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랑슬롯은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며 귀느비르에게 파국을 예감한 이별을 통보하지만, 귀느비르는 완강히 거부한다. 귀느비르는 랑슬롯에게 “당신들이 원했던 것은 성배가 아니라 하느님이었어. 하느님은 집에 가져올 트로피가 아니야”라고 일갈하며, 기사들이 신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욕망을 추구했음을 꼬집는다. 실제로 브레송은 영화 도입부에 노파의 예언 장면을 배치하여 이러한 운명을 암시한다. 숲 속 오두막에서 노파가 어린 소녀에게 “눈에 보이기 전에 발소리가 들리는 이는 1년 안에 죽게 되지”라는 섬뜩한 예언을 들려주고, 이 대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이내 탈진한 말 한 필이 화면에 나타나고, 마침내 성배 원정의 실패를 알리듯 지친 기사들이 등장한다. 이 짧은 시퀀스는 영화 전체의 운명론적 분위기를 설정한다. “들을 귀 있는 자”에게 벌써 파멸의 예고가 울린 셈이며, 실제로 랑슬롯 이하 기사들은 결국 예언대로 하나씩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이 장면은 소리가 이미지에 선행하는 브레송의 독특한 편집 미학을 보여주는데, 인물보다 말의 등장과 울음이 먼저 강조되면서 말과 인간의 운명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후 영화 곳곳에서 말의 울음소리나 말의 모습이 기사들의 대화와 교차하며 등장하는데, 특히 랑슬롯의 말이 죽는 순간 랑슬롯 본인도 최후를 맞이하는 등 인간과 말의 생사가 연결되어 나타난다. 이는 브레송이 “인간과 자연이 함께 심판받는다”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심판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며, 전설적 영웅담이 아니라 생명들의 파괴가 이 영화의 숨은 주제임을 시사한다. 한편, 카멜롯 궁전 내부에서는 음모와 불신이 깔끔하게 생략된 대사 속에 묘사된다. 원정을 실패한 기사들은 신의 가호를 잃은 것에 절망하며 “하느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탄식을 내뱉지만, 정작 자신들이 먼저 신앙을 저버린 자들임은 깨닫지 못한다. 왕 아서 역시 하느님의 침묵 속에 우왕좌왕하며, 원탁 회의는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그런 가운데 모드레드는 랑슬롯과 귀느비르의 밀회를 의심하여 뒤를 캐고, 결국 둘의 비밀 만남 장소에서 증거를 찾아낸다. 브레송은 이 은밀한 사랑 장면조차도 겉으로는 절제하여 묘사하면서 미세한 디테일로 감정을 드러낸다. 예컨대 랑슬롯과 귀느비르가 몰래 만나는 헛간 다락 신에서, 먼지 쌓인 건초더미 틈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과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교차 편집되어 나온다. 브레송은 뜨겁게 포옹하거나 격정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대신, 까마귀라는 불길한 자연의 소리를 삽입함으로써 두 사람의 애정 뒤편에 도사리는 파국의 그림자를 암시한다. 또한 귀느비르의 창문에 비치는 불빛, 랑슬롯이 그 빛을 올려다보는 숏 등의 반복 모티프를 통해 두 사람의 연결을 암호처럼 제시한다. 이러한 연출은 마치 현대시의 반복법처럼 이미지와 소리를 반복·변주하여 하나의 정서적 태피스트리를 짜 나가는 효과를 낳는다. 실제로 평론가 조너선 로즌봄은 브레송이 커밍스의 시에 비유되는 반복과 응시의 기법으로 영화 전체를 짰다고 분석한다.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중반부의 마상 토너먼트 시퀀스는 브레송의 형식미가 극대화된 장면이다. 줄거리상 랑슬롯은 귀느비르와 밀회를 위해 이 토너먼트에 불참하려 하나, 의무를 저버릴 수 없어 변장하고 대회에 출전한다. 하얀 방패를 든 정체불명의 기사로 나타난 랑슬롯은 연전연승하지만, 끝내 부상을 입고 사라진다. 이 간단한 사건을 브레송은 놀랍도록 독창적인 몽타주로 표현했다. 일반 영화라면 화려한 군중, 말 달리는 전경, 창이 부딪치는 클로즈업 등으로 박진감을 높였겠지만, 브레송은 의도적으로 직접적인 쾌감을 제거한다. 대신 깃발이 흔들리는 모습, 군중의 함성 소리, 나팔 부는 악사들의 손, 말굽의 질주하는 다리, 떨어지는 기사의 하반신 등 단편적 이미지들을 리듬감 있게 배열하여, 마치 추상 영화 같은 인상을 준다. 창과 방패가 부딪치는 순간의 임팩트조차 브레송은 일부러 몇 차례 보여주지 않고 소리만 들려주다가, 관객이 거의 포기할 즈음에서야 한 번 짧게 보여준다. 이러한 지연과 생략 덕분에 충돌의 순간은 오히려 예상치 못한 폭발력을 얻는다. 사운드 디자인 역시 이 시퀀스의 핵심인데, 북소리와 백파이프가 간간이 울려 퍼지고, 창날이 방패를 강타하는 소리와 군중의 함성이 교직되어 실제 화면 이상의 긴장감을 자아낸다. 시각적 정보가 제한되니 관객은 청각을 총동원하게 되고, 소리로 먼저 결과를 예감한 뒤 이미지로 확인하는 독특한 시간차 긴장감을 맛보게 된다. 평론가 크리스 다크는 이 장면을 가리켜 “기사들의 무릎 아래만 보이는 이 토너먼트 몽타주는 브레송 영화 세계의 정수를 보여주는 순간”이라 평하며, 시각과 청각이 진정으로 상호작용하는 영화적 체험이라고 극찬했다. 결과적으로 브레송은 이 토너먼트 시퀀스를 통해 액션의 클라이맥스조차 비가시적인 것으로 치환하는 실험에 성공했고, 관객은 사운드와 편집의 리듬을 통해 전통적 활극과는 차원이 다른 매혹을 경험하게 된다. 토너먼트 이후 랑슬롯은 부상의 여파로 자취를 감춘다. 친구 가벤 등의 수색에도 그는 발견되지 않고, 모두 랑슬롯이 죽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랑슬롯은 멀리 에스칼롯 마을의 노파에게 구조되어 상처를 치료한다. 브레송은 이 탈출과 은신 과정도 거의 보여주지 않고 생략으로 처리한다. 관객은 그저 노파의 오두막에 누워있는 랑슬롯의 모습을 보고서야 그가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 이처럼 핵심 사건을 화면 밖에 둔 채 결과만 제시하는 방식은 브레송 영화의 전형적인 내러티브 전략이다. 중요한 일이 벌어져도 화면에 직접 비추지 않고, 파편적 단서와 여운만 남겨두어 관객이 상상으로 메우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이후 전개될 구출과 전쟁 장면에서도 일관된다. 귀느비르와 랑슬롯의 밀회를 폭로한 모드레드는 아서 왕에게 두 사람을 고발하고, 격노한 왕은 귀느비르를 화형에 처하기로 한다. 그러나 처형 직전, 랑슬롯과 그에게 충성하는 기사들이 들이닥쳐 귀느비르를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정작 구출의 클라이맥스도 브레송은 최소한의 묘사로 처리한다. 횃불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병사들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다가, 곧장 랑슬롯 일행이 귀느비르를 데리고 탈출한 후의 장면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여기서도 액션의 생략과 결과의 제시라는 브레송의 원칙이 확인된다. 영화는 곧바로 랑슬롯이 자신이 지닌 성인 즐거운 호수의 성채로 귀느비르를 모시고 도피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카멜롯 대 랑슬롯 진영 간의 최후 내전이 벌어지게 된다.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후반부 전투 장면들은 앞서의 오프닝처럼 비극과 허무의 색채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아서 왕은 모드레드의 참언에 휘둘려 직접 군대를 이끌고 랑슬롯의 성을 포위한다. 쌍방의 전투 과정에서 유능한 기사들도 하나둘씩 쓰러지는데, 특히 가벤은 중상을 입고 랑슬롯에 대한 우정을 고백하며 눈을 감는다. 브레송은 가벤과 랑슬롯의 마지막 대면조차 담담히 그리는데, 가벤은 “우리는 구하려 했지만 오직 랑슬롯 당신만이 귀느비르를 구했소”라는 말을 남기고 죽어간다. 이는 랑슬롯의 사랑이 정당했다는 늙은 기사도의 자기 위안처럼 들리지만, 이미 귀느비르 본인은 너무 많은 피가 희생되었음을 통탄하며 자신을 다시 왕에게 돌려보내 달라 랑슬롯에게 요청한다. 결국 랑슬롯은 사랑의 포기를 결심하고 귀느비르를 아서에게 돌려주는데, 이때 귀느비르는 랑슬롯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둘의 사랑이 가져온 비극에 오열한다. 브레송은 이 이별 장면에서조차 격한 감정을 절제하며, 두 사람이 말을 타고 헤어지는 먼 숏으로 처리한다. 화면 바깥에서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멀어지는 귀느비르의 흰 장식이 마치 상여처럼 보이는 쇼트는 사랑의 종말을 암시하며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의 대미는 랑슬롯 일행과 모드레드 일당의 최후 전투로 장식된다. 이 전투는 이야기상 원탁의 기사 시대의 완전한 종언을 의미하는데, 브레송은 이를 더욱 암울하고 아이러니하게 묘사한다. 밤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녘 어두운 숲에서 양 진영의 기사들이 마지막 결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브레송은 또다시 보이지 않는 것들로 긴박함을 표현한다. 활시위 당기는 소리와 함께 화살 비 내리는 음향이 들리지만, 실제 화면에는 화살이 사람이 아닌 나무를 꿰뚫는 모습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이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상징적 이미지로, 인간이 나무를 깎아 만든 무기로 서로를 파괴하는 자기파멸의 행위를 암시한다. 브레송은 반복적으로 나무에 꽂힌 화살을 비추며, 기사들의 폭력이 결국 자연과 자신을 함께 파괴하고 있음을 시각화한 것이다. 그 와중에 랑슬롯은 적의 화살에 말이 죽고 자신도 치명상을 입는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투구 속에서 신음하던 랑슬롯은 비틀거리며 나무에 기대더니 마지막 힘으로 투구를 벗고는, 피투성이 얼굴로 “귀느비르!”를 외치며 쓰러진다. 그가 숨이 끊어지는 순간, 머리 위로 시커먼 까마귀 한 마리가 싸아 하니 날아오르고, 멀리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이 보인다. 까마귀는 영화에서 여러 차례 등장한 불길한 징조로, 이 마지막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죽음의 전령 역할을 한다. 랑슬롯의 시선이 따라가는 하늘 위의 까마귀는 전쟁터 위를 맴도는 죽음의 그림자이자, 왕국의 종언을 목도하는 증인처럼 보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한 줄기 새벽빛이 비추며 화면이 서서히 밝아오는 가운데, <호수의 랑슬롯>은 쓸쓸하게 막을 내린다. 이렇듯 영화는 고결한 기사 랑슬롯의 로맨스조차 피로 얼룩진 파국으로 귀결지으며, 중세 로망스의 신화를 산산조각 낸다. 브레송은 엔딩 크레딧조차 절제된 흑백 자막으로 처리하면서, 이 이야기가 전설이 아니라 하나의 숙명적 기록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호수의 랑슬롯>은 형식의 철저한 통제를 통해 주제를 표현하는 브레송의 기법이 총망라된 작품이다. 우선 시각적 연출 면에서, 브레송은 전통적인 서사영화의 문법을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카메라는 화려한 전경이나 스펙터클 대신 부분과 단서에 집착한다. 인물 전신을 비추기보다는 손과 발, 갑옷의 일부분, 말의 움직임 등 단편적 이미지의 나열을 통해 장면을 구성하는데, 이러한 프레이밍은 관객으로 하여금 전체를 유추하도록 만드는 브레송 특유의 “여백의 미학”이다. 갑옷과 투구로 중무장한 기사들은 화면에서 종종 얼굴이 생략되는데, 이는 그들의 개성과 심리를 배제하고 몸짓과 행위 자체만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실제로 브레송은 “가능한 한 이미지 대신 소리로 대체하라”는 원칙을 가졌고, “이미지는 평평하고 비표현적일수록 서로 결합될 때 더 큰 의미를 낳는다”고 강조했다. <호수의 랑슬롯>에서 이러한 원칙은 극단까지 밀고 나가져, 화면에 담긴 이미지 하나하나가 필요 최소한의 정보만을 전달한다. 가령 어두운 숲에서 기사들이 대치하는 장면이라면, 검과 검이 부딪치는 스파크와 금속음, 땅에 떨어지는 발소리 정도만 보여주고 나머지 맥락은 소리와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식이다. 지극히 낯선 앵글과 생략된 동작으로 점철된 이러한 영상들은 자칫 난해해 보일 수 있으나, 그것들이 엮여 빚어내는 관계 속에서 의미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몽타주의 순수한 형태라 할 수 있다. 브레송은 개별 이미지보다는 이미지들 사이의 연결에 주목하였고, 이를 통해 관객이 직접 의미를 생성하게 유도한다. 이는 에이젠슈테인의 지적 몽타주와도 통하지만, 브레송의 방식은 보다 은밀하고 절제된 형태다. 그는 “회화에서처럼 겉표면을 생각하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을 인용하며, 영화의 표면(이미지와 소리) 자체를 정직하게 배열하면 그 이면의 진실은 저절로 드러난다는 내재성의 미학을 주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브레송의 영화는 종종 신비에 대해 말하지만, 그 도달 방식은 어디까지나 구체적 현실(표면)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촬영과 미장센 측면에서, 브레송은 극단적으로 사실적인 질감과 추상적인 구성을 병행한다. <호수의 랑슬롯>의 촬영감독은 이탈리아의 파스퀄리노 데 산티스로, 비스콘티의 영화를 촬영한 거장이다. 하지만 브레송은 그의 화려한 스타일을 최대한 절제하여, 일부 장면을 거의 암흑에 가깝게 찍을 정도로 자연광과 어둠을 활용했다. 예를 들어 숲 속 전투 장면들은 짙은 어둠 속에서 갑옷의 미세한 빛반사와 불꽃 튀는 금속광만이 보일 뿐인데, 이러한 극단적 명암 대비는 이미지를 단순화하여 소리와 움직임에 집중하게 한다. 반대로 햇빛 아래 벌어진 장면에서도 브레송은 의외로 평면적이고 밋밋한 구도를 선호한다. 그는 “이미지가 평평할수록 다른 이미지와 맞닿을 때 잘 변형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를 위해 깊이감이나 원근을 약화시킨 평면적 숏들을 즐겨 사용한다. 또한 앵글의 선택도 매우 독특하다. 인물을 정면에서 보여주는 법이 거의 없고, 무릎 아래만 보이게 찍거나, 갑옷 너머로 어슴푸레 보이는 실루엣 등 비정형적 구도가 많다. 이러한 미장센은 관객의 감정 이입을 방해하고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시키는데, 그 결과 영화는 일종의 인류학적 기록이나 의식의 관찰처럼 느껴지게 된다. 가령 투구의 면갑을 내리는 동작을 클로즈업할 때, 브레송은 이를 관객의 쾌감을 위해 제시하지 않고 의례적 제스처로 보여준다. 최후의 출전에 나서는 기사들이 하나씩 투구의 면갑을 닫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연달아 얼굴이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는 전투에 임하며 개인을 지우는 의식이자, 곧 모든 기사들이 죽음으로 획일화될 것임을 암시한다. 실제로 이 면갑 닫는 장면 이후 브레송은 어느 누구의 얼굴도 다시 보여주지 않은 채 집단 전멸의 결말로 돌진한다. 이렇듯 의미를 담은 동작 하나하나를 미장센으로 부각시키는 솜씨는 브레송의 트레이드마크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대조의 미학이다. 브레송은 끊임없이 살과 철, 유기체와 무기물의 대비를 화면에 심어놓는다. 예컨대 반짝이는 갑옷의 메탈릭한 질감과 귀느비르의 나신에 가까운 피부가 교차되도록 배치함으로써, 딱딱한 갑옷에 둘러싸인 기사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살결이 한층 더 연약하고 우아해 보이게 만든다. 귀느비르가 욕조에서 목욕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나신이 한순간 등장하는데, 이는 성적으로 노골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갑옷들과 시각적으로 극명한 대조를 이뤄 인간 육체의 덧없음과 고귀함을 동시에 환기시킨다. 그 순간 귀느비르의 살갗을 스치는 빛과, 이어지는 장면에서 투구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눈동자 등의 이미지는, 살과 쇠 사이의 긴장과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전장에서 울려 퍼지는 갑옷의 요란한 소음은 이러한 대비 효과를 더욱 강화하는데, 쇳소리가 클수록 인물들의 작고 여린 숨소리나 말소리가 도리어 선명하게 떠오르는 역설적 효과를 낳는다. 결국 이러한 시각적 연출을 통해 브레송은 살육의 세계에서 인간다움은 어떻게 포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브레송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운드 디자인과 편집 리듬이다. <호수의 랑슬롯>은 소리의 활용에 있어 특히 혁신적이다. 감독 본인이 “이미지를 소리로 대체하라”고 말했듯이, 이 영화는 중요한 순간에 화면 대신 소리를 먼저 들려준다. 말발굽 소리, 칼이 빠지는 소리,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리, 활 시위 당기는 소리 등 청각적 요소들이 관객의 상상 속에서 영상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브레송은 이 영화의 음향 작업에 남다른 공을 들여, 3주 반에 걸쳐 믹싱을 완료했다고 한다. 그는 사운드를 회화의 색채처럼 팔레트 위에 배치하듯이 정교하게 구성했는데, 북과 백파이프의 간헐적 사용, 깃발이 펄럭이는 소리, 빗물이 떨어지고 모닥불이 타는 소리 등까지 모두 고도로 계산된 오케스트레이션을 이룬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갑옷의 절그럭거리는 금속음이다. 브레송은 기사들의 갑옷 소리를 끊임없이 배경에 깔아 두어, 관객으로 하여금 쇳소리의 리듬 속에서 이야기를 듣게 만든다. 심지어 그는 작업 중에 “말이 재갈을 씹는 소리”가 필요하자, 적당한 녹음이 없어서 직접 자신의 치아로 재갈을 씹는 소리를 내 녹음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 에피소드는 그의 집요한 섬세함을 잘 보여주며, 평론가들은 이러한 면에서 브레송을 음향의 거장 자크 타티와 비교하기도 한다. 음향 공간의 설계에 있어서 브레송은 2채널 원칙을 고수했는데, 한 순간에 두 종류 이상의 소리가 겹치지 않도록 극도로 절제했다고 한다. 덕분에 이 영화에서는 대사와 배경음, 음악과 효과음이 철저히 분리되어, 언제나 주된 소리와 보조 소리 단 두 가지만이 분명하게 들린다. 그 결과, 관객은 특정 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작은 소리의 변화에도 민감해진다. 예컨대 에스칼롯 노파의 오두막 장면에서,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모닥불의 존재를 우리는 타닥이는 불소리로 먼저 알아차린다. 또 토너먼트 장면에서 관중의 함성은 들리나 관중의 모습은 거의 비치지 않고, 창과 갑옷의 충돌음이 들린 뒤에야 말에서 떨어진 기사들을 보여주는 식으로, 소리가 항상 이미지를 앞서 주도한다. 심지어 평소 스릴러적 긴장감을 배제하는 데 능했던 브레송이지만, 이 장면만큼은 사운드 연출을 통해 히치콕 영화 못지않은 서스펜스를 창조해냈다는 평까지 있다. 이렇게 철저히 구성된 음향 세계 속에서 침묵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갑옷 소리가 멎고, 말의 울음이 사라지고, 인물의 대사마저 끊기는 순간이 오면 오히려 강렬한 정적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소리와 침묵의 대비는 마치 음악에서 쉼표와 같아서, 앞뒤 소리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킨다. 예를 들어 랑슬롯 최후의 순간, 온통 쇳소리와 비명으로 가득했던 전장 한복판에 랑슬롯이 쓰러지며 잠깐 적막이 흐른다. 그리고 귀를 찢던 소음이 사라진 가운데 랑슬롯의 마지막 숨결로 터져 나온 “귀느비르!”라는 외침이 울려 퍼진다. 이때 그 한 단어는 관객의 가슴에 거의 촉각적으로 와닿는데, 이는 앞선 소음들이 일종의 울림판이 되어 그 말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로즌봄은 이러한 부분을 두고 “격정적 감정의 부재가 오히려 하나의 울림판이 되어 단어들을 울려퍼지게 만든다”고 설명하며, 브레송의 대사 톤이 비록 단조롭고 감정이 배제된 듯 들려도 맥락 속에서 엄청난 울림을 갖게 된다고 분석했다. 브레송은 배우 연기에 있어서도 기존 극영화 문법을 거부하고 독자적 스타일을 구축했다. 그의 배우는 연기자가 아니라 “모델”이라고 불리며, 전문 배우가 아닌 비직업인을 기용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호수의 랑슬롯>에서도 모든 출연진은 당시 거의 무명인 혹은 첫 연기 도전인 아마추어들로 채워졌다. 브레송은 이들에게 여러 차례 반복 촬영을 통해 감정 표현을 완전히 제거한 건조한 발성을 요구했다. 그 결과 배우들은 마치 기계적으로 대사를 낭독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무표정한 연기가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는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그러나 브레송은 이를 통해 배우 개인의 연기 스타일이나 감정과잉을 배제하고, 관객이 인물보다 행위 자체에 집중하도록 의도했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기사들은 친구의 죽음이나 연인의 배신 앞에서도 격렬하게 울부짖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랑슬롯과 귀느비르의 밀회 장면에서도 둘은 담담히 속삭일 뿐 격정적인 애정 표현을 삼가고, 이별을 결심하는 대목에서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귀느비르가 랑슬롯에게 던지는 대사—“당신은 살아 있고, 여기 있어요. 이제 다시는 어떤 것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할 거예요” 같은 말들—가 차분한 어조로 흘러나올 때, 관객은 그 언어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브레송의 세계에서 언어는 줄거리 전달보다는 주제 전달의 도구로 기능한다. 앞서 언급했듯 귀느비르가 “하느님은 트로피가 아니다”라는 대사를 통해 영화의 신학적 메시지를 던지듯이, 인물들의 말은 일종의 작가의 화두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감정이 배제된 평탄한 톤은 그 말들을 격언이나 성서 구절처럼 울려퍼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브레송은 배우들의 감정을 찍어내기보다는, 그들을 통해 몸짓과 목소리라는 소재를 다루는 장인에 가깝다. 한 평론은 브레송의 배우 연기를 두고 “겉으론 무표정하지만, 소리와 침묵의 총체 속에서 강한 의미와 효과를 발산한다”고 평했다. 특히 이 영화에서 투구를 쓰고 면갑을 연 채 대사하는 장면들은 흥미로운데, 기사들이 말을 할 때마다 면갑을 번갈아 들어올리고 내리는 동작이 마치 소극의 막을 올리고 내리는 행위처럼 보인다. 로즌봄은 이를 “마치 대사가 나올 때마다 막이 오르지만, 그 뒤엔 또 다른 빈 표면만 드러날 뿐”이라고 표현하며, 브레송식 연기의 반연극성을 지적했다. 요컨대 브레송은 배우의 얼굴과 몸을 기표로 활용하여, 그 내부의 심리를 직접 보여주지 않고 외부의 표면을 통해 관객 스스로 의미를 해석하게 만든다. 이러한 연기 방식은 관객에게 거리두기 효과를 일으켜,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소비하기보다는 성찰적 태도로 바라보게끔 한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일부 관객에겐 인물들이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느껴져 감정 이입이 어렵다는 반응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브레송은 대중적 감정 이입보다는 형이상학적 깨달음을 추구했기에, 이러한 비인습적 연기와 연출이야말로 자신의 영화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던 셈이다.

