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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한 체중 감량이 삶과 관계에 미치는 영향

 

최근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급격한 체중 감량이 부부 관계를 뒤흔드는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조명하는 기사를 발표했다. 의사들은 GLP-1 유사체 계열의 비만 치료제의 신체 부작용에 대해 경고해왔지만, 정작 이러한 약물이 부부 친밀감과 관계에 미치는 예상치 못한 영향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8명 중 1명이 체중 감량 약물을 시도해보았을 만큼 이러한 약물의 사용은 보편화되고 있는데, 이에 반해 이 약물이 가져올 심리사회적 변화에 대해서는 의료 현장에서 충분한 안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된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급격한 체중 변화로 인한 자신의 심리 변화와 대인관계의 갈등을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있어, 현재 이를 둘러싼 담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급격한 체중 감량의 시대

과거의 비만 치료는 식이요법과 운동, 그리고 일부 식욕억제제(암페타민 유사 약물 등)나 위절제술과 같은 침습적 방법에 의존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효과가 더디거나 부작용이 크고, 무엇보다도 환자의 장기적인 생활습관 변화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웠다. 최근 등장한 GLP-1  수용체 작용제들은 이러한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예컨대 위고비나 마운자로 등은 주 1회 주사만으로도 평균 15% 내외의 체중감량을 달성하여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약물의 뛰어난 효과로 인해 전세계 수백만 명이 이 신약을 사용 중이며, 신체 건강상의 이점도 분명하게 보고되고 있다. 실제로 “비만 주사”로 불리는 이 신약들은 당초 기대한 대로 신체적 건강을 개선할 뿐 아니라, 우리의 감정생활에도 엄청난 효과를 미치고 있다고 언급된다. 하지만 “쉽고 빠른” 살빼기의이면에는 간과할 수 없는 함정이 있다. 짧은 기간 내의 급격한 체중감소는 우리 몸에 물리적으로 근육량 감소를 동반하며, 체중 감소분 중 약 25~40%가 근육 등 체지방량일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그 결과 기초대사량 저하나 신체 활력 감소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며, 일부에서는 성욕 저하 등의 가능성도 거론된다. 흥미롭게도, 체중이 줄면서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증가 등 호르몬 균형이 개선되어 성기능이 향상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는 반면, GLP-1 약물이 뇌 보상계와 세로토닌 경로에 영향을 주어 성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상반된 보고도 존재한다. 결국 이러한 신체적 효과는 개인별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약물들이 식욕과 포만감뿐 아니라 다양한 행동과 생리 현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신체에 즉각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치료제가 그 사람의 심리와 사회적 삶에도 급격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치료법에서는 수년간에 걸쳐 점진적 체중감량과 습관 형성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몇 달 내로 수십 킬로그램이 감량된다. 이는 마치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자기 이미지와 생활방식이 순식간에 바뀌는 것과 같다. 적절한 대비 없이 이러한 급변을 겪게 되면, 예상치 못한 심리적 충격과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체중과 자아상

