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 NS et al. Low-Intensity Transcranial Current Stimulation in Psychiatry. Am J Psychiatry. 2017;174(7):628-639

Neurostimulation: any intervention intended to alter nervous system function by using energy fields such as electricity, magnetism, or both.

  • Electroconvulsive therapy (ECT)
  • Vagus nerve stimulation (VNS)
  • Repetitive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rTMS)
  • Deep brain stimulation (DBS)

a recent surge of interest

  1. targeting specific brain regions or circuits – a level of focality
  2. increased use of medical technology
  3. superior tolerability for use alone or in combination with pharmacotherapy or psychotherapy
  4. potential to improve cognition or nonspecific symptoms

SECTION 1: Electrical Engineering and Neurophysiology

tCS

  • tDCS (direct current stimulation): a constant, or “direct”, waveform
  • CES (cranial electrial stimulation): proprietary waveforms that may fluctuate over time
  • tACS (alternating current stimulation): sine waves
  • tRNS (random noise stimulation) : broadband noise
  • eTNS (external trigeminal nerve stimulation)
  • tVNS (transcutaneous vagus nerve stimulation)

Ohm’s law (V = I x R)

Spatial Targeting: Electrode Montages

  • Spatial targeting using computer simulations of the electrical field distribution, as a function of electrode number, size, and location, has been proposed (8) but lacks validation as an approach to guide clinical tCS.
  • given the distrib- uted and complex deficits in neuronal networks associated with psychiatric disorders, identifying the correct target area(s) for therapeutic stimulation in a specific disorder or symptom remains an important challenge for the field.

Neurophysiological Effects of tCS

Subthreshold membrane fluctuations are not sufficient to generate an action potential (left). However, if intrinsic fluctuations in a neuron’s membrane voltage move it closer to its threshold, application of an inherently subthreshold input, such as low-intensity transcranial current stimulation (tCS), can trigger an action potential (right). Dashed line indicates threshold.

Communication between individual neurons and neuronal networks is nonlinear and complex, with a large number of inputs influencing the activity of any individual neuron. Therefore, even a small change in the membrane voltage may impact neuronal firing.

SECTION 2: REVIEW OF PUBLISHED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of tCS for Schizophrenia

Montages

  • anode: left DLPFC
  • cathode: temporoparietal junction, supraorbital area
  • Brunelin et al (40) (N=30) conducted the first randomized controlled trial and observed that active tDCS reduced auditory hallucinations acutely (p,0.001) and over 3 months (p,0.001) and reduced negative symptoms (p=0.01).
  • This was followed by a study by Smith et al. (45) (N=33) that found active stimulation improved cognition (p=0.008) but had no effect on positive or negative symptoms (all p.0.1),
  • whereas Palm et al. (44) found that tDCS reduced negative symptoms (p=0.016) and Mondino et al. (43) found that tDCS reduced hallucinations (p,0.001).
  • Several studies using tDCS (Fitzgerald et al. [41], N=24, and Frohlich et al. [42], N=26) and tVNS (Hasan et al. [46], (N=20) found no difference between active and sham stimulation.
  • The currently available data do not support use of tCS for schizophrenia. The evidence base comprises a small number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with conflicting results.
  • More work is clearly needed to develop tCS for treatment of patients with schizophrenia.

SECTION 3: POTENTIAL RISKS OF tCS

Device-Related Risks

Risk of Adverse Cognitive Effects

Risk of Interference With Psychiatric Treatment

SUMMARY: EFFICACY AND SAFETY OF tCS IN PSYCHIATRIC DISORDERS

허우 샤오시엔 – 카페 뤼미에르

Ochanomizu Station, Japan 2018

카페 뤼미에르는 2003년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영화제작사인 쇼치쿠의 의뢰로 제작된 영화이다. 원제는 咖啡時光 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재정비하여 앞으로의 일을 준비하기 위한 평온한 한 때’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쉽게 눈치챌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철저히 오즈의 영화를 오마주하면서 동시에 변주하고 있다. 그것은 아주 작은 미쟝센에서 부터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의 위치까지 연결된다. 카페 뤼미에르는 오즈의 영화 처럼 시집을 가지 않는 과년한 딸이 있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아버지 세대의 시선과 정서를 다루었던 오즈의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에서는 자식 세대의 시선과 정서가 담겨있다.