브레송의 <호수의 랑슬롯>은 표면적으로는 중세 기사들의 로맨스와 전쟁 이야기지만, 그 심층에는 도덕적·영적 주제의식이 자리한다. 브레송은 이 영화를 통해 고대 신화에 담긴 가치들을 근본에서부터 재검토하고, 그것이 현대에 주는 의미를 묻는다. 특히 두드러지는 주제는 종교와 폭력의 문제, 그리고 이상주의의 몰락이다. 영화 속 기사들은 성배라는 신성한 목표를 쫓았으나, 정작 그 과정을 통해 신에 대한 겸손을 잃고 오만에 빠졌음을 암시한다. 귀느비르의 대사처럼 그들은 하느님을 트로피 취급했고, 그로 인해 신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기사들이 모여 있는 원탁은 이제 텅 빈 의자들과 죽은 이들의 이름만 남은 공허한 껍데기로 제시된다. 영화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 이상의 공동체였던 원탁의 기사단이 내부 분열과 인간적 나약함으로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서로 협력해야 할 동료 기사들이 성배 원정 중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싸웠다는 귀느비르의 암시는, 외적 적이 아닌 내부의 타락이 가장 큰 파멸의 원인이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브레송이 전통적 영웅 신화를 해체하고 그 이면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부분이다. 브레송의 세계관에는 신학적 뉘앙스가 강하게 드러나는데, 흔히 그를 얀센주의적 작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얀센주의는 인간의 타락과 예정설을 강조하는 가톨릭 사상인데, 이 영화에서도 운명과 은총에 대한 브레송의 냉엄한 시선이 엿보인다. 영화의 도입부 예언처럼, 인물들은 이미 예정된 운명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왕은 왕대로, 기사는 기사대로 각자의 역할에 묶여 파국으로 돌진한다. 흥미로운 것은 브레송이 기적이나 구원의 순간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배도, 성배를 가져올 구세주 기사도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한 평론가는 이를 두고 “브레송의 중세는 하느님마저 침묵하는 신의 부재의 시대”라고 평했다. 실제로 영화 속 아서 왕은 “이 텅 빈 성은 신이 우리를 버렸다는 징표인가?”라고 절망하지만, 끝내 그 답을 찾지 못한다. 브레송은 신비한 기적으로 이 난국을 해결하기보다는, 신의 부재가 낳은 인간의 혼돈을 응시한다. 기사들이 신앙을 잃고 폭력에 탐닉하는 모습은 일종의 도덕적 타락으로 묘사되며, 브레송은 이를 철저히 비판적 거리에서 바라본다. 나아가 영화는 폭력 그 자체의 허무함을 정면으로 제시함으로써 반전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얼굴 없는 갑옷들이 난무하는 살육전은, 전쟁이란 것이 결국 인간성을 말소시키는 행위임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에 모두가 죽고 남은 것은 피투성이의 시체들과 까마귀뿐이라는 결말은, 전쟁으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반전 모럴로 읽힌다. 이는 1970년대 베트남전 등을 겪은 세계사의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브레송은 중세 이야기를 빌려 전쟁과 폭력의 보편적 부조리를 꼬집은 셈이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 또한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프다. 앞서 언급했듯 브레송은 말, 숲, 나무, 까마귀 등의 자연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치하여 인간의 행위를 비춘다. 기사들은 숲을 헤매고, 나무를 깎아 만든 화살로 서로를 죽이며, 죽은 뒤에는 말이 주인 없이 달아나고 까마귀가 시신 위를 맴도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특히 화살과 나무의 이미지가 반복되는 것은, 인간의 폭력이 자연을 파괴하고 결국 자기파멸로 돌아온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말 역시 충직한 동물에서 전쟁의 도구로 쓰이다 끝내 주인과 함께 죽어간다. 이처럼 자연의 질서까지 깨트린 인간의 죄악을 보여주는 방식은, 마치 신이 내린 형벌처럼 묘사된다. 브레송은 영화의 마지막에 자연의 새벽을 배경으로 파국을 묘사함으로써, 인간의 역사는 끝나도 자연의 시간은 계속 흐른다는 냉엄한 시선을 남긴다. 이것은 브레송이 줄곧 관심 가져온 영혼의 구원 문제와 연결된다. 예컨대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비록 인간이 고통받아도 신의 은총으로 영혼이 구원되거나 의미를 찾는 순간이 존재했다. 하지만 <호수의 랑슬롯>에서는 구원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오히려 이 영화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의 파멸을 그리고 있다. 이는 브레송 말년의 작품들과 일맥상통하는 비관적 세계관으로, 세상의 타락이 극에 달한 시대에선 개인의 구제조차 어려워진다는 일종의 영적 위기를 드러낸다. 흥미롭게도, 이 영적 위기의 서사에서 귀느비르라는 여성 캐릭터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브레송 영화에서 여성은 종종 영적인 매개자 혹은 희생의 화신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귀느비르는 그 자체로 죄의 원인이자 동시에 진실의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그녀는 랑슬롯과의 사랑으로 인해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비난받는 팜므파탈은 아니다. 오히려 브레송은 귀느비르의 입을 빌려 기사들의 위선을 폭로하고, 마지막에는 그녀에게 양심의 가책과 속죄의 의지를 부여한다. 귀느비르가 랑슬롯에게 자신을 왕에게 돌려보내라고 말하는 대목은, 더 이상의 피를 막기 위한 희생적 결단으로 읽을 수 있다. 이는 원전의 전설에서 귀느비르가 마지막에 수녀원에 들어가 속죄한다는 모티프와도 통한다. 랑슬롯과 귀느비르의 금지된 사랑은 왕국 몰락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지만, 브레송의 연출에서는 그것이 낭만적으로 미화되지도,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규탄받지도 않는다. 둘의 밀애는 건초더미의 허름한 다락방에서 은밀하고 초라하게 이루어지고, 두 사람의 애정 표현은 육체적 욕망과 영적 교감 사이 어딘가 어색한 지점에 놓여 있다. 어떤 평론가는 브레송이 이 전설을 “기사들의 사소한 감정과 육체성에 초점을 맞춰 해석했다”고 평했는데, 이는 사랑조차도 거창한 로맨스가 아닌 인간적 약함의 표출로 그렸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귀느비르와 랑슬롯의 비극은 궁극의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낀 인간들의 고뇌로 다가온다. 이는 브레송이 관념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결코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헤어질 때 주고받는 짧은 눈맞춤이나, 랑슬롯이 죽어가며 귀느비르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등은, 무미건조한 연출 속에서도 깊은 비극의 정서를 전달한다. 근대적 맥락에서 보면, <호수의 랑슬롯>은 1960년대의 낭만적 이상주의가 1970년대에 좌절된 상황을 은유한 작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 1968년 혁명 이후 냉소와 회의가 팽배했던 프랑스 사회에서, 브레송은 한 세대 이전의 이상의 추구가 어떻게 좌초되었는지를 중세 전설에 투영했다고 볼 수 있다. 성배를 찾겠다는 원탁 기사들의 서사는 혁명적 이상이나 유토피아 추구에 비견될 수 있지만, 그 결말은 서로 간의 불신과 폭력, 그리고 권력 암투로 무너진다. 이는 이상을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운동들의 결말과도 상통한다. 영화에 묘사된 기사단의 모습—내부 고발자의 배신, 지도자의 무능, 동지들의 자기모순—은 현대 사회의 축소판처럼 읽히기도 한다. 실제로 평론가 빈센트 캔비는 이 영화를 두고 “기묘할 정도로 서구 문명의 가치를 진지하게 재검토한 작품”이라 평했는데, 여기서 서구 문명의 가치란 곧 기사도 정신으로 대표되는 이상주의일 것이다. 브레송은 그 이상주의의 허상을 폭로함과 동시에, 새로운 가치의 부재라는 공허를 관객에게 응시하도록 한다. 이는 브레송 본인이 2차대전 후 신앙과 구원 문제를 평생 탐구해온 연장선에 있으며, 말년의 이 작품에서는 한층 엄혹한 결론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브레송의 철저한 형식주의는 단순히 미학적 실험이 아니라 윤리적·철학적 발언과 맞닿아 있다. 그는 영화 형식 자체로 하나의 도덕적 우화를 빚어낸다. 예컨대 보여주지 않는 것을 통해 겸손과 자기성찰을 강조하는 태도는,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도록 유도한다. 이는 극중 기사들이 잃어버린 덕목—겸양과 자기반성—을 영화 형식으로 구현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또한 자기반영적 유머도 일부 엿볼 수 있다. 브레송은 전작들에서 동물이나 아이의 시선을 통해 인간사를 관조하곤 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까마귀나 말의 존재가 그러한 역할을 부분적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감독 자신도 어딘가 엉뚱한 유머를 동원하는데, 예컨대 엑스트라처럼 등장하는 이름 없는 인물들이 전투 중에 무심히 바닥의 피를 걸레질하거나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은 기묘한 블랙 유머를 자아낸다. 이러한 장면들은 일부러 극의 비장함을 깨뜨려 거리두기를 발생시키며, 관객이 사건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도록 만든다. 이는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처럼, 브레송이 관객의 지각을 일깨우는 정치적 장치라 할 수 있다.

<호수의 랑슬롯>은 브레송의 필모그래피에서나 아서왕 전설의 영상화 역사에서 모두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다. 영화는 개봉 당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으나, 꾸준히 평단의 재평가를 받아왔다. 앞서 언급했듯 빈센트 캔비 같은 일부 평론가는 “내적 의미가 부족하다”거나 “브레송적 금욕이 자기 모순에 빠졌다”고 비판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러 비평지에서는 이 영화를 걸작 반열에 올렸다. 특히 영국 평단에서의 지지는 강력해서, 사이트앤사운드에서 크리스 다크는 이 영화를 브레송의 전통이 한층 세련된 완성을 본 예로 들며 “다른 어떤 영화와도 닮지 않은 철저히 독자적인 비전”이라고 평했다. 고다르 역시 “브레송 영화의 힘은 세계에 대한 하나의 생각을 영화에 적용한 데 있다”는 언급으로 이 작품을 추켜세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호수의 랑슬롯>은 많은 영화학자들에게 연구 대상이 되었다. 영화 이론가 폴 슈레더는 자신의 책 초월적 스타일에서 브레송을 오즈, 드레이어와 함께 논하면서, 이 영화의 초월적 정조를 분석하기도 했다. 또한 잔 보들레르 등 프랑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의 고의적 시대착오적 요소들을 흥미롭게 지적했다. 예컨대 영화에 등장하는 목욕통, 체스판, 천막, 원탁 디자인 등이 실제 중세와 맞지 않는 소품임을 지적하며, 브레송이 역사 고증보다 현대적 주제 부각을 위해 의도적으로 삽입한 것이라 해석했다. 이런 세부까지도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니, 영화를 읽을 때 단순한 시대극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존 부어만의 화려한 아서왕 영화 <엑스칼리버>와 비교하면 브레송의 영화는 정반대의 길을 간다. 한 평론은 “브레송의 영화는 엑스칼리버의 뒤에 이어 본다면, 우스꽝스러운 판타지 뒤에 오는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고 평하며, 상업적 중세 판타지와 브레송의 실험적 해석을 대조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브레송과 거의 동시에 몬티 파이썬도 중세풍 코미디 <몬티 파이썬의 성배>를 내놓았는데, 둘 다 전설을 해체하면서도 한쪽은 비극으로, 다른 쪽은 풍자로 풀어낸 것이 흥미롭다. 그러나 영화사적 영향으로 보자면, 브레송의 형식주의는 워낙 독자적인 나머지 직접적인 추종자를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테렌스 말릭이나 아키 카우리스마키, 브루노 뒤몽 같은 몇몇 감독들이 브레송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공언했고, 특정 장면들의 오마주도 시도되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영화 소리 연구나 미학 연구에서 귀감이 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토너먼트 시퀀스의 사운드 몽타주나, 갑옷을 통한 인물 묘사는 학술적 분석의 단골 주제다. 결국 <호수의 랑슬롯>은 전설을 빌린 철학적 에세이 영화라 할 만하다. 형식과 내용이 완벽히 합치되어, 영화 언어 자체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지에 이른 작품이기 때문이다. 브레송은 이 영화를 통해 “영화란 스펙터클이 아니라 글쓰기”라는 자신의 신념을 몸소 입증해 보였다. 그의 카메라와 마이크는 펜과 잉크처럼 쓰였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은 한 편의 시이자 비가였다. 장 뤽 고다르의 말처럼, 브레송의 영화에는 “세계에 대한 관념을 영화로 쓴” 거장의 사유가 깃들어 있다. 관객 각자는 그 관념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지극히 지루하고 난해한 실험이라 여길 수도 있고, 또 다른 이는 최고도로 순화된 숭고미를 경험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브레송이 타협하지 않고 밀어붙인 이 형식미 덕분에 영화는 시대를 앞질러 시간성을 초월한 예술품이 되었다는 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까마귀가 나는 새벽 하늘을 바라보던 랑슬롯의 빈 눈동자는, 마치 관객에게 묻는 듯하다. 신화가 사라진 자리, 무엇이 남았는가? 브레송은 그 물음에 직접 답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영화의 표면에 살과 쇠, 소리와 이미지, 사랑과 폭력의 파편들을 정교하게 배치해 우리 스스로 성찰하도록 한다. 그렇기에 <호수의 랑슬롯>은 쉽사리 그 의미를 모두 말해주지 않는 난해한 걸작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이 영화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새로운 해석을 낳고 비평지면을 풍요롭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허우 샤오시엔, 남국재견

허우 샤오시엔은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의 작품들은 길게 지속되는 롱테이크와 절제된 서사로 유명하며, 개인의 기억과 역사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허우는 <비정성시>, <희몽인생>, <호남호녀> 등 대만의 역사적 트라우마와 집단 기억을 다룬 작품들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과거 회고적이고 서정적인 작품들에 이어, <남국재견>은 허우 샤오시엔 필모그래피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룬다. 이 영화는 이전의 시대극들과 달리 1990년대 현재의 대만을 배경으로 하며, 허우 특유의 미학을 현대의 방황하는 청년 세대와 암울한 현실에 접목한 실험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남국재견>은 허우 샤오시엔의 작품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역사에 대한 향수를 아름답게 그렸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하면, 이 작품은 동시대의 거칠고 생생한 삶을 그대로 화면에 담아낸다. 감독은 우아한 그림엽서 같은 미장센을 일부러 벗어던지고, 대신 날것에 가까운 현실감을 추구한다. 이는 허우가 과거에서 현재로 시선을 옮긴 첫 번째 본격 현대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시에 <남국재견>은 이후 그가 만들 <해상화>, <밀레니엄 맘보> 등의 현대적 작품들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한다. 즉, 이 영화는 과거의 기억을 탐색하던 거장이 현재의 방황과 혼돈을 응시하기 시작한 신호탄이었다. 비록 개봉 당시에는 다른 대표작들에 비해 호불호가 갈렸지만, 나중에는 평단으로부터 재평가를 받아 1990년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등 허우 샤오시엔 영화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남국재견>이 나온 1990년대 중반의 대만은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불과 몇 년 전에 계엄령이 해제되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1996년 최초의 총통 직선제가 실시되는 등 정치 지형이 급변했다. 그러나 민주화의 진전은 역설적으로 정치 부패와 폭력 조직의 유착이라는 그림자를 동반하기도 했다. 이 시기 대만 사회에는 이른바 “검은 금 정치”라 불린 정치-폭력배 결탁이 만연했고,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부조리와 혼란이 존재했다. 영화 속에서 지방 정치인과 건달들이 뒤섞여 거래하는 모습이나, 경찰이 범죄 조직과 결탁하는 암시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즉, <남국재견>의 배경에는 과거 권위주의의 잔재와 신생 민주 사회의 부조리가 공존하는 당시 대만의 단면이 깔려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90년대 대만은 고도성장과 산업화를 겪은 후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시기였다. 하지만 빠른 현대화는 젊은 세대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안겨주기도 했다.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나 공동체 의식은 퇴색하고, 돈과 성공이 최고의 가치로 부상하면서 삶의 방향을 잃은 청년들이 늘어났다. 영화는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사회 최하층의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들은 범죄와 합법의 경계에서 잔꾀를 부리며 당장의 돈벌이에 급급하지만, 사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떠돌이 세대다. 허우 샤오시엔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대만 청년층의 상실감과 방황을 담아낸다. 또한 중국 대륙과의 관계도 90년대 대만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정치적으로는 긴장이 높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 본토의 경제 기회에 눈을 돌리는 사업가들이 생겨났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상하이에 나이트클럽을 열어 한몫 잡으려 하거나, 결국 떠돌다 못해 해외 이민을 꿈꾸는 모습 등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대만인들 사이에 퍼진 이주 열망과 대륙 진출 꿈을 반영한다. 동시에 이러한 탈출의 꿈은 현실에서 도피하고픈 욕망이기도 하다. 요컨대 <남국재견>은 민주화 이후 대만 사회의 표류하는 정서와 물질만능주의 시대의 공허를 사회문화적 배경으로 두고 있다. 이 영화의 세계에서는 과거의 억압은 사라졌지만, 그 빈자리에 뿌리 없는 자유와 방향 잃은 에너지만이 가득한 듯한 시대 풍경이 펼쳐진다.

영화는 뚜렷한 기승전결의 플롯보다는 인물들의 방황을 따라가는 에피소드들의 연속으로 전개된다. 중심인물은 가오로, 한때 조직 폭력배였으나 이제는 온갖 편법과 수완으로 돈벌이 기회를 노리는 중년의 해결사다. 그는 친척동생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일종의 “형님” 격으로 통하며, 늘 새로운 사업 계획을 꿈꾸지만 번번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가오의 곁에는 그가 이끄는 조직 아닌 조직이 있는데, 여기에는 젊은 동생과 그의 여자친구 프레츨이 핵심 멤버로 있다. 동생은 다혈질의 말썽꾸러기로,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어 사고를 치기 일쑤다. 반면 가오는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며 현실감 없이 탕진하는 상처 입은 영혼으로, 도박빚에 허덕이다 삶을 포기하려 들만큼 불안정하다. 가오의 연인 잉도 등장하는데, 그녀는 같은 클럽에서 일하면서도 가오의 범죄 세계를 탐탁지 않아 한다. 잉은 가오에게 범죄를 청산하고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라며, 함께 식당을 차려 정착하자고 제안한다. 초반에 영화는 가오와 그의 일행이 남부 지방을 오가는 여정을 비추며 시작된다. 가오는 친구 시와 손잡고 시골 마을 핑시에서 단기 도박장을 열어 한몫 잡으려 한다. 이들은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남쪽 마을을 배경으로 잔뜩 들뜬 모습으로 새로운 사기를 도모한다. 동시에 가오는 상하이의 나이트클럽 투자 이야기에도 발을 걸치고 있어, 대륙으로 진출해 돈을 벌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일확천금 계획들은 하나같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정부 보조금을 노리고 돼지를 헐값에 사들여 비싼 종돈으로 둔갑시켜 되파는 수상한 거래를 모색하지만, 그러는 사이 동생의 돌출행동으로 현지 조직과 마찰을 빚는다. 영화의 서사는 인과관계가 뚜렷하게 설명되지 않은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관객은 퍼즐 조각을 맞추듯 이야기의 전모를 유추해야 한다. 각 씬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단편 같은 인상을 주며, 장면과 장면 사이에 시간적 점프나 맥락의 생략이 빈번하다. 이를테면 어느 순간에는 인물들이 농장을 찾아가 돼지를 트럭에 싣고 있고, 갑자기 다음 순간에는 클럽에서 노는 장면으로 건너뛰는 식이다. 이러한 비선형적 구성 덕분에 이야기는 마치 파편화된 삶의 단면들처럼 전개되며, 인물들의 일상이 지닌 단조롭고 반복적인 양상이 부각된다. 주요 갈등은 동생의 공격적인 성격에서 비롯된다. 가오가 애써 성사시키려는 거래마다 동생이 사고를 쳐서 물거품이 되고, 문제를 수습하느라 가오는 동분서주한다. 여자친구는 마작 도박에 빠져 빚을 지고, 결국 자살 시도까지 하는 극단적 선택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가오 일행의 삶은 점점 궁지로 몰리며 빈곤한 현실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가오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계획을 쥐고 놓지 않는다. 식당을 열겠다는 잉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도, 그는 한편으로 “이번 한 탕만 더 하면”이라는 생각에 다음 사기를 계획한다. 이러한 반복은 영화 후반까지 이어져, 인물들은 남쪽 지방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끊임없이 어딘가로 이동한다. 결국 동생의 다툼으로 남부의 조직폭력배들과 큰 싸움이 벌어지고, 가오의 패거리는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가오는 어쩔 수 없이 부패한 지방 정치인에게 손을 벌린다. 그 정치인은 깡패 두목 못지않은 영향력으로 사태 수습을 중재해주지만, 대가로 막대한 금품이나 청탁을 요구한다. 이런 뒷거래를 통해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지만, 이것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영화는 뚜렷한 해결이나 결말 없이 열린 채로 끝나는데, 마지막에는 주인공들이 탄 차나 오토바이를 따라가던 카메라가 뜻밖의 각도로 급격히 움직이며 불안한 여운을 남긴다. 관객은 이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채로, 그저 그들이 남쪽을 등지고 어딘가로 떠나가는 모습만을 목격하게 된다. 이런 엔딩은 허우 샤오시엔 영화답게 삶의 한 단면을 포착해 보여주고는 조용히 작별을 고하는 셈이다. 서사적으로 볼 때 <남국재견>은 범죄 영화의 틀을 빌리면서도 범죄나 액션보다는 정처 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삶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거창한 사건은 없지만, 그 무사건의 연속 자체가 이 시대 젊은이들의 현실을 대변하는 냉소적인 코멘트라 할 수 있다.