체중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오랫동안 비만이었던 사람들에게 체중은 자신의 정체성 일부이자,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사회에 만연한 체중에 대한 낙인과 미적 기준 탓에, 많은 비만인들은 낮은 자기존중감과 외모 열등감을 겪으며 살아간다. 일례로,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소개된 한 여성은 평생 비만이었던 자신의 체형 때문에 타인의 비위를 맞추고 밝은 성격의 “예스맨”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이는 주변의 사랑과 인정을 얻기 위한 그녀만의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급격한 체중 감량 후 그녀의 자기 인식은 크게 변했다. 신체가 날씬해지면서 자존감이 회복되었고, 더 이상 타인에게 억지로 맞출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감정과 욕구를 직면하며 배우자에게 “싫다”는 의사 표현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마치 오랫동안 입고 지낸 무거운 옷을 벗어던지고 진짜 자신을 드러낸 셈이다. 실제 연구에서도 체중 및 신체 이미지가 정체성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특히 여성의 경우 외모와 자기 가치감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해 체형 변화가 대인 관계 역학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보고된다. 급격한 체중 감소는 기존의 자기상 (self image)의 붕괴와 재구성을 요구하며, 이는 다른 중요한 삶의 전환 못지않게 당사자에게 심리적 부담을 줄 수 있다. 체중을 감량한다는 것은 단순히 살만 빼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일부 모습을 잃는 과정이다. 오랜 시간 비만 상태로 지내며 형성된 습관, 대인관계에서의 역할,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둘러쳤던 심리적 장벽들이 한꺼번에 변화한다. 일부 정신분석학자들은 비만 자체가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막’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급속한 체중 감량은 이러한 방어막을 순식간에 제거하는 셈이고, 이는 심리적으로 큰 노출감과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 과거에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체중을 이유로 사회적 도전을 피했던 사람이라면,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정서적 어려움을 다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충분한 준비 없이 이러한 변화를 맞이하면, 체중이 줄어든 후에도 심리적 만족감은커녕 공허함이나 우울감을 겪을 수도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비만 환자에서 체중 감량 후 우울증상과 불안은 전반적으로 개선되는 경향을 보이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오히려 악화되기도 한다는 보고가 있다. 이는 체중 감량이 정신 건강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감량 후에도 심리적 문제들이 남아있거나 새로운 양상으로 표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약물을 통한 식욕 억제로 식생활 패턴이 급변하면, 그동안 음식에 부여했던 심리적 의미도 재검토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흔히 기쁨은 맛있는 디저트로, 위안은 따뜻한 식사로 얻곤 한다. 그런데 갑자기 식욕이 줄어들고 소량으로 배가 부르게 되면, 음식이 차지하던 정서적 지위가 사라진다. 어떤 이들은 이를 긍정적인 해방으로 받아들이지만, 다른 이들은 잃어버린 즐거움에 허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GLP-1 약물은 음식뿐 아니라 알코올등 다른 보상 자극에 대한 갈망도 낮추는 경향이 있는데, 부부나 친구 관계에서 함께 즐기던 음식과 술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그 자체로 관계의 변화를 야기한다. 한 영국인 환자는 약물 치료 후 수면이 개선되고 건강이 좋아졌지만, 더 이상 파티에서 마지막까지 남지 않게 되니 남편이 우리가 너무 심심한 부부가 되어버린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고 한다. 이처럼 라이프스타일의 동반 변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까운 인간관계의 문화를 바꾸는 일이 된다.