요우코에겐 아버지와 새엄마가 있다. 자신을 낳아준 친엄마는 자신이 네 살이 되던 해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요우코는 대만에서 자신이 일본어 선생님을 하던 시절 학생이었던 남자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해 해결되지 못한 마음 때문인지 그녀는 아이를 낳을 것이지만 결혼은 하지 않을거라 이야기한다. 자식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아버지는 그런 요우코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 그 남자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이유도 단지 그가 마마보이라는 것뿐이다. 그렇게 어머니가 사라지자 영화 속 아버지는 존재하지만 동시에 부재한다. 서구의 영화연구가들이 영화에서 아버지를 이야기할 때 허우 샤오시엔은 아시아에서 어머니를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요우코는 줄곧 담담한 듯 행동하지만, 그녀에겐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친엄마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크다. 천둥이 치던 어느 날 밤 그녀는 하지메에게 전화를 하며 자신이 네 살 때 어머니에게 버려졌음을 고백한다. 허우 샤오시엔은 영화 내내 자연광을 써서 촬영 하였지만, 그 장면에서만큼은 유독 인공광을 사용하였다. 천둥이 치며 번쩍거리는 외부의 인공광과 그녀를 아래쪽에서 비춰주는 어슴푸레한 인공광은 그녀의 마음속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런 그녀는 고서점을 운영하는 하지매를 짝사랑한다. 아니 짝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않는다. 그녀의 가족들과의 관계를 통해 유추할 때 그것이 그녀의 유년시절 상처로 인한 것인지 일본사람들의 특성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 심각하지는 않아 보인다. 본인의 상황이나 현실에 무관심하고 무언가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하지메는 오래된 서점을 가지고 있으며 요우코의 친한 친구다. 그는 녹음기를 들고 지하철의 소리를 녹음하러 다닌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 속의 남자 주인공이 연상된다. 영화에서 그 역시 마음이 잘 드러나지 않는 그냥 차분한 성격의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녀가 관심이 있는 대만 음악가에 대해서 의논하고 찾아올 때도, 임신소식을 전해올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녀에게 더 다가가지는 않고 그저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할 뿐이다. 때때로 그는 유령처럼 요우코에게 나타난다. 그러면 유코는 꼭 잠을 자고 있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는 꿈속의 친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아플 때면 찾아와서 자상하게 간호를 해준다. 그는 자신을 자궁 속에 갇힌 태아로 묘사한 일러스트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에게 부모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단지 오래된 고서의 향기와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요우코와 코분야라는 60-70년 전 음악가의 흔적을 함께 찾는다. 그가 자주 찾던 도쿄의 옛 장소를 찾아다니지만, 이것이 영화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매우 정적인 이 영화 속에서 그들이 이동하는 수단인 열차는 유독 도드라진다. 이것이 이 영화의 내러티브의 거의 전부이다. 두 남녀가 있고 좋아하는 음악가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며 그 와중에 그들의 과거사가 어렴풋이 드러날 뿐이다.

영화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 번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 빠지곤 한다. 그의 영화는 통속적인 줄거리와는 반대로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구성되어있으며 영화문법과 카메라 워크를 공부할 때 거쳐야 할 관문같은 것들이다. 오즈의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모든 인물이 서로 단절되어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리하여 같은 장소에서 서로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장면에서도 투 쇼트가 등장하지 않고 각기의 인물들을 따로 잡고 있다. 이러한 촬영은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한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각기의 공간에 고립되어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서로를 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 오즈의 영화는 매우 쓸쓸하고 적막하다.

오즈의 탄생 100주년을 기획하여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많은 사람이 오즈 영화의 정서를 떠올리며 잔잔한 일상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카페 뤼미에르’를 가리켜 일상의 잔잔함을 보여준다는 사람들의 말은 대부분 잘못되었다. 이 영화의 모든 것들은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오즈는 유머를 영화 속에 녹여놓고 대신 사람들을 프레임 안에 가둬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는 ‘동경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허우 샤오시엔은 오즈의 쓸쓸하고 소음 가득한 동경이야기를 팬과 트레킹을 이용해 모두 움직이는 영화로 만들었다. 열차와 자동차와 거리의 사람들은 과도하게 의도적으로 끝없이 움직인다. 카메라는 움직이는 사람들과 차량 사이에 인물들을 갖다놓고 인물이 카메라에 포착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움직이는 모든 것을 찍었다. 또한, 프레임안에 반드시 한 명 만을 놓고 싶어 하던 오즈와는 달리 허우 샤오시엔은 반드시 두 명 이상을 함께 잡는다.

자. 오즈의 움직이지 못하는 그 쇼트들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뭘까? 해답은 간단하다. 그 쇼트를 기차에 태우고 찍으면 되는 것이다. 인물과 카메라는 오즈의 기존영화들처럼 정지한 채 있지만, 열차가 움직이니까 그 쇼트들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 다시 말해 카페 뤼미에르는 그동안 갇혀있던 오즈를 움직이게 하여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하는 영화다. 같은 자리에 있어도 인물들을 모두 쇼트와 리버스 쇼트로 나누어 혼자처럼 보이게 찍던 오즈와는 정반대로 심지어 영화는 서로 다른 전철을 타고 있는 하지메와 요우코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연결한다. 영화에서 빛나는 장면 중 하나인 하지메의 열차와 요우코의 열차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핵심은 그들이 스친다는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프레임 안에 들어있게 찍었다는 사실이다. 이 장면을 많은 관객은 주인공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독해하였는데 이는 반대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이들조차 한 프레임 안에 같이 존재한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더 온당할 것이다.