<남국재견>은 형식 면에서도 허우 샤오시엔 특유의 연출 미학이 두드러지지만, 동시에 새로운 실험이 가미된 작품이다. 우선 카메라의 활용을 보면, 이 영화에는 지극히 정적인 숏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숏이 교차한다. 허우의 이전 영화들처럼 인물과 공간을 고정된 롱샷으로 오랫동안 응시하는 장면들이 많다. 카메라는 종종 방 한 구석에 놓인 듯 인물을 먼 거리에서 한 컷에 담아내며, 관객이 마치 방관자처럼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도록 한다. 예컨대 가오와 동생, 여자친구가 함께 있는 허름한 호텔방 장면을 보면, 좁은 방 안에 세 사람이 각자 따로 놀고 있는 모습이 롱테이크로 그려진다. 화면 구도는 의도적으로 방의 네모난 형태를 강조하여, 인물들이 상자 안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자아낸다. 동생은 바닥에 엎드려 휴대용 게임기에 몰두하고, 가오는 침대에 반쯤 누운 채 전화 통화를 시도하다 끊기기를 반복하며, 프레츨은 아예 화장실 문도 닫지 않은 채 용변을 보는 등 제멋대로인 세태를 보여준다. 이때 카메라는 이들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담담하고도 냉정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컷을 나눠서 클로즈업이나 리액션을 보여주는 법이 없고, 하나의 숏 안에서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이 늘어지는 시간의 표현 속에 인물들의 권태와 불안, 그리고 서로에 대한 묘한 친밀감과 짜증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하지만 <남국재견>은 전적으로 정적이지만은 않다. 흥미롭게도 허우는 이 작품에서 이동하는 카메라 숏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영화 전체에 독특한 리듬을 부여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인물들이 기차, 자동차, 오토바이 등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주로 트래킹 쇼트로 촬영되었는데, 가령 기차의 마지막 칸 밖으로 풍경이 지나가는 장면이나, 자동차 뒷좌석에서 본 도로의 연속,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따라가는 긴 숏 등이 눈에 띈다. 특히 유명한 장면으로, 동생과 여자친구, 그리고 가오가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올라가는 시퀀스가 있다. 이때 카메라는 약간 앞서 달리며 굽이치는 길을 유려하게 따라가는데, 푸른 풍광 속에서 세 인물이 오토바이를 나란히 몰며 밝게 웃는 모습이 몇 분간 이어진다. 대사 한 마디 없이 경쾌한 음악과 바람소리만이 흐르고, 화면 가득 자유로운 운동감이 펼쳐진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보기 드문 해방감과 평화로움의 순간이다. 감독은 이렇게 이동과 여행의 이미지들을 곳곳에 배치하여,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잠깐씩 찾아오는 자유의 감각을 표현한다. 길고 지루할 수 있는 영화에 이러한 움직임의 ‘섬’들을 찍어 놓음으로써 리듬의 변주를 만들어낸 것이다. 색채와 조명, 미장센 역시 주제의식을 뒷받침한다. 허우 샤오시엔은 과거 작품에서 고풍스럽고 따뜻한 색감을 즐겨 사용했지만, <남국재견>에서는 의도적으로 거칠고 자극적인 색채를 들여왔다. 예를 들어 밤의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가라오케 바 장면에서는 화면이 녹색과 자홍색 네온빛으로 어지럽게 물들어 있다. 또 일부 장면에서는 노란색, 붉은색, 녹색의 강한 필터를 사용하여 현실이 약간 비틀린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는 현대 도시의 환락과 혼돈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인물들의 몽롱한 심리 상태를 대변하기도 한다. 현실 세계가 이들에겐 때로 환각처럼 느껴지고, 꿈과 야망도 일종의 신기루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장된 색감과 조명은 영화의 사실주의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과 불안감을 느끼게 만들어 작품의 정서에 동참하게 한다. 편집과 장면 전환에도 허우의 독특한 방식이 드러난다. 그는 설명을 위한 컷이나 전통적 극적 연결을 최소화하고, 빈 공간과 여백을 남기는 편집을 선호한다. <남국재견>에서도 어떤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보여주지 않고 툭툭 생략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동생이 사고를 친 뒤 어떻게 수습되었는지, 프레츨의 자살 소동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등을 직접 말해주지 않는다. 관객은 때론 앞뒤 문맥이 생략된 장면에 갑자기 던져지는데, 이럴 때 그 공백을 메워 의미를 완성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이러한 편집 방식은 영화에 단조로운 현실의 반복성과 삶의 단면을 포착한 듯한 느낌을 부여한다.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있는 그대로의 순간들을 붙여놓아 삶의 연속성을 암시한다. 또한 이러한 생략의 미학은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도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예컨대 가오가 어떤 결심을 하거나 좌절을 느끼는 순간을 친절히 설명하지 않아도, 이전과 이후의 행동 변화를 통해 그 심경을 유추하게 한다. 이러한 여운을 남기는 편집은 허우 샤오시엔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이며, <남국재견>에서도 관객에게 능동적 해석의 공간을 제공한다. 영화 사운드 또한 주목할 요소다. <남국재견>에서는 임강이 음악을 담당하여, 기존 허우 작품에서는 잘 들리지 않던 록/일렉트로닉 음악이 배경으로 흐른다. 영화의 시작은 검은 화면에 울려퍼지는 격렬한 록 음악으로 열리는데, 이 곡은 극중 동생 역을 맡은 임강의 앨범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현대적인 비트의 음악은 인물들의 거친 에너지와 당대 젊은 문화를 표현한다. 특히 극 중반 나이트클럽이나 가라오케 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는 영화의 테마와 교차한다. 한 장면에서 남자가 가라오케로 부르는 노래에는 “사랑도 미움도 모두 파멸을 부를 수 있고, 진짜 사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남을 죽이지도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다. 이 가사는 극중 인물들의 막다른 심리와 폭력 충동, 그리고 삶을 지속하려는 의지를 대변하는 듯하다. 허우 샤오시엔은 이런 방식으로 음악을 단순한 분위기 연출 수단이 아니라 주제의 반영으로 활용한다. 반면 일상의 소음과 침묵도 중요하다. 조용한 시골 밤에 벌레 우는 소리나, 기차 객실의 단조로운 철컥거림, 캐릭터들이 말을 잃은 순간의 정적 등이 오히려 큰 울림을 준다. 이러한 현실 음향들은 관객을 영화 속 세계에 깊숙이 몰입시키며, 마치 그 공간에 함께 있는 듯한 현장감과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남국재견>의 연출은 긴 호흡의 관찰자적 시선과 순간적인 운동감이 교차하며 독특한 리듬을 형성한다. 카메라는 때론 멈춰서 인물들의 무료한 시간을 응시하고, 때론 움직이며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려 안간힘쓰는 모습을 쫓는다. 미장센은 화려함과 추잡함이 공존하는 현대 대만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도, 과감한 색채와 구도로 그 삭막함을 강조한다. 편집의 빈칸과 여백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들의 삶을 곱씹게 만들고, 음악과 소리는 그들의 내적 상태와 시대의 정조를 드러낸다. 이러한 영화적 요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몇몇 대표 장면들—예컨대 앞서 언급한 오토바이 질주 신, 호텔방에서의 권태 신, 가오가 화장실에서 오열하는 신, 엔딩의 불안한 이동 신 등—은 영화 전체의 정서와 리듬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허우 샤오시엔은 이처럼 치밀한 연출을 통해,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영화에 관통하는 삶의 진실성과 무언의 드라마를 스크린에 구현해냈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주제의식은 저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내게는 “방향을 잃은 채 앞으로만 나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으로 다가왔다. 극중 인물들은 과거를 돌아볼 겨를도, 돌아갈 곳도 없이 그저 눈앞의 생존과 욕망을 쫓아 달린다. 영화의 원제 “남국, 안녕”은 말 그대로 고향 남쪽과의 작별을 뜻하는데, 이는 단순히 지리적 남쪽 지역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쪽은 따뜻하고 정겨운 과거의 은유일 수 있고, 북쪽은 차갑고 경쟁적인 현대 도시 문명의 상징일 수 있다. 결국 제목이 암시하듯 인물들은 자신들의 뿌리와 순수함을 뒤로 한 채 떠나가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세계에서 행복을 찾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영화 내내 그들은 남쪽을 등지고 달려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듯한 모순에 갇혀 있다. 이러한 모습은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전통과 공동체의 나침반을 잃고 표류하는 세대 전체를 은유하는 듯했다.

장 뤽 고다르, 카르멘이라는 이름

19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장 뤽 고다르는 급진적인 영화 형식 실험과 사회 비판적 주제로 영화사의 새 지평을 연 거장이다. 1960년대 후반 누벨바그 운동이 한차례 막을 내린 뒤, 고다르는 1970년대에 디자가 베르토프 그룹을 결성하여 정치적 선전 영화와 비디오 실험에 주력하며 기존 영화 산업을 떠나 있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영화 미디어 자체에 대한 성찰을 거듭한 고다르는, 1980년대를 맞아 다시 극장용 영화로 복귀한다. 그는 자신의 표현으로 “영화 만들기는 현악 사중주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로, 영화 예술을 다른 예술 형태와 견주어 사유하는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1980년대 그의 영화들은 신화적 문학 원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하거나 미술·음악 등 타 예술사의 고전들과 대화하는 경향을 띠었다. 이를 통해 고다르는 초기 누벨바그의 주제 의식을 어느 정도 계승하면서도, 영상과 소리에 대한 오랜 탐구를 바탕으로 새롭게 진화한 영화 언어를 선보이게 된다. <카르멘이라는 이름>은 고다르가 1980년대 초 복귀 후 발표한 일련의 작품들 가운데 하나로, 그의 “숭고 3부작” 중 두 번째 영화로 꼽힌다. 이 3부작은 고다르가 1970년대의 집단영화·비디오 실험을 뒤로하고 “이미지의 완전함”을 의식적으로 추구한 작품들로 알려져 있다. 고다르는 1980년 <구사일생>으로 극영화에 복귀한 데 이어, 1982년 <열정>을 만들었으나 예상 외의 흥행 실패를 겪었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아진 예산으로 제작된 작품이 바로 1983년의 <카르멘이라는 이름>이다. 제작비 절감을 위해 고다르는 자신의 영화를 직접 제작·출연하기로 결정하여, 본인 명의의 제작사 JLG 필름을 설립하고 영화 속 “엉클 장” 역할을 직접 맡았다. 이 엉클 장 캐릭터는 고다르가 여러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변주한 “바보” 페르소나의 하나로, 훗날 1987년작 <오른쪽에 주의하라>에서 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한편 여주인공 카르멘 역에는 원래 당시 프랑스 최고의 스타였던 이자벨 아자니가 낙점되었으나 개인 사정으로 하차하여, 신예 마뤼슈카 데트메르스가 급히 캐스팅되었다. 고다르는 촬영을 위해 1960년대 누벨바그 시절 자신의 영화를 아름답게 담아냈던 촬영감독 라울 쿠타르를 14년 만에 다시 불러들였고, 이는 두 사람의 마지막 협업이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카르멘이라는 이름>은 1983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고다르는 영화의 엔딩 자막에 “작은 영화들에게 바치는 헌정”이라는 문구를 넣어, 거대 상업영화 시대에 예술적 소신을 지키는 소규모 영화 제작에 대한 헌사를 표하기도 했다. 1980년대 초반은 세계 영화계에 기술과 자본의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득세와 홈 비디오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영화 문화는 변모하고 있었고, 프랑스 영화 역시 누벨바그 세대 이후 새로운 흐름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다르는 이전 세대의 거장으로서 여전히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를 내놓으며 독자적인 입지를 유지했다. <카르멘이라는 이름>이 제작된 1983년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면, 서구 사회에서는 1960년대의 혁명적 열기가 사그라들고 좌파 운동의 퇴조와 소비주의의 확산이 두드러졌다. 영화는 이러한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듯, 표면적으로 테러리스트 집단의 범죄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실제로는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코멘터리를 담고 있다. 고다르는 이 영화 속에서 당대의 뒤틀린 정치 지형과 사회 혼란을 반영하여, 전형적인 범죄 활극에 정치적 함의를 교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컨대 극 중 등장인물의 대사 “똥이 돈값을 하면 가난한 자들은 똥구멍도 없을 거야”라는 농담은 자본 중심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읽힌다. 아울러, 1970년대 유럽을 뒤흔든 극좌 테러와 혁명 운동의 여파도 작품 배경에 깔려 있다. 주인공 카르멘과 일당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강도와 납치를 계획하지만, 이들의 폭력적 행동이 어딘가 어수룩하고 무의미하게 그려지는 것은 혁명의 허망함과 폭력의 부조리를 풍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고다르는 낭만적 범죄자 커플의 신화를 1980년대 현실에 비춰 탈신화화하고 있다. 한편, 작품의 젠더 관점도 그 시대 문화적 담론과 맞닿아 있다. 카르멘은 전통적 팜므파탈의 이미지와 1980년대적 페미니즘 사이에서 복합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영화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정치를 중요한 테마로 삼아, 사랑과 욕망의 힘관계를 예리하게 탐구한다. 고다르는 누벨바그 시절부터 여성 캐릭터를 통해 남성 중심 사회를 반성적으로 비춰왔는데, 본 작품에서도 자유분방하고 주도적인 여성과 혼란 속에 휘말리는 남성의 대비를 통해 권력 관계의 전복을 시도한다. 이러한 접근은 당대에 팽배했던 여성 해방 운동과 성 역할 논의를 영화적 형태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카르멘이라는 이름>은 1980년대 초의 문화·정치적 전환기를 고다르 특유의 방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고다르의 <카르멘이라는 이름>은 조르주 비제의 유명한 오페라 <카르멘>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원작의 기본 골격을 빌리되 내용을 파격적으로 변주한다. 카르멘 X는 테러리스트이자 범죄 조직의 일원으로,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찍는다는 구실로 삼촌 장이 머무는 해변가 별장을 빌린다. 그러나 이는 은행 강도와 이어질 유괴 작전을 위한 은신처 확보가 목적이었다. 영화는 시작부터 카르멘 일당이 은행을 습격하는 장면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데, 이때 은행 경비원 조제프가 카르멘과 맞닥뜨린다. 총을 들이대는 팽팽한 대치 순간, 둘은 우연히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다가 격정적인 포옹으로 이어지며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카르멘은 계획대로 은행에서 돈을 탈취한 후 인질이 된 조제프를 데리고 바닷가 별장으로 달아난다. 하지만 인질과 납치범의 관계는 곧 연인 관계로 급변하고, 둘은 은신처에서의 나날을 보내며 일시적인 해방감을 맛본다. 한편 삼촌 엉클 장은 정신 요양원에 입원중인 한물간 영화감독으로, 조카 카르멘의 갑작스런 방문과 영화 촬영 요청에 얼떨떨해한다. 그는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종잡을 수 없는 언행을 일삼는 괴짜 인물로, 종종 뜬금없는 행동을 보이며 주변을 당황시킨다. 엉클 장은 카르멘 일행의 범죄 계획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들을 돕겠다고 나서지만, 결국 촬영은커녕 엉망이 된 별장만 남는다. 영화 후반부에는 카르멘 일당이 노린 재벌 회장 납치 시도가 그려지는데, 이 작전은 혼란 속에 실패로 끝난다. 그 와중에 사랑에 집착하게 된 조제프는 배신과 질투에 휩싸여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마침내 마지막 장면에서 조제프는 운명적으로 카르멘을 총으로 쏘고, 카르멘은 한 식당에서 웨이터의 품에 쓰러진 채 최후를 맞는다. 죽어가는 카르멘이 웨이터에게 “모든 죄인들이 한편에 있고 순결한 자들이 다른 편에 있을 때를 뭐라고 부르죠?”라고 묻자, 웨이터는 알지 못한다 답한다. 카르멘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당신 일이나 잘 봐요. 멍청이들을 찾아야지, 그게 필요한 거라잖아요”라고 말하고, 웨이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어요, 아가씨. 찾고 있다구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베토벤 현악 사중주의 격정적인 마지막 악장이 흐르는 가운데, 조제프가 먼 곳에서 “카르멘!”을 절규하는 목소리가 겹쳐 들린다. 카르멘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지며 죽음에 이르는 순간, 웨이터는 창밖 여명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인다. “내 생각엔… 여명을 그렇게 부르는 것 같군요”. 이 암시적인 대사와 함께 영화는 끝을 맺는다.