관계의 역학 변화

한 개인의 극적인 체중 변화는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 특히 부부나 연인 관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앞서 언급된 뉴욕타임스 기사에서는 15년간 결혼 생활을 해온 한 부부의 사례를 소개한다. 아내는 새로운 비만치료제의 도움으로 급격히 체중을 감량했고, 남편은 처음에는 그녀의 다이어트를 지지했다. 그러나 체중 감량 후 아내의 태도가 달라지자 남편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더 이상 배우자의 요구에 무조건 맞춰주지 않고, 오랫동안 꺼려왔던 성관계에 대해 처음으로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남편은 이를 두고 “혹시 약물이 아내의 성욕을 떨어뜨린 것 아닐까” 추측했지만, 정작 아내에게는 5년 만에 자신의 경계를 주장할 용기가 생긴 것뿐이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체중 감량이 부부 간 성생활과 친밀감에도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GLP-1 기반 체중감량자의 일부는 성욕이나 성기능이 향상되었다고 보고하는 반면, 다른 일각에서는 배우자의 급격한 체중감소 이후 성생활의 변화를 겪었다는 이야기가 빈번하다. 이는 단순히 호르몬 변화나 약물 영향이라기보다, 몸이 변함에 따라 나타나는 부부 사이의 심리적 역학 변화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체중 감량으로 자신감이 붙은 배우자는 이전보다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고 주도권을 행사하려 할 수 있고, 반대로 배우자는 이러한 변화를 당혹감이나 위협으로 느낄 수 있다. 배우자 간의 힘의 균형도 변모한다. 과거 한쪽(비만인이었던 배우자)이 열등감으로 관계에 종속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대등하거나 주도적인 입장으로 바뀔 수 있다. 이는 기존의 관계 구조를 흔들어 놓으며 갈등을 빚을 위험이 있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결혼한 상태에서 비만수술 등으로 큰 폭의 체중감량을 한 경우 이혼이나 별거에 이를 확률이 일반인 대비 2배 이상 높아졌다고 한다. 미국에서 비만수술을 받은 1,441명을 5년 추적한 대규모 연구에서, 체중을 많이 감량한 사람일수록 이혼/별거할 가능성이 높았고, 수술 후 성욕이 증가했다고 보고한 이들도 배우자와의 관계 해체율이 높았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있었다. 연구진은 한쪽의 생활방식 변화(식사 및 활동 패턴 변화와 증가된 성적 욕구 등)가 배우자와의 불균형을 초래한 것이 한 요인일 수 있다고 해석한다. 함께 먹고 마시는 일상이 중요했던 부부라면, 한쪽이 식단을 바꾸고 금주를 하게 되었을 때 상대방은 소외감과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 음식은 단순한 영양섭취를 넘어 부부 간 애정과 추억의 표현 방식인 만큼, 그 공유의 상실은 생각보다 큰 파장을 미친다. 또한 감량한 배우자가 날씬해진 후 이성들에게 받는 관심이 부쩍 늘어날 경우, 상대 배우자는 불안과 질투심에 시달릴 수 있다. 실제로 “갑자기 날씬한 ‘인싸’가 된” 파트너를 지켜보는 일은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 풍조 속에서 상대에게 심각한 심리적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상대는 “혹시 배우자가 변심하지 않을까”, “나보다 더 매력적인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근원적 불안에 직면하게 되고, 관계에서는 이전에 없던 의심과 불신이 싹틀 수 있다. 모든 부부가 이런 부정적 경로를 걷는 것은 아니다. 어떤 커플들은 함께 약물치료를 시작하여 동반 감량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한 사례에서는, 50대 부부가 나란히 마운자로 주사를 맞고 모두 건강을 회복하자 결혼 생활이 오히려 더 돈독해졌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감이 붙고 서로를 칭찬하게 되면서 정서적 친밀감이 향상되었고, 함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부가 열린 마음으로 함께 변화를 수용할 때에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배우자 중 한 명만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고, 심리적 준비 정도나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약물치료를 둘러싼 낙인과 비밀주의도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배우자나 주변의 시선 때문에 약물 사용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몰래 주사 맞는 사람들”의 경험담이 다수 올라오는데, 약물을 냉장 보관해야 하므로 냉장고 음식 더미 뒤에 숨겨 놓는다든지 남편에게는 고양이가 당뇨병이 생겨 인슐린을 놓는 거라고 거짓말했다는 웃픈 사연까지 공유된다. 이러한 비밀 유지로 인한 스트레스와 들켰을 때 신뢰 손상 가능성 역시 관계에 부담이 된다. 한편으로, 배우자가 약물 사용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경우에는 윤리적 판단 차이가 부부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 실제 사례에서 남편은 “노력으로 살을 빼야지 약에 의존한다”며 내심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것이 아내와의 감정 충돌의 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요컨대, 체중감량으로 인한 관계 변화는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된다. 긍정적으로는 건강한 생활을 함께 즐기는 동반자 관계로의 발전이 있지만, 부정적으로는 질투와 소외, 그리고 가치관의 충돌로 인한 관계 악화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상당히 흔하게 일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환자나 배우자 모두 사전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누구도 우리에게 이런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는 것이 많은 부부들의 공통된 호소다. 이는 의료진이 체중감량의 사회심리적 영향에 대해 간과해온 측면이 있음을 반성하게 한다.