인물들이 정지하거나 배경이 정지되면 반드시 소리를 집어넣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소리라고 할 만큼 많은 비중을 두었다. 예를 들어 요우코가 사진 찍는 모습이 보이고 찍히는 그 대상까지 카메라가 이동하는 데드타임에 열차의 소리나 자동차의 소리를 넣는다. 다시 말해 카페 뤼미에르에서 모든 것을 소통시키는 것은 소리다. 누군가 전화를 걸면 반드시 열차나 사람이나 소리나 무언가가 움직이거나 시작된다. 더 나아가, 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공백을 메꿔주는 사운드다. 오즈가 그의 특기인 사운드(대사)를 통해서 쇼트를 나누었지만 허우샤오시엔은 한 시퀀스에서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는데 (예를 들어 닷카페를 찾는 길에서 나오는 음악이 아무 상관 없는 다음 씨퀀스인 요우코의 방에서도 계속 나온다) 이전 씬에서 흐르던 음악이 계속된다. 이렇게 영화를 만들면 영화는 일관성이 깨져 버린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게 만들었다. 오즈가 사운드로 쇼트를 나누었던 것과 달리 그는 사운드로 쇼트를 모두 연결시켰다.

좀 더 과도한 해석을 해보자. 요우코는 오즈의 ‘동경이야기’에서 남편을 잃었으나 시부모에게 정성을 다하는 며느리다. 왜냐하면 동경이야기에서 시아버지가 어머니의 유품으로 며느리에게 준 시계를 요우코가 가지고 있다. 카페 뤼미에르에서 그녀가 시계를 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때 전차의 시계와 그녀의 시계의 시간이 서로 다르다. 말하자면 이건 오즈영화의 시간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우코 (며느리)는 그것을 하지메에게 선물로 준다. 116주년 기념이라고 한다. 대부분 알듯이 100년은 오즈탄생이고 16은 허우샤오시엔의 16번째 영화를 뜻한다. 하지메는 말하자면 오즈의 시간을 이어받은 허우 샤오시엔이 된다. 그래서 그가 플랫폼에서 녹음하는 소리는 바로 우리가 영화에서 듣는 배경음이 된다. ‘카페뤼미에르’의 소리는 동시녹음이 아니라 따로 입혀졌다. 같은 말로 영화 속의 사운드는 하지메의 녹음소리다. 그래서 요우코와 하지메의 만남은 불현듯 시간을 통과해 서로에게 나타나는 오즈와 허우 샤오시엔처럼 보인다. 요우코는 죽은 오즈처럼 잠을 자고 하지메는 오즈는 깨운다. 또는 마지막 장면에서 하지메가 녹음을 하면서 요우코를 알아보지 못한다. 서로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 있지만 하나로 묶는 프레임과 사운드처럼 카페 뤼미에르안의 오즈와 허우 샤오시엔은 서로를 바라보며 존재한다.

‘카페 뤼미에르’가 오즈의 쇼트들을 필사적으로 움직이게 하려고 이용하는 또는 행복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열차다. 정말 중요한 것! 오즈의 동경이야기에는 열차가 나오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누구에게 향하기 위한 이동수단으로 열차에 탄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노부부가 어딘가로 여행할 때 출발지가 나오고 컷이 바뀌면 도착지다. 사실은 그들은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것이다. 단 한 번 동경의 풍경을 보여주기 위한 전차는 나온다. 그것은 누구에겐가로 향하는 것이 아니다. 단 마지막에 유품으로 시계를 받은 며느리가 열차를 탄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 장면도 창밖은 보여주지 않아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카페 뤼미에르’는 그 열차의 도착으로 시작한다.

다시 말해 영화는 오즈의 ‘동경이야기’에서 빠져있던 것들을 채우는 작업이다. 노부부가 탈 수 없었던 열차를 등장시켜 영화 내내 움직이는 사람들과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은 보여준다. 절단되었던 쇼트들은 롱테이크로 이어지고 사운드로 이어지고 마치 오즈처럼 결혼을 안 하기로 한 소녀는 그 외로움조차도 인생을 빛나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영화는 오즈가 이야기하던, 인간이 태어나 살아내야만 하는 쓸쓸함 마저 아끼겠다는 요우코의 노래로 끝난다. 그녀의 노래가 시작되는 건 정확히 네 대의 열차가 겹쳐지는 순간이고 그 순간 허우 샤오시엔과 우리는 오즈가 이제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카페 뤼미에르’는 오즈가 행복하길 바라는, 그래서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동경이야기이다.