초반 은행강도 오프닝 시퀀스는 긴장과 유머가 교차하는 인상적인 쇼트들의 연속이다. 카르멘 일당이 총기를 난사하며 은행을 점거하는 동안, 일반인 엑스트라들은 혼란에 반응조차 하지 않고 신문을 보거나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는 모습으로 포착된다. 심지어 총격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청소부 여성이 유유히 등장하여 바닥의 피를 걸레로 닦기 시작하는 엉뚱한 숏이 삽입되기도 한다. 이러한 탈극적 연출은 범죄 장르의 관습을 깨뜨리면서, 관객에게 일종의 데드팬 유머로 다가온다. 총성과 비명이 오가는 폭력 한복판에 무심하게 일상을 이어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고다르가 의도적으로 현실감을 해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관객은 단순한 서스펜스가 아니라 폭력과 일상의 부조화라는 테마에 주목하게 된다. 카르멘과 조제프의 첫 만남 장면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은행 금고방에서 대치하던 두 사람이 총을 두고 몸싸움하다가 엉켜 넘어지는 일련의 동작은 빠른 편집과 격렬한 카메라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팽팽한 긴장감으로 시작한 이 씬은 둘이 바닥에 쓰러진 후 갑작스럽게 키스로 이어지며 분위기가 돌변한다. 고다르는 이 예측 불가능한 정서의 전환을 통해, 폭력과 사랑이 한 순간에 교차하는 순간의 진실을 포착한다. 클로즈업된 두 배우의 얼굴에는 총격전의 공포와 성적 긴장감이 교차하고, 이어지는 정지된 한 순간의 응시 이후 곧장 격정적인 포옹으로 연결된다. 이 과감한 동작의 연결은 당시 평론가들에게 “당혹스럽지만 감동적”인 장면으로 언급되었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사랑의 충동성과 폭력의 에너지가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영화 중반, 바닷가 별장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장면들은 고다르 특유의 미장센 감각이 두드러진다. 창문 너머 보이는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사랑에 취한 카르멘과 조제프는 나른하고 관능적인 신을 이어간다. 이때 카메라는 인물들의 나체에 가까운 육체를 담담하면서도 관조적으로 그려내는데, 자연광을 살린 부드러운 명암 대비로 현실성과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표현한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스타일화된 키아로스쿠로 효과는 화면에 우아함을 더하며, 평론가들로부터 “<미치광이 피에로> 이후 가장 시각적으로 풍요롭고 청각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찬사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두 연인의 나른한 동작 사이로 간간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바다의 이미지는, 이들이 현실을 잊은 채 무의식의 영역에 빠져들고 있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고다르는 바다의 시각을 씬과 씬 사이의 간극에 배치함으로써, 이야기 이면에 흐르는 감정과 무의식을 시각화했다. 엉클 장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영화 속 메타영화적 유머와 의미를 담고 있다. 엉클 장은 정신병동에서 카르멘 일당과 대화를 나누는데, 그의 괴짜 같은 행동과 어슬픈 몸짓은 의도적인 슬랩스틱에 가깝다. 예컨대 그는 병실에 갖힌 채 카르멘의 부탁을 받고서도 어쩔 줄 몰라 하며, 갑자기 카세트테이프 녹음기를 안고 음악을 틀어놓은 채 혼자 몸을 흔드는 등 기행을 보인다. 이 모습은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동시에, 예술가인 고다르 자신을 희화화한 것으로 읽힌다. 한편 엉클 장은 영화 내내 흐르는 현악 사중주 연주 장면에 대해 “도대체 저 사중주단은 어디에서 끼어든 거지?”라고 툭 내뱉기도 한다. 이는 극 중인물이 영화의 편집 구성 자체를 논평하는 순간으로, 음악과 영상의 관계에 대한 고다르의 자기반영적 질문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엉클 장의 쇼트들은 영화 만들기란 무엇인가라는 감독의 화두를 몸소 연기하는 장으로 기능하며, 극의 진지함을 누그러뜨리는 자기풍자 역할도 수행한다.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는 비극과 아이러니가 절정에 달한다. 카르멘과 조제프의 최후 대결이 벌어지는 식당 시퀀스에서, 어두운 실내 조명 아래 두 사람의 격렬한 말다툼과 총격이 교차된다. 죽어가는 카르멘을 비추는 카메라는 롱테이크로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담아내며, 카르멘의 얼굴은 노을빛과 실내등이 뒤섞인 묘한 색감으로 물든다. 카르멘이 쓰러진 채 건네는 수수께끼 같은 대사(앞서 언급된 죄인과 순결한 자에 대한 질문)와, 이에 응답하지 못하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은 긴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웨이터가 “새벽을 그렇게들 부르는 모양입니다”라고 답하는 순간, 창밖으로 여명이 밝아오며 베토벤 음악의 피날레가 울려 퍼진다. 이 섬광 같은 마무리 쇼트는 죽음과 구원의 모호한 경계를 암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내내 교차된 예술과 현실, 사랑과 폭력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카르멘이라는 이름>은 형식미와 영화적 장치에 대한 철저한 자기인식으로 가득 찬 작품이다. 고다르는 카메라, 편집, 미장센, 사운드, 언어 등 영화 언어의 모든 측면을 활용하여 주제의식을 형상화한다. 특히 이 영화는 고전 음악과 영상의 교차, 이중적 내러티브 구조, 자기반영적 대사 등 형식적 실험을 통해 관객에게 기존 문법과는 다른 감상의 길을 제시한다. 촬영감독 라울 쿠타르와의 재회 덕분에, 이 영화는 회화적으로 아름다운 영상으로 빛난다. 자연광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필요 시 강렬한 명암 대비를 주어, 화면이 때로는 사실적 다큐멘터리처럼, 때로는 빛과 색채의 향연처럼 보이게 연출되었다. 극 중 원색의 활용과 색채 대비도 두드러지는데, 이는 고다르의 대표작 <미치광이 피에로>와의 유사성을 지닌다. 실제로 두 영화 모두 강렬한 색감, 바다 풍경, 죽음의 예감이라는 요소들을 공유하며, 고다르는 <카르멘이라는 이름>에서 의도적으로 그러한 시각 모티프를 소환하고 있다. 고다르는 또한 클로즈업과 롱샷을 교차적으로 사용하여 인물들의 내면과 배경 환경을 모두 부각시키는데, 예를 들어 사랑 장면에서는 인물의 얼굴과 피부 결을 섬세히 담았다가 곧장 창밖의 먼 바다로 시선을 옮기는 식으로 심리적 친밀감과 거시적 고독감을 동시에 암시한다. 이러한 카메라 기법은 영화 속 사랑과 세계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인물들이 거대한 현실 속에 고립된 존재임을 암시한다. <카르멘이라는 이름>의 서사는 두 개의 축이 교차 몽타주 형식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카르멘-조제프의 범죄와 사랑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현악 4중주단의 리허설 장면이다. 고다르는 이 둘을 번갈아 배치함으로써, 예술과 현실의 변증법을 형성한다. 현악 사중주를 연주하는 현악 4중주의 이미지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와중에 뜬금없이 삽입되어 처음엔 맥락이 불명확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음악이 이야기와 은밀하게 대화하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예컨대 연주 장면의 우아한 몸짓과 카르멘-조제프의 격렬한 몸짓이 교차되며 일종의 리듬과 제스처의 유사성이 부각된다. 두 연인의 사랑의 몸짓은 때로 조각가 로댕의 작품을 연상시키고, 연주자들의 연주하는 손짓은 필름 편집 과정의 손놀림을 암시함으로써, 고다르는 영화 만들기와 음악 연주의 상호 유비를 보여준다. 실제로 고다르는 인터뷰에서 “영화 만들기는 사중주 연주와 같다”며 음악 연주 행위와 영화 제작 행위를 직접 연결짓고 있다. 이러한 몽타주 기법으로 인해 영화는 엘립스와 단절을 활용하는데, 관객은 표면적으로 관계없어 보이는 장면들의 내면적 연결고리를 사후적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이는 형식주의 영화이론에서 말하는 지적 몽타주의 현대적 활용으로, 서로 다른 이미지와 소리가 충돌·조화를 반복하며 의미를 생성한다. 소리의 활용 면에서, 고다르는 이 작품에서 매우 독특한 제한적 사운드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는 “우리는 두 손밖에 없기에 동시에 두 가지 소리밖에 들을 수 없다”는 스스로의 논리에 따라, 한 순간에 오직 두 가지 음향 요소만 들리도록 믹싱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자기부과적 제한 덕분에, 영화 속 음향 공간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대사와 배경음, 음악과 효과음 등 다양한 소리가 한꺼번에 겹치는 법이 없으며, 언제나 주된 사운드와 보조 사운드 두 가지만이 선명하게 제시된다. 그 결과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은 때로는 총성이나 파도 소리와 함께, 때로는 대화 뒤편에서 미묘하게 깔리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베토벤의 선율은 영화 전체를 구조화하는 핵심 장치이자, 동시대 배경에 불청객처럼 난입한 이질적 요소로 기능한다. 예컨대 한창 범죄 드라마가 진행되는 중에도 클래식 음악이 불쑥 흘러나오고, 인물들이 “저 음악은 도대체 뭐지?”라며 의문을 제기하는 메타 대사가 등장하는 식이다. 이처럼 음악은 단순 배경음이 아니라 서사와 대등한 지위에서 의미를 생산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울려퍼지는 베토벤 현악4중주 13번 5악장 론도의 애수 어린 가락은, 카르멘의 죽음과 함께 비극적 정조를 극대화하며 관객의 감정을 사로잡는다. 한편,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톰 웨이츠의 “Ruby’s Arms” 같은 현대 음악도 영화에 활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클래식 음악과 대비되는 당대의 정서를 추가하며 영화의 사운드스펙트럼을 확장한다. 전반적으로 고다르는 소리를 통해 현실과 예술의 충돌을 청각화하고, 침묵과 소음, 선율과 소리가 교차하는 사운드 몽타주를 구현하였다. <카르멘이라는 이름>의 공간 연출은 대조적인 두 세계로 나뉜다. 하나는 범죄와 사랑의 무대인 현실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베토벤 사중주단이 연습하는 예술 공간이다. 현실 공간에서는 카메라가 손잡이를 쓰지 않은 채 흔들리는 핸드헬드 숏과 날것의 현장음으로 거친 느낌을 주는 반면, 예술 공간에서는 연주자의 움직임을 담은 정적인 쇼트와 울림 좋은 음향이 돋보여 성스러운 무대처럼 그려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두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자가 있다는 점인데, 영화 속 클레르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바로 그 역할이다. 클레르는 조제프의 약혼녀로 설정된 인물이면서, 한편으로는 현악 사중주단의 일원이다. 그녀가 연주 중에 읊조리는 몇 마디 독백은 실제 역사 속 베토벤의 일기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며, 이는 클레르라는 캐릭터를 음악 예술의 화신처럼 느끼게 만든다. 클레르가 조제프-카르멘의 드라마에 직접 개입하는 장면은 거의 없지만, 서사적으로 보면 조제프는 예술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 셈이다. 이처럼 두 여성 캐릭터를 매개로 공간과 분위기의 대비를 연출한 점은, 영화가 예술과 삶의 분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영화 곳곳에 배치된 거울, 유리창, 카메라 등의 소품은 현실과 환영,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관계를 암시하며, 인물이 자신의 분신이나 내면을 바라보는 성찰적 미장센을 이룬다. 결과적으로 <카르멘이라는 이름>의 공간 연출은 이야기의 철학적 주제—예술은 현실로부터 도피한 완전한 공간인가, 혹은 현실의 일부인가?—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형상화하고 있다. 고다르 영화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는 곳곳에 흩뿌려진 문학적 인용과 수수께끼 같은 대사들이다. <카르멘이라는 이름>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인물들의 대화는 겉보기엔 이야기와 무관한 철학적 문장이나 농담으로 가득하다. 조제프와 카르멘은 사랑을 속삭이다가도 느닷없이 정치와 역사, 예술에 대한 언급을 내뱉고, 이는 누가 듣는지 상관없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효과를 낸다. 예컨대 조제프가 카르멘에게 “총성이 들리면 너는 생각나지 않느냐, 옛 시인들의 죽음이…”와 같이 뜬금없는 말을 던지거나, 카르멘이 “사랑은 혁명 같은 거야. 성공한 적 없는…”이라는 식의 선언적인 대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언어유희와 인용들에 대해 한 평론가는 “고다르의 대사는 언제나 영화, 역사, 정치, 예술, 문학에 대한 성찰로 가득하며, 이야기와의 정확한 대응 관계는 늘 모호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바로 그 모호성 속에서 영화는 여러 겹의 의미망을 형성한다. 카르멘이 내뱉는 어떤 문장은 실제로는 고다르 자신이 과거에 쓴 평론의 한 구절이거나, 조제프의 독백처럼 들리는 대사는 실은 문학 작품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언어는 이 영화에서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즉, 겉으로는 줄거리 전개와 동떨어진 불연속을 만들어 내러티브를 해체하지만, 동시에 주제와 철학을 전달하는 운반체로 기능한다. 이는 형식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언어의 환원 불가능성, 즉 영상이 담지 못하는 추상적 사유를 대사를 통해 보완하는 고다르의 방법론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다르는 <카르멘이라는 이름>을 통해 형식과 주제를 밀접히 연결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형식주의적 분석을 통해 도출한 바와 같이, 이 영화의 카메라, 편집, 사운드, 미장센, 언어 각각의 요소는 저마다 독립된 미학적 실험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작품의 정치적·문화적 발언과 긴밀히 결부된다. 우선, 예술과 삶의 교차라는 구조적 장치는 당대 문화상황에 대한 고다르의 인식을 반영한다. 1980년대는 예술이 상업화되고 정치적 이상이 퇴색하던 시기였는데, 영화 속 예술은 현실과 철저히 분리된 폐쇄된 세계로 묘사된다가도, 결국 파국의 순간에 가서 다시 현실과 부딪힌다. 이는 예술이 현실과 동떨어진 순수 영역에 머무를 수 없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현실 역시 예술을 통해 승화되거나 구원받지 못한 채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는 냉엄한 통찰로 이어진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베토벤 음악과 함께 맞이하는 카르멘의 죽음은, 예술의 숭고함도 삶의 비정함도 모두 하나의 불협화음 속에 녹아드는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고다르는 이를 통해 예술과 정치의 상호 관계를 성찰하며, 60년대에 꿈꾸었던 예술혁명의 이상이 80년대 현실에서 어떻게 해체되는지를 형식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또한, 젠더와 권력의 테마는 영화의 형식적 측면과도 연결되어 있다. 카르멘과 조제프의 역학은 기존 누벨바그 시절 범죄 커플과 유사해 보이지만, 여기서는 성적 주도권과 폭력의 행사자가 여성인 카르멘에게 상당 부분 넘어가 있다. 그녀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폭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며, 남성들을 쥐고 흔드는 주체로 그려진다. 반면 조제프는 사랑에 휘둘려 점차 파멸해가는 희생자/가해자의 이중성을 띤다. 이와 같은 캐릭터 구도는 전통적 남성-가해자/여성-희생자의 공식을 뒤엎으며, 당대의 여성해방 담론을 반영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주제의식이 형식적으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고다르는 카르멘과 조제프의 관계를 단속적 편집과 비정형적 서사로 묘사함으로써, 이들의 사랑이 통상적 멜로 드라마 문법으로 포착되지 않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다투는 장면에 뜬금없이 바다나 음악 연주 장면을 삽입하여 감정 이입을 의도적으로 가로막는다. 이는 관객이 전통적 성별 역할에 기반한 연애 서사가 아닌, 권력 투쟁으로서의 사랑을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결과적으로 형식의 파격은 이분법적 젠더 질서에 대한 도전과 일맥상통하며, 영화 언어의 혁신이 곧 정치적 함의의 전달 수단이 되고 있다. 나아가, 고다르는 이 작품에서 서구 문명에 대한 재검토를 형식 속에 녹여낸 것으로 평가된다. 뉴욕타임스의 비평가 빈센트 캔비는 <카르멘이라는 이름>을 두고 “진지하고도 기묘한 방식으로 서구 문명의 가치를 재검토한 작품”이라 평했는데, 이는 영화가 전통적인 사랑과 죽음의 신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졌음을 시사한다. 고다르는 모두가 아는 카르멘 신화를 가져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분해한 뒤, 잔해들을 현대적 이미지와 사운드로 재조합한다. 이러한 해체와 재구성의 형식 자체가 하나의 비판적 작업이다. 예컨대 카르멘 신화의 남성적 욕망과 여성에 대한 공포를 우스꽝스럽게 과장하거나, 사랑에 대한 낭만적 대사를 틀어쥐고 논쟁하는 모습을 통해 기존 가치관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음악 선택에서도 비제의 오페라 음악 대신 베토벤의 곡을 사용하고, 19세기 원작 대신 20세기 말 현실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고다르는 문화적 전유를 시도한다. 다시 말해 서구 예술사의 기념비적 작품들을 자기 영화 속에 끌어들여 변주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시도하는 동시에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카르멘이라는 이름>의 형식주의는 자기 목적적 미학 추구에 머물지 않고, 역사와 문화에 대한 비판의식과 결합된 형식주의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기반영성과 유머도 영화의 정치성을 완성하는 요소다. 고다르는 엉클 장 캐릭터를 통해 영화감독인 자기 자신을 희화화하고, 영화 속 대사로 자기 작품이나 영화사적 지식을 언급하며, 스스로를 향해 웃음 짓는다. 이러한 자기반영적 유머는 관객에게 거리두기 효과를 일으켜, 영화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브레히트적 소격효과와 상통하는 지점으로, 고다르가 관객을 능동적 사유의 주체로 끌어들이는 정치적 전략이다. 동시에 자기 자신도 기성 영화 질서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인정함으로써, 예술가로서의 자기반성을 보여준다. 즉 “한때 혁명을 꿈꾸던 영화감독도 이제 한낱 미친 사람처럼 보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묘사는, 68혁명 이후 좌절된 지식인의 초상으로 읽히며 작품의 정치적 비애감을 더해준다.

장 뤽 고다르의 <카르멘이라는 이름>은 표면적으로는 현대판 범죄 멜로드라마이지만, 그 심층에는 형식 실험을 통해 영화 예술과 사회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던지는 아방가르드 시네마의 진수가 자리하고 있다. 감독 스스로 “작은 영화들”에 대한 헌정이라 밝힌 이 작품은, 거대 담론과 신화들을 해체하고 파편화된 이미지와 소리로 재구축함으로써 관객에게 새로운 사고의 공간을 열어준다. 영화 언어에 대한 자의식, 예술과 현실의 충돌, 사랑과 폭력의 아이러니,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시대 비판이 한데 어우러진 <카르멘이라는 이름>은 고다르 영화 세계의 형식주의적 정점이자, 동시에 1980년대의 문화적 좌표를 담아낸 예리한 비평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왜 이 영화가 당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음에도 많은 평론가들을 당혹스럽게 했는지 설명해준다. 고다르는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이야기와 형식의 관습을 깨뜨림으로써, 영화란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관객 각자에게 유보된 채, <카르멘이라는 이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신비롭고 도발적인 예술 작품으로 남아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클로즈 업

이란 출신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현대 영화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감독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970년대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그는 이란 뉴웨이브 영화 운동의 주축이자, 세계적인 거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을 다루지만, 그 속에 정치적·철학적 함의를 담아내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독특한 영화 세계를 구축했다. 키아로스타미는 늘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관객으로 하여금 화면 너머의 진실을 탐구하게 하는 작가였다. 예컨대 그는 “좋은 영화란 관객이 믿을 수 있는 영화”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는 곧 영화의 진정성에 대한 그의 집착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는 “가장 짧은 길로 진실에 이르는 방법은 때로 거짓말이다”라는 역설적인 신념을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 완전한 기록으로서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창작과 연출이라는 “거짓”의 장치를 통해서도 오히려 더 깊은 인간적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대표작들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클로즈업>에서 강렬하게 드러난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적 스타일은 미니멀리즘의 미학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는 이야기와 이미지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배제하고 가장 단순한 언어로 핵심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일례로 그의 영화에는 할리우드식 과도한 드라마나 화려한 특수가 거의 없으며, 지극히 일상적인 환경과 자연광, 비전문 배우들을 활용해 최대한 현실에 가까운 느낌을 전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함은 피상적인 것이 아니다. 단순함 속에 숨겨진 복합성과 여운이 바로 키아로스타미 영화의 매력이다. 그는 관객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기보다는, 반쯤 완성된 이야기를 내놓고 나머지를 관객의 상상력으로 채우게 한다. 이러한 열려 있는 구조는 관객 각자가 능동적으로 영화에 참여하도록 만들며, 매번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해준다. 키아로스타미는 영화를 “관객의 머릿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퍼즐”에 비유하곤 했는데, 이는 그의 작품이 지닌 개방성과 철학적 깊이를 잘 보여준다. 1990년에 발표된 <클로즈업>은 키아로스타미의 커리어에서 특별한 전환점을 마련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전까지 그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같은 작품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으며 시적인 리얼리즘을 선보였고, 주로 아이들의 시선이나 시골 풍경 속에서 인간미를 포착하는 서정적인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런 그가 <클로즈업>을 통해 도시 테헤란의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아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한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사실 키아로스타미는 한 잡지 기사에서 우연히 이 사건을 접하자마자 원래 준비 중이던 영화를 미루고 곧바로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클로즈업>은 그에게도 강렬한 영감의 원천이 된 이야기였다. <클로즈업>은 키아로스타미의 전작들과 결을 같이하면서도 형식적인 실험정신 면에서 한 단계 도약한 작품이다. 이후 그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로 이어지는 이른바 ‘지그재그 3부작’에서 현실과 허구를 교차하는 메타영화적 연출을 더욱 발전시켰고, 1997년 <체리의 맛>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클로즈업>은 키아로스타미 영화세계의 분수령 같은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시도된 새로운 형식(실제 인물을 데려와 자기 이야기를 재연시키는 방식)과 진실에 대한 탐구는 이후 그의 영화들뿐만 아니라, 동시대 이란 영화감독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국제 평단에서는 <클로즈업>을 두고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혁신적 해답이라 극찬했고, 오늘날에도 20세기 최고의 영화 목록에 자주 올랐을 만큼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키아로스타미 자신의 필모그래피 안에서도 <클로즈업>은 초기 작품들의 결실이자 동시에 새로운 방향의 시작을 알린 걸작으로 자리매김한다.

<클로즈업>이 제작된 1990년 무렵의 이란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전환기를 지나고 있었다. 1980년대 내내 지속되었던 이란-이라크 전쟁이 1988년에 끝나고, 1989년 혁명의 지도자 호메이니 사망 이후 이란은 라프산자니 대통령 시대에 접어들며 전후 재건과 내부 개혁에 몰두하던 시기였다. 전쟁이 끝난 직후라 사회 분위기는 비교적 안정을 되찾아 갔고, 예술과 문화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슬람 공화국 체제 하에서 영화 제작에는 여전히 엄격한 검열과 제약이 뒤따랐다. 여성 배우는 스크린에서 반드시 히잡을 착용해야 하고, 남녀 간의 신체 접촉이나 정치 체제 비판 같은 요소는 철저히 제한되었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1980년대 후반부터 이란 영화인들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담아내는 창의성을 발휘하게 되었다.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순수한 시선으로 사회를 은유하거나, 농촌이나 변두리를 배경으로 체제의 예리한 모순을 에둘러 표현하는 전략 등이 그 예다. 키아로스타미 역시 국영 어린이예술연구소에서 경력을 시작하며 교육영화, 단편 등을 통해 검열의 눈을 피하는 방법을 체득해왔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클로즈업> 같은 실험적인 영화도 탄생할 수 있었다. <클로즈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법정 촬영과 사건 재연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었는데, 이는 이란 당국 입장에서 볼 때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가 아니었기에 비교적 허용될 수 있었다. 실제로 키아로스타미는 당시 담당 판사를 설득해 재판 장면 촬영 허가를 얻어냈고, 피해자였던 아한카흐 가족과 피고인 사브지안을 모두 설득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연기하도록 했다. 이런 제작 방식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이었지만, 다행히 국가 검열에 큰 저촉 없이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 다만 정작 이란 내 관객들의 초기 반응은 냉담했다. <클로즈업>이 처음 이란 극장에 걸렸을 때 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은 이 영화의 너무나 소박한 외양과 장르 파괴적 형식을 이해하지 못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반면 해외 영화제와 평단에서는 곧바로 열광적인 찬사가 쏟아졌다. 이러한 엇갈린 반응은 당시 이란 사회의 영화 취향과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클로즈업>이 실제로 얼마나 앞서간 작품이었는지를 방증하는 일화로 남아 있다. 또한 영화의 스토리가 담고 있는 이란 사회의 단면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가난한 한 남자가 유명 영화감독을 사칭해 중산층 가정에 들어가게 되는 이야기인데, 여기에는 당시 이란의 계층 간 갈등과 문화적 동경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혁명 이후 사회주의적 이념이 강조되던 이란에서 여전히 빈부격차는 존재했고, 예술은 부유층이나 지식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작품 속 호세인 사브지안은 실직 중인 인쇄공 출신의 서민으로, 유명 예술가인 마흐말바프를 흉내내는 과정을 통해 예술이 주는 권위와 매력을 갈망한다. 한편 그를 집으로 들인 아한카흐 가족은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영위하는 층으로서, 영화감독에 대한 존경심과 호기심 때문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이는 당시 이란에서 영화감독이라는 존재가 대중에게 얼마나 영향력 있고 매력적인 아이콘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모흐센 마흐말바프 같은 감독들은 국내외에서 유명인이었고, 예술적 성취를 통해 사회적 존경을 받았다. 그런 문화적 배경이 있었기에 사브지안의 사기가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클로즈업>은 한편으로 1990년대 이란 사회의 문화적 분위기와 계층 심리를 포착한 작품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속에서 예술과 현실의 관계를 날카롭게 응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클로즈업>은 실화에 바탕한 독특한 전개를 보인다. 영화의 시작은 테헤란의 한 가정집을 향해 달리는 택시 안에서부터다. 잡지기자 호세인 페라즈만드는 경찰과 동행하여 어떤 사기 사건의 용의자를 붙잡으러 가는 길이다. 곧 그들은 아한카흐라는 중산층 가족의 집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를 사칭한 남자 호세인 사브지안을 체포한다. 이 남자는 한동안 자신을 저명한 감독이라고 속이며 아한카흐 가족의 환대 속에 지냈지만, 결국 가족의 신고로 덜미가 잡힌 것이다. 이후 영화는 사브지안의 재판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법정에서 사브지안은 왜 자신이 그런 거짓 신분극을 벌이게 되었는지 담담히 털어놓는다. 그는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개인적으로 외로운 처지에서 영화에 대한 열정과 존경심 때문에 순간적인 충동으로 마흐말바프로 행세했다고 고백한다. 특히 마흐말바프의 영화들—예컨대 가난한 가장을 다룬 <사이클리스트>—이 자신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으며, 그 영화의 감독이 “마치 자신의 삶을 구원해 줄 영웅”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잠시나마 자신이 그 영웅이 되어보는 꿈을 꿨다는 것이다. 재판은 비교적 온정적인 분위기 속에 진행된다. 사브지안의 진심 어린 태도와 눈물 섞인 증언에 판사와 방청객들도 점차 마음이 움직이는 듯하다. 피해자인 아한카흐 가족도 처음의 분노에서 누그러져 그를 연민 어린 눈길로 바라본다. 결국 판사는 사브지안에게 깊이 반성하고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겠다는 서약을 받는 조건으로, 가족에게 그를 용서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다. 아한카흐 가족은 상의를 거쳐 선처를 베풀기로 결정하고, 사브지안은 가벼운 처벌과 함께 풀려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인 만남으로 마무리된다. 출소하는 사브지안을 위해 실제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직접 오토바이에 태우고 아한카흐 가족의 집으로 데려다준다. 오토바이를 함께 탄 두 사람은 길을 가며 담소를 나누고, 사브지안은 존경하던 감독과 나란히 달리는 기쁨에 복받쳐 눈물까지 보인다. 마흐말바프는 길가에서 꽃다발을 사서 사브지안에게 건네주고, 둘은 활짝 핀 꽃을 안고 가족에게로 향한다. 집 앞에 도착하자 아한카흐 가족이 나와 그들을 맞이하고, 마흐말바프는 사브지안의 손을 잡아 이끌며 화해의 자리를 주선한다. 가족의 가장은 사브지안을 보며 “이젠 착하게 살아서 우리를 자랑스럽게 해주길 바란다”고 따뜻이 말한다. 영화는 그렇게 모두가 함께 모인 자리에서 희망 어린 용서와 화해의 정서를 남기며 끝을 맺는다.