사회생활과 심리적 함정

체중 감량의 파장은 부부 사이뿐 아니라 사회생활 전반에 미친다. 오랫동안 솔로였던 사람이 큰 폭의 체중을 줄이면 새로운 연애나 사회 활동에 나서는 경우가 늘어난다. 앞서 언급한 비만수술 코호트 연구에서도, 싱글이던 사람들의 18%가 5년 내 결혼하거나 연인을 찾았는데 이는 일반인 대비 2배 이상 높은 비율이었다. 이렇듯 체중 감량은 자신감 회복과 외모 변화를 통해 사회적 매력도를 높여주고, 그동안 망설였던 활동에 뛰어들게 하는 긍정적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새로 시작한 연애나 대인관계 역시 당사자의 심리적 적응이 필요하다. 급격히 늘어난 관심과 호감을 처음 겪는 사람은 상대의 호의에 대한 의심이나 자신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혼란을 느낄 수 있다.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 내 현재 날씬한 모습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나, 반대로 과거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냉소와 경계심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러한 감정들은 새로운 관계 형성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체중을 감량한 싱글들이 건강한 자아존중감과 현실 검증을 가지고 새로운 만남에 임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 및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보고된다.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는 한 사람이 살을 빼면 미묘한 경쟁 의식이나 질투가 생길 수 있다. 함께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한쪽만 약물 도움으로 성공할 경우, 약물을 쓴 쪽은 얍삽한 짓을 했다는 눈총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날씬해진 사람이 오히려 주변 친구들의 과도한 관심과 견제를 받아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예전에는 아무도 내 몸에 대해 참견하지 않았는데, 살을 빼니 다들 내 식사량과 옷 사이즈에 집착한다”는 경험담이 그런 예다. 가족의 반응도 다양해서, 어떤 부모는 자녀의 체중감량을 기뻐하면서도 약물 사용에 대해 죄책감을 심어주거나 “그렇게 뺀 건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평가절하할 수 있다. 이러한 부정적 반응들은 체중을 감량한 당사자에게 좌절감을 줄 뿐 아니라, 다시 과거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 한 여성은 남들이 자신을 질투하고 불편해하는 것 같아 차라리 살쪘을 때가 대인관계가 편했다는 극단적인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는 새로운 몸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심리적 지지와 수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한편, 체중감량의 심리적 함정 중 하나로 ‘대체 중독’ 현상이 거론된다. 이는 음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다른 행동이나 물질에 대한 중독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뜻한다. 특히 위우회술 같은 급격한 체중감량 수술 후에 종종 보고되는데, 한 연구에서는 비만 수술 환자의 최대 30%에서 도박, 쇼핑, 알코올, 약물남용 등 새로운 중독 행동이 나타났다고 한다. 음식이 더 이상 스트레스 해소나 위안의 수단이 되지 못하자, 도박이나 음주 등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어릴 적 트라우마나 우울증을 가진 환자에서 두드러졌는데, 이는 심리적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고 신체만 바꿀 경우 위험이 있음을 시사한다. GLP-1 약물 치료의 경우, 수술만큼 극단적인 신체 변화나 흡수율 변화는 없지만, 식욕이 억제됨으로써 기존의 폭식이나 음식중독 행태가 억눌리면 다른 형태의 충동이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행히 GLP-1 제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보상 회로 자체를 조절하여 알코올 등의 욕구를 줄여줄 가능성이 있지만, 이러한 정신건강 모니터링은 필수적이다. 특히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이력이 있는 비만 환자라면, 체중 감량 과정에서 정기적인 심리 평가와 지원을 병행하여 감정 조절의 어려움이나 새로운 중독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고 대처해야 한다.