<클로즈업>은 겉보기에 소박한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고 있지만, 세심하게 구축된 영화 언어를 통해 다층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먼저 카메라와 쇼트 구성을 살펴보면, 이 작품에서는 제목 그대로 ‘클로즈업’ 숏이 인상적으로 활용된다. 재판 장면에서 키아로스타미는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을 진행했는데, 하나는 법정 안 전체 모습을 잡는 용도로, 다른 하나는 사브지안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담는 데 집중했다. 덕분에 관객은 사브지안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떨리는 눈빛까지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 이 극적인 얼굴 클로즈업은 사브지안의 내면 진실에 다가가는 창으로 기능하며, 관객을 그의 감정 세계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흥미로운 것은 재판 중에 카메라의 존재가 공공연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키아로스타미 감독 자신이 화면 밖에서 사브지안에게 “여기 두 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고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리는데, 이는 극중 인물들에게도, 관객에게도 지금 이 모든 것이 필름에 기록되고 있음을 자각시킨다. 이러한 메타적 장치는 법정을 단순히 진위를 가리는 장소가 아니라 이야기가 전개되는 무대로 변화시킨다. 피고인인 사브지안은 판사를 향해 자신의 얘기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마치 관객에게 직접 심정을 토로하듯 말하기도 한다. 이는 영화 속 현실과 영화 자체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가 보고 있는 장면이 연출된 것인지 자연 발생적인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카메라는 중립적 기록자가 아니라, 인물과 관객 사이를 매개하는 적극적 장치로 기능하며, 진실에 다가가고자 애쓰는 감독의 시선을 대변한다. 미장센과 공간 연출 측면에서도 <클로즈업>은 리얼리즘과 자기반영성을巧妙(교묘)하게 결합한다. 영화는 대부분 실제 있었던 장소들—아한카흐 가족의 집, 테헤란의 거리, 법정 내부—에서 촬영되었는데, 이 현지 로케이션들은 이란 사회 현실의 질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예를 들어 영화 도입부에 기자와 경찰을 태운 택시가 좁은 골목길을 돌진할 때, 카메라는 차 안에서 창밖 풍경을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다. 그 와중에 우연히 포착된 디테일들이 눈길을 끈다. 경찰을 기다리던 택시 운전사가 길가에 나뒹구는 빈 스프레이 깡통을 슬쩍 발로 차자, 그것이 내리막을 따라 철렁거리며 굴러가는 모습, 바람에 날린 낙엽 더미 사이에서 운전사가 주워든 몇 송이의 들꽃 등이 그것이다. 이어서 뒤따라 골목을 뛰어 내려오던 기자가 아까 그 깡통을 또 한 번 걷어차며 지나가는데, 이런 사소한 우연적 순간들을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얼핏 보면 상관없어 보이는 이 작은 행동들은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 독특한 리듬과 현실감을 부여한다. 키아로스타미는 이렇듯 즉흥적이거나 우발적인 요소들을 미장센 속에 스며들게 하여, 이야기가 어느 한 치의 계산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삶의 단면처럼 느껴지도록 연출한다. 이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이 군더더기 없는 현실 묘사를 지향했던 방식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키아로스타미는 그 현실 속에 영화적 장난기와 여백을 심어두어 보다 시적이고 다의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편집과 내러티브 구조 역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클로즈업>은 이야기의 시간을 단순히 순서대로 배치하지 않고, 중첩과 교차 편집을 활용하여 관객이 퍼즐을 맞추듯 사건을 이해하게 만든다. 영화는 체포 장면과 재판 장면을 현재 진행형으로 보여주면서, 한편으로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의 전말을 플래시백 형태로 재연해 삽입한다. 예컨대 재판이 진행되는 중간중간에 사브지안이 어떻게 마흐말바프로 가장하여 아한카흐 가족과 처음 만나고 교류했는지가 회상 장면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관객은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추적하게 된다. 처음엔 사브지안이 어떤 인물인지, 무슨 의도로 사기를 벌였는지 알지 못한 채 체포 장면을 목격하지만, 재판을 통해 그의 입장을 듣고, 플래시백으로 실제 상황을 확인하면서 점차 조각들이 맞춰져 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키아로스타미는 이처럼 의도적인 정보 배분과 편집을 통해 서스펜스와 공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또한 재판 장면과 과거 회상 장면의 경계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고 부드럽게 오가는 편집은, 현재의 실제 재판과 회상 속의 연기가 한데 어우러져 현실과 영화가 교차하는 몽타주의 효과를 낸다. 이는 관객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다큐인가 극영화인가를 끊임없이 의식시키며, 궁극적으로 영화 매체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사운드 디자인과 음향 측면에서, <클로즈업>은 극도로 절제된 접근을 취한다. 이 영화에는 일반적인 극영화처럼 감정 고조를 위한 배경음악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신 현장 음향과 인물들의 목소리가 주된 청각 요소를 이룬다. 키아로스타미는 주변 환경음—거리의 소음, 새소리, 바람 소리 등을—살려서 삽입함으로써 현장감과 사실성을 높였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음향 설계는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사건 현장에 동석해 있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오토바이 위 장면은 사운드 연출 면에서 유명한데, 마흐말바프와 사브지안이 헬멧에 숨겨둔 소형 마이크를 통해 대화를 녹음하던 중 그만 기술적인 문제로 음성이 끊기는 사고가 발생한다. 키아로스타미는 그 예기치 못한 침묵을 억지로 메우지 않고, 오히려 그대로 영화에 포함시켰다. 그래서 관객은 달리는 오토바이의 소음과 거리의 혼잡한 소리만 듣게 되고, 정작 두 사람이 나누는 중요한 대화는 한동안 들리지 않는다. 대신 화면에는 둘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때때로 페르시아어 자막으로 그들이 주고받는 말 일부가 나타날 뿐이다. 이 장면은 원래는 단순한 녹음 사고였지만, 결과적으로 영화의 의미론적으로도 흥미로운 효과를 낳았다. 소리를 제거함으로써 관객은 두 인물의 마음을 오롯이 상상과 해석에 맡겨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이는 이 영화가 일관되게 강조해온 관객 참여의 미학과 통한다. 또한 기술적 결함조차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키아로스타미의 태도는, 현실의 불완전성마저 포용하는 영화가 얼마나 진솔하고 감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클로즈업>에서 구현된 주제의식과 형식미는 키아로스타미의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변주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그가 <클로즈업> 이후 연출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와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1990년 이란 대지진 이후의 현장을 배경으로 하는 연작인데, 여기서도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연출이 돋보인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는 감독(혹은 감독을 닮은 인물)이 지진 피해 지역을 찾아가 과거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소년을 찾는 이야기로, 실제 재난 상황과 극중 설정이 교묘히 맞물린다. 이어서 만든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한층 더 메타적인 구조로, 전작의 촬영 현장을 다룬 영화 속 영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공통점을 가지며, <클로즈업>에서 시작된 키아로스타미의 자기반영적 서사를 심화시켰다. 또한 후기작 <체리의 맛>에서는 자살을 결심한 남자의 여정을 사실적으로 그리다가, 마지막에 돌연 카메라 밖 스태프와 촬영 현장을 보여주며 영화가 허구임을 드러내는 파격적 엔딩을 선보였다. 이러한 장치는 관객으로 하여금 허구적 이야기 뒤에 숨은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효과를 냈는데, 이는 결국 <클로즈업>에서 추구한 진실과 거짓의 문제의식과 맥을 같이한다. 더 나아가 키아로스타미의 디지털 시대 작품인 <텐>이나 예술영화 <쉬린>에서는 극단적으로 단순한 형식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했는데, 이 역시 영화의 본질 요소만 남기는 실험으로서, <클로즈업>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미니멀리즘 미학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클로즈업>은 또한 동시대 이란 영화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몇몇 감독들과는 철학적·형식적 친연성을 보인다.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그 중 대표적인 예로, <클로즈업> 사건의 당사자로 등장할 만큼 이 작품과 밀접한 인연이 있다. 원래 마흐말바프는 1980년대부터 사회 비판적 영화들을 만들어온 감독으로, 사브지안 같은 서민층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마흐말바프 자신도 1990년대 중반 이후 키아로스타미 못지않게 영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형식 실험을 펼쳤다는 사실이다. 그의 작품 <살람 시네마>는 영화 오디션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적 영화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배우 오디션에 몰려와 영화에 출연하고자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영화에 매혹된 평범한 이란인들의 얼굴이 가감없이 담기는데, 이는 <클로즈업>의 사브지안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마흐말바프의 걸작 <무언의 순간>은 젊은 시절 자신이 저질렀던 실화를 바탕으로, 당사자인 본인과 피해자가 함께 배우를 캐스팅해 그 과거 사건을 재연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영화는 감독 본인이 극중 인물로 등장하고, 과거와 현재, 연출자와 피연출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점에서 <클로즈업>과 일종의 거울상 같은 면이 있다. 사실 마흐말바프는 <클로즈업>의 사브지안 사건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아 이러한 자전적 영화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거짓을 통한 진실 찾기라는 주제를 자기 방식으로 풀어냈다. 요컨대 키아로스타미와 마흐말바프는 서로 다른 개성과 출발점을 가졌지만, 1990년대를 거치며 영화의 진실성에 대한 철학적인 탐구자라는 공통 지점에서 만나게 되었다. 한편 자파르 파나히는 키아로스타미의 직계라 할 수 있는 세대의 감독으로, 그의 작품들에서도 스승 격인 키아로스타미의 영향과 공명이 발견된다. 파나히는 키아로스타미가 각본을 쓴 <하얀 풍선>으로 감독 데뷔를 했고, 이후 <서클>, <오프사이드> 등 사회성을 짙게 띤 영화를 연출하며 국제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리얼리즘에 기반한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주로 다루지만, 형식 면에서는 영화와 현실의 경계 허물기라는 실험을 이어받았다. 특히 그의 작품 <거울>은 어린 소녀 주인공이 영화 중간에 갑자기 연기를 거부하고 카메라 밖의 현실로 걸어나가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유명하다. 이 순간 관객은 지금까지 보아온 이야기가 하나의 꾸며진 영화였음을 깨닫게 되며, 극중 배우였던 소녀는 스스로 현실의 아이로 돌아가 집으로 귀가하려 한다. 이러한 메타극적인 연출은 <클로즈업>이 주는 문제의식—“우리가 보는 이 영상이 진실인가 재현인가”—을 또 다른 방식으로 제기한다. 파나히는 이후에도 이란 정부의 검열과 탄압에 맞서 반체제적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에서 형식 실험을 병행했다. 예컨대 가택연금 중에 몰래 제작한 다큐멘터리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나, 택시 운전사로 분장해 테헤란 시민들을 태우고 찍은 <택시>는 현실의 테두리 안에서 얼마나 영화적 진실을 포착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작품들이다. 이렇듯 파나히의 영화들은 키아로스타미가 닦아 놓은 사실과 허구의 교차로 위에서 사회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으며, 두 감독 모두 단순한 현실 묘사를 넘어서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영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결론적으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업>은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스스로 탐구한 메타영화이자, 동시에 한 인간의 진실을 향한 깊이 있는 초상이다. 이 작품을 통해 키아로스타미는 카메라로 현실을 포착하면서도 예술적 상상력으로 그 현실을 재창조함으로써, 삶과 영화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순간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을 새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하고, 스크린 속 거짓이 어떻게 진실보다 더 진실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클로즈업>은 1990년 이란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탄생한 특별한 산물이지만, 그 주제의 울림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보편적이다. 영화를 사랑한 한 남자의 이야기는 곧 영화 예술 자체에 대한 헌사로 확장되고, 화면에 담긴 작은 진심은 관객의 가슴 속에서 큰 진실로 되살아난다. 이런 이유로 <클로즈업>은 키아로스타미 필모그래피는 물론 세계 영화사에 남을 걸작 중의 걸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화광들에게는 무한한 탐구거리를, 일반 관객들에게는 깊은 감동과 사색을 선사하는 이 작품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기준점으로 참조될 것이다.

스탠리 큐브릭, 로리타

<로리타>는 큐브릭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그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 영화는 미성년 소녀에 대한 중년 남성의 금지된 사랑이라는 파격적 소재를 다루었는데, 당시 검열이 심했던 할리우드 환경에서 이를 영화로 구현한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큐브릭은 1958년 소설 판권을 획득한 뒤, 검열 당국의 승인 아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여러 가지 영리한 각색을 시도했다. 1960년대 초반까지 유효했던 헤이스 검열 규약은 성적 표현을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에, 큐브릭은 노골적인 묘사 대신 암시와 상징, 재치 있는 대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주제를 전달했다. 그는 블랙 코미디의 어조를 활용하여 불편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관객이 완전히 등을 돌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았다. 훗날 큐브릭 본인도 “만일 검열의 제약이 그렇게 심할 줄 알았다면 <로리타>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했을 만큼 이 작품은 많은 타협과 제한 속에서 완성된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큐브릭은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고, 이 불편한 이야기를 냉정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시선으로 그려냄으로써 일반적인 멜로 드라마나 선정적인 스캔들극과는 다른 차원의 영화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로리타>는 유럽 출신 중년 교수 험버트 험버트가 미국으로 이주해 한적한 마을에서 여름을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미망인 샬롯 헤이즈의 집에 하숙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의 딸인 10대 소녀 로리타를 처음 만난다. 햇살 가득한 정원에서 미소 짓던 로리타의 모습은 험버트에게 금기된 욕망의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로리타와 가까워지기 위해 샬롯의 하숙 제안을 받아들이고, 겉으로는 점잖은 손님처럼 굴면서 내심으로는 로리타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샬롯은 험버트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결국 결혼을 제안한다. 험버트는 로리타와의 법적 관계를 확보하기 위해 마지못해 이를 수락하지만, 샬롯은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그는 감정을 일기장에 적어두고 있었고, 어느 날 샬롯이 그 일기를 읽으며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충격에 휩싸인 샬롯은 험버트를 내쫓겠다고 결심하지만, 그 직후 교통사고로 돌연 사망한다. 샬롯의 죽음으로 험버트는 로리타의 후견인이 되고, 그녀를 데리고 둘만의 긴 여행을 떠난다. 모텔과 호텔을 전전하며 마침내 로리타와 육체적 관계를 맺지만, 영화는 이를 직접 묘사하지 않고 암시적으로 처리한다. 두 사람은 한 교외 마을에 정착하고, 겉으로는 평범한 부녀처럼 살며 험버트는 대학 강사로 일하지만, 실제로는 로리타를 연인처럼 대하며 지나치게 통제하고 질투심을 보인다. 로리타는 또래 친구들과의 생활을 원하고 점차 험버트에게서 벗어나려 한다. 이들의 뒤에는 의문의 인물 클레어 퀼티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는 학교 심리상담사로 위장하거나 연극 작가로 접근하면서 로리타를 유인한다. 험버트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어느 날 로리타가 고열로 입원한 병원에서 퇴원한 뒤 실종되자 절망에 빠진다. 퀼티가 로리타를 데려갔음을 모른 채 그는 수년간 그녀를 찾아 헤맨다. 몇 년 후, 험버트는 결혼해 임신 중이라는 로리타의 편지를 받고 찾아간다. 그는 그녀에게 여전히 집착하지만, 로리타는 이제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며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실연과 후회의 감정에 휩싸인 험버트는 로리타를 데려간 이가 퀼티였다는 사실을 듣고 분노하며, 복수를 결심한다. 영화는 사실 퀼티의 저택에서 험버트가 그를 살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지막에 이 장면이 다시 나오며 이야기는 원점에 도달한다. 험버트는 결국 살인죄로 체포되어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다.

큐브릭의 <로리타>는 영화적 기법을 통해 소설이 지닌 심리와 풍자를 독자적인 영상 언어로 구현한다. 특히 쇼트 구성, 카메라 움직임, 편집, 음향 등의 영화 언어를 활용하여 드러낼 수 없는 것을 암시하고, 금기된 욕망의 본질을 시각화한 점이 돋보인다. 이러한 영화적 연출은 몇몇 인상적인 장면에서 두드러지는데, 그중에서도 험버트가 처음 로리타를 마주하는 장면은 큐브릭의 미장센과 카메라 워크가 영화의 주제와 밀접하게 결합된 대표적인 예다. 이 장면은 햇볕이 가득한 여름날, 험버트가 샬롯의 집을 둘러보는 시퀀스로 시작된다. 큐브릭은 여기서 긴 롱테이크를 활용하여 험버트와 샬롯이 집안을 오가며 대화하는 모습을 따라간다. 거실에서 계단, 복도와 욕실까지 이어지는 이 롱테이크는 험버트의 시점에서 새 하숙집 환경을 탐색하는 동시에, 관객을 그의 일상적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끈다. 카메라는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부드럽게 쫓아다니며 편안하고 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이 일상적 안정감은 곧 깨진다. 롱테이크가 한창 진행되던 중, 큐브릭은 갑작스럽게 컷 전환을 줌으로써 험버트의 시선을 따라 뜰로 향하게 한다. 그리고 이때 화면에 나타나는 것이 바로 로리타의 첫 등장 쇼트다. 정원 한복판에 놓인 안락의자 위에 로리타가 드러누워 선글라스를 낀 채 선탠을 즐기고 있는 풀샷이 험버트의 눈에 들어온다. 밝은 햇살 아래 드러난 로리타의 젖빛 피부, 꽃무늬 비키니 수영복 차림, 커다란 밀짚모자와 고양이 같은 선글라스… 큐브릭은 이 한 쇼트로 소녀의 천진함과 관능미를 동시에 포착하며 관객의 시선마저도 험버트처럼 사로잡히도록 만든다. 이 첫 대면 장면에서 카메라의 움직임과 구도는 곧바로 험버트의 주관적 충격을 반영한다. 험버트는 로리타의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카메라는 그녀의 전신을 담은 풀샷에서 시작해 클로즈업으로 다가간다. 클로즈업 화면에는 로리타의 붉게 빛나는 입술, 살짝 미소짓는 표정, 선글라스 너머 어른거리는 눈동자가 잡힌다. 이는 험버트의 시선이 로리타에게로 급격히 접근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로리타의 매혹적인 이미지에 압도되게 만드는 장치다. 특히 로리타가 쓰고 있는 하트 모양의 선글라스와 입에 문 막대사탕(영화의 홍보 포스터에도 활용된 상징적 소품)은,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가 성적 아이콘으로 겹쳐지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큐브릭은 검열을 피해가면서도 이러한 시각적 은유를 통해 ‘로리타’라는 존재가 험버트에게 얼마나 강렬하고 치명적인 욕망의 대상인지를 효과적으로 각인시킨다. 이 장면의 음향 디자인 또한 주목할 만하다. 로리타가 등장하는 순간 배경에는 부드럽고 달콤한 연주곡이 흐른다. 이 멜로디는 마치 험버트의 귀에 천상의 소리가 울리는 듯한 효과를 내면서도, 어딘가 몽환적이고 위험한 정서를 깔고 있어 이후 전개될 사건들을 예감하게 한다. 큐브릭은 이렇게 음악을 활용해 험버트의 심경 변화를 암시하고, 순간적으로 시간을 멈춘 듯한 마법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순간만큼은 주변에서 재잘대던 샬롯의 목소리조차 잦아들고, 오직 험버트의 눈과 귀에는 로리타라는 존재만이 부각된다. 이처럼 시각과 청각의 집중적인 묘사를 통해 관객은 험버트의 심리적 경험에 동참하게 되고, 동시에 이 만남이 단순한 호감 이상의 위험천만한 집착의 시작임을 직감하게 된다. 큐브릭은 이러한 영화적 기법을 통해 험버트와 로리타의 관계를 묘사하며, 금기된 욕망이라는 주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말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긴 롱테이크 뒤에 등장한 파격적인 쇼트 전환, 관능적인 이미지, 음악의 반전 효과만으로도 관객은 “이 남자의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생겼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된다. 험버트의 일상적 질서는 로리타라는 한 이미지의 침입으로 산산조각났고, 이것이 이후의 비극을 예고하는 씨앗이 된다. 이러한 연출은 영화 언어가 곧 내용이 되는 지점이며, 큐브릭 영화의 교과서적인 순간이다. <로리타>에서 발견되는 다른 영화 언어적 특성들 역시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편집과 서사 구조를 보면, 큐브릭은 영화의 첫 장면을 이야기의 끝(험버트가 퀼티를 살해하는 장면)으로 배치해 순환 구조를 만든다. 이런 비선형 편집은 관객에게 결말을 미리 보여줌으로써, 험버트와 로리타의 초기 모습에도 일종의 운명적 불길함을 덧입힌다. 관객은 이미 파국을 알고 있기에 이후 장면들을 하나의 추적처럼 바라보게 되며, 그 속에서 작은 징후들을 끊임없이 포착하려 한다. 이는 험버트의 욕망이 처음부터 파국을 내포하고 있었음을 편집적으로 구조화한 셈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기법은 시점 쇼트와 관찰자 시선의 활용이다. 원작 소설은 험버트의 1인칭 고백 형식이지만, 큐브릭은 영화에서 전지적 시점의 카메라를 섞어 험버트가 인지하지 못하는 세계를 관객이 볼 수 있게 한다. 퀼티가 변장하고 나타나는 장면들은 험버트의 등 뒤에서 벌어지지만, 카메라는 이를 명확히 포착하여 관객에게 보여준다. 호텔 현관에서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말을 거는 장면, 공연장 뒷문에서 로리타를 지켜보는 실루엣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이 험버트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게 하고, 그 결과 극적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한편으로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험버트가 몰락해 가는 과정이 희화화되며 블랙 코미디적 효과를 낳는다. 큐브릭은 이처럼 카메라의 시선을 교묘히 조절함으로써 관객을 이야기의 공범이자 외부 관찰자의 위치에 동시에 놓고, 그로 인해 도덕적 판단마저 유예하게 만든다.  사운드와 대사의 측면에서도 큐브릭의 전략은 두드러진다. 특히 퀼티 역을 맡은 피터 셀러즈는 영화 전체에서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유머를 구사하는데, 그의 대사 하나하나에는 험버트의 욕망을 풍자하거나 거울처럼 반사하는 기능이 있다. 예컨대 퀼티가 총구 앞에서 “당신 총은 정말 예술 작품 같군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상황을 희화화하는 블랙 코미디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는 웃음과 섬뜩함이 공존하는 기묘한 정조를 만들어낸다. 음악적으로도 큐브릭은 로리타의 테마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다. 때로는 달콤한 사랑노래처럼, 때로는 삐에로가 등장하는 서커스 음악처럼 왜곡된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는 로리타라는 존재가 때로는 천사처럼, 때로는 파멸의 화신처럼 보이는 양가적 정체성을 반영하며, 관객에게 혼란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긴다. 이러한 음향 연출 덕분에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우스운 장면 속에서도 끊임없는 불안이 깔리게 된다. 결국 <로리타>의 세계는 시종일관 웃음과 섬뜩함이 교차하는 독특한 톤으로 구성된다. 이는 큐브릭이 선택한 영화 언어적 장치들이 이야기의 주제, 인물의 심리, 관객의 위치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며, 그 결과 이 작품은 단순한 스캔들극이 아닌 욕망, 금기, 통제 불가능성에 대한 시청각적 탐구로 완성된다.

영화 <로리타>는 겉보기에는 한 남자의 도착적 사랑 이야기를 그린 스캔들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그 심층에는 인간 심리의 인지 불가능한 영역, 즉 불가해한 세계에 대한 통찰이 숨어 있다. 이는 철학적·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접근할 때 더욱 뚜렷해진다. 특히 자크 라캉의 이론을 원용하면, 험버트라는 인물이 겪는 내적 분열과 욕망의 구조, 그리고 그가 발 딛고 있는 세계의 기묘함을 해석할 수 있다. 우선, 라캉이 말하는 주체의 분열 개념을 험버트에게 적용해볼 수 있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 주체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균열, 즉 자기 자신조차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내적 간극을 지닌다. 험버트는 겉으로는 교양 있고 합리적인 교수라는 상징적 자아를 가지고 있지만, 내면으로는 미성년 소녀에 대한 금기된 욕망이라는 무의식적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점잖은 가장이자 학자의 역할을 연기하면서, 동시에 사회 규범을 심하게 위반하는 욕망에 이끌린다. 이 둘 사이에서 험버트는 끊임없이 요동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는 로리타와의 관계를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거나 “로리타가 먼저 유혹했다”는 식으로 미화하고 합리화한다. 하지만 그의 깊은 내면에는 죄책감과 불안이 깔려 있으며, 그것이 바로 그가 자신의 욕망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는 증거다. 이러한 모습은 분열된 주체의 전형으로, 욕망 앞에서 이성이 무력해지고 자아의 동일성이 흔들리는 인간 심리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욕망과 타자의 관계다. 라캉의 유명한 명제 중 하나는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자기 안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 사회가 금지하고 허용하는 질서, 즉 큰 타자라 불리는 상징계 속에서 형성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험버트의 로리타에 대한 집착은 로리타라는 실존적 인물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 금지된 것을 욕망함으로써 더 강렬해지는 심리 구조에 가깝다. 사회와 법, 도덕은 로리타와의 관계를 절대적으로 금지하지만, 오히려 그 금지의 장막은 험버트의 욕망을 더욱 자극하고 비틀린 형태로 분출하게 만든다. 그는 금기 너머의 쾌락을 탐닉하며, 사회가 “안 된다”고 말하는 대상을 더 갈망하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금지된 사과’의 역설이다. 큐브릭은 이 심리를 블랙 코미디라는 양식으로 표현한다. 겉보기에는 우스꽝스럽고 가벼운 장면이 이어지지만, 그 속에는 금기의 쾌락이 기묘하게 부풀어오르는 욕망의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라캉이 말한 “타자의 욕망”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선 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험버트의 경우, 그는 로리타를 향한 자기 욕망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작 로리타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로리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로리타의 존재를 자기 욕망의 스크린으로 삼는다. 로리타는 그에게 실존하는 타자라기보다는, 이상화된 소녀 이미지, 즉 상상의 대상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로리타가 성숙한 여성으로 변화하고, 자신의 욕망과 선택을 갖게 되었을 때, 험버트는 더 이상 그녀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는 로리타를 통제하고 소유하려 했지만, 결국 남은 것은 상실감과 공허함뿐이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인간 욕망의 근원적인 한계를 보여준다. 어떤 대상도 주체의 결핍을 완전히 채워줄 수 없으며, 그 대상이 왜곡된 환상에 의해 만들어졌을 경우, 그 환상이 붕괴될 때 주체는 심연과 마주하게 된다. 라캉의 이론 중 상징계와 실재계의 구분도 이 영화에 응용해볼 수 있다. 험버트는 로리타와 함께 도피 생활을 하는 동안, 일종의 사회적 질서로부터 단절된 은폐된 세계를 만들고자 한다. 그는 타인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자신만의 사랑과 질서를 구축하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상징계 바깥의 불완전한 공간일 뿐이다. 라캉이 말하는 실재계는 언어화되지 않고 상징화될 수 없는 세계, 즉 주체가 감당하거나 구조화할 수 없는 불가해한 영역이다. 험버트가 로리타와 만든 공간은 마치 실재계의 한 귀퉁이를 침범한 듯한 구조를 띤다. 처음에는 달콤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질투, 불안, 외부의 침입(퀼티)에 의해 균열이 생기고 결국 붕괴한다. 이때 험버트는 자신의 세계가 환상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로리타가 사라진 후의 황폐함, 퀼티를 죽인 뒤에도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은 모두 실재계적 충격이며, 라캉이 말하는 주이상스—쾌락과 고통이 뒤섞인 극한의 체험—의 파괴적 국면을 상기시킨다. 금기를 어기며 욕망을 쫓은 험버트는 결국 자기파괴의 경계선에 이르고 만다. 마지막으로, 이중성과 분신의 모티프도 정신분석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을 제공한다. 험버트와 퀼티는 겉보기에는 전혀 다른 인물이지만, 로리타를 매개로 한 거울 관계에 있다. 퀼티는 험버트가 내면에서 억누르려 했던 타락성과 냉소를 노골적으로 실현한 인물이며, 험버트는 자신을 사랑의 존재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실은 퀼티와 마찬가지로 로리타를 욕망의 수단으로 삼은 인물이다. 퀼티는 험버트의 어두운 자아이자, 억압된 욕망의 희화화된 형상이다. 험버트가 퀼티를 총으로 살해하는 장면은 겉으로는 복수극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자신의 분신을 제거하고 스스로를 심판하는 행위로 읽힌다. 프로이트가 말한 “외부로 투사된 자아의 죽음” 혹은 라캉의 “주체의 퇴장”과도 연결된다. 큐브릭은 퀼티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그림자, 총성, 쓰러진 물건, 총알 자국 난 벽과 그림 등을 통해 죽음의 장면을 환유적으로 구성한다. 이러한 연출은 외부 인물의 죽음이 아닌, 험버트 내면의 붕괴, 곧 이해 불가능한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암시한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황량한 저택의 풍경과 무기력한 험버트의 뒷모습뿐이며, 그것은 로리타에 대한 욕망, 이상화된 사랑, 자기 정당화의 모든 세계가 잔해로 남은 장면이기도 하다.

종합하면, 큐브릭의 <로리타>는 단순한 금기 로맨스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 구조와 무의식, 자기기만, 환상, 불가해성이라는 심층 심리학적 주제를 영상 언어로 정교하게 직조한 작품이다. 험버트는 끝내 자기 욕망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한 채 무너졌고, 로리타는 한 남자의 일그러진 욕망의 상으로 소비되었다가 현실로 돌아가는 결정을 스스로 내렸다. 퀼티는 그 욕망의 광기를 조롱하며 연기하다가 결국 희생당한다. 이 세 인물의 궤적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불가해한 세계와 맞부딪친 결과이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과연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욕망인가? 인간은 스스로의 욕망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으며,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큐브릭은 이 영화에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이 이 질문들 앞에 서 있도록 만든다. 그래서 <로리타>는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그 여운은 바로 현실 속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어딘가 설명되지 않는 진실 때문일 것이다.

아오야마 신지, 유레카

아오야마 신지는 1990년대 중반부터 두각을 나타낸 일본의 영화감독이다. 그는 릿쿄 대학 시절 저명한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향을 받으며 영화 미학을 탐구했고, 졸업 후 구로사와 기요시 등의 연출부를 거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1996년 첫 장편 <헬프리스>로 데뷔한 이후, 90년대 후반까지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 <헬프리스>, <차가운 피> 등의 초기작은 느와르나 범죄 스릴러 장르의 외형을 빌리면서도, 불안과 허무로 가득 찬 당대 일본 청년들의 정서를 담아내며 주목받았다. 아오야마의 영화 스타일은 한마디로 차분한 관조와 실험정신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긴 러닝타임과 느린 호흡, 그리고 장르적 문법의 변용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다. 화면 구성은 정밀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인물의 내면과 풍경을 긴 숏으로 포착하는 것을 즐긴다. 이러한 스타일은 그의 영화에 묵직한 서정성과 철학적 울림을 부여해준다. <유레카> 이전까지 아오야마 신지는 일본 영화계의 신예 작가주의 감독으로 서서히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야생의 삶>, <셰이디 그로브> 등으로 장르 영화의 틀을 실험적으로 확장했고, 영화 비평과 소설 집필에도 참여하며 지적인 영화관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의 이름은 주로 영화제와 평단에서 호평받는 정도였고,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2000년에 발표된 <유레카>는 아오야마의 커리어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상과 에큐메니컬상을 수상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일본 내에서도 차세대 거장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유레카>는 그간 아오야마가 탐구해온 주제 의식과 스타일을 집대성한 영화로 평가받는다. 감독 특유의 느린 미학,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 그리고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연출이 이 작품에서 정점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유레카>는 아오야마 신지 영화 세계의 정수라 할 만하다. <유레카>가 제작되고 공개된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의 일본 사회는 깊은 혼란과 내적 불안의 시기였다. 1980년대 말 거품 경제 붕괴 이후 지속된 “잃어버린 10년” 동안 경제적 침체와 고용 불안이 이어지면서, 사회 전반에 미래에 대한 회의감과 무기력이 퍼지고 있었다. 특히 1995년은 일본인들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형성한 해로 기록되는데, 1월에 발생한 한신 대지진과 3월 옴진리교에 의한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며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이 비극들은 예측 불가능한 재난과 폭력이 일상의 안전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사회는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후 몇 년간 일본 사회에는 상실감, 불안,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심리적 회복의 욕구가 공존했다. 영화계 역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작품들이 등장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죽음과 상실, 그리고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이 두드러졌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 <원더풀 라이프>는 죽음 이후의 세계나 남은 이들의 삶을 성찰했고,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 후카사쿠 킨지의 <배틀 로얄> 등은 현대 일본 사회의 폭력성과 불안을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유레카>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 위치한다. 아오야마 신지는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자신의 창작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다고 밝힌 바 있으며, 전후 일본 사회에 누적된 심리적 짐까지도 이 사건과 연결지어 고찰했다. 개인의 트라우마와 사회 역사적 트라우마를 겹쳐서 바라본 그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상흔을 끌어안고 어떻게 삶을 지속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영화의 중심에 놓았다. <유레카>가 담고 있는 고통과 치유의 서사는, 세기말 일본이 처한 현실—혼란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단서를 찾아야 했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하나의 우화처럼 읽힌다.

영화 <유레카>의 이야기는 한 비극적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본 규슈의 한 지방 도시. 평범한 통학 버스에 한 총기 무장 괴한이 올라타 승객들을 인질로 잡는 버스 납치 사건이 발생한다. 긴박한 대치 끝에 경찰이 버스를 포위하지만, 상황은 참혹한 결말을 맞는다. 순식간에 총성이 울리고, 현장에는 여섯 구의 시신이 남는다. 범인과 경찰관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오직 세 사람만 살아남는다. 버스 운전사 사와이 마코토와 그 버스에 타고 있던 타무라 코즈에와 타무라 나오키 남매가 그들이다. 영화는 이 참혹한 사건 장면을 직접적으로 상세히 묘사하지는 않는다. 관객은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기도 전에 이미 비극이 지나가버리고, 곧바로 트라우마에 잠식된 인물들의 사후 삶이 전개된다. 사건 이후, 생존자 세 사람의 삶은 뿔뿔이 흩어진다. 사와이는 극심한 죄책감과 충격으로 정신이 무너져버린다. 자신이 살아남은 것에 대한 생존자 죄의식과 타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힌 그는, 가족을 남겨둔 채 행방을 감추고 떠돌아다닌다. 한편 코즈에와 나오키 남매는 아직 어린 나이에 겪은 충격으로 마음을 닫아버린다. 두 사람 모두 실어증에 걸린 듯 말문을 닫고 학교에도 나가지 않는다. 그들의 어머니는 감당하지 못하고 가출해버리고,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사망한다(사고에 숨겨진 자살의 가능성도 암시된다). 졸지에 부모 없는 아이들이 된 코즈에와 나오키는 자기들만의 세계 속에 갇혀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낸다. 시간이 흘러 2년 후, 마코토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집을 떠나 있는 동안 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어 있었다. 아내는 이미 그를 떠나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고, 그는 더 이상 버스를 운전하지 못한 채 고향에서 막일 노동자로 지내기 시작한다. 마코토가 돌아오자 주변 사람들은 그를 기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과거의 끔찍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산 증인의 귀환은 마을에 불길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마코토 자신도 여전히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러던 중 마코토의 주변에서 이상한 사건이 벌어진다. 동네에서 젊은 여성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공교롭게도 마코토는 희생자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있던 인물로 지목된다. 경찰은 그를 용의자로 의심해 거칠게 심문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어서 결국 풀려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의혹과 편견어린 시선은 여전히 마코토를 따라다닌다. 고립무원의 심정이 된 마코토는 문득 자신처럼 세상에 버려진 존재인 코즈에와 나오키 남매를 떠올린다. 그는 오랜 죄책감과 슬픔을 등에 진 채 타무라 남매의 집을 찾아가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두 남매의 집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어지럽혀져 있고, 아이들은 최소한의 생계유지조차 힘겨워하고 있다. 마코토는 묵묵히 그 집에 들어가 가사일을 돌보고 식사를 차려주며, 마치 가장처럼 그들을 보살핀다. 세 사람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상처 입은 영혼들끼리 의지하며 기묘한 대가족 비슷한 공동생활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침묵과 어색함만 가득하던 집 안에 차츰 일상의 온기가 돌아온다. 마코토의 헌신적인 돌봄으로 코즈에는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입을 떼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오키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고, 밤마다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이들 앞에 한 인물이 합류하면서 집단의 구도는 또 변화를 맞는다. 타무라 남매의 사촌인 아키히코(사이토 요이치로 분)가 느닷없이 그들의 집에 찾아온 것이다. 대학생인 아키히코는 여름 방학을 지내러 왔다며 당분간 같이 지내겠다고 한다. 그의 등장은 마코토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어딘지 모르게 가볍고 냉소적인 태도의 아키히코와,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짊어진 마코토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그럼에도 네 사람은 한지붕 아래 생활하며 임시적이나마 가족의 형태를 이룬다. 하지만 평온을 찾나 싶던 이 공동체에 다시금 폭력이 파고든다. 앞서 계속되던 연쇄살인 사건이 또 벌어지고, 이번에는 마코토의 가까운 친구마저 희생된다. 경찰의 의심이 거세지는 가운데, 마코토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선 안 되겠다고 판단한다. 그는 코즈에, 나오키, 그리고 아키히코에게 뜻밖의 제안을 한다. 오래된 중고 버스를 한 대 구입해 캠핑카처럼 개조한 뒤, 함께 먼 길을 떠나자는 것이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네 사람은 살던 집과 과거의 어둠을 뒤로 하고 길 위에 오른다. 큐슈 섬 곳곳을 유랑하는 로드 무비가 이렇게 전개된다. 여행 초반, 바깥세상과 다시 접촉하면서 코즈에는 서서히 미소를 되찾고 말문을 연다. 마코토 역시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 속에서 삶의 의지를 회복해간다. 그러나 나오키의 상태는 점점 불안정해지고, 아키히코는 그런 나오키를 못마땅해하며 빈정대기 일쑤다. 긴 여정 속에서 누적된 긴장감은 마침내 폭발하고, 숨겨져 있던 진실이 드러난다. 연쇄살인의 범인은 다름 아닌 나오키였던 것이다. 어린 나오키는 버스 납치 사건의 트라우마와 가족의 해체로 심각한 상처를 입은 나머지, 내면의 분노와 공허를 통제하지 못하고 살인을 저질러왔다. 이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한 순간, 마코토는 비로소 과거의 악순환을 끊어낼 결심을 한다. 그는 도망치는 나오키를 붙잡아 절규하며 스스로 죄를 받아들이고 멈추라고 설득한다. 결국 나오키는 눈물을 흘리며 무너져내리고, 마코토의 품에 안긴 채 경찰에 자수하기로 한다. 나오키를 하차시킨 뒤, 남은 셋은 다시 길을 떠난다. 그러나 아키히코의 이기적이고 경박한 태도는 끝내 마코토의 인내심을 한계에 다다르게 만든다. 어느 날 마코토는 깊은 분노를 터뜨리며 아키히코를 버스에서 쫓아내고 만다. 결국 버스 안에는 마코토와 코즈에 단 둘만 남는다. 두 사람은 과거의 망령들을 모두 떨쳐내기라도 하듯, 묵묵히 목적 없이 도로를 달린다. 마침내 그들이 도착한 곳은 큐슈에서 가장 높은 산 정상 부근의 한 길. 버스를 세우고 밖으로 나온 마코토와 코즈에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 풍광을 바라본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본다. 이제는 괜찮다는 듯 코즈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마코토 역시 잔잔히 미소 짓는다. 두 생존자는 비로소 일상의 삶으로 되돌아갈 용기를 얻은 것이다. 그 순간, 영화 내내 우중충한 세피아 색조로 표현되었던 영상이 서서히 컬러로 변모한다. 잿빛이 감돌던 세계에 처음으로 자연의 생생한 색깔이 돌아오며, 영화는 열린 결말 속에 두 사람의 앞날에 잔잔한 희망의 빛을 비춘다.