체중 감량 치료에 대한 통합적 접근의 필요성

의학적으로 체중을 감량시키는 방법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체중 감량을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는 결국 생활습관 변화와 심리적 적응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체중 감량 자체보다 감량 이후의 유지가 더 어렵다는 것은 비만 치료 분야의 정설이다.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다이어트로 체중을 뺀 사람들 대부분이 오래지 않아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는데, 이는 체중 감량에 작용하는 심리적 요인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살을 빼는 것은 비교적 쉬워도, 평생의 잘못된 식습관과 행동 패턴을 바꾸는 것은 어렵고도 지난한 작업이다. GLP-1 주사와 같은 강력한 도구는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을 주지만, 약물이 생활습관 그 자체를 영구적으로 바꿔주지는 못한다. 약을 끊으면 식욕과 체중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쉽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체중 감량을 다루는 데 있어 신체와 정신을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을 권고한다. 비만 클리닉의 핵심은 결국 정신과적 관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환자의 행동 변화, 동기 부여, 스트레스 대처, 자기효능감 향상 등이 치료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상적인 체중 감량 치료는 의사, 영양사, 운동 전문가, 그리고 정신건강 전문가가 팀을 이루어 환자를 지원하는 형태다. 의사는 약물이나 수술로 신체적 감량을 촉진하고, 영양사와 운동 전문가는 건강한 식생활과 활동량 증진을 지도한다. 동시에 정신건강 전문가는 환자의 심리적 준비상태와 감정 변화를 살피고, 필요한 상담이나 치료 개입을 제공해야 한다. 예컨대, 정서적 허기를 음식이 아닌 다른 건강한 방식으로 해소하는 법을 가르치거나, 왜 자신이 살이 찔 수밖에 없었는지 개인사의 근원을 탐색하여 재발을 막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이나 배우자가 치료 과정에 참여하여, 함께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심리적 지지를 하는 것이 도움된다. 급격한 체중감량을 앞둔 환자에게 배우자나 가까운 가족에게 미칠 심리사회적 영향까지 상담해주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이를 통해 주변인들이 변화에 대비하고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세우도록 도울 수 있다. “직업 변경이든 체중 감량이든, 어떤 삶의 변화에도 서로의 감정을 터놓고 소통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의료진은 환자에게 현실적인 기대치와 자기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체중이 줄면 인생의 여러 측면이 나아질 수 있지만,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알려 심리적 대비를 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몸이 가벼워지면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막상 살이 빠지고 나서도 대인공포나 우울감이 남아있다면, 큰 상실감에 빠질 수 있다. 이런 경우 적절한 심리치료를 병행하면서, 체중감량과 별개로 존재하는 내면의 문제를 다루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 체중 감량 약물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비난을 걷어내고, 정당한 치료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환자들도 죄책감 없이 치료에 임할 수 있고, 주변의 지지도 기대할 수 있다. 동시에, 급격한 체중 감량이 일상의 인간관계에 미칠 수 있는 파장에 대해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담론이 활발해질 때, 비로소 체중 감량은 숫자의 변화 그 이상으로 삶의 변화임을 모두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의 전공의 시절 의국 선배님께서 초청강의를 오셔서 정신과의 비만에 대해 강의를 해주신 일이 있었다. 당시 드물게 압구정동에서 비만클리닉을 하던 분이었는데 다른건 다 기억에 남지 않는데 “체중감량의 핵심은 life style modification 이다. 그걸 잘 다루지 못하면 결국 실패한다. 그러니 이 분야에서 가장 잘 할수 있는 것이 정신과의사다.” 라고 말씀하셨던게 기억이 난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참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듯 하다.

결론

“살을 뺀다”는 것은 흔히 외형적 개선이나 건강 증진으로 인식되지만, 그 과정과 결과에는 심리적·사회적 함의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 최첨단 비만치료제로 인한 급격한 체중 감량은 환자의 자아상과 인간관계에 지대한 변화를 촉발하며, 이는 때로 긍정적으로, 때로 부정적으로 표출된다. 급속 감량의 시대를 맞아 의료진과 환자 모두 체중 감량의 ‘심리적 무게’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과학적 연구와 임상 사례들은 체중 감량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며, 신체만이 아니라 마음과 관계의 준비가 함께 이루어져야 지속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살과 함께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정신적 자원들은 오히려 채워나가야 한다. 신체·정신·사회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건강한 체중 감량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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