<유레카>는 형식 면에서 매우 독특하고도 대담한 미학을 구현하고 있다. 러닝타임이 218분에 달하는 이 영화는 극단적으로 느린 호흡과 최소화된 서사적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오야마 신지 감독은 의도적으로 빠른 서사 전개나 자극적인 연출을 배제하고, 지극히 묵묵하고 관조적인 카메라로 인물들의 일상과 내면을 응시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세피아 톤의 흑백 영상으로 촬영되었는데, 이는 컬러 필름에 흑백처럼 담아낸 독특한 질감으로, 화면에 고요하고도 우울한 분위기를 입혀준다. 이러한 탈색된 영상은 인물들이 겪는 정서적 무채색 상태, 즉 삶의 활력을 잃어버린 상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카메라는 광활한 풍경이나 적막한 방 안을 오랫동안 비추고, 인물들의 동작을 느릿하게 따라간다. 롱테이크와 롱샷의 활용이 두드러지는데, 종종 한 씬이 몇 분간 컷 없이 지속되며 관객에게 시간의 흐름을 체험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마코토가 혼자 창밖을 바라보거나, 네 사람이 버스에서 묵묵히 이동하는 장면 등에서는 인위적인 편집을 배제한 채 실제 시간에 가까운 길이로 한 숏을 지속함으로써, 인물들의 고독과 침묵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편집 또한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불필요한 장면 전환이나 설명적인 몽타주는 거의 없고, 컷 사이의 연결도 여유롭게 이루어진다. 시간의 점프가 있을 때도 설명적 자막 없이 인물들의 변화로 암시하는 식이다. 이러한 편집 리듬은 관객으로 하여금 서두르지 않고 인물의 심리에 천천히 동조하도록 만든다. 미장센 측면에서, 영화는 공간과 사물의 배치를 통해 인물들의 정서를 은유한다. 타무라 남매의 지저분하게 방치된 집안은 그들의 정체된 삶과 내면의 혼란을 반영하고, 버스 내부의 한정된 공간은 인물들이 피할 수 없이 직면한 공동의 운명을 상징한다. 넓게 펼쳐진 큐슈의 들판과 하늘은 인물들에게 열려 있는 치유의 가능성과 자유를 암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거대한 자연 속에 고립된 개인들의 작음을 부각한다. 사운드 역시 인상적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침묵과 생활음이 주된 소리 풍경을 이룬다. 대사는 최소한으로 압축되어 있는데, 코즈에와 나오키가 말을 잃은 설정 덕분에 초중반에는 거의 대화가 없다시피 하다. 대신 시계 초침 소리, 바람이나 곤충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 인물들의 발걸음과 숨소리 등이 증폭되어 들린다. 이러한 극도의 정적은 관객을 영화 속 세계의 고요한 긴장으로 끌어들이며,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하게 만든다. 음악은 아오야마 신지 본인이 공동 작곡에 참여했는데,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어 필요한 순간에만 등장하는 미니멀리즘 음악으로서 큰 울림을 준다. 예컨대 극 후반부, 마코토와 코즈에가 산 정상에 도달하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맑은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데, 이는 마치 긴 어둠 뒤에 찾아온 한 줄기 빛처럼 느껴져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전반적으로 <유레카>의 형식적 요소들은 느림의 미학으로 통합되어 있으며, 이는 영화의 주제인 상처 치유의 과정을 형식적으로 체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관객은 느린 호흡에 동참함으로써 인물들과 함께 정신적 재생의 여정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유레카>에는 여러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영화의 서두와 말미에 해당하는 두 시퀀스는 형식과 주제 양면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먼저 오프닝 버스 납치 시퀀스를 살펴보자.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한적한 시골 도로를 주행하는 통학 버스와, 그 안에 타고 있는 코즈에와 나오키 남매의 모습을 비춘다. 카메라는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과 아이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번갈아 잡으며 일상의 한 순간을 담는다. 이때 코즈에가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한다: “곧 큰 파도가 몰려와 우리를 휩쓸 거야.” 이 예언적 대사는 곧 닥칠 재앙을 암시하면서 관객의 긴장감을 높인다. 곧이어 버스에 권총을 든 범인이 올라타는 순간, 아오야마는 클로즈업이나 흔들리는 카메라 대신 멀리서 지켜보는 시선을 유지한다. 총구가 승객들을 위협하고 비명과 혼란이 퍼지지만, 카메라는 버스 내부를 직접 비추기보다는 바깥에서 정지된 숏으로 버스의 외부 모습과 경찰들의 움직임을 담는다. 이어지는 주차장 대치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넓은 공간에 고립된 버스를 롱샷으로 포착하여 인질들의 불안을 에둘러 표현한다. 그러다 돌연 총성이 연이어 울리고 사태가 종료되는데, 이 급작스런 폭력의 폭발을 감독은 생략과 여운으로 처리한다. 관객은 총소리를 듣고도 한동안 화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고, 연기가 자욱해진 버스 주변을 보여주는 광활한 숏이 한동안 지속될 뿐이다. 그리고 연기가 걷히며 드러나는 것은 망연자실한 표정의 마코토와 아이들뿐이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숏의 길이와 거리감을 통한 충격의 전달이라는 아오야마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사건의 폭력성을 직접적으로 소비시키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거리 두기와 정적을 통해 트라우마의 여파를 실감나게 체험하게 하는 연출이다. 한 숏 한 숏 신중하게 계산된 이 오프닝은 이후 전개될 느린 영화의 톤을 설정함과 동시에, 관객을 일상의 한복판에서 갑작스레 탈선한 비극으로 안내한다. 대조적으로, 클라이맥스 격인 최후반부 산정 장면은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숏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나오키가 경찰에 자수하고 난 뒤, 버스에 남은 마코토와 코즈에는 깊은 침묵 속에 달린다. 그리고 마침내 산길에서 버스가 멈추고, 두 사람이 걸어 나오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때 카메라는 이들을 뒷모습의 롱숏으로 잡는다. 구름 낀 하늘과 안개 자욱한 산봉우리의 풍경이 화면 가득 펼쳐지고, 그 한가운데 조그맣게 서 있는 두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지속되던 세피아 톤의 흑백 영상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때다. 마코토와 코즈에가 서로를 바라보는 정면 클로즈업으로 전환되며, 아주 천천히 화면에 옅은 색감이 스며든다. 코즈에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고, 마코토의 거친 얼굴에도 온기가 피어오른다. 이어서 둘이 함께 정면을 응시하는 투샷에서 배경의 하늘이 탁한 회색에서 푸른빛으로 변모하고, 주변 나무들에도 녹색기가 번진다. 점진적인 채도 변화를 통해 흑백에서 컬러로의 이동을 보여주는 이 숏 전환은 서서히 피어나는 희망을 형상화한 백미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천천히 버스 쪽으로 걸어가는 롱테이크가 이어지는데, 이때는 완전히 컬러로 바뀐 풍경 속에서 카메라가 그들을 뒤에서 따라간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구불구불한 길과 멀리 비치는 햇살을 한 프레임에 담은 이 숏은, 마치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의 뒷모습처럼 경건하고 아름답다. 숏 바이 숏 따져보면, 인물의 클로즈업에서 배경 숏으로, 정지된 앵글에서 움직이는 트래킹 숏으로 변화하는 구성인데, 이는 인물 내면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유레카>의 핵심 장면들은 치밀한 숏 구성과 미세한 영상의 변화를 통해 주제 의식을 담아낸다. 관객은 하나하나의 숏을 따라가며 인물과 함께 절망의 터널을 지나 희망의 빛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아오야마 신지 감독은 <유레카>를 통해 트라우마 이후의 삶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그는 범죄나 폭력의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와 생존자의 시선에 주목하고자 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대개 영화는 범죄를 저지르는 자에게 관심을 두지만, 나는 이 작품에서 피해를 입은 이들이 겪는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유레카>는 버스 납치라는 범죄 자체보다는, 그 사건으로 인해 삶이 파괴된 이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갈 힘을 찾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마코토와 남매는 모두 무고한 피해자들이지만, 사회는 그들을 충분히 보듬어주지 못한다. 오히려 두려움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상처 입은 이들을 소외시키고 의심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감독은 연대와 공동체의 힘을 하나의 답으로 제시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마코토와 아이들이 서로를 가족처럼 돌보는 이야기는, 상처 입은 개인들이 서로 기대어 만들어낸 작은 공동체가 어떻게 치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 내내 마코토는 자책과 우울에 시달리면서도 끝끝내 아이들을 지키고자 헌신한다. 그의 이러한 희생적 행동은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아버지의 탄생과도 같다. 감독은 부재했던 부모의 자리(헬프리스 등 이전 작품에서 결핍으로 그렸던)를 마코토라는 인물을 통해 메우며, 절망의 고리를 끊어낼 윤리적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이것은 앞서 아오야마의 작품들이 암울한 시대상을 그리면서도 해답을 찾지 못했던 것과 대비되는 지점으로, <유레카>에서 비로소 재생의 희망을 선포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의 제목 유레카는 그리스어로 “찾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표현으로, 흔히 큰 깨달음이나 발견의 순간을 가리킨다. 이 제목은 영화의 결말에서 드러나는 주제적 메시지와 직결된다. 어둠 속에서 헤매던 인물들이 마침내 터널의 끝에서 자신들의 삶을 되찾는 순간, 즉 일종의 각성과 구원의 순간을 암시하는 것이다. 버스가 정상에 올랐을 때 찾아온 컬러 영상의 회복은 곧 그들의 “유레카”의 순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개인적인 치유일 뿐 아니라, 더 넓게 보면 세기말 혼란을 통과한 일본 사회가 맞이해야 할 정신적 회복을 상징하는 은유이기도 하다. 아오야마 신지는 이 영화를 일컬어 “현대를 살아갈 용기를 찾는 이들을 위한 하나의 기도”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유레카>는 폭력과 상실로 얼룩진 세계 속에서도 인간이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음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역설한다. 복수나 처벌의 카타르시스 대신, 지루하고 고된 자기 성찰과 용서의 과정을 택한 이 영화는 상업적 쾌감은 적을지언정, 보는 이로 하여금 삶과 구원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만든다. 감독의 연출 의도는 분명하다. 그는 관객이 극중 인물들의 고통의 침묵을 함께 견디고, 그 속에서 비로소 작지만 소중한 희망의 숨결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이러한 면에서 <유레카>는 한 편의 영화이면서 동시에 영적 여정에 가까운 체험을 제공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유레카>는 2000년대 일본 영화사에서 중요한 좌표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우선 국제 영화 무대에서 거둔 성취를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연맹상과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일본 예술영화로서는 이례적인 3시간 30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외국 비평가들은 작품의 서사 규모와 깊이에 주목하며 “도스토옙스키적인 구원 서사”라는 호평을 보냈다. 국내외 영화제에서의 성과로 아오야마 신지는 단숨에 세계 영화계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발돋움했고, 이는 동시대 일본 영화의 존재감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일본 영화 내에서 <유레카>의 위상은 세기말 뉴웨이브의 정점이라는 평가로 요약될 수 있다. 90년대 후반 등장한 새로운 감각의 감독들—예컨대 고레에다 히로카즈, 구로사와 기요시, 시오타 아키히코 등—과 나란히, 아오야마 신지는 자신만의 색깔로 일본 사회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그 중에서도 <유레카>는 주제의식의 선명함과 형식미의 완성도로 인해 동세대 작품들 사이에서 단연 두드러진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서구 예술영화 전통과 일본적 정서를 창의적으로 결합한 예로서 영화사적 의미를 지닌다. 롱테이크 중심의 느린 영화 문법은 안토니오니나 벨라 타르 등 유럽 감독들의 영향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 정서는 일본 특유의 잔잔한 정서와 공동체 의식으로 채색되어 있다. 또한 로드무비이자 심리 드라마, 더 나아가 현대적 서부극의 요소까지 품고 있다는 점에서도 독특하다. 감독 자신이 주인공 마코토의 여정을 존 포드의 <수색자> 속 존 웨인에 비유한 바 있듯이, <유레카>는 상처 입은 영웅이 자기 구원을 찾아 나서는 현대의 서부극으로 읽힐 수도 있다. 이렇듯 다층적인 장르 혼성은 일본 영화의 스펙트럼을 넓힌 실험이기도 하다. 비평적 시각에서 볼 때, <유레카>는 치유의 서사를 형식적으로 구현한 뛰어난 성취인 동시에, 일부에겐 난해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몇몇 평자들은 극단적인 러닝타임과 느린 전개로 인해 “인내심을 시험하는 영화”라는 평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 상영 당시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렸고, 흥행적으로는 미미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적 어려움조차도 작품의 의도로 읽힌다. 고통의 치유란 쉽고 빠르게 이뤄지지 않는 법이고, <유레카>는 그 진실을 영화적 시간으로 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영화의 느림과 정적의 용기는 이후 많은 영화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2000년대 들어 아시아 영화계에서는 정지영, 차이밍량 등 슬로 시네마라 불리는 경향이 주목받았는데, <유레카>는 일본 영화에서 이러한 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회자된다. 또한 아오야마 신지가 이후 발표한 작품들—예컨대 <새드 배케이션> 등—이 <유레카>와 세계관을 공유하며 후속 이야기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본작은 감독 필모그래피의 중심축으로 기능한다. 요컨대 <유레카>는 21세기 일본 영화에 중요한 예술적 이정표를 세운 작품이며, 일본 현대사가 남긴 상흔을 영화라는 예술로 승화시킨 뛰어난 예로 평가된다.

처음 <유레카>를 접했을 때, 솔직히 당혹감을 느꼈다. 익숙한 영화 문법과는 거리가 먼 느릿느릿한 전개, 대사 한 마디 없이 흐르는 적막한 숏들, 그리고 거의 네 시간에 달하는 방대한 길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일반적인 감상 자세를 버리고 영화와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차츰 작품에 몸을 맡기자, 그 묘한 몰입감과 정신적 울림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마치 긴 명상에 잠겨 있는 듯한 경험이었다. 영화 속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고독이 화면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특히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조용히 식탁에 둘러앉은 네 사람의 모습을 오래도록 비추던 장면에서, 아무 말도 없는 그 적막 속에 오히려 수많은 감정의 파동이 느껴졌다. 서로가 없었다면 완전히 부서졌을 영혼들이 한데 모여 숨죽인 채 밥을 먹는 광경은, 슬프고도 아름다워서 잊기 어렵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산 정상에서 화면에 물들어온 한 줄기 푸른빛은, 오랜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눈과 마음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코토와 코즈에가 보인 미소는 어떤 말보다도 힘있는 희망의 증거처럼 느껴졌고,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일상을 나 역시 응원하게 됐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유레카>는 깊은 잔상을 남겼다. 삶의 고통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예술적 형식의 조화에 감탄했고, 감독의 용기 있는 표현 방식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잉마르 베리만, 신의 침묵 3부작

스웨덴 거장 잉마르 베리만의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겨울빛>, <침묵>은 흔히 ‘신의 침묵 3부작’ 또는 ‘신앙 3부작’으로 불리며, 베리만 영화 중 종교적 주제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이 세 작품은 각각 확고했던 신앙의 “확실성의 확인”, 그 가면이 벗겨지는 “확실성의 실체”, 그리고 마침내 신의 부재로서 “신의 침묵”, 곧 부정적 인식에 이르는 과정을 3단계로 선명히 묘사한다 . 실제로 베리만 자신도 각본 서문에서 “이 세 편의 영화는 형이상학적 의미의 ‘감소’를 보여준다”고 썼다. 즉, 1부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에서 한 순간 “신은 사랑”이라는 확신이 제시되지만, 2부 <겨울빛>에서는 그 확신이 산산이 무너지고, 3부 <침묵>에서는 종국에 아무 말씀 없는 신, 부재하는 신만이 남는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20세기 중반 현대인의 신앙 위기, 즉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세계에 대한 예술적 탐구라 할 수 있다. 베리만은 엄격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서 성장했지만, 성인이 된 후 “인간의 시야를 가리는 형편없는 신에 대한 믿음에서 벗어났다”고 고백했는데, 이 3부작은 바로 그런 ‘믿음의 상실’ 과정을 예리하게 영상화한 것이다. 동시에 베리만은 이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영화 미학을 한층 정제된 형태로 확립했는데, 이는 촬영감독 스벤 뉘크비스트와의 협업으로 가능해진 금욕적이고도 세밀한 영상 언어의 발전과도 맞물려 있다

베리만의 3부작은 제목이 암시하듯 기독교 신학 전통의 큰 물음, 곧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에 대한 예술적 응답이다. 20세기 신학에서는 전통적 신 관념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철학자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기존의 신앙과 도덕 체계가 붕괴할 것을 예언한 지 한 세기가 지난 시점에, 실제로 유럽 사회에서는 교회의 권위와 초월적 진리에 대한 믿음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니체가 말한 바대로 “더 이상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을 수 없게” 된 시대, 하나님과 절대적 도덕에 의지해 세워졌던 가치들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이러한 ‘신의 부재’ 상황 속에서,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침묵과 부재를 새롭게 사유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는 전통 신학을 근본부터 재고하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타자”로 파악했다.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을 알 길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 편의 자기계시가 있을 때만 부분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르트는 자연신학에 철저히 ‘아니오’라고 답함으로써, 인간의 경험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원천적으로 들리지 않을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이는 하나님과 세계의 간극을 절대화한 관점으로, 계시가 없다면 신은 침묵하실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 세계에서 신앙인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도록 부름받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옥중에서 쓴 편지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신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없이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세상에서 스스로 무력하고 약해지신다. 하나님은 세상 한복판에서 밀려나 십자가에 못박히신다”라고 썼다. 본회퍼에게 이 진술은 하나님이 세상을 버리셨다는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세속 세계의 고통 속에 함께 침묵으로 고난당하신다는 역설적인 위로였다. 그의 말처럼 “오직 고난 당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를 도우실 수 있다”는 통찰은, <겨울빛>의 목사 토마스가 결국 고통당하신 예수의 침묵에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실존적 돌파구를 찾는 결말과 상응한다. 한편 폴 틸리히는 근본주의적 유신론이 무너진 시대에 “하나님은 존재자들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라고 재정의하며, 전통신의 상실을 신앙 갱신의 기회로 보았다. 틸리히는 특히 의심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의심은 신앙의 적이 아니라 그 한 요소”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내적 침묵의 경험까지도 신앙의 여정에 포함시켰다. 실제로 <겨울빛>에서 주인공 토마스 목사는 극심한 회의와 신앙적 공허를 겪지만, 틸리히의 지적대로 이러한 의심은 신앙의 반대가 아니라 새로운 신앙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의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틸리히는 또 “신앙의 용기”란 무의미와 절망을 껴안고도 삶의 궁극적 의미를 확인하는 태도라고 보았는데, <침묵>에서 에스테르가 죽음 직전 조카 요한에게 남긴 한 단어 “Hadjek(영혼이라는 뜻)”는, 비록 그녀 자신은 신의 부재 속에 절망했을지라도 영혼에 대한 마지막 직관을 아이에게 전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는 여전히 신의 침묵 속에서도 완전한 허무로 기울지 않고 의미의 끈을 잇는 몸짓이라 할 만하다. 요컨대 베리만 3부작에 투영된 신학적 문제의식은, 하나님이 부재하거나 침묵하시는 세계에서 신앙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응답을 듣지 못해 절망하지만, 그 절망 한복판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모색한다. 이는 1960년대 유럽 신학에 나타난 이른바 ‘하나님 죽음’ 신학과도 맥을 같이한다. 급진적 신학자들은 신 없는 시대의 영성을 논의했는데, 베리만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신의 침묵을 직시하면서도 그 적막을 뚫고 나오는 작은 목소리들을 포착했다. 실제로 베리만은 나중에 이 3부작의 주제가 “신의 부재보다는 사랑의 부재에 관한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곧, 하나님이 침묵한 빈자리를 대신 채울 수 있는 것이 인간 사이의 사랑임을 시사한다. 1부에서 아버지와 딸의 대화 끝에 “신은 사랑이야”라는 깨달음에 도달하고, 2부에서 무신론자 마르타가 헌신적 사랑으로 목사를 끝까지 돌보며, 3부에서 에스테르가 죽음 앞에서 조카에게 영혼이라는 단어를 남기는 장면까지 —이는 모두 침묵하시는 하나님 대신 인간적 사랑과 소통이 거룩함을 매개할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사랑조차도 완전치 않아 결국 균열과 한계를 드러내기에, 베리만은 냉혹한 솔직함으로 믿음과 의심의 투쟁을 영화적 신학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베리만의 3부작은 또한 실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인간 실존의 어두운 밤을 탐구한다. 앞선 신학적 고찰과 맞물려, 여기서는 신 없는 세계에 내던져진 개인의 고독과 불안이 주요 화두가 된다. 소렌 키르케고르 이래 실존주의 전통은 신앙을 단독자의 결단으로 보았는데, 만약 결단의 대상인 하나님이 침묵한다면 개인은 끝없는 절망에 직면하게 된다. 키르케고르는 불안을 “죄와 구원의 문제를 깨닫게 하는 실존적 어지러움”이라 하여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지만, 베리만 영화의 인물들에게 불안은 일차적으로 구원 없는 공포로 나타난다. <겨울빛>에서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 교인 요나스는 핵전쟁의 가능성에 극도의 불안을 느끼다 끝내 삶을 포기한다. 이는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진정으로 철학적인 유일한 문제는 자살”이라고 했던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카뮈에게 삶의 부조리를 견딜 수 없다면 자살로 도피할 수도 있다고 보았지만, 장폴 사르트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이 없다면 인간은 철저히 자유롭지만 그만큼 철저히 버려져 있다”고 갈파했다. 사르트르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기에, 인간은 내면에도 외부에도 어떤 붙잡을 근거도 찾지 못한 채 절대적 고독 속에 남겨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겨울빛>의 토마스 목사는 신의 부재 앞에서 값싼 위안을 거부하고 그 고독을 끝까지 견디는 자유를 택한다. 그는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속임수로 회중을 기만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 상실을 정직하게 마주한다. 이러한 태도는 사르트르가 말한 “인간은 자유롭게 저주받았다”는 모순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는 신을 잃고 아무런 절대 가치도 없기에 오히려 자기 행동과 선택에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로 남겨진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이러한 실존적 상황을 이해하는 또 다른 틀을 준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본래 ‘세계-내-존재’로서 일상에 몰입해 살아가지만, 어떤 계기에 근원적 불안을 경험하면 세계 전체가 낯설고 무의미하게 드러난다고 보았다. 불안은 공포와 달리 어떤 특정 대상 때문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아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그 순간 일상에서 친숙하던 세계는 한발 물러나 기이하고 부자연스러운 무대로 보이며, 집이라고 느꼈던 삶이 더 이상 안온한 곳이 아니게 된다. 이것을 하이데거는 세계의 비주변화, 탈주술화로 설명했는데, <침묵>의 공간이 정확히 그런 분위기를 구현한다. 영화 속 에스트와 안나 자매가 머무는 낯선 도시와 호텔은 언어도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불안스럽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아이의 눈을 통해 보이는 이 세계는 마치 초현실주의 화폭처럼 기괴하고 쓸쓸하다. 사람들은 많지만 진정한 소통은 부재하고, 간간이 들려오는 전쟁 탱크 소리나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줄 뿐이다. 이러한 현존재의 불안 상황에서 인물들은 하나같이 언어의 무력함과 타자와의 단절을 겪는다. <침묵>에서 통역가 에스테르는 정작 현지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동생 안나와도 정서적 소통이 끊긴 채 각자 육체의 방식으로 고독을 달랜다.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카린은 남편이나 아버지와 소통하지 못하고 자기 내면의 환청에만 사로잡히다가, 급기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붕괴되어 가족에게 상처를 입힌다. 이렇듯 언어와 이성이 해체되는 지점에서, 베리만은 인물들의 몸짓과 표정에 주목함으로써 실존적 진실을 포착하려 한다. 이는 구조주의/탈구조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기존의 의미 질서가 와해되고 의미의 공백이 드러나는 상황이다. 자크 데리다에 따르면 중심이 부재할 때 주변의 차이와 흔적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겨난다. <침묵>에서 하나님이라는 궁극의 의미중심이 사라진 세계에서, 베리만은 침묵 그 자체를 하나의 언어로 제시한다. 말 없는 표정, 정물 같은 공간, 끊긴 대화의 여백 등이 오히려 언어 이상의 진실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데리다가 말한 “부재를 통한 현존”의 역설—무언의 침묵 속에 오히려 의미의 울림이 생성되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한 미셸 푸코는 사회가 침묵을 통해서도 담론을 구성한다고 보았는데, <겨울빛>에서 교회 공동체의 침묵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당시 신앙의 공동체적 공백을 나타내는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즉 말해지지 않은 것들, 응답 없는 기도들이 쌓여 종교 언어의 공허화를 증언하는 셈이다. 실존철학의 관점에서 3부작에 등장하는 핵심 주제들을 꼽자면 고독, 불안, 타자성, 그리고 언어와 침묵이 있다. 우선 고독은 신의 부재와 맞물려 모든 인물을 지배한다. 카뮈는 “인생의 유일한 심각한 문제는 삶이 과연 살아갈 가치가 있는지 여부”라고 했는데, 베리만의 인물들은 그 답을 신에게서 찾지 못한 채 철저히 혼자가 되는 실존을 감내한다. <겨울빛> 토마스는 아내를 잃고 교인들도 떠나가 버린 빈 교회에 홀로 서서 예배를 계속한다. 그 모습은 얼핏 무의미해 보이지만, 동시에 부조리한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인간의 결의를 보여준다. 이는 마치 시시포스가 신 없이도 바위를 밀어올리는 노동을 멈추지 않는 모습과도 통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토마스 목사는 단 한 명의 청중 만을 두고도 미사를 집전하는데, 이는 그가 완전히 신앙을 회복했다기보다 부재 속에서도 자기 역할을 수행하기로 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실존주의적으로 보면 이것은 반항적 결단이다. 아무 답도 들려오지 않아도 자기 존재를 스스로 규정짓겠다는 자유의지의 행사가 된다. 타자성과 소통의 문제 역시 이 3부작을 관통하는 철학적 주제다. <침묵>에서 에스테르와 안나 두 자매는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하고, 끊임없이 엇갈린다. 둘은 육체적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서로에게 타자일 뿐이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인간이 타자의 얼굴을 통해 윤리적 부름을 듣는다고 했지만, 여기서 안나는 병든 언니 에스테르의 고통을 직시하기보다 자신의 욕망과 분노에 갇혀버린다. 에스테르 역시 동생의 욕정을 “역겨워”하며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두 사람은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에스테르는 생을 마감하고, 안나는 언니의 죽음에도 냉담하다. 남겨진 어린 요한만이 순수한 시선으로 둘을 바라보지만, 그는 아직 언어도 능숙하지 않고 성인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요한은 호텔에서 만난 난쟁이 서커스 단원들과 몸짓으로 교감하고, 현지 역무원과도 웃음이나 손짓으로 소통한다. 이렇듯 아이의 세계에서는 언어 이전의 순수한 만남이 가능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언어마저 오해와 침묵을 낳는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부재는 포스트구조주의가 말하는 언어의 한계와 의미의 미끄러짐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기호는 자의적인 것이며, 데리다는 그 기호가 가리키는 의미가 항상 늦춰진다고 했는데, <침묵>에서 번역가 에스테르조차 번역해줄 수 없는 외국어 앞에서 인물들은 무력하다. 의미는 눈앞에 있으되 닿을 수 없이 미끄러지고, 남는 것은 침묵과 신체적 제스처뿐이다. 역설적으로, 베리만은 이러한 침묵과 몸짓을 통해 언어로는 포착 못할 심연의 진실을 전달하려 한다. 이것은 메를로 퐁티와 같은 현상학자가 말한 바와 통한다. 메를로 퐁티는 인간의 지각과 몸의 경험이 진리를 드러내는 창이라고 했는데, 베리만 영화에서 긴 침묵 속에 클로즈업된 인물의 얼굴, 공허한 공간의 눈부신 밝음, 손과 손이 닿는 미세한 떨림 등은 언어 이전의 차원에서 존재의 의미를 체험하게 한다. 결국 철학적 시각에서 볼 때, 신의 침묵 3부작은 부조리하고 불안한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이 어떻게 타자와 관계 맺고 의미를 생성할 것인가라는 근본 물음을 던지고 있다. 베리만은 확실한 해답을 주기보다 그 질문 자체를 생생히 느끼도록 함으로써, 관객이 스스로 자신의 존재 조건과 마주하게 만든다.

베리만의 3부작은 그 내용만큼이나 형식 면에서도 주제 의식을 정교하게 전달한다. 우선 촬영과 조명부터 살펴보면, 세 영화 모두 흑백 필름의 명암 대비와 자연광 활용을 통해 인물 내면의 영적 상태를 시각화한다. 촬영감독 스벤 뉘크비스트는 <겨울빛>에서 한겨울의 창백한 자연 채광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로써 교회 창문으로 들이치는 차가운 햇빛 속에 주인공의 얼굴을 종종 역광 실루엣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밝은 배경 앞에 어둡게 잠긴 얼굴”이라는 모티프로 영화 전반에 반복된다. 예컨대, 토마스 목사가 제단 뒤편 사제실에서 홀로 앉아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속삭이는 장면은 이 3부작의 미장센을 상징적으로 압축한다. 카메라는 침묵 속에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다가가는데, 앞에서 받쳐주던 조명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뒤편 창문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겨울 햇빛만 남는다. 얼굴은 암흑에 잠기고 후광만 빛나는 이 이미지에서, 우리는 신의 부재로 영혼이 어두워진 인간과 여전히 세상을 비추는 하나님의 흔적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는 베리만이 빛의 대비로 신앙의 빛과 그림자를 형상화한 탁월한 예라 할 것이다. 이러한 얼굴-후광의 대비 연출은 영화 곳곳에 등장해 영적 위기의 상태를 시각화한다. 반면 같은 <겨울빛>에서 요나스의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은 인물을 아주 먼 롱 쇼트로 잡고 눈보라 치는 벌판에 놓아두는데, 이때 인물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있고 배경의 자연만 광활하게 나타난다. 이는 인간이 한낱 하찮은 고깃덩이로서 자연의 폭력 앞에 노출된 모습을 냉혹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쇼트의 거리와 구도를 바꾸어가며, 베리만은 인물의 주관적 고립감과 세계의 객관적 냉혹함을 교차적으로 표현한다. 카메라의 움직임과 숏 구성도 주목할 만하다. 베리만은 3부작에서 전반적으로 절제된 카메라를 사용하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미세한 이동으로 강렬한 효과를 준다. 앞서 언급한 토마스의 독백 장면에서 아주 서서히 전진하던 카메라는, 그의 내면 고백에 관객을 끌어들이듯 다가간다. 반대로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에서는 카린이 환청을 좇아 폐선박 내부로 들어갈 때 카메라는 거리를 유지한 채 그녀를 따라가며, 관객이 한걸음 물러서 그녀의 광기를 관찰하게 연출한다. 클라이맥스에서 카린이 “신이 나타난다”고 외치며 빈방 문을 열고 비명을 지를 때, 베리만은 주관숏을 회피하고 대신 카린의 일그러진 얼굴을 응시한다. 그녀가 본 것은 거미 형상의 괴물이 자신을 덮쳐오는 환영이지만, 관객은 오직 그녀의 공포에 질린 얼굴과 절규 소리만 접한다. 이때 핸드헬드 카메라의 불안정한 흔들림과 클로즈업 구도가 겹쳐져, 공포의 체험을 간접적으로 주입한다. 이는 호러 장르에서 종종 쓰이는 기법이지만, 베리만은 그것을 신학적 의미로 전환한다. 즉, 하나님을 갈망하던 인간 앞에 나타난 것이 사랑의 신이 아니라 괴물 같은 침묵의 신이었음을 시각적으로 암시한 것이다. 실제로 베리만은 노트에 이 장면 구상을 적으면서 “내가 창조한 신의 형상은 매우 가혹한 모습”이라고 했다. 그의 구상에 따르면, ‘한 신이 한 인간 속에 내려와 내면의 목소리로 시작해 점차 그를 완전히 지배하고, 결국 모든 것을 소진시킨 뒤 텅 빈 껍데기만 남기고 떠나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 신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그것이 곧 카린에게 나타난 거미형 하나님이었다. 이렇듯 카메라의 응시와 미장센은 관객으로 하여금 신의 침묵이 빚어낸 공포와 황홀을 간접 체험하게 한다. 편집과 시간 구성은 베리만 3부작에서 비교적 인과적이고 연속적이지만, 그 리듬 역시 주제에 맞게 조율된다. 세 영화 모두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지는 밀도 높은 심리극으로, <거울>은 24시간 남짓, <겨울빛>은 반나절, <침묵>도 이틀 남짓의 시간을 다룬다. 편집은 정교하게 이 현실 시간을 따라가되, 불필요한 설명이나 사건을 배제하여 응축된 드라마를 만들었다. 특히 <겨울빛>은 81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예배-면담-편지낭독-자살-알곗말-예배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는데, 마치 한 편의 희곡처럼 삼일장 구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편집은 극적으로 절정이나 반전을 부각하지 않고 밋밋한 톤을 유지하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삶의 권태와 무의미감을 느끼게 한다. 한 예로, 요나스의 자살 후에도 베리만은 충격적인 음악이나 급박한 편집 대신, 토마스 목사가 시신을 보는 장면을 먼 거리에서 한참 지켜보게 한다. 관객은 신음도 눈물도 없는 냉랭한 공기를 체험하며, 실존의 부조리함을 정지된 시간 속에서 곱씹게 된다. <침묵>에서도 유사한 기법이 쓰인다. 안나가 낯선 남자와 성행위를 할 때조차 카메라는 멀리서 천장 거울에 비친 두 육체를 담담히 비출 뿐, 어떠한 관능적 편집이나 음악 효과도 넣지 않는다. 이런 차가운 거리감은 인물들의 내면 공허를 강조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이입보다 성찰을 하게끔 유도한다. 또한 사운드 디자인 면에서 베리만은 이 3부작에서 배경 음악을 거의 배제하고 침묵 자체를 소리로 활용했다. <거울>에서는 바흐의 곡 등 배경음악이 거의 들리지 않으며, <겨울빛>은 영화 시작에 예배장에서 요한수난곡 일부가 흐른 뒤로는 완전히 음악이 사라진다. 남는 것은 대사와 풍경음 뿐이라서, 정적이 유독 크게 느껴진다. 예컨대 토마스가 사제실에서 기도드릴 때 들리는 것은 그의 속삭임과 시계 초침 소리뿐이며, 나머지는 깊은 무음으로 채워진다. <침묵>에서도 클로크성의 시계 소리, 도시의 기계 소음, 그리고 인물들의 신음이나 한숨만이 간헐적으로 울린다. 이러한 거의 무음에 가까운 음향 연출은 제목 그대로 ‘침묵’을 청각적으로 체험케 한다. 또한 언어가 난무하지 않는 덕분에, 배우들의 표정과 제스처, 미세한 한숨까지도 관객의 주의를 끌어 영상 언어의 강도를 높인다. 베리만은 얼굴 클로즈업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찍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절제된 사운드스케이프 덕분이었다. 실제로 평론가 레오 브로디는 “베리만의 천재성은 아이디어를 시각으로 표현하면서,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우리를 사람들의 신비 속에 초대하는 데 있다”고 평했다. <침묵>에서 인물의 얼굴과 침대 머리맡 조명이 어둠 속에 놓인 채 숨소리만 들리는 장면, <겨울빛>에서 마르타가 편지 읽을 때 하나하나 표정을 조명으로 스쳐가는 장면 등은 이러한 시청각의 조화로 심리와 주제를 전달한 명장면들이다. 정리하면, 베리만 신의 침묵 3부작의 영화미학은 형식과 내용의 완벽한 합치를 보여준다. 클로즈업, 롱테이크, 침묵의 사운드 등 모든 영화적 장치가 인물들의 신앙 위기와 존재 불안을 느끼게끔 설계되었다. 카메라의 응시와 조명은 때로 성화의 엄숙한 아이코노그래피를 떠올리게 하며, 편집의 리듬과 소리의 부재는 우리를 침묵의 미로 속으로 데려간다. 이러한 형식 분석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베리만이 이 작품들을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철학적 시청각 교향곡으로 빚어냈다는 사실이다.

베리만의 신의 침묵 3부작은 표면상으로는 종교적 의례나 기적이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심층에서는 다수의 종교적 이미지와 은유가 작동하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신앙심을 직접적으로 옹호하거나 선전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부재와 침묵으로서의 신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독특한 종교미학을 구축했다. 우선 세 작품의 제목부터가 성서나 신학과 연관된다.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는 신약성서 고린도전서 13장 12절의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에서 따온 것이다. 이 구절은 현세에서 하나님을 명확히 알 수 없음을 뜻하는데, 영화에서 카린이 결국 본 것이 왜곡된 모습의 신임을 생각하면 깊은 여운을 준다. 마치 거울에 비친 일그러진 상처럼, 그녀의 정신병적 비전은 하나님의 왜곡된 이미지였던 셈이다. <겨울빛>의 원제는 직역하면 “한낮의 빛”이지만, 역설적으로 영화 속 교회는 한기 어린 겨울 대낮의 빛에 쓸쓸히 비춰진다. 이는 신앙의 혹독한 한겨울을 상징한다. <침묵>의 제목은 애초에 “신의 침묵”을 의미했고, 베리만도 이 영화까지 종교를 직접 다룬 후 이후로는 점차 인간 내면 심리로 관심을 이동시켰다. 각 영화 속에 숨어있는 종교적 모티프들을 보면, <거울>에는 신을 찾아 나선 현대의 요브와도 같은 카린의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사랑받고 싶어 애타게 하나님을 부르짖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의 신, 거미 신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데이비드는 마지막에 딸을 정신병원으로 보내며 아들 앞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고 말한다. 그는 “가장 바보 같은 사랑부터 가장 고귀한 사랑까지, 모든 사랑은 실제로 존재하며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그래서 내 빈 마음을 이 생각에 맡겨본다”고 한다. 그러자 아들 미누스는 “아버지가 내게 말씀해주셨어!”라고 감격한다는 결말 대사가 있다. 여기에서 부녀의 관계 회복은 단순 가족 드라마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 사랑 안에서 현현한 순간처럼 그려진다. 즉, 계시의 대체물로서 인간의 사랑이 성사화된 것이다. 이 장면에서 데이비드와 미누스가 둘만의 조촐한 “예배”를 드리는 듯한 구도가 인상적이다. 이는 신의 침묵 중에도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신성을 느끼는 순간을 암시한다. <겨울빛>은 종교적 상징이 가장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영화의 도입과 종결이 모두 교회 예배 장면이며, 토마스 목사의 이야기는 명백히 그리스도 수난의 메타포로 짜여 있다. 토마스는 이름부터 성경의 의심 많은 제자 도마를 떠올리게 하고, 부인 사후 냉담해진 그에게 헌신적으로 사랑을 바치는 마르타의 이름 역시 성경의 마르다와 유사하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 교회 관리인 알되트가 제기하는 신학적 질문은 영화 전체의 의미를 함축한다. 그는 목사에게 예수의 고난에서 진정한 핵심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느냐고 묻는다. 사람들은 예수의 육체적 고통에만 집중하지만, 사실 예수가 겪은 최악의 고통은 제자들에게 버림받고 하나님에게까지 버림받았다고 느낀 순간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알되트는 십자가 위 예수가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친 그 하나님의 침묵이야말로 예수의 절정 고통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통찰은 토마스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토마스는 아내와 교인들에게 외면받고 신에게서도 아무 응답을 듣지 못하자 깊은 절망에 빠졌지만, 문득 예수도 똑같이 절망을 느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즉, 하나님의 침묵이 신앙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핵심 경험일 수도 있다는 역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 깨달음 이후 토마스는 비록 신앙을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침묵 속에서라도 자기 직분을 다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교회에 마르타 한 사람밖에 없는데도 그는 미사를 시작한다. “거룩 거룩 거룩 만군의 여호와여, 온 땅에 주의 영광이 충만하도다…”라는 그의 낭송은 여전히 공허하게 울리지만, 동시에 이전보다 조금은 의미 있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의 침묵을 공유함으로써 신성과 인간성의 연대를 체험했기때문이다. 요컨대 <겨울빛>은 십자가상의 예수를 거울삼아, 현대의 목회자가 신 없는 고통의 자리에서도 하나님과 연대할 길을 모색하는 종교적 드라마로 읽힌다. 이는 신학자 본회퍼가 말한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함께”라는 모토와도 통하는 부분이다. <침묵>은 겉보기에 종교적 소재가 전혀 없다. 성직자나 교회 장면도 없고, 노골적인 신학 토론도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전하는 종교적 이미지는 가장 심오할 수 있다. 영화 내내 대사는 적고 몸의 욕구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리지만, 결말에서 에스테르가 조카에게 써준 편지가 이를 환기한다. 에스테르는 죽기 직전 요한에게 자신이 번역한 현지어 단어 목록을 건네준다. 뒤늦게 요한이 기차 안에서 그 쪽지를 읽으며 중얼거리는 마지막 단어는 “Hadjek”인데, 이는 현지 가상의 언어로 영혼을 뜻한다고 알려져 있다. 앞서 에스테르는 신에게 “제발 고향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지금부터 영원이다”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떠올리는 등, 마음속 갈망을 내비쳤다. 그녀의 기도는 끝내 응답받지 못했고 그녀는 타향 객실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다. 그러나 그 직후 요한에게 전해진 “영혼”이라는 단어는, 마치 침묵 중에 전해진 마지막 메시지처럼 울린다. 하나님은 끝내 침묵하셨지만, 그녀는 조카에게 보이지 않는 영혼의 실재를 암시하고 간 것이다. 이것을 굳이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말씀이 없는데 남겨진 말씀”이라고나 할까. 영화는 바로 이 잔잔한 메아리로 끝난다. 어른들은 서로 상처만 남긴 채 헤어졌지만, 아이는 언어의 조각을 손에 쥐고 있다. 이 이미지에는 절망 너머 어렴풋한 희망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에스테르가 적어준 것은 단순한 번역연습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찾아 헤매던 영혼의 실체를 조카에게 건네준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듯, 폴란드의 영화 거장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는 <침묵>을 자신의 가장 좋아하는 베리만 영화로 꼽았는데, 키에슬로프스키의 작품들이 흔히 삶의 영혼성과 신비를 탐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연결이다. 3부작 전체로 볼 때, 베리만의 종교미학은 부재하는 신을 상징과 메타포로 현존하게 만든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거미 이미지, 빈 교회, 낯선 도시, 병든 몸 등 부정적인 형상들 속에서 오히려 성스러움의 흔적이 드러난다. 이러한 기법은 중세 부정신학의 미학적 등가물이라 할 만하다. 즉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격언처럼, 하나님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 침묵과 공허 자체를 화면에 가득 채움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그 너머를 응시하게 하는 것이다. 베리만은 인터뷰에서 “내 영화들은 질문을 던질 뿐 답을 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그의 종교미학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성화적 시선이란 보통 거룩한 것, 구원과 환희를 응시하는 눈길이겠지만, 베리만은 피사적 시선, 즉 구원이 보이지 않는 곳을 뚫어져라 응시함으로써 관객 스스로 구원의 부재를 인식하게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체험을 한 관객은 스스로 내면에서 신의 가능성을 재발견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한 평론가는 <겨울빛>을 보고 “비록 암울하지만, 신앙의 뿌리에 있는 무응답의 질문들을 정직하게 드러내어 오히려 내게 신앙을 새롭게 자각하게 했다”고 평했다. 베리만의 종교적 영상미학이 지닌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름다운 성가나 기적 장면 하나 없이도, 그의 영화는 관객의 영혼을 뒤흔드는 강렬한 의식이 된다.

잉마르 베리만의 ‘신의 침묵’ 3부작은 신학, 철학, 미학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걸작으로서, 하나님의 부재 앞에 선 인간 존재의 벌거벗은 진실을 직시한다. 이 세 편의 영화는 각각 독립된 이야기이지만, 함께 놓고 보면 하나의 영적인 여정처럼 이어진다. 첫째 날 저녁에 절망 속에 “신은 사랑”이라는 말을 붙들었다가, 둘째 날 한낮에 그 사랑마저 의심하고 부정하며 신을 잃고, 셋째 날 깊은 침묵의 밤에 이르러 비로소 아무 말 없는 하나님과 대면하게 되는 형국이다. 그 밤은 암흑이지만, 베리만은 그 속에서 완전한 침묵이 아닌 부재의 형태로 현존하는 신의 인상을 포착한다. 마치 사진 필름의 네거티브처럼, 빛의 부재를 통해서만 도리어 어떤 상이 드러나는 원리다. 베리만 자신의 말처럼, 3부작은 형이상학적 의미의 감소와 환원을 통해 궁극에 남는 신의 음각을 보여준다. 그것은 친절하고 위안주는 하나님 모습이 아니라, 침묵과 공허라는 모양으로 새겨진 신의 흔적이다. 그러나 그 흔적을 마주하는 일이야말로 신앙의 새로운 가능성, 혹은 인간 실존의 진실에 다가가는 길임을 베리만은 암시한다.

베리만은 이 영화들을 통해 자신의 신앙적 고민을 철저히 쏟아냈고, 개인적인 영적 투쟁을 보편적인 예술로 승화시켰다. 칼 바르트는 한때 “신학이 예술보다 먼저 이런 질문을 진작 다루었어야 하는데 늦었다”고 탄식했지만, 베리만은 예술이 신학을 앞질러 그 빈 공간을 메웠다고도 볼 수 있다. 그의 카메라는 성서의 연장선에서 욥의 탄식과 예수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현대인의 일상 속에 재현해냈다. 그리고 그 응답없음의 순간에, 기도의 본질과 믿음의 민낯